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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장류진 지음
오리지널스

2025년 02월 21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2월 1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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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33.38MB)   |  약 14.5만 자
ISBN 979116908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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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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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교환학생으로 떠났던 핀란드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친구 예진과 함께
15년 만에 다시 핀란드로 떠난 장류진 작가는 질문한다.

“우리가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15년 전엔 눈 쌓인 겨울의 핀란드였다면, 지금은 눈 녹은 여름의 핀란드다.
차가운 눈이 녹은 사이 피어난 질문의 끝에서 나는 나를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왜 나에게 네가 소중할까?',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오랫동안 묵혀왔던 질문이자, 나를 완성하는 퍼즐 한 조각을 찾아가는 여행.
단 한 번도 장류진 작가가 고백하지 않았던 내면의 이야기들이 눈 녹은 핀란드를 여행하며 선명해진다.

"드디어 돌아간다, 그리운 핀란드로"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고 사라지더라도 굳건한 소나무처럼 한결같은 누군가 있다면,
나는 나로서 살아갈 수가 있다.
수많은 계절을 헤매었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여전히 완벽한, 나만의 휴양지 핀란드에서 마침내 꺼내었다.

“처음 원고를 쓰기 시작할 때, 나는 이 책이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원고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무렵 문득, 이 책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구나, 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이 여행을 글로 남기고 싶었던 마음의 막연한 이유가 조금은 또렷해지는 기분이 되었다.”
- 본문 중에서 -

15년 전에도, 지금도 나를 품어준 핀란드에서,
여전히 나를 가장 나 답게 만드는 친구 예진과 함께
한 번 더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마주한다.
프롤로그_ 짧은 소설, 치유의 감자
15년 만의 리유니온 - 눈더미가 차츰 녹아내렸다
쿠오피오 - 눈이 녹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탐페레 - 이야기가 시작되자, 씩씩하게 걸어나갔다
헬싱키 - 이야기가 걸어나가자, 그 자리에 햇살이 깃들었다
에필로그

함께 여행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들을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었던 예진이와의 여행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어 하고, 하기로 다짐했던 그 수많은 것들을 과연 다 하고 올 수 있을까? 우리가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열흘이었다. (p.47)

얼마나 ‘소유’한 상태로 태어났는지에는 관계없이 이 세상에 나온 순간, 누구나 ‘기본’적인 것들은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나는 이 ‘박스’들 역시 누구나 자연을 마땅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만인의 권리’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다고 이 숲길을 오르내릴 때마다 어렴풋이 생각했다. 뒤이어 이 숲을 나도 반년이나마 누릴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공연한 행복을 느끼곤 했다. 그건 마치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 같은 행복이었다. 살갗에 닿아 금방 녹아내릴 테지만 내려오는 동안만큼은 너무나 아름답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잡고 싶어지는 그런 눈송이 (p.106~107)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무형의 작은 공동체가 어느 대륙이든, 어느 나라든, 마치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 요원들처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기지 삼아 ‘헤쳐 모여’ 하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어찌 됐든 나는 이 작지만 사라지지 않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기쁘게 받아들였다. (p.119~120)

오랜 친구는 마치 기억의 외장하드 같다. 분명 내게 일어났던 일이지만 자주 꺼내지 않아 그곳에 있었는지도 잊은 일들을 친구의 입에서 들을 때, 왜인지 부끄러우면서도 든든하다. 내가 잊어도 예진이가 알고 있겠구나. 나의 일부분을 이 친구가 지켜주고 있겠구나. (p.144~145)

어느 겨울날, 이 호수를 걸어서 횡단한 적도 있었다. 예진이와 서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딘가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걸어서 호수를 건너는 것이 목적이었다. 누가 먼저 그러자고 했는지 대체 왜 그러기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마음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중략) 다시 뭍으로, 학생회관 앞 잔디밭으로 도착했을 때, 우리는 뒤돌아 우리가 걸어온 눈밭 위 발자국들을 바라보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았고, 아마도 그래서 호수를 건너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면 바로 여기 이곳에, 이 드넓은 지구 위에서도 바로 이 특정한 위치에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저곳은 녹아버리고 말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만이 이곳에 이렇게 발을 디디고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사실을. (p.158~160)

