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

부키

2025년 03월 07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3월 01일 출간

(개의 리뷰)
( 0% 의 구매자)
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57.17MB)   |  약 12.4만 자
ISBN 9791193528495
지원기기 교보eBook App, PC e서재, 리더기, 웹뷰어
교보eBook App 듣기(TTS) 가능
TTS 란?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술입니다.
  • 전자책의 편집 상태에 따라 본문의 흐름과 다르게 텍스트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이미지 형태로 제작된 전자책 (예 : ZIP 파일)은 TTS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책 소득공제
소장
정가 : 15,500원

쿠폰적용가 13,950

10% 할인 | 5%P 적립

이 상품은 배송되지 않는 디지털 상품이며,
교보eBook앱이나 웹뷰어에서 바로 이용가능합니다.

카드&결제 혜택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416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200원

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는 유관순, 김구, 안중근, 윤봉길, 안창호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맞서 싸웠음을 익히 안다. 그런데 그중에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별 관심이 없다. 저자들은 이런 무지와 무관심 속에 잊혀버린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되살려내고 기억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한 인류애, 자유와 정의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되새기고 기리고자 한다.
주권과 영토를 강탈당한 상황에서 우리의 수많은 의거와 무장 투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현실과 일제의 탄압과 착취, 그리고 3·1운동과 독립선언서는 어떻게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어떻게 일제 경찰과 헌병의 엄혹한 감시를 뚫고 항일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일에는 외국인 독립 영웅들의 숨은 도움과 희생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마땅하나 서훈조차 받지 못한 채 잊혀버린 외국인 독립운동가, 그리고 서훈은 받았으나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외국인 독립운동가 25인의 삶과 업적을 소개한다. 마자르, 베델, 조지 쇼, 헐버트, 석호필(스코필드), 루이 마랭 등 여러 국적의 서양인들, 쑨원 일가와 장제스, 이숙진, 장보링 등 중국인들, 소다 가이치, 가네코 후미코, 후세 다쓰지, 죠코 요네타로를 비롯한 일본인들. 이름만 들어봤을 뿐 잘 모르는 외국인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방인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야기가 가슴 먹먹하게 펼쳐진다.
추천의 말: 우원식 황현필 심용환 조주현

들어가며

1부 일제에 맞서 함께 싸운 투사들
1장 가명으로만 남은 헝가리인 의열단원 : 마자르
2장 임시정부 돕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아일랜드인 : 조지 L. 쇼
3장 일제강점기 유일한 일본인 비전향장기수 : 이소가야 스에지
4장 사상범으로 투옥된 일제 최고 엘리트 : 미야케 시카노스케

2부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과 연대
5장 중국인 리수전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죽다 : 이숙진
6장 국경을 넘은 사랑, 국경에 막힌 가족 : 두쥔훼이
7장 민족 차별 뛰어넘은 제자 사랑과 한일 연대 꿈 : 죠코 요네타로

3부 양심이 이끄는 대로 독립운동에 손을 내밀다
8장 항일 연대 실천했던 중국 교육 선구자 : 장보링
9장 조선인 고아들의 일본인 아버지, 자식들 곁에 묻히다 : 소다 가이치
10장 2대에 걸쳐 한국 독립운동 지원한 목사 : 조지 A. 피치
11장 독립유공자가 된 두 일본인의 특별한 이야기 : 가네코 후미코, 후세 다쓰지

4부 국제 공론장에 대한독립 정당성을 외치다
12장 세상을 향해 대한독립을 외친 언론인들 : 베델, 매켄지, 스토리
13장 한국 독립 위해 100만 인 서명운동 주창한 프랑스 정치인 : 루이 마랭
14장 한국 독립유공자가 된 중국 현대사 큰 별들 : 쑨원, 장제스, 쑹메이링, 쑨커
15장 고종의 밀사로 세계를 누빈 푸른 눈의 한글학자, 호머 B. 헐버트
16장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훈장을 모두 받은 유일한 외국인 : 호러스 N. 알렌

5부 3ㆍ1운동을 세계에 알리다
17장 3ㆍ1독립선언서를 미국에 최초로 알린 언론인 : 밸런타인 S. 매클래치
18장 3ㆍ1운동 34번째 민족 대표: 프랭크 W. 스코필드
19장 딜쿠샤에 남은 한국 사랑의 흔적들 : 앨버트 W. 테일러

