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대
2025년 03월 06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2월 20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105.05MB) | 약 18.6만 자
- ISBN 9791193166932
- 지원기기 교보eBook App, PC e서재, 리더기, 웹뷰어
-
교보eBook App
듣기(TTS) 가능
TTS 란?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술입니다.
- 전자책의 편집 상태에 따라 본문의 흐름과 다르게 텍스트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이미지 형태로 제작된 전자책 (예 : ZIP 파일)은 TTS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쿠폰적용가 15,840원
10% 할인 | 5%P 적립이 상품은 배송되지 않는 디지털 상품이며,
교보eBook앱이나 웹뷰어에서 바로 이용가능합니다.
카드&결제 혜택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416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200원
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1부 서울 시대: 생겨난 풍속, 사라진 풍속
1장 달동네로 간 사람들
1 왕십리 똥파리와 기생충 박멸 - 푸세식 시대가 저물다
2 달동네의 탄생 - 폐허와 고통의 시대에 탄생한 발명품
3 부둥켜안고 함께 탔던 연탄의 시대 - 연탄을 갈아본 사람만은 안다
4 사라진 신과 함께 - 개발의 시대에 집 나간 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2장 아파트 숲이 된 서울
1 손 없는 날 이사하기 - 서울 대이동 시대의 길고 힘든 이사 길
2 아파트살이와 생활 혁명 - 공간의 변화가 새로운 문화로
3 너도나도 강남 복부인 - 투기의 블랙홀에 빠져드는 서울
2부 서울살이: 더 나은 삶을 위해서
3장 서울은 만차다
1 교통지옥, 만원 버스, 버스 안내양 - 위험천만했던 개문발차의 시대
2 마이카 시대의 자동차 고사 - 교통사고 왕국은 두렵다
3 한강의 사라진 뱃길, 그 위의 다리 - 거인이 된 서울 사람, 한강을 한걸음에
4장 콩나물 교실과 일류병
1 엿 붙인다고 시험에 붙나 - 좁은 문을 통과해야 했던 엿의 시대
2 세계 제일의 콩나물 교실 - 학교는 부족하고 교육열은 너무 높다
3 교복을 찢었던, 거칠었던 졸업식 - 응어리진 교복 세대의 성인식 겸 해방의식
3부 서울내기: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일상
5장 서울 사람의 화려했던 결혼 편력
1 중매와 연애, 결혼상담소와 마담뚜 - 사랑과 결혼은 별개란 말인가
2 장가든다, 시집간다, 예식장 간다 - 도떼기시장과 같았던 서울의 결혼식장
3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주술적 기자속이 과학적 남아선호로
6장 탄생에서 죽음까지, 서울 사람의 인생 고비
1 서울 아기의 산실 변천기 - 삼신할머니에서 산파로, 조산소에서 산부인과로
2 서울 사람의 운명과 점 보기 - 서울 사람의 운명은 왜 미아리로 갔을까
3 이승에서도 만원, 저승에서도 만원 - 서울 사람의 쉴 곳은 서울에 없다
주
돌이켜 보면 시대는 풍속이 되고, 풍속은 시대가 된다. ‘마이카 시대’는 자동차 고사를 출현시켰고, 학생이 폭증하는 시대는 콩나물 학교를 등장시켰다. 서울 시대는 꼭 찬란한 시대만은 아니었다. 전통과 현대, 농촌과 도시의 문화가 뒤섞이고 충돌하던 ‘연탄의 시대’이자 ‘달동네의 시대’였다. 입시에서 남을 이겨야겠다는 경쟁심, 남보다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투기심이 과열화되면서 ‘엿의 시대’에서 ‘복부인의 시대’로 내달렸다. 한편, 서울 시대는 서울에 국한된 이야기 또한 아니다. 서울 시대는 곧 대한민국의 ‘성장과 개발의 시대’였다.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행정구역이 확장일로를 걷던 ‘팽창의 서울 시대’에서는 변화무쌍했던 대한민국의 성장통까지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산업화 시절 서울의 자화상이거니와, 동시대를 겪은 나에게도 젊은 시절의 자화상과 다름없다.
