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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박완서 산문집 10
박완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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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21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1월 0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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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40.61MB)   |  약 10.3만 자
ISBN 9791141609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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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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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의 거장, 작가 박완서의 타계 14주기를 맞이하여 산문집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을 문학동네에서 펴낸다. 박완서는 1913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조국의 광복과 육이오전쟁, 남북 분단, 4ㆍ19혁명, 그리고 IMF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을 몸소 견뎌내고 2011년 영면에 들기까지 단편소설, 장편소설, 동화, 산문집 등 다양한 방면에서 수많은 걸작을 선보여왔다.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은 그러한 작가가 생전에 남한산성과 강릉 등의 국내 지역부터 바티칸, 티베트, 에티오피아 등의 미지의 해외, 그리고 우리에게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개성과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을 방문하고 남긴 생생한 여행기이다. 2005년에 발간된 『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사)을 재편집하되 지금껏 책으로 엮인 적 없는 미수록 원고 다섯 편을 더하여 가히 ‘박완서 여행 산문집 완전판’이라 할 수 있다. 걸출한 산문가로서의 박완서의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문학동네에서 2015년에 출간한 ‘박완서 산문집’ 시리즈의 첫 권 『쑥스러운 고백』 이후 10년이 되는 해에 출간하는 열번째 책으로서 그 의미가 값지다.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어머니 박완서의 곁에서 늘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던 맏딸 호원숙 작가의 서문 「엄마의 여행 가방」이 수록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행을 통해 느끼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인간에 대한 성찰이 오롯이 담긴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의 소설과는 또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의 표지로도 꾸려진 어머니의 여행 가방에는 아직도 빨간 크리스마스 리본이 달려 있다. 평범한 캐리어이지만 그걸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 미소가 나온다. 어머니가 어딘가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쓰신 게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런 것치고 어머니는 여행을 참 많이 다니셨기에. _호원숙, 서문 「엄마의 여행 가방」, 4쪽
서문 | 엄마의 여행 가방

1부 꿈처럼 독창적인 것
겨울나무 같은 사람이 되자, 삶의 봄을 만들자
내 나름으로 누리는 기쁨
어린 시절, 7월의 뱀장어
미망(未忘)에서 비롯된 것들
잃어버린 여행 가방

2부 선하고 관대한 평화
아,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중국 만주 기행
천지, 소천지, 그리고 어랑촌 가는 길-백두산 기행
상해와의 인연-상해 기행
십시일반의 도움을 바라며-몽골 기행

3부 왜 인간이냐고 묻는 것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감동-바티칸 기행
숨쉬지 않는 땅-에티오피아 방문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인도네시아 방문기
모독冒瀆-티베트 기행
신들의 도시-카트만두 기행

작가 연보

뱀장어는 귀하고 애써 잡은 것이니만치 그 맛이 진미였다. 산 채로 배의 선을 따라 짝 갈라서 소금만 약간 뿌려 화로에다 석쇠를 올려놓고 구우면 기름이 많이 나와 불꽃이 걷잡을 수 없이 일었다. 알맞게 구워진 뱀장어를 등뼈가 붙은 채 꼭꼭 씹으면 기름지면서도 고소하고 감미로운 맛이 일품이었다. 당장 살이 옴포동이같이 찔 것 같았다. _「어린 시절, 7월의 뱀장어」, 35쪽

나이들수록 망각 작용은 더욱 활발해져서 그때그때 메모라도 해둘걸 싶기도 하지만 아직은 실행을 못하고 있다.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걸 번거로워하는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시 죽어버리지 않고 오래 살아 요동치는 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_「미망(未忘)에서 비롯된 것들」, 39쪽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신분의 귀천, 인종이나 종족, 피부색이나 문화의 다름과는 상관없이 공통으로 내재하는 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확인받고 싶은 것도 있는 게 아닐까.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 걸 크나큰 은총으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겠다. _「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감동-바티칸 기행」, 109쪽

굶어죽는 것처럼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진행되는 죽음이 또 있을까. (…) 이 아이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하면 사람도 아니다 싶었다. 육이오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참전국이라거나 우리 어린이들도 한때 유니세프 덕으로 허기를 채운 적이 있다는 걸 상기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보았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책임감이 되고 있었다. 책임을 다할 자신도 없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긴 더욱 어려울 것 같았다. _「숨쉬지 않는 땅-에티오피아 방문기」, 115~116쪽

