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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파안

문학동네시인선 227
이동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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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14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2월 0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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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9.03MB)   |  약 2.3만 자
ISBN 9791141609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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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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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227번으로 이동욱 시인의 시집 『우리의 파안』을 펴낸다. 2007년 서울신문에 시가, 2009년 동아일보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2019년에 소설집 『여우의 빛』, 2021년에 시집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가 있고』를 나란히 펴내며 시와 소설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단단히 구축해왔다. 『우리의 파안』은 그의 두번째 시집으로, 더욱 깊어진 시세계를 담아냈다. 첫 시집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가 있고』에서는 슬픔에서 섬광이 발생하는 순간을 포착해 시화한 그는 『우리의 파안』에서는 고요가 부서지는 순간에 발생하는 역설적인 서정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첫 시집의 주요 이미지가 말과 사물들이 스치며 피어나는 불꽃들이었다면 이번 시집의 주요 이미지는 우리 내면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커다란 웃음, 파안(破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이 세계와 주체가 하나의 거대한 농담임을 폭로하며 새롭게 조립될 파편들을 만들어낸다”(해설)는 평론가 오연경의 말처럼 이동욱의 파안은 새로움이 탄생될 토대로서의 부숨이다. “그에겐 한 번의 도약이 남았다”(「공간이 나를 흔들 때까지」)라는 마지막 시의 시구처럼 그의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를 통해 우리 내면의 세계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시인의 말

1부 문밖에 제자들이 울고 있다
폐회/ 나 혼자 아는 사람/ 배수로/ 우리의 파안(破顔)/ 폐선(廢船)/ 엘리베이터 안에서/ 밤까마귀/ 아카시아 껌/ suddenly/ 답사/ 감독의 외로움/ 동파肉

2부 너무 많은 얘기는 진심을 외롭게 하지
예의 없는 것들/ 외출 전 편집증을 대하는 페소아의 소수 의견/ 강변북로 진입하기/ B3 Parking lot/ 필적감정/ 민들레 소품/ 격리/ 추신, 이제 너도 돌아갈 수 있을까/ 신도시/ 주는 입장/ 한 사람의 오늘/ 갈피

3부 오래 간직하는 기억은 오해여도 좋았다
친구의 장례식과 애인의 결혼식/ 외로움이 나를 부를 때/ 베이글 전쟁/ 식적(息笛)/ 배교의 에피파니/ 내성의 꽃/ 월량대표아적심/ 비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저 금목서를 당신의 미망인으로 부르면 안 되나/ 전조/ 스퀘어의 기분/ 복기/ 마지막 서명

4부 마취가 풀리자 우리는
고궁 야간 개장/ 아직 끝난 게 아니야/ 烏烏/ 연마/ 국소마취/ 어떤 잎은 가라앉고 어떤 잎은 오래 떠 있다/ 알코올/ 성난 얼굴 앞에서/ 어제 나는 네게 모든 걸 말할 수 있었는데/ 가족사진/ 금속피로/ 영원의 스코프/ 손톱/ 수선/ 공간이 나를 흔들 때까지

해설| 은둔하는 삶의 정치성 | 오연경(문학평론가)

기린의 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무럭무럭 자랐다
슬픔이 되기 위해 종일 먹었다
_「폐회」에서

나는 자주 얼굴을 잃어버린다
작은 소지품처럼
내 얼굴은 나를 두고 사라진다

누군가 나를 쳐다볼 때마다
얼굴을 두고 온 것 같다
거울은 깨지지 않는다
_「나 혼자 아는 사람」에서

보고 있자
가만히 보고 있으면
숨소리마저 빨려들어갈 듯
순백의 접시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혹은 테이블이 접시를 받들고 있는 모양이다
테이블은 명상에 빠진 걸까

나는 한 팔을 높이 들고
나는 왜 접시를 깨트리고 싶어질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접시 위에 담고 싶은
작고 초라한 발등이다
_「우리의 파안(破顔)」에서

오늘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있고
나는 물끄러미 그것을 내려다본다

그는 다시 달리기 시작하고
내 몸엔 아직 아무도 다니지 않은 길이 열린다
_「폐선(廢線)」에서

저기에 기척이 있다

무언가 날아오른다

흔들리는 게 무언지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살고 싶어
그 날개를 훔친다
_「밤까마귀」에서