그때 그 돗자리에 누워 잠들기 전, 그 시절의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가장 빛나고 좋은 시절, 내 인생의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앞으로는, 이토록 소소하지만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기대할 수는 없을 거라고. 나는 그때의 내게 말하고 싶어졌다. 네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 아니야. 훨씬 더 좋은 날이 많이 펼쳐질 거야. 15년 뒤에는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장면들을 품은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p.168~169)

나는 그 말을 하는 예진이의 표정과 그걸 귀여워하고 아끼는 내 마음을 꼭 어딘가에 글로 남겨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넌 일기 같은 거 쓰지 마. 내가 써줄게. 나도 일기를 쓸 줄은 모르지만 어떻게든 남겨줄게. 나만의 방식으로. (p.214)

수없이 공모전에 떨어진 이야기면서 수많은 독자분 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기꺼이 꼽아주신 이야기. 내가 세상에 꺼내놓은 이야기 중 가장 오래된 이야 기면서 동시에 가장 많이 손대고 여러 번 옷을 갈아입 힌 이야기. 가장 젊을 때 쓴 가장 늙은 이야기. 첫 번째 소설집의 마지막 수록작. 나는 이야기에게 마음속으로 인사했다. 내게 와줘서 고마웠어. 잘 가! 멀리멀리 가. 내가 만든 이야기는 나보다 씩씩하게, 나보다 멀리 간다. (p.219)

여행지로서의 도시를 친구에 비유한다면, 파리, 런던, 뉴욕은 누구나 좋아해 마지않는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화려하고, 아름답고, 오로지 자신만이 뿜어낼 수 있는 고유한 분위기까지 가지고 있어 매력적인 친구. 늘 주변에 친구들이 넘쳐나고, 나 역시 자꾸 힐끔힐끔 올려다보게 되는 그런 친구. 하지만 동시에 저 친구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자꾸만 신경 쓰고 의식하게 만드는 친구. 과연 그 친구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해줄지, 문득 의심 들게 만드는 친구.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친구. 헬싱키는 그와 반대로 긴장을 풀게 만들어주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매력적이지만 누구에게나 그 매력이 다 알려지지는 않은 친구. 다만 소리 없이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 그렇게 옆에서 가만가만 오래오래 들여다보면 비로소 반짝이는 친구. 내가 이 친구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써본 적 없는 친구. 친구라는 걸 의심하게 만들지 않는 친구. 언제 만나도 편하게, 자연스럽게 서로를 대하게 되는 그런 친구.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항상 있어줄 거라는 안정감과 신뢰를 주는, 그야말로 ‘진정한 내 친구’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가, 내게는 바로 헬싱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p.261)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과 내가 겪어온 이상한 사건들이 거의 상담학 교과서에 나오는 예시나 다름없이 알맞게 들어맞는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자,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래 묵은 난제의 정답을 맞춰낸 기분.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기에 마음의 상흔은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 더 이상 흐린 눈을 하지 않고 그 상처를, 과거의 흔적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인생의 거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내고 나니 더는 찝찝할 것도 켕길 것도 없었고 남은 인생을 개운한 발걸음으로 걸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p.274~275)

여기서 밝히는 내 소설 쓰기의 비밀 하나. 이른바 ‘조금씩 나가는 상상’ 방법론이다. 평소의 나는 MBTI ‘N형’답게 쓸데없거나, 쓸데없어 보이는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인데 때로는 이런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상상으로부터 소설의 발상을 얻기도 한다. 이 대화에서 다른 대답을 했다면,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들어와 참여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다르게 흘러갔을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의 마음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변해갈까? 엄청나게 참신한 설정이나 대단한 세계관이 아니라 현실의 상황에서 아주 조금, 딱 한 발짝 나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 한 발짝, 한 발짝이 계속 모이면 처음 발상과는 아주 멀어지게 되고 또 달라지게 된다. (p.281)

오디는 동시대 핀란드를 축소해서 보여주는 공간 같았다. 헬싱키의 랜드마크는 헬싱키 대성당이지만, 문화적 랜드마크는 이곳 오디가 아닐까.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이자, 지식을 보관하고 공유하는 공간이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창조해낼 수 있는 공간. ‘만인의 권리’ 아래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두가 존중받고, 어떤 제약도 없는 세상. 레인보우 섹션을 지나 영어 소설 섹션을 둘러보던 예진이가 말했다.
“다음에 올 땐 여기 영어로 된 『달까지 가자』랑 『일의 기쁨과 슬픔』이 꽂혀 있는 건가? 그사이에 『연수』도 영어로 번역이 되면 좋겠다!”
“여기 장서 10만 권으로 한정한다는데, 그 안에 들 수 있을까?”
“들어야지! 넌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쓴 작가잖아.”
쿠오피오 도서관에서는 예진이의 말이 그저 망상 같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정말로 일어날 수도 있는 현실적인 상상이 되어버린 것이 신기하고 기뻤다. (p.325~326)