나가며

참고문헌

들어가며
베델 정도만 알았던지라, 외국인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도운 경우는 매우 특수하고 희귀한 사례라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공부를 거듭할수록 독립운동이란 우리 민족과 일제의 대결이라는 좁은 틀로만 볼 일이 아니라, 정의를 추구하고 착취에 반대하는 인류 보편적인 활동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_〈본문 21쪽〉

1장 가명으로만 남은 헝가리인 의열단원 : 마자르
〈조선혁명선언〉이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라면서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한다고 선언한 대목은 마자르가 제조한 수많은 폭탄이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을 내용이다.
충분한 규모로 폭탄을 제작했다고 판단하자 의열단은 드디어 1923년 폭탄을 국내로 몰래 옮겨 대규모 암살·파괴 작전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이 폭탄을 운반하는 과정에도 마자르는 큰 역할을 했다. 마자르는 중국을 여행하는 유럽인 부잣집 도련님으로 꾸민 뒤 현계옥과 부부로 위장해 상하이에서 톈진까지 이동했다. 의열단원들은 마자르-현계옥 '부부'의 짐을 옮기는 하인들 행세를 하면서 300개가 넘는 폭탄을 옮겼다. 톈진에서는 중국 관헌들이 마자르 일행의 트렁크를 검사하겠다고 하기도 했지만 마자르는 외국인이 갖는 치외법권을 이용해 “이들은 모두 내 일행이고, 이들이 가진 짐은 다 내 소유다”라며 중국 관헌들을 물리쳐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을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영화배우 송강호와 공유가 주연한 영화 〈밀정〉(2016)에는 의열단원인 연계순(한지민 분)과 부부로 위장해 폭탄을 국내로 들여오는 작전에 참여하는 루비크(포스터 B. 버든 분)라는 유럽 출신 남성이 등장하는데 마자르의 실제 행적을 모델로 한 것이다. _〈본문 36쪽〉

2장 임시정부 돕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아일랜드인 : 조지 L. 쇼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뒤 쇼는 이륭양행을 통해 임시정부를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임시정부는 수립 직후 교통부 산하에 교통국을 설치했으며, 단둥에는 '안동교통지부 교통국'(1919년 10월 17일 임시안동교통사무국으로 개칭)을 설치했다. 사무실은 이륭양행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 국내의 정보 수집, 임시정부가 발송하는 지령과 서류의 통신, 주요 인물의 소개, 무기 수송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한마디로 이륭양행은 임시정부를 평안남북도와 황해도, 만주 지역과 연결하는 연락 사무소 혹은 전진 기지였다고 할 수 있다.
국내와 상하이를 왕래하는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이륭양행이 소유한 선박 계림호(械林丸)를 이용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_〈본문 52쪽〉

3장 일제강점기 유일한 일본인 비전향장기수 : 이소가야 스에지
체포되고 나서 4년이 더 지난 1936년 6월이 되어서야 미결수 신세를 벗어나 '징역 6년' 기결수가 되었다. 일제는 이소가야의 미결 기간을 형기에 합산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소가야는 체포되고 9년이 지난 1941년 1월 21일 자의 반 타의 반 '유일한 일본인 비전향장기수'라는 낙인이 찍힌 채 감옥에서 나왔다. 함께 구속되었던 조선인 동료들 중 일부가 전향서를 쓰거나 변절하는 가운데서도 이소가야는 끝까지 소신을 지켰다. 그런 만큼 이소가야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굳건한 신뢰를 얻었다. 이 믿음은 해방 뒤 이소가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들은 '일본인 사상범'이자 전과자인 이소가야를 곱게 보지 않았다. 아예 같은 일본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지메' 분위기였다. 이소가야로서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_〈본문 71쪽〉