네 얼굴이 내 얼굴을 스칠 때
내가 너를 볼 때
언젠가 그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서로 달랐다

산에서 향기가 따라 내려온 것이 아니다

꽃은 아직 산에 있다
그곳에서 질 것이다
그곳에서 필 것이다
_「아카시아 껌」에서

내 사랑과 내 연민은 무한을 꿈꾸지만

일단은
조금 더 가보기로 하자
_「B3 Parking lot」에서

인연을 믿지 않던 여행자는 매일 아침 누군가 나보다 먼저 이 방을 다녀간 것 같다고 써야 한다
_「필적감정」에서

맹목과 복종 사이
봄의 입김이 둥글게 뭉쳐 있다
_「민들레 소품」에서

너무 많은 얘기는 진심을 외롭게 하지
네가 떠나지 못하게, 나는 더 우울해져야 할까
_「격리」에서

이름을 바꾸면 나는 다르게 불릴 수 있을까
_「추신, 이제 너도 돌아갈 수 있을까」에서

주먹을 펴기 전까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듯이, 당신 우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당신은 아직까지 이별에 실패한 사람 울음에 특화된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 보이지 않아 함부로 우는 사람 보이지 않아, 볼 수 없는 사람
_「비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서

그런 당신은 언제나 너무 오래 한곳에 머무는 습관이 있다 정해진 결말은 얼마나 안락한가 누군가 꽃다발을 건네며 인사한다면 그것은 배수구의 소용돌이치는 중심처럼 무언가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는다
_「영원의 스코프」에서

꽃이 다 내린 봄밤에
세탁소 불빛이 눈먼 목련처럼
내 얼굴을 덮는다
_「수선」에서

기린의 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무럭무럭 자랐다
슬픔이 되기 위해 종일 먹었다

(……)

모든 깃발이 사라졌다
나는 줄곧 패자를 사랑했다

다시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공
누군가 아직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다
_「폐회」에서

『우리의 파안』에서는 반과 정, 하강과 상승, 없음과 있음이 수시로 교차된다. 이 시집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시 「폐회」는 “기린의 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무럭무럭 자랐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다음 “슬픔이 되기 위해 종일 먹었다”라는 뜻밖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유머의 원리와도 유사한 이와 같은 일종의 심상 갱신은 읽는 이에게 긴장과 파안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는 시 전반에 걸쳐 보여진다. 높이 솟았던 깃발은 사라지고 “줄곧 패자를 사랑”한 화자는 텅 빈 올림픽공원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는 인물을 지켜본다. 공은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왕복 운동을 하고, 시는 “누군가 아직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다”로 끝난다. 아니, 계속 이어진다. 이처럼 서정과 긴장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미지는 시집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과도와 과육 사이
접시의 고요 위로 껍질이 떨어진다

접시를 들고 일어선다

모두 나를 지켜본다

등뒤로 방문이 열린다

접시 위에 담고 싶은
작고 초라한 발등이다
_「우리의 파안」에서

표제작인 「우리의 파안」. “두 달 만에 퇴원한 엄마가 방에 있”을 때 모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접시 위로 떨어지는 복숭아 껍질이 고요를 깨트릴 정도로 적막할 뿐이다. 고요를 그리는 이 탁월한 묘사에 마치 껍질이 떨어지며 쿵 소리를 내는 듯하다. 이 시에서는 아무도 파안하지 않는다. 화자는 심지어 “접시를 깨트리고 싶어”하지만 그저 조용히 접시를 들고 일어설 뿐이다. 어머니가 있는 방의 방문이 열리며 시는 소리 없이 끝난다. 그러나 이 시의 제목은 ‘우리의 파안’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파안은 숨소리도, 침묵도, 접시 위로 떨어지는 과일 껍질도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동욱은 그저 큰 소리의 웃음이 아니라, 고요한 파안이 우리 내면 세계를 뒤흔들 수 있음을 우리 눈앞에 생생히 보여준다.