_12쪽, 프롤로그
1990년대까지도 서울의 달동네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보금자리이자 가난한 동네를 뜻하는 대명사로 불렸다. 실제로 달동네가 풍미한 시절은 1960~1970년대인데 이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이다. 이런 시간적 차이는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1970년대까지는 달동네를 판자촌, 불량주택주거지, 재개발지 등으로 일컬었다. 그런데 1980년부터 동양방송에서 〈달동네〉란 연속극이 상영되면서 ‘서민들이 사는 고지대 마을’을 달동네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이 거의 60%대로 그야말로 대히트였다. 〈달동네〉가 상영되는 날이면, TV가 있는 집에 달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드는 모습이 하나의 달동네 풍속이 되었다. 이 연속극이 공전의 히트를 한 배경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재밌게 연출한 점도 있지만 실제로 달동네가 한국 사회의 밑바닥을 넓게 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_46쪽, 달동네의 탄생
난곡(蘭谷)은 1960년대 이촌동, 대방동 등의 철거민들이 이주하여 생긴 마을로 주민들은 ‘낙골, 낙굴’이라고도 불렀다. 1990년대 말까지 달동네에서 철거당한 사람들은 이 낙골로 모여들었으니 이곳은 쫓겨난 달동네 사람들의 마지막 둥지와도 같았다. 그러나 난곡도 2001년부터 시작된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삶의 막장으로 내몰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양지와 음지는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도심의 그늘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법이다. 일부 주민들은 도심 주택의 지하 셋방을 얻었으며, 몇백만 원의 보증금조차 없는 주민들은 쪽방이나 비닐하우스촌으로 가야 했다. 산업화 시절의 달동네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화려한 서울의 그늘에서 또 다른 이름의 달동네가 자라고 있었다.
_57쪽, 달동네의 탄생
한편, 서울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공탄을 바꿔 22공탄을 주로 보급하게 되었다. 구멍이 늘어나면서 연소는 잘 되었으나 연소 시간이 6~7시간으로 짧아졌다. 그러자 연탄 두 장으로 하루를 넘겼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연탄 3부제도 모자라 4부제가 되었다며 서울 사람들의 볼멘소리가 커졌다. 연탄 갈기 위해 세상을 사는 것 같다는 주부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실제로 하루에 4회 연탄을 갈려면 밤중에 깨야 했고, 새벽에도 일어나야 했으니 서울 사람들의 수면의 질이 더 악화한 게다.
_70쪽, 부둥켜안고 함께 탔던 연탄의 시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강 주변이 아파트 숲으로 완전히 변하지 않은 데다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들이 꽤 있었다. 이들은 부군당굿의 전승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밤섬 부군당굿은 밤섬 토박이의 의지로 지속한 사례이다. 밤섬 부군당굿은 밤섬 토박이의 의지로 지속한 사례이다. 1968년 한강의 밤섬의 폭파될 때 밤섬 사람들은 먼저 부군당부터 철수시켰고, 부군님을 모신 채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마포구 창전동으로 넘어왔다. 고향을 잃고 실향민이 된 그들은 밤섬향우회를 조직하여 부군당굿을 꾸준히 이어왔다.
_86~87쪽, 사라진 신과 함께
서울에서 이사가 급증한 1970년대는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시대였다. 주말에 쉬는 샐러리맨들도 휴일보다는 손 없는 날에 맞추어 결근하며 이사를 했다. 어떤 집에서는 이사를 나가며 문 창호지나 장판지까지도 찢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사람은 꼭 자린고비여서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살던 집을 떠날 때 복을 가져간다고 하여 문이나 방바닥의 재료를 찢어가는 풍속이 있었다. 이런 풍속이 여전하여 못이나 전등까지도 다 떼어 가는 사람들 때문에 이사 오는 사람이 찢어진 곳을 때우고 보수하느라 골머리를 앓기도 하였다.