없어진 도시보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어떡하고 있을까, 그게 더 걱정이 되었다. 사람 나고 도시 났지 도시 나고 사람 난 건 아닐 테니까. 자식을 땅에 묻고도 그날 밥을 먹을 수 있는 독한 게 인간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부모와 자식이 사라지고 믿고 의지하던 친척이나 이웃이 온데간데없어지고 살아오면서 낯익혀온 모든 것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과연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정상적인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경험해보지 않았어도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건 왜 인간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_「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인도네시아 방문기」, 131쪽

티베트의 하늘은 그때의 우리 하늘빛보다 더 깊게 푸르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햇빛을 보면 그걸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에선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 _「모독(冒瀆)-티베트 기행」, 135쪽

<b>“산엔 겨울만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봄도 가장 먼저 와 있다.”</b>
<b>어둠과 추위를 지나, 활기찬 봄을 불러오는 글</b>

1부 ‘꿈처럼 독창적인 것’에는 호원숙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네 편의 반가운 미출간 원고 「겨울나무 같은 사람이 되자, 삶의 봄을 만들자」 「내 나름으로 누리는 기쁨」 「어린 시절, 7월의 뱀장어」 「미망(未忘)에서 비롯된 것들」을 비롯하여 다섯 편의 글이 수록돼 있다.
「겨울나무 같은 사람이 되자, 삶의 봄을 만들자」는 작가가 잠실에 살았을 때 자주 다닌 남한산성에서 “마음놓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라는 “활기찬 봄의 소리”(18쪽)를 듣고 풀어낸 이야기로, 어둠과 추위를 견뎌내고 맞이할 새해를 기다리는 우리네 마음을 다잡게 하는 힘있는 글이다.
친구와 강릉으로 떠난 당일치기 여행, 그리고 길을 잘못 든 동네에서 우연히 발견한 맛있는 백반집 일화를 들려주면서 “남 나름으로 생각하던 걸 내 나름으로 생각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기쁨”(26쪽)이 바로 “호강”(25쪽)이라는 깨달음을 길어올리는 「내 나름으로 누리는 기쁨」, 가난했던 어린 시절 숙부가 시골에서 잡아준 뱀장어를 구워먹었던 한 편의 애틋한 삽화 같은 기억을 통해 옛날 고향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을 표현한 「어린 시절, 7월의 뱀장어」, 대하소설 『미망』을 쓰게 된 내밀한 회상을 통해 소설쓰기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미망(未忘)에서 비롯된 것들」은 모두 독자로 하여금 잊고 지내온 과거의 순수함을 그리워하게 하고, 때로는 수치심을 반성하게 하며, 그를 통해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성찰하게 한다.


<b>한국문단의 거장 박완서가 말하는 ‘여행’,</b>
<b>그것은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비쳐보는 일</b>
<b>우리가 지금 다시 박완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b>

2부 ‘선하고 관대한 평화’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웃나라 중국을 바라보는 작가의 깊고 너른 시선이 돋보인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중국 만주 기행」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군이 활동했던 드넓은 무대 만주를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조국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선조에 대한 존경이 묻어나는 감동적인 글이다. 또다른 미출간 원고인 「천지, 소천지, 그리고 어랑촌 가는 길-백두산 기행」은 백두산 천지에 다다르며 목도한 장엄한 풍경을 작가 고유의 천상적인 표현력으로 그려낸 글이다. “변화무쌍하면서도 영적”인 “구름”이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짜기를 통로 삼아 너울너울 천지 상공으로 이동”(80쪽)하는 신비로운 백두산맥의 모습과 그 풍경을 떠받치고 사는 아랫마을 조선족 동포의 친숙한 ‘부뚜막’이라는 공간적 대비가 대자연을 경배하는 인간의 겸허함을 느끼게 하는 한편, 만주와 연변 등지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향한 작가의 연민과 유대감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그러한 감정선은 2부 마지막에 수록된 「십시일반의 도움을 바라며-몽골 기행」에서 유니세프 방문단 자격으로 몽골에 간 작가가 “외국에 왔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먹을 정도로 우리하고 똑같”(94쪽)이 생긴 몽골 민족에게 느끼게 되는 “육친애적인 애정”(99쪽)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그들의 “취학 문제” “위생 문제” “식수 문제”(97쪽)를 통해 한때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절절한 마음이 읽는 이에게도 오롯이 전해진다. 타국을 돌아보는 일은 그곳을 살아가는 타인을 들여다보는 일이며, 그를 거울삼아 자기 자신을 되비쳐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그 자리에 서보는 것이 작가가 말하는 ‘여행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이리라. 사람 간, 세계 간의 교류가 과거보다 활발해졌지만 그만큼 고립과 불안도 심화된 지금, 박완서를 읽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품을 넓혀 세상을 더 확장된 시선으로 본다는 것 아닐까.