4장 사상범으로 투옥된 일제 최고 엘리트 : 미야케 시카노스케
식민지 차별은 사회주의와 같은 정치사상 문제 이전에 일상생활 곳곳에서 존재를 드러냈다. 가령 교육 분야만 해도 학교 설립은 물론, 학생 선발 인원 할당, 학생 지도와 성적 평가, 진학과 취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법과 사회 구조, 의식 차원에서 민족 차별이 일상생활에 뿌리박혀 있었다(정연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246~250쪽). 이런 시대에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20대에 경성제국대학 교수가 된 엘리트로서 사회적 명성과 지위, 재산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 채 일제와 맞서 싸우는 식민지 조선 활동가들을 돕다가 감옥에 간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1899~1982) 같은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_〈본문 82쪽〉

5장 중국인 리수전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죽다 : 이숙진
조성환은 1921년 10월 베이징으로 돌아와 약 1년간 체류한 뒤 만주에서 무장 투쟁을 이어갔다. 이숙진과 결혼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주한중화민국대사관에서 발급한 신원증명서에는 두 사람이 1921년 10월 25일 결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숙진의 부친 리더하이(李德海)는 1937년 열린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송병조의 회갑연 기념사진에 조성환·이숙진 부부와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독립운동을 후원하던 중국인 인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주현의 증언에 따르면 이숙진은 조성환의 비서로 일하면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과외 선생 역할을 하며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외출하거나 할 때는 일본 경찰 검문에 걸릴 때를 대비해 이숙진이 항상 권총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_〈본문 103쪽〉

6장 국경을 넘은 사랑, 국경에 막힌 가족 : 두쥔훼이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김성숙과 함께 우한(武漢)과 충칭으로 거처를 옮겨가며 임시정부와 중한문화협회를 비롯한 다양한 조직에서 활동에 참여했다. 두쥔훼이는 1943년 임시정부 외무부 정보과에서도 활동했다. 그런 속에서도 1944년 월간 《직업부녀(職業婦女)》를 창간하고, 1945년에는 중국부녀연의회(中國婦女聯誼會) 상무이사를 맡는 등 여성운동과 문화운동을 이어갔다. 미주 동포를 대상으로 발행한 신문 《독립》에는 두쥔훼이가 쓴 글(1945. 7. 11)이 실려 있다. 이 글에서 두쥔훼이는 “나는 조선의 딸입니다. 나는 조선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는 가장 우수한 조선의 자녀들로 더불어 20년 동안이나 일관하게 환란을 같이하고 생사를 같이하여 오고 있습니다”(문미라, 〈중국인 독립유공자의 한국 독립운동 지원 사례 분석: 황줴, 두쥔훼이, 쓰투더를 중심으로〉, 62쪽)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_〈본문 126~127쪽〉

7장 민족 차별 뛰어넘은 제자 사랑과 항일 연대 꿈 : 죠코 요네타로
죠코는 교육자로서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려는 결심을 굳히고 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아이들과 조선어로 대화하고 조선인 집에 하숙하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조선어와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조선어로 직접 수업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죠코의 일기에는 한때 연인이었던 김재용이 죠코에게 쓴 편지에서 “선생님께서 함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 '나는 조선인을 구별하는 것이 제일 싫다'고 말씀하신 것을 어찌 잊을까요”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죠코가 평소 어떤 태도로 학생들을 대했는지 잘 드러나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도 마음을 열었다. “선생님은 조선인이다. 조선인이 아니면 이렇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_〈본문 138~139쪽〉

8장 항일 연대를 실천했던 중국 교육의 선구자 : 장보링
장보링이 고향인 톈진에 난카이중학교를 설립한 것은 1904년, 난카이대학을 설립한 것은 1919년이었다. 미국처럼 9월에 개학하는 방식이었다. 난카이대학은 개교 초기부터 1920년대 중국으로 망명한 조선 청년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찾은 학교였다. 난카이대학이 조선인 유학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근거지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톈진 자체가 베이징과 가깝고, 교통 요지라 이동과 회합에 좋은 조건이어서 조선과 왕래하거나 연락을 주고받기 수월한 편이었다. 이뿐 아니라 난카이대학에서는 수업료를 면제해주는 등 각종 장학금 혜택을 많이 제공해 돈 걱정 없이 유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었다. 독립운동가들에게 대학생 신분이라는 외피는 상당한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학교 분위기 덕분에 학생들이 교내 정치 활동, 특히 반일 성향 활동을 하는 것을 허용해주었기 때문에 활동하는 데 제약도 적었다. 교육 프로그램 또한 어느 곳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말 그대로 독립운동 '요람'이 아닐 수 없었다. 장보링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열쇠였다. _〈본문 157~158쪽〉