_95~96, 손 없는 날 이사하기
아파트에 마당이 없는 것도 큰 애로사항이었다. 서울에서도 상을 당하면 장례식장이 아니라 집에서 삼일장을 지내는 게 관례였다. 집 밖에서 사람이 죽으면 ‘객사(客死)’라고 하여 안 좋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좁은 방에서 문상객을 받을 수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옥상을 빌려 장례를 치르기도 하였다. 아파트 생활이 정착하는 과도기에 옥상은 여러 기능을 하였다. 결혼식 피로연과 회갑 잔치까지 옥상에서 열리는 경우도 곧잘 있었다.
_117쪽, 아파트살이와 생활 혁명
1970년대 부동산 매매 풍속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특혜였다. 추첨 위에 투기가 있고, 투기 위에는 특혜가 있다. 당시 언론에서도 복부인을 비난하는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되묻기도 하였다. “복부인은 비록 투기를 노릴망정 결코 특혜를 노리지는 않는다. 아파트 추첨마다 달려가야만 복부인이다. 그러나 추첨 없이 아파트를 차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특혜의 대표적 사례는 건설업체의 ‘특수분양’이었다. 특수분양은 일반 분양 아파트를 직원용 또는 다른 특수 목적으로 특혜층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말이 좋아 특수분양이지 이런 것이 특혜다. 특수분양의 승인 과정에서 당국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므로 모처와 모 씨에게 아파트 몇 채를 상납했다는 추문이 나돌았다. 게다가 특권층이 그 아파트에 입주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프리미엄이 붙어 부동산 중개소로 넘어갔다. 어떤 아파트는 건설 과정에서 분양 승인도 받기 전에 10%가 특수분양이란 명목으로 이름 모를 특권층에게 넘겨졌다. 복부인은 운명에 기대어 당첨의 행운을 꾀하는 자라면, 특혜층은 신의 의지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이들은 경제 질서를 혼란케 하고, 주택 분양에서 억울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양산하는 범법자였다.
_137~139쪽, 너도나도 강남 복부인
1980년대가 되어도 버스 안내양의 근로조건은 여전히 위험한 수준이었다. 버스 안내양의 대부분이 일일 18시간, 주 9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과로 속에서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회사에서 주는 단체 급식의 질도 형편이 없었으며 그 식사라는 게 약 5분간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마시는 정도였다. 그들의 간식비는 대개 졸음을 쫓거나 피로 회복을 위한 각성제 및 커피에 쓰였다. 1980년대 버스 안내양은 영양 결핍 증세를 보였으며, 또래보다 키와 몸무게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빈혈과 두통, 위장병, 다리와 허리 통증 등으로 고생하였다.
_157쪽, 교통지옥, 만원 버스, 버스 안내양
실은 자동차와 고사는 이례적 조합이었다. 근대화를 외치던 시기 자동차는 첨단 기기였고, 이 첨단 기기 앞에서 전통적 제의인 고사를 지낸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가정에서의 고사는 신령에게 집안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가족들이 하는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제사이다. 결국 고사란 신에게 자신의 염원을 빌고 운명을 의탁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자동차에도 신이 있는가? 이것은 고사를 지내는 근원적 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의아스럽게도 자동차 고사에서 신에 대한 관념은 희박하다. 자동차 고사를 지내면서도 내 자동차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수호신이 있다고 믿었다면 내부의 수납공간 어딘가에 신을 상징하는 신체를 모셨을 것이다.
_170쪽, 마이카 시대의 자동차 고사
장마로 뱃길이 끊기면 현재의 서초구 반포동과 잠원동, 강남구 신사동 일대는 섬처럼 고립되었으며, 주민들은 거의 패닉 상태가 되었다. 왜냐하면 한 달 남짓한 장마 동안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마음을 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침이면 강을 건너 직장에 가는 남편과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주부들이 나루터에 나와 있었다. 이들은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늦는 날이면 몇 번씩 나루에 가서 안절부절못하였다. 밤 11시가 넘으면 나룻배가 끊기게 되는데, 잘 곳이 없는 손님들이 인근 파출소를 찾아 하룻밤 재워달라고 청하곤 했다.
