정원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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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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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낙원’ 사이의 오랜 연관성에 주목하는 이 책은 정원에 대한 작가의 매혹에서 시작하여 존 밀턴의 《실낙원》,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 데릭 저먼의 퀴어 유토피아 등 예술, 역사, 사회사상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내면 묘사와 다채로운 기록을 엮는 서술은 모순의 공간으로서의 정원을 탐구하는 동시에, 해방과 공동체의 가능성을 품은 정원으로 우리를 이끈다. ‘추방의 정원’에서 ‘모두의 정원’으로 향하는 이 책의 여정은 파국이 임박한 우리 시대에 가장 매혹적이고 희망적인 성찰이 될 것이다.
2. 밀턴과 이브의 정원
3. 풍경에 숨은 권력
4. 식민지 개척자의 공허
5. 젊은 날의 유토피아
6. 데릭 저먼의 에덴
7. 전쟁과 꽃
8. 모두의 정원이라는 꿈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도판 목록
식물 용어 목록
나는 시간을 새롭게 이해하고 싶었다. 나선형으로 흐르거나 순환하는 시간, 부패와 비옥함,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박동하는 시간을. 나는 정원사가 시간을 다르게 이해하는 비법을 전수받았으며, 그것이 지금 종말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우리를 막는 방법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처음부터 어렴풋이 생각했다. _30쪽, 〈1. 꿈의 장소〉 중에서
《실낙원》에 등장하는 상실의 유형을 분류해 보면 대부분 추방과 관련이 있다. 고국이나 한때 거대했던 땅을 잃는 슬픔,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음을 깨닫는 슬픔, 사랑하는 대상이 완전히 파괴되고 영영 사라지는 슬픔. 특히 이브는 형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집을 떠나야 하는 것이며 직접 이름을 붙여주고 물을 준 장미를 더 이상 돌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드러낸다. 정원과 이브의 빛나는 협동은 끝났다. 이브가 받아야 하는 형벌에는 자연으로부터 소외되고 멀어져 불모의 땅에서 잡초를 키우는 것도 있었다. _68쪽, 〈2. 밀턴과 이브의 정원〉 중에서
나는 화단에서 아티초크와 커다란 절굿대에 침투한 뽕나무버섯을 찾아냈는데 둘 다 버섯의 존재가 별로 괴롭지 않은 듯했다. 공기는 잘 익은 무화과나무 향기로 묵직했다. 정원은 너무나 아름답고 자꾸만 변해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이 역시 현실임을 부인하는 것은 얼마나 오만한 일인가. _109쪽, 〈3. 풍경에 숨은 권력〉 중에서
《에코토피아 뉴스》는 미래 사회에 대한 청사진이라기보다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두려움이나 탐욕, 불안정이 사라지고 우선순위가 바뀌면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자는 초대에 가깝다. 어떤 느낌, 어떤 향기일까, 감각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서로 어떻게 이야기할까. 이익의 왜곡 효과가 없으면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까. 게스트가 깨어난 잉글랜드에는 돈이 없다. 정원을 가꾸는 이들처럼 모든 사람은 하고 싶어서, 뭔가를 만드는 일에 대한 순수한 사랑 때문에 일을 한다. 노동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 체제는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없다. _211쪽, 〈5. 젊은 날의 유토피아〉 중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짐을 진 채 어른이 된다. 그 짐의 일부는 개인적이고 개별적이고 독특할 수밖에 없지만 일부는 정치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하고, 같은 환경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역사와 관련이 있다. 어른이 때로 방사능 물질처럼 위험한 자신의 과거를 처리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정원을 가꾸는 행위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_236~237쪽, 〈6. 데릭 저먼의 에덴〉 중에서
★ 영국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 〈뉴요커〉, 〈인디펜던트〉, 〈파이낸셜 타임스〉 올해의 책
★ 〈뉴욕 타임스 북리뷰〉 에디터스 초이스
“이제부터 정원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빛과 어둠, 배제와 공존이 교차하는 정원에 관한 탐구
영국의 대표 작가 올리비아 랭의 역작
전 세계적 찬사를 받은 《외로운 도시》의 저자이자 〈뉴욕 타임스〉로부터 “제2의 리베카 솔닛”으로 불린 작가, 비평과 자기 고백을 넘나드는 유려한 글로 수많은 독자와 작가에게 사랑받고 있는 올리비아 랭이 ‘정원’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랭의 신작 《정원의 기쁨과 슬픔》은 그가 영국 서퍽으로 이사를 오며 시작된다. 새로운 집에는 유명 정원사 마크 루머리가 디자인한 오래된 정원이 있었고, 랭은 다채로운 식물이 가득한 그곳에 매료된다. 팬데믹, 브렉시트, 극우 세력의 부상 등 시대의 어두운 분위기와 새어머니의 죽음 같은 개인적 문제에 짓눌려 있던 랭은 정원에 탐닉하며 자신만의 에덴을 만들어간다.