9장 조신인 고아들의 일본인 아버지, 자식들 곁에 묻히다 : 소다 가이치
소다의 활동은 사회사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1911년 신민회 회원들이 대거 검거된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YMCA에서 함께 활동했던 기독교인들이 투옥되었다. 소다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서장을 설득했고, 고향 사람이기도 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을 찾아가 “무고한 이들을 당장 석방해달라”라고 요청했다. 당시 대법원장 와타나베 도루(渡邊暢)는 지금의 덕수교회인 경성기독교회 장로였는데, 그를 찾아가 “죄 없는 사람에게 왜 벌을 주려 하느냐”라고 따지기도 했다. 1919년 3ㆍ1운동으로 월남 이상재가 투옥되었을 때는 법정에서 판사를 꾸짖은 일도 있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총독부에서 소다를 “한국인 앞잡이”라 부르며 거부감을 드러냈고, 일본인들한테서 동족을 배신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한국 고아들을 데려다 항일 교육을 시킨다”라는 이유로 헌병대에 불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_〈본문 173쪽〉

10장 2대에 걸쳐 한국 독립운동 지원한 목사 : 조지 A. 피치
피치 부부는 김구의 목숨과 독립운동을 살린 은인이었다. 김구가 일본 군경의 추적을 피해 상하이를 빠져나갔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동력이 이어질 수 있었다.
피치는 김구뿐 아니라 안창호 구명 활동도 했다. 홍커우공원 의거 이후 안창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프랑스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을 접촉하며 체포 과정의 불법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법 위의 일본 경찰'을 성토하며 공개적인 석방 운동을 벌였다. _〈본문 187쪽〉

11장 독립유공자가 된 두 일본인의 특별한 이야기 : 가네코 후미코, 후세 다쓰지
재판장이 말했다.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피고는 이렇게 외쳤다.
“만세!”
1926년 3월 25일, 일본 도쿄 법정에 20대 초반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판장의 사형 선고와 동시에 터져 나온 뜻밖의 “만세” 소리는 법정을 메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죽음의 불구덩이 속에 스스로 몸을 던지려 한 이 여성은 일본인 신분으로 한국 독립운동에 헌신한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다. _〈본문 198쪽〉

일본 귀국 직후인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수많은 한국인이 무참히 학살당했다. 후세는 자유법조단 일원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학살 책임이 일본 정부와 군부, 경찰과 자경단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이런 활동은 자연스럽게 가네코와 박열의 변호를 맡는 것으로 이어졌다. 일본 천황과 황태자에게 폭탄을 투척하고자 했다는 대역 사건을 변호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후세는 사형 판결에 이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옥사한 가네코의 유해를 거두어 자신의 집에 안치했다가 박열 고향으로 운구했다.
전라남도 나주군 궁삼면에서 농민들이 동양척식회사를 상대로 토지 반환 투쟁에 나서자 1926년 3월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일제에 핍박받는 한국 농촌의 처참한 실상과 식민 통치의 문제를 절감하고 이를 대변해 “조선 프롤레타리아의 벗, 변호사계의 반역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_〈본문 210쪽〉

12장 세상을 향해 대한독립을 외친 언론인들 : 베델, 매켄지, 스토리
항일운동 선봉에 섰던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기준 발행 부수가 1만 3000부에 달했다. 당시 모든 신문의 총 발행 부수보다 많았으며, 여론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만큼 일본은 베델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베델을 두고 한 말에서 일본이 베델과 《대한매일신보》를 얼마나 부담스러워했는지 느낄 수 있다. “이 이토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일필(기사)이 한국인을 감통(느낌이나 생각이 통함)시키는 힘이 크다. 그중 일개 외국인의 《대한매일신보》는 일본 시책을 반대하고 한국인을 선동함이 계속되니 통감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_〈본문 227~228쪽〉

“우리는 어차피 싸우다 죽게 되겠지만 괜찮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구한말 항일 의병들의 각오다. 의병들의 이러한 죽음을 불사한 대일 항전과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외국인이 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으로 재조명된 영국 《데일리메일》 극동 특파원 프레더릭 A. 매켄지(Frederick Arthur Mackenzie, 1869~1931; 프레드릭 에이 맥켄지)다. _〈본문 232쪽〉