_191~192쪽, 한강의 사라진 뱃길, 그 위의 다리
1980년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한 번의 학력고사로 모든 게 결정되었으므로 ‘007작전’이라 할 만큼 ‘눈치 작전’이 고도화되었다. 눈치 작전에서는 무조건 붙고 보자는 것이 목표였고, 일류학교의 명함을 얻는 게 중요하였다. 눈치 작전파의 덕목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감 시간 직전까지도 원서를 내지 않고 눈치를 보다가 미달학과나 경쟁률이 낮은 학과를 찾아 접수했다. 학교장 도장만 받아놓고 지원과를 적지 않은 ‘백지원서’라는 것도 활개를 쳤다. 수험생의 소질과 관심은 고려하지 않고 지원자가 적은 학과를 찾아 기다리다가 즉석에서 기재하여 접수를 시키는 방법이었다. 당시 각 대학은 수시로 원수 접수 상황을 발표하였다. 가족과 지인을 총동원시켜 각 대학의 접수 상황을 살펴보다가 막판에 원서를 넣다 보니 지원 마지막 날 대학의 원서 접수 창구는 서로 밀고 밀치는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였다.
_216쪽, 엿 붙인다고 시험에 붙나
1970년대는 학교 운영 재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육성회비’란 이름으로 학부모들에게 돈을 내게 하였다. 1972년 육성회비는 한 명당 7,200원이었다. 초등학교를 의무교육으로 알고 아이들을 입학시킨 서민들에게 전가된 이런 교육비는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여러 아이 육성회비를 한꺼번에 내려면 가정 경제의 한쪽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나는 법이었다. 아마도 중장년층은 초등학교 시절 육성회비에 대한 아픈 기억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한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벌을 받았으며, 학교 측으로부터 빨리 육성회비를 걷으라는 독촉을 받는 선생님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_233쪽, 세계 제일의 콩나물 교실
교복을 마구 찢거나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거친 졸업식은 197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졸업식장이 도떼기시장처럼 변하자 학교 측에서의 단속도 강화되었다. 경찰관과 교원을 배치하고 교문에서 일일이 학부모만을 가려 출입시켰으며, 가방과 외투를 뒤져 밀가루 봉지와 구두약을 빼앗았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히 단속한다 해도 학생들의 들뜬 해방감을 무력화시키지 못하였다. 식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밀가루 봉지가 터지고, 구두약을 꺼내 얼굴과 머리칼에 마구 비벼댔다. 이렇게 생쥐 꼴을 한 학생들은 씩씩거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한쪽에선 교복을 쭉쭉 찢거나 소매를 잡아당겨 너덜너덜 떨어져 나갔으며, 다른 한쪽에선 달걀이 날아다니다 곳곳에서 터져서 노란빛이 낭자하였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제지하거나 심지어 멱살을 잡아도 이미 해방 공간이 된 고교 졸업식의 질주는 막을 수 없었다.
_249쪽, 교복을 찢었던, 거칠었던 졸업식
서울 중구 장충동 인근의 유명 호텔 커피숍이 맞선 장소로 주로 이용되었는데, 어느 곳에 가면 성공하고 어느 곳에 가면 실패한다는 속설이 떠돌았다. 지금까지도 연인들의 금기사항으로 전해지듯이 맞선을 본 후 덕수궁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는 것은 불길하다고 여겼다. 이는 서소문 서울법원청사 건물에 가정법원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_265쪽, 중매와 연애, 결혼상담소와 마담뚜
마담뚜에겐 수첩이 생명줄과 같았다. 이 수첩에는 부유한 재벌가의 자녀, 고시 합격자와 의사, 명문대를 졸업한 대기업 엘리트 사원 등의 이름과 연락처가 빼곡히 실려 있었다. 그들은 개인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대학 졸업앨범은 기본 자료로 삼았고, 가가호호를 방문하는 우유 외판원과 정부 부처 및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포섭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미래가 유망한 미혼 남녀가 자신도 모르는 채 은밀히 결혼 상품으로 떠도는 일이 잦았다.