남의 정치체제나 문화, 국민소득 들을 우리와 비교하지 않고 그 나름대로 사는 양상으로 그냥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될 수 있으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외국이나 외국인 앞에서 마음을 도사려 먹지 않고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 _「아,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중국 만주 기행」, 58쪽


<b>먼 이국땅에 새겨진 작가의 발자취,</b>
<b>숨결 같은 언어로 되살아나다</b>

우리나라와 근접해 있는 동아시아 여행을 통해 우리네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2부와 달리, 3부 ‘왜 인간이냐고 묻는 것’은 바티칸,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티베트와 네팔 등 좀더 멀고 낯선 이국땅을 체험함으로써 인간과 신, 종교와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한다.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감동-바티칸 기행」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를 기리기 위해 조문사절단으로 바티칸에 다녀온 작가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신분의 귀천, 인종이나 종족, 피부색이나 문화의 다름과는 상관없이 공통으로 내재하는 존재에 대한 존엄성”(109쪽)의 가치를 길어올리는 아름다운 글이다.
「숨쉬지 않는 땅-에티오피아 방문기」는 오랜 내전과 군사독재로 파괴된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의 접경 난민촌을,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인도네시아 방문기」는 극심한 해일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를 유니세프 자격으로 방문한 작가의 참담한 슬픔과 고뇌가 담긴 글이다.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기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113쪽) 목격한 작가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하수 개발 같은 “유니세프의 중점적인 사업”(128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목소리 또한 인상적이다.
「모독(冒瀆)-티베트 기행」과 「신들의 도시-카트만두 기행」은 히말라야 인근의 땅, 순례자들의 성지라 불리는 티베트와 네팔을 방문한 기록이다. “부처와 인간, 성(聖)과 속(俗)”(143~144쪽)이 한데 섞여 더욱 “인간적으로”(144쪽) 느껴지는 티베트불교, 그리고 윤회 사상을 믿는 네팔의 힌두교 문화를 겪으며 “상대방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신기해하며 인정”(239쪽)하는 것의 놀라운 충만함을 노래한다. 고산지대라는 험지를 여행한 작가는 마침내 그 대장정을 마치며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제일 좋다”(239쪽)라고 고백한다. 먼 이국땅을 다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거장의 호방한 발자취는 그의 숨결 같은 언어로써 한 권의 책으로 되살아났다.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은 독자에게 잊지 못할 새로운 여행지로 기억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박완서

1931년에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학교 입학 전 어머니, 오빠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육이오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53년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살며 1남 4녀를 두었고,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롭지만 따듯한 시선과 진실된 필체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던 1988년 하나뿐인 아들을 갑작스럽게 잃는 참척의 고통을 겪었고, 이를 일기로 써 내려간다. 그 일기를 엮은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자식을 잃은 애끓는 마음과 세상과 신을 향한 원망이 날것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깊이 위로해 준다. 더 나아가 삶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딛는 모습은 인간 존재의 의미까지 생각하도록 이끈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소설과 15편의 장편소설을 쓰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이외에도 동화·산문집·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두루 남겼다. 특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에세이스트로서의 박완서의 면모를 발견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한국문학의 거목으로서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1993),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한무숙문학상(1995),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인촌문학상(2000), 황순원문학상(2001) 등을 수상했다. 2006년 호암예술상,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계 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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