〈한국의 호소, 《트리뷴》에 보낸 황제의 성명서, 일본의 강압, 그리고 강대국들의 개입 요청(Korea's Appeal, Statement to the Tri\-bune, Japanese Coercion, and Request for Intervention by the Great Powers)〉.
1906년 2월 8일 외국 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고종의 밀서를 토대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전 세계에 폭로한 이 기사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일제의 불법적인 한국 약탈을 세계 도처에 알리며 한국 독립을 지원했던 이 사람은 영국 언론인 더글러스 스토리(Robert Douglas Story, 1872~1921; 더글라스 스토리)였다. _〈본문 237~238쪽〉

13장 한국 독립 위해 100만 인 서명운동 주창한 프랑스인 : 루이 마랭
“한국 독립을 위해 100만 인 서명운동을 펼칩시다!”
1921년 6월 23일 프랑스 파리 한국친우회(Les Amis de la Coré) 창립식. 한 프랑스 정치인이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목청껏 외치며 범국민 서명운동을 주창했다. 우렁찬 목소리는 식장을 맴돌며 길게 울려 퍼졌다. 참석자들은 열렬히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독립투사' 루이 마랭(Louis Marin, 1871~1960)이었다.
마랭은 3ㆍ1운동, 파리강화회의, 윤봉길 의거 등 항일 투쟁사의 굵직한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05년 10월 뫼르트에모젤 지역(Meurthe-et-Moselle déartement) 하원 의원에 당선된 후 1951년까지 총 열두 차례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다섯 차례 장관으로 일했다. 이런 거물 정치인이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 독립 지원 단체인 한국친우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은 마랭은 프랑스인으로는 유일하게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_〈본문 248~249쪽〉

14장 독립유공자가 된 중국 현대사 큰 별들 : 쑨원, 장제스, 쑹메이링, 쑨커
쑨원은 “약한 자를 붙들어주고, 기울어지는 나라를 구제해주는 것을 천직으로 삼는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하고 중국의 북벌 계획이 완료되면 그때 전력을 다해 한국의 구국운동을 돕겠다”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최초로 승인하고, 지지 의지를 확고히 드러냈다. 대외적으로 국가로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로서는 쑨원의 이러한 우호적인 태도가 큰 힘이 되었다.
쑨원이 1924년 광저우에 설립한 황포군관학교와 중산대학은 한국 독립운동가를 길러내는 양성소 역할을 했다. 당시 쑨원은 항일 투쟁의 일환으로 한국 학생들을 받아들였으며 장학금도 지원했다. 황포군관학교는 1927년 문을 닫았는데, 3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200여 명의 한국인이 황포군관학교를 거쳐갔다. _〈본문 269~270쪽〉

장제스는 쑨원과 마찬가지로 한국 독립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공원 의거 이후 장제스는 한국 독립운동 지원을 확대하라고 지시했고, 중국 국민정부 요인들은 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인사들을 일본의 추격과 감시로부터 보호할뿐더러 한국 독립운동에 물질적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장제스는 임정이 일제의 핍박을 받으며 상하이, 항저우, 전장(鎭江), 창

ㆍ 우원식 국회의장 추천
ㆍ 황현필 작가 추천 (역사바로잡기연구소 소장, 《요즘 역사: 근대》 《이순신의 바다》 저자)
ㆍ 심용환 작가 추천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1페이지 한국사 365》 저자)
ㆍ 외국인 독립운동가 최초 발굴 소개 역사 교양서
ㆍ 광복 80주년 기념 역작