_274쪽, 중매와 연애, 결혼상담소와 마담뚜
이 와중에 생겨난 직업이 예식장에 속한 ‘직업 주례자’였다. 서울의 큰 예식장에서는 전속 주례자를 두었거니와 이들이 바쁠 때 대체해 줄 촉탁 직원까지 마련하였다. 전속 주례자는 동장, 교장, 중급 공무원 등을 지낸 이가 선호되었으며, 변두리 예식장에서는 말 잘하는 복덕방 주인을 쓰기도 하였다. 1960년대 초반 서울 시내에서는 80여 명의 전속 주례자가 활동하였는데, 자격이 까다로웠다고 한다. 일단 경력이 깨끗하고 높아야 하고, 이마가 훤하거나 위엄이 있는 등 풍채가 좋아야 했으며, 목청이 우렁차고 언변이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_287~288쪽, 장가든다, 시집간다, 예식장 간다
1976년 정부는 불임 시술자에게 공공주택입주 우선권을 주는 사업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쉽게 말해 지금과는 정반대로 아이를 안 낳는 부부에게 주택 분양권을 우선 준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효과가 놓은 사업일지 모르지만 가정의 출산을 부동산 이익에 영합시키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또한 부동산 투기가 횡행하는 서울에서 투기를 부채질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_309~310쪽,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무엇보다 자신을 중심으로 가정과 사회를 바라보는 세계관이 강화되었다. 그러하니 점집에 가서 최우선으로 남편의 사업이나 건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업이나 자신 운세를 상담하는 기혼 여성들도 증가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어머니와 시집간 언니가 가서 대신 점을 봐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제 친구와 함께, 아니면 혼자서라도 점집에 가는 미혼 여성들도 적지 않게 되었다. 점괘도 수많은 정보 중 하나이고 점집에 가는 일이 여가생활이라고 여기는 탓이었다.
_354쪽, 서울 사람의 운명과 점 보기
서울의 저승은 꽉 차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모순적으로 서울시 공동묘지는 서울 바깥인 경기도에 존재하였고, 이 공동묘지에 묻히는 망자의 90%가 서울 사람들이었다.
_372쪽, 이승에서도 만원, 저승에서도 만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교수,《서울 선언》김시덕 박사 추천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거센 시대의 물살 속에 한국인의 삶은 어떻게 요동쳐왔는가?
1960~1990년대 풍속으로 읽는 그때 우리, 젊은 서울 자화상
90여 명의 학생이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자라던 콩나물 교실, 꿈과 희망을 실은 리어카가 고개를 오르던 달동네, 다 타버린 아래 연탄을 꺼내다가 실수로 깨뜨려 아수라장이 된 부엌 아궁이, 출근길 승객들과 버스 안내양이 실랑이하는 와중에 문을 열고 출발하는 만원 버스. 서울의 60년 전, 30년 전 풍경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대한민국이 전후의 폐허를 딛고 급속도로 성장한 시기. 이촌 향도의 시대, 도시화 시대, 산업화 시대…. 이 시기 ‘서울’은 수도 이상의 특별한 공간이었다. 노랫말도 영화도 TV 드라마도 서울을 이야기했고, ‘서울내기’와 ‘서울깍쟁이’는 어딘가 달랐으며, 누구나 내일로의 꿈과 희망을 품은 채 서울로 향했다. 30여 년이 흐른 오늘날의 미디어는 ‘경제성장기’를 빛바랜 영광으로 재조명하며 애틋한 추억으로 소비하고 있다. 그 시절 대학가요제의 노래들은 시대를 넘은 청춘의 상징이 되었고, MZ세대는 ‘레트로’를 ‘힙’한 놀이 문화로 받아들여 즐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서울은 과연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듯 찬란하고 아름답고 풍요롭기만 했을까? 그렇지만은 않다. 이촌 향도와 산업화의 물길 속에 인파가 몰려들며 과거와 현재, 농촌과 도시가 뒤섞이며 일어난 소용돌이에서는 이 시대 특유의 ‘혼종의 풍속’이 나타나고 사라져갔다. 성장과 성장통이, 발전과 후유증이 공존하는 가운데 눈물겨운 희망과 과열된 욕망이 들끓었다. “역사의 안방을 거시사에 내주고 건넌방에 조용히 앉아 있는” 작고 하찮은 것들에 관심을 두는 민속학자 유승훈은, 이 시대를 기꺼이 ‘서울 시대(Seoul Period)’라고 말한다.