랭의 관심사는 정원을 돌보는 방법에서 ‘정원’이라는 개념 그 자체로 확장된다. 정원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담은 공간이기도 했고, 식민지 시대의 착취로 유지되는 공간이기도 했으며, 소수자들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낙원이기도 했다. 예술, 역사, 사회사상을 넘나드는 황홀한 여정 속에서 우리는 억압과 해방이라는 두 가지 모습을 지닌 정원, 몽상가들이 그린 낙원으로서의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실패한 혁명의 꿈이 담긴 《실낙원》
간절히 바랐던 세상들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브렉시트가 있었고, 동시에 전 세계에서 극우가 득세했다. 그런 다음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소중히 지켜온 생각들이 매일 무참하게 짓밟혔다. 민주주의, 미덕, 진실, 자유주의 같은 개념은 트위터에서 하는 농담으로 전락했고 그런 다음에는 신문에서, 그리고 국회의원들에게서 공격받았다. 나는 글을 쓸 수 없었고 때로는 말도 할 수 없었다.”(74쪽)
랭은 정원에서 존 밀턴의 《실낙원》을 탐독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탄, 에덴,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담긴 《실낙원》은 밀턴의 정치적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국 내전에서 공화주의의 편에 섰던 밀턴은 찰스 1세의 처형을 요구하고 영국혁명을 지지했다. 그러나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면서 밀턴은 교수형을 두려워하는 신세가 되었다. 승리인 줄 알았던 것은 사실 패배였다. 밀턴의 이상은 순식간에 땅으로 추락했다. 랭은 에덴에서 쫓겨난 이브를 혁명에 실패한 밀턴과 교차시킨다. 자신이 꿈꾼 세상을 잃어버린 슬픔은 정성껏 가꾼 정원을 잃어버린 이브의 슬픔과 닮았기 때문이다.
밀턴과 이브의 슬픔은 또한 랭과 우리의 슬픔이기도 하다. 랭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처럼 자신이 평생 믿어온 가치들이 조롱거리가 되는 걸 보며, 기후가 식물을 가꿀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는 걸 보며 정원을 잃어버린 이브의 슬픔에 공감한다. 또한 환경 운동에 헌신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세상을 바꾸려 했던 과거의 열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담담히 이야기한다. 언젠가 도래할 거라고 믿었던 세상이 저 너머로 사라지는 이 시대에 이상적인 사회를 그렸던 몽상가들의 이야기는 다음 세대의 세상을 그려볼 수 있는 희망을 준다.
인간을 지우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다
힘을 가진 자들만을 위한 대정원
“이것이 바로 나를 항상 괴롭히던 정원의 한 측면이었다. 숨겨진 비용, 권력 및 배제와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 제발트가 설명한 작업을 개선 공사라고 하는데, 애실의 설명에 따르면 풍경은 아주 멋들어졌다. 철거되는 마을이 아니라 커다란 저택에 사는 운 좋은 사람에게는 말이다.”(94쪽)
랭은 대정원의 매끄러운 아름다움에 어떤 희생이 담겨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풍경(landscape)’은 본래 우리가 바라보는 땅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시골 경치를 그린 회화를 의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연상 작용에 따라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시골 경치를 가리키게 되었다. 풍경에 담긴 미적 가치관은 실제 자연에도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영국에서 진행된 대정원화 작업에서는 상류 지배 계층이 드넓은 자연을 방해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오소길, 농장, 때로는 마을 전체를 옮기기도 했다.