영화와 드라마 속 외국인 독립투사들
허구인가, 팩트인가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소.”
드라마〈미스터 션샤인〉의 감동적인 엔딩 장면이다. '매켄지'라는 서양 기자가 항일 의병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어 그들의 투쟁과 의기를 세상에 알린다. 같은 드라마에서 주인공 유진을 미국으로 데려가 보호해주는 아버지 같은 존재인 선교사 '요셉 스텐슨'은 고종 황제의 밀서를 해외로 전달하려다 살해당한다. 영화 〈밀정〉에서는 '루비크'라는 유럽 남성이 의열단원 연계순과 부부로 위장해 국내로 폭탄을 들여오는 작전에 참여한다. 영화 〈박열〉에는 일왕과 그의 가족 암살을 모의한 대역죄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는 일본인 여성 '후미코'가 등장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는 이처럼 독립운동과 항일 투쟁에 함께하는 외국인이 종종 등장한다. 이런 '외국인 독립운동가' 캐릭터는 단순히 흥미와 극적 효과를 노린 허구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 역사적 근거가 있는 팩트일까? 놀랍게도 위에서 예로 든 네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 모델이 존재한다.
후미코는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하자 “만세!”라고 외치고 끝내 옥중에서 스러져간 실존 인물 '가네코 후미코'다. 루비크는 상하이에서 의열단의 폭탄 제조 책임자로 활약하며 일제에 맞서 싸운 헝가리인 '마자르'가 실제 모델이다. 매켄지는 일제의 침탈과 독립운동, 항일 의병 활동상을 직접 취재해 세계에 알린 《데일리메일》 극동 특파원 '프레더릭 A. 매켄지'다. 요셉 스텐슨은 고종의 비밀 특사로 세계를 누빈 푸른 눈의 한글학자이자 한국 역사가 '호머 B. 헐버트'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들 외국인 독립운동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의 싸움은 외롭지 않았다
마자르부터 석호필까지, 전 세계의 양심과 인류애가 함께한 독립운동

안중근 의사가 한국인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우리 자손과 동포 모두 공경하고 우러러 사모해야 한다고 말한 이방인 독립투사들이 있다. 낯선 나라, 낯선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 싸우고, 옥에 갇히고, 추방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친 외국인 영웅들. 그러나 오늘날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은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 잊힌 존재가 되어버렸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펴낸 이 책에서 저자들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공로를 생생히, 감동적으로 되살려내 들려준다. 이를 통해 저자들은 대한외국인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 그들이 추구한 자유와 정의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 그들이 실천한 인류애를 되새기고 기리고자 한다.
2024년 11월 기준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 1만 8162명 중 외국인은 76명이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서훈은 받았지만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외국인 독립투사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숙진, 두쥔훼이, 호머 헐버트, 어니스트 베델(배설), 프랭크 스코필드(석호필), 프레더릭 매켄지, 더글러스 스토리, 루이 마랭, 조지 쇼, 쑨원, 장제스, 가네코 후미코, 후세 다쓰지 등이 그들이다. 또한 독립유공자로 부족함이 없는 외국인 독립투사들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마자르, 밸런타인 매클래치, 앨버트 테일러, 장보링, 이소가야 스에지, 미야케 시카노스케, 소다 가이치, 죠코 요네타로 등이 그들이다. 이들 외에도 무수한 대한외국인 영웅들이 존재했음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들 덕분에 주권과 영토를 강탈당한 상황에서 우리의 수많은 의거와 무장 투쟁이 가능했다.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현실과 일제의 탄압과 착취, 그리고 이에 맞서 싸운 우리의 독립운동, 특히 3·1운동과 독립선언서가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일제 경찰과 헌병의 엄혹한 감시를 뚫고 항일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 영웅들의 숨은 도움과 희생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싸움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작가정보

저자(글) 강국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자랐다.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에서 〈조세담론의 구조와 변동에 관한 연구〉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 조세·재정 정책, 통일 문제, 담론 분석 등 다양한 관심사를 공부하다보니 《선을 넘어 생각한다》(공저)를 비롯해 《세금 폭탄, 부자 감세, 서민 증세》, 《천사 미국과 악마 북한》(공저), 《국제법을 알면 뉴스가 보인다》(공저) 등을 썼다. 현재 《서울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자(글) 김승훈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최인호 작가의 《잃어버린 왕국》을 읽고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고 파헤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저서로 《세상을 읽다 시사이슈11 시즌1·시즌2》(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비욘드 코로나 뉴비즈니스 생존 전략》 등이 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정책소통기획관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신문》에서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다. 기자 시절 〈외국인 폭력조직 대해부〉 등으로 이달의 기자상 5회와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다.