민속학자 유승훈,
시대 속의 인간을 보다
저자 유승훈은 “내가 단지 관심을 두는 것은 왕십리 똥파리요, 강남 복부인이요, 손 없는 날이요, 자동차 고사요, 소개팅이요, 마담뚜 등등 하찮은 것들”이라 밝힌다. 서울시청, 부산시청, 부산시립박물관을 거쳐 현재 부산근현대역사관 운영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저자는《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으로 2012년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부산의 탄생》《부산은 넓다》등 부산의 속살을 핍진하게 그려낸 여러 저작을 출간하였다. 그가 고향 서울을 무대로 펴낸《서울 시대》는 서울 속의 대한민국을, 시대 속의 인간을 보고 있다. “살아오면서 잃어버린 삶의 체취와 정서가 되살아나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말처럼, “친숙한 존재를 낯설게 보는 방법을 체득”했다는 김시덕 도시문헌학자의 말처럼, 그가 민속학자로서 탐구한 서울의 풍속사는 뜨끈한 인간미 가득한 가운데 서늘한 감각을 품고 있다. “시대는 풍속이 되고, 풍속은 시대가” 되는 법이다. 어느 시대의 가장 작고 하찮은 것들은 그 시대의 가장 깊은 속사정을 품고 있다. 이 책 《서울 시대》는 1960~1990년대 서울의 풍속을 살펴 시대를 파헤치고, 사람을 마주한다.
115장의 사진 자료와 지도로
생생히 마주한 그때 그 시절
서울 시대란 바로 ‘성장통의 시대’이다. 저자는 산업화·도시화 시대라는 시간이 서울이라는 공간과 어떻게 조응했나를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풍속이라는 작고 구체적인 단면들로 드러낸다. 그가 1960~1990년대 사람들의 삶 속에서 건져낸 성장은 혼란하고 요동치고 분주하고 정신없는 것이었다. 전통과 현대·농촌과 도시가 충돌하던 경계, 그 혼돈 속에 새로이 탄생한 문화와(‘자동차 고사’와 ‘아파트 생활 혁명’), 크고 거대한 서울에 포함되지 못한 작고 오래된 것들(‘가택신’과 ‘마을신’, ‘한강 나룻배’), 지금은 전통이지만 그때는 아니었던 것들(‘주례’와 ‘폐백’, ‘예식장 결혼’)이 가득하다. 또한 과열된 경쟁심(‘입시 풍속’), 과열된 투기심(‘강남 복부인’), 과열된 남아선호사상(‘여아 선별 낙태’)이 응축된 순간이 있다. 무엇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던 사람들의 치열한 삶이 가득하다(‘달동네’와 ‘판자촌’, ‘콩나물 교실’).
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기록원 등 10곳의 관련 기관에서 허가받은 공개 자료와 비공개 자료까지 포함한 115장의 사진 자료는 그때 그 서울을 더욱 생생히 그려낸다. 책에서 소개한 풍속의 현장을 모두 담은 〈서울 풍속 지도〉는 서울이 익숙한 독자, 낯선 독자 모두에게 알기 쉬운 안내가 될 것이다.