농지를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진행된 인클로저 역시 대정원화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대대적으로 개조하는 작업이었다. 공동으로 경작되던 땅이 사유화되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쫓겨났다. 공유지와 황무지가 사라졌고, 강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런 인위적인 변화에 가장 분노하고 슬퍼했던 이가 시인 존 클레어였다. 클레어는 투박하고 제멋대로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또 인클로저 찬성자들과 현대인들은 보지 못하는 자연물 사이의 섬세하고 복잡한 연결을 보았다. 클레어는 정신병원에서 남은 인생을 보낼 때도 인클로저가 빼앗은 것들을 그리워하며, 식물이 여전히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음을 고백한다. 인클로저의 진행 과정과 클레어의 삶이 병행되는 서술은 클레어의 슬픔이 우리가 자본의 폭주 끝에서 마주할 슬픔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쫓겨난 자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
미래에 존재할 정원을 위하여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꾹꾹 채워져 아직도 어딘가에서 곪아가는,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던 분노와 두려움. 그래서 저먼은 사막에 꽃을 피워서 어린 시절의 폭력적인 금욕과 정반대로 싱싱하게 우거진 야생, 관능적이고 무질서한 공간을 자신에게 만들어주었다.”(247~248쪽)
이 책에는 “모든 낙원과 모든 유토피아는 그곳에 없는 사람에 의해서,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라는 토니 모리슨의 말이 등장한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동성애자였던 영화감독 데릭 저먼은 에이즈로 죽어가면서 던지니스의 자갈 해변에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었다. 랭은 그 정원이 저먼의 어린 시절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다고 해석한다. 프로스펙트 코티지라 불리는 오두막을 둘러싼 그 정원은 꿈의 피난처, 완전한 몰입의 장소, 현실을 방어하는 요소였다. 또한 그곳은 가시금작화와 갯배추, 유목과 플린트석처럼 이미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랭은 역시 동성애자였던 마크 루머리가 디자인한 정원을 가꾸며 자신이 배제와 추방이라는 과거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더없이 완벽한 정원을 꿈꾼 것, 식물이 갈색으로 변하면 패배감을 느낀 것 역시 정원에 불순물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의 결과였다. 랭은 “개암나무 아래 나뭇가지와 죽은 나뭇잎 껍질에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조금 지저분한 경계 화단이 완벽한 화단보다 훨씬 비옥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이해한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개인의 것과 공공의 것의 경계가 희미해진 공간에 대한 랭의 사유는 ‘모두의 공동체’에 대한 상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혐오와 배제, 기후위기와 파국의 시대에 가장 매혹적이고 희망적인 성찰을 담은 책이다.
작가정보
비평과 자기 고백을 넘나드는 특유의 유려한 글로 ‘논픽션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라고 평가받는 영국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다. 제임스 설터, 리베카 솔닛 등 걸출한 작가들의 저술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예일대에서 제정한 윈덤캠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영국왕립문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개인의 고독을 사회적 소외와 차별로 확장한 《외로운 도시(The Lonely City)》(2016)가 전 세계 12개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17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며 영국을 대표하는 에세이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혼란한 시대를 제대로 목격하고 치유할 해독제로서의 예술에 주목한 《이상한 날씨(Funny Weather)》(2020), 역행하는 세계 속에서 모든 몸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논쟁적 인물들을 재조명한 《에브리바디(Everybody)》(2021)까지 사유의 폭을 넓혀왔다. 또한 첫 소설 《크루도(Crudo)》(2018)로 제임스테이트블랙 기념상을 수상하는 등 소설가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밖에 쓴 책으로 《강으로(To the River)》(2011)와 《작가와 술(The Trip to Echo Spring)》(2013)이 있으며, 〈가디언〉, 〈뉴욕 타임스〉 등 유수 매체에 기고하며 왕성한 필력을 선보이고 있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 조지 오웰의 《조지 오웰 산문선》, 샐리 루니의 《친구들과의 대화》, 엘리너 와크텔의 《작가라는 사람》(전 2권),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마틴 에이미스의 《런던 필즈》와 《누가 개를 들여놓았나》, 나기브 마푸즈의 《미라마르》,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 표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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