저자(글) 한종수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잭슨스쿨에서 한국학 석사, 중앙대학교에서 〈17세기 홍중삼의 《향약통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유산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서 8년 동안 미국 워싱턴DC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과 개관 사업'을 전담했다. 《개항기 미국 파견 '외교관'의 활동》을 썼고, 《내일신문》에 '한미관계 141년 비사'를 연재했다. 현재 코리안헤리티지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상품의 총서

Klover리뷰 (0)

Klover리뷰 안내
Klover(Kyobo-lover)는 교보를 애용해 주시는 고객님들이 남겨주신 평점과 감상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교보문고의 리뷰 서비스입니다.
1. 리워드 안내
구매 후 90일 이내에 평점 작성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 오디오북, 동영상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됩니다. (5,000원 이상 상품으로 변경 예정,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은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 운영 원칙 안내
Klover리뷰를 통한 리뷰를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공간인 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부탁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 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문장수집

문장수집 안내
문장수집은 고객님들이 직접 선정한 책의 좋은 문장을 보여 주는 교보문고의 새로운 서비스 입니다. 교보eBook 앱에서 도서 열람 후 문장 하이라이트 하시면 직접 타이핑 하실 필요 없이 보다 편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마음을 두드린 문장들을 기록하고 좋은 글귀들은 ‘좋아요’ 하여 모아보세요. 도서 문장과 무관한 내용 등록 시 별도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리워드 안내
  •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 수집 등록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문장수집 등록 시 제공됩니다. (5,000원 이상 eBook으로 변경 예정,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 / 오디오북·동영상 상품/주문취소/환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신간 알림 안내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 웹툰 신간 알림이 신청되었습니다.
    신간 알림 안내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 웹툰 신간 알림이 취소되었습니다.
    리뷰작성
    •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최초1회)
    • 리워드 제외 상품 : 마이 > 라이브러리 > Klover리뷰 > 리워드 안내 참고
    • 콘텐츠 다운로드 또는 바로보기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
    감성 태그

    가장 와 닿는 하나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사진 첨부(선택) 0 / 5

    총 5MB 이하로 jpg,jpeg,png 파일만 업로드 가능합니다.

    신고/차단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신고 내용은 이용약관 및 정책에 의해 처리됩니다.

    허위 신고일 경우, 신고자의 서비스 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어 신중하게 신고해주세요.


    이 글을 작성한 작성자의 모든 글은 블라인드 처리 됩니다.

    문장수집 작성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eBook 문장수집은 웹에서 직접 타이핑 가능하나, 모바일 앱에서 도서를 열람하여 문장을 드래그하시면 직접 타이핑 하실 필요 없이 보다 편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P.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
    저자 모두보기
    낭독자 모두보기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이용권입니다.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이용권입니다.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sam 이용권 선택
    님이 보유하신 프리미엄 이용권입니다.
    선물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
    sam 열람권 선물하기
    • 보유 권수 / 선물할 권수
      0권 / 1
    • 받는사람 이름
      받는사람 휴대전화
    • 구매한 이용권의 대한 잔여권수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 열람권은 1인당 1권씩 선물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이 ‘미등록’ 상태일 경우에만 ‘열람권 선물내역’화면에서 선물취소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의 등록유효기간은 14일 입니다.
      (상대방이 기한내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소멸됩니다.)
    • 무제한 이용권일 경우 열람권 선물이 불가합니다.
    이 상품의 총서 전체보기
    네이버 책을 통해서 교보eBook 첫 구매 시
    교보e캐시 지급해 드립니다.
    교보e캐시 1,000원
    • 첫 구매 후 3일 이내 다운로드 시 익일 자동 지급
    • 한 ID당 최초 1회 지급 / sam 이용권 제외
    • 네이버 책을 통해 교보eBook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대상
    • 교보e캐시 1,000원 지급 (유효기간 지급일로부터 7일)
    구글바이액션을 통해서 교보eBook
    첫 구매 시 교보e캐시 지급해 드립니다.
    교보e캐시 1,000원
    • 첫 구매 후 3일 이내 다운로드 시 익일 자동 지급
    • 한 ID당 최초 1회 지급 / sam 이용권 제외
    • 구글바이액션을 통해 교보eBook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대상
    • 교보e캐시 1,000원 지급 (유효기간 지급일로부터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