오늘을 이룩한 이들의
젊은 날을 기억한다는 것
왜 서울을 다시 알아야 할까? 서울 풍속사를 안다는 것은 우리의 성장을 아래에서부터 다시 읽는 것이다. 이 책은 전쟁의 상처가 가득한 서울에 막 도착한 60년대의 이주 농민, 새벽마다 연탄을 갈던 70년대의 주부, 만원 버스 틈바구니에 여린 팔로 매달렸던 80년대의 버스 안내양, 콩나물 교실과 학력고사 입시지옥을 버틴 90년대의 대학생의 삶을 고리타분한 과거가 아닌 ‘생생한 분투’로 오늘의 독자 앞에 그려낸다. 나아가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욕망하고 발버둥 친 온갖 작은 삶에서 왔음을 깨닫게 한다.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서울이, 부족했지만 당당하게 살아온 이들의 땀과 눈물로,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맛보이기 위해 희생한 ‘그들의 오늘’을 토대로 자란 것임을 알게 한다.
서울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향해 오고 있으며 거대한 서울 하늘 아래 각자의 작은 방 한 칸을 빼곡히 꾸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각자의 서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역사의 순간을, 서울의 성장통 가득한 ‘청년기’의 면면을 흥미롭게 살피다 보면 그날의 희망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세대 이해와 공감이라는 유산으로 도착할 것이다. 내일을 향한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에,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버티게 하는 옛사람들의 힘을 전할 것이다.
작가정보
‘옛 우물에서 맑고 새로운 물을 긷는다(舊井新水)’라는 신념으로 우리 문화를 알리는 글을 쓰고 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후 민속학을 전공하여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에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업무를 하다가 20년 전 부산으로 내려와 박물관에서 낡은 유물을 살피거나 전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12년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을 펴내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지은 책으로는《부산의 탄생》《부산은 넓다》《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부산》《조선 궁궐 저주 사건》《문화유산 일번지》《아니 놀지는 못하리라》《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등 다수가 있다.
이 상품의 총서
Klover리뷰 (0)
-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 오디오북, 동영상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됩니다. (5,000원 이상 상품으로 변경 예정,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은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 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문장수집
-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 수집 등록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문장수집 등록 시 제공됩니다. (5,000원 이상 eBook으로 변경 예정,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 / 오디오북·동영상 상품/주문취소/환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최초1회)
- 리워드 제외 상품 : 마이 > 라이브러리 > Klover리뷰 > 리워드 안내 참고
- 콘텐츠 다운로드 또는 바로보기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
가장 와 닿는 하나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총 5MB 이하로 jpg,jpeg,png 파일만 업로드 가능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신고 내용은 이용약관 및 정책에 의해 처리됩니다.
허위 신고일 경우, 신고자의 서비스 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어 신중하게 신고해주세요.
이 글을 작성한 작성자의 모든 글은 블라인드 처리 됩니다.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eBook 문장수집은 웹에서 직접 타이핑 가능하나, 모바일 앱에서 도서를 열람하여 문장을 드래그하시면 직접 타이핑 하실 필요 없이 보다 편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선물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
보유 권수 / 선물할 권수0권 / 1권
-
받는사람 이름받는사람 휴대전화
- 구매한 이용권의 대한 잔여권수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 열람권은 1인당 1권씩 선물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이 ‘미등록’ 상태일 경우에만 ‘열람권 선물내역’화면에서 선물취소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의 등록유효기간은 14일 입니다.
(상대방이 기한내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소멸됩니다.) - 무제한 이용권일 경우 열람권 선물이 불가합니다.
첫 구매 시 교보e캐시 지급해 드립니다.

- 첫 구매 후 3일 이내 다운로드 시 익일 자동 지급
- 한 ID당 최초 1회 지급 / sam 이용권 제외
- 구글바이액션을 통해 교보eBook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대상
- 교보e캐시 1,000원 지급 (유효기간 지급일로부터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