나는 ‘그때 참 행복했었지’ 하고 내 행복에 과거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는다. ‘이러면 행복해질 거야’ 하고 내 행복에 뒤돌아 등을 보이지도 않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충만한 행복을 느끼지만 타인에게 내보이지 않는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다는 말을 들은 누군가가 갑자기 적대감을 비치며 화내는 걸 보는 게 속상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기 이렇게 적어본다. 알바 알토의 집 처마 밑에서 똑…… 똑…… 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내가 느꼈던 행복에 대해서. 짧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선택한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느꼈던 벅찬 온기와 무한한 신뢰에 대해서. (p.345)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스러움’은 ‘자연’이 아니야. ‘자연’은 그냥 놔두면 되잖아. 거기 이미 존재하니까. 하지만 ‘자연스러움’은 다른 얘기지. ‘자연스러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뾰족한 고민이 필요하겠지. 건물 전체가 곡선으로 구부러져 정원을 감싸는 형태의 알토 오피스는 무척 자연스럽고 아름다웠지만, 그런 형태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벽돌 하나부터 딱 원하는 각도로 구부러진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 그 생각이 ‘리얼한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더라 ‘리얼’은 그냥 현실 자체잖아. 그냥 어디에나 존재할 뿐인. 하지만 ‘리얼함’은 다른 일이잖아. ‘리얼한 소설’ 그리고 ‘리얼한 문장’을 위해 인물을, 설정을, 대사를, 심지어는 단어 하나의 글자 수나 조사를…… 수많은 요소들을 수도 없이 갈아 끼우고 그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또 돌려야 하잖아. 스르륵, 거침없이 읽히는 문장을 쓸 때는 그렇게 스르륵, 쓸 수가 없으니까. 맨질맨질한 표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친 원재료에 수없이 사포질을 해야 하듯이. 나 같은 애송이를 알토처럼 위대한 예술가에 비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 독자분들이 재밌게 읽어주신 그 이야기는 나 자신조차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내 성격이 해낸 일이겠지. 그러니 그걸 내세우진 못할망정 최소한 미워하지는 말자. 사람의 성격은 그 성격의 주인이 최대한 더 나은 방식으로 생존하게끔 발달한 거겠지.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그래서 나도 내 성격을 더는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려고. (p.357)

엄청난 ‘비밀’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버린 기분. 언젠가 몇 번의 눈이 녹고 난 뒤, 어떤 이유로든 핀란드를 다시 방문한다면, 그래서 헬싱키에 그리고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묻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이곳에 입장하면 이곳의 와이파이가 내 휴대폰과 자연스레 연결될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곳과 내가 소리 없이 연결될 것이다. 착, 붙을 것이다. 너무나 닮고 또 다른,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즐긴 열흘간의 차분한 휴식이 따스하고 청량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p.395)

“내 친구를 귀여워하고 아끼는 마음을
어딘가에 글로 남겨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보다 더 나를 닮은 친구와 다시 찾은 핀란드
소설가 장류진의 첫 번째 에세이

『일의 기쁨과 슬픔』, 『달까지 가자』, 『연수』 등의 작품을 통해 현실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도 인물들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소설가 장류진이 첫 번째 에세이를 펴낸다. 이 책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작가가 15년 전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머물렀던 핀란드를 다시 찾으면서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고 새로운 장면들로 생생하게 덧입히는 순간을 담았다.
작가에게 북유럽 국가 핀란드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15년 전 교환학생 선발 시스템이 세계의 여러 대학들 중 ‘손가락을 내리찍듯’ 선택해준 나라였고,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이었으며, 평소에 즐겨하는 사우나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우연이라기엔 많은 것들이 겹쳤고 때문에 마음도 훅 기울었다. 그 우연한 만남들 가운데 한번 더 겹쳐진 인연이 바로 ‘예진이’였다. 강의실의 대각선 끝과 끝자리의 거리만큼이나 사과대와 공대의 거리만큼이나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은, 함께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떠나게 되면서 15년이 넘는 지금까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한 사람은 전업 소설가로, 한 사람은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 각자의 삶을 꾸려가던 어느 날, 두 사람은 그들이 반짝이는 계절을 찾아 핀란드로 다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15년 만의 리유니언 여행이었다.
여행을 함께하는 예진이는 작가와 공통점이 많고 비슷한 결을 가진 친구다. 핀란드와 사우나를 좋아하고 낯가림이 없고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며 심지어 MBTI도 같다. 이에 더해 여행을 하는 동안에 새롭게 알게 된 공통점도 있었다. 짐을 싸는 방식, 외출을 할 때 고민하는 동선, 컵라면 뚜껑을 덮는 방식, 기념품을 고르는 눈, 불쑥 나오는 감탄사 등 온종일 붙어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세한 행동들이 그랬다. 많은 것들이 마치 찍어낸 듯 닮아 있어 그런 순간마다 두 사람은 새삼스럽게 놀라며 “내가 그 말 하려고 했어”를 외치곤 했다.

“내가 만든 이야기는 나보다 씩씩하게, 나보다 멀리 간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에도 새롭게 움트는 이야기의 씨앗들

이 책에서 작가는 핀란드의 도시 세 곳을 여행한다. 먼저 교환학생 시절을 보낸 도시 ‘쿠오피오’에서는 여전히 학생 같은 핀란드인 친구 미꼬를 만나 대학교 학생식당과 도서관 등 추억이 어린 장소를 돌아보고, 다음으로 방문한 도시 ‘탐페레’에서는 소설 「탐페레 공항」 속 배경을 실제로 조우하며 자신이 만들어낸 소설 속 인물들을 배웅한다. 마지막으로 ‘헬싱키’는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스스로 선물한 1년간의 휴식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기 전 방문한 도시다. 이곳에서 돌아온 뒤 작가는 신인소설상에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소설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각각의 특별한 의미가 담긴 세 도시를 돌아보는 동안에도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상상들이 뻗어나가고 새로운 소설이 될 가능성을 품은 이야기들이 가지를 뻗어나간다.
삶의 모든 기억이 행복으로만 채워질 순 없는 것처럼 세 도시를 거치는 동안 마음속에 도사린 과거의 기억들이 종종 고개를 들기도 한다. 작가의 마음속 내밀한 기억들은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조금씩 부풀어 오르던 물방울”처럼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이내 그 습기를 핀란드의 “따사로우면서도 선선한 볕”에 털어내듯 말리며 현재의 행복을 응시하고 그것이 주는 온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 노트를 챙겨왔지만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며 머쓱해하는 예진이에게 작가는 속으로 마음을 전한다. “넌 일기 같은 거 쓰지 마. 내가 써줄게. 나도 일기를 쓸 줄은 모르지만 어떻게든 남겨줄게. 나만의 방식으로.” 어느 때는 자신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말로 꺼내놓는 예진이를 보면서 놀라는 동시에 “‘내게 있어 핀란드는 완벽한 휴양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세이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품기도 한다.
두 사람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핀란드의 도시를 누비는 류진과 예진이 아닌 나와 내 가까이 있는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너무 닮아서 혹은 너무 닮지 않아서 나와 꼭 맞는 나의 친구들. 내가 모르는 나의 부끄러운 기억마저 세세하게 알고 있어 가끔 얼굴이 붉어지곤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더 든든한 친구들의 모습이.
자연히 떠오르는 얼굴들에게 연락해 우리만의 리유니언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해봐도 좋겠다. 제각각의 사연들로 반짝이는 순간들이 고유한 색으로 빛난다면 우리는 모두 찬란해질 테니.
여행의 후반, 작가와 예진이 잠시 들른 맥주 축제에서 50주년 리유니언 여행을 온 중년 여성들을 만나 자연스레 그들 사이에 섞어 춤을 추던 장면처럼. 그 순간 두 사람 또한 훗날의 50주년 여행을 기약하게 된 것처럼. 어쩌면 이 책도 두 사람의 여행에서 시작돼 우리와 연결된 여러 친구에게까지 가닿을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장류진

소설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IT 업계에서 약 10년 간 일하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연수』, 『달까지 가자』를 썼다. 제11회 젊은작가상, 제7회 심훈문학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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