저기에 기척이 있다

무언가 날아오른다

흔들리는 게 무언지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살고 싶어
그 날개를 훔친다
_「밤까마귀」에서

시집의 해설을 쓴 오연경은 ‘은둔’이라는 키워드로 이동욱의 시를 설명한다. “이동욱 시의 주체는 도시의 거리 한복판에서 간격을 만들어내고 경계선을 재배치하는 ‘거리의 은둔자’라 부를 만하다”(해설)고, “경계 너머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의 배치를 바꾸고자”(김홍중, 『은둔기계』, 문학동네, 2020) 하는 존재로서의 은둔자라고 말이다. 이동욱은 시를 통해 우리 안에서 파안의 개념을 바꾸었듯 여러 차례의 갱신을 통해 우리의 인식을 재배치한다.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희망은 절망으로, 그리고 다시 절망은 희망으로 뒤바뀐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의 마지막에 놓인 시는 의미심장해질 수밖에 없겠다.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는 세계 속에서 그는 “한 번의 도약이 남았다”(「공간이 나를 흔들 때까지」)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그가 “삶의 매 순간이 불행의 연속일지라도, 세계가 폭력과 갈등과 오해로 들끓을지라도, 보이지 않게 되어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더 어두운 곳으로 밀려나는 세상일지라도”(해설) 이 세계 안에서 살아나가고자 하는 의지이며, 그가 희망을 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의지를 ‘우리의 파안’이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 이동욱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Q1. 안녕하세요. 2021년 첫 시집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가 있고』에 이어 두번째 시집을 출간하게 되셨는데요, 두번째 시집을 내는 기분은 첫 시집과 다른지, 아니면 다르지 않은지 궁금합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겁니다. 우리가 매일 음식을 먹듯이 저는 시를 씁니다. 혼자 먹는 식사니 특별히 신경쓸 건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은 예상보다 근사한 음식을 만들게 됩니다. 욕심이 나죠. 다음날은 좀더 공을 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는 식당을 차려도 되겠다 싶은 겁니다. 간판에 불이 들어오면 모르는 분들이 찾아옵니다. 저는 조리실 뒤편에서 슬쩍슬쩍 손님 표정을 살핍니다. 편하게 즐기시고, 돌아가신 뒤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찾아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Q2. 원고를 보내주실 때부터 시집의 제목은 ‘우리의 파안’이었는데요, 제목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엿보였어요. 시집의 제목을 이렇게 정한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목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없었지만, 사실 다른 제목은 염두하지 않았습니다(비슷하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비슷한 말이네요. 둘 사이에 간극을 설명하려면 좀더 긴 글이 필요할 듯합니다). ‘파안(破顔)’이라는 단어에는 내 위선과 가식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이 들어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의 파안’이라는 제목을 활용해 혹시라도 내가 ‘공동정범’이란 개념 안으로 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런 부끄러움마저 표제로 못 박아 스스로 부정할 수 없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Q3. 이건 시 외적인 질문이면서 내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시인님은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요즘은 파시즘에 대해 생각합니다. 내가 믿는 게 오직 진실이라는 확증편향과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차 있다는 인지부조화가 공동체의 집단동조심리와 결합하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생각합니다. 평소에는 언어에 대한 불신, 혹은 불확실성에 대한 회의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두 생각은 하나로 모이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멀어 가늠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그때 저는 그 범위를 봅니다. 극단에 있던 생각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라고 믿었던 생각이 극단으로 멀어지기도 합니다. 결합과 분열, 수축과 확장. 그 변화의 주기를 줄이면 그것은 하나의 운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거기서 순수한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4. 각 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도 궁금한데요, 표제작인 「우리의 파안」 외에 쓰실 때가 특별히 기억에 남은, 또는 이후에 각별한 마음을 품게 된 시가 있을까요?

마지막에 추가한 「동파肉」이란 시가 마음에 남습니다. 이연복의 목란에서 동파육을 먹었을 때, 첫 점에 황홀했고, 두 점에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젓가락이 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처음으로 동파육이란 음식을 먹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기억은 왜곡되고, 감정은 흐려지기 마련이지만 저는 기억을 믿고, 느꼈던 것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그 안에서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문학은 탄생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 칼끝은 작가를 향합니다.

Q5. 마지막으로 시인님의 두번째 시집을 읽을 독자분들게 인사말이나 당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연히 지난 사진을 보면 얼굴이 달라 보인 적이 있지요. 살이 찐 건지, 늙은 건지. 내가 알던 사람은 맞는데. 그때는 젊었구나, 혹은 지금이 더 낫네,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첫 시집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조만간 두 권을 놓고 처음부터 읽어보면 지난 노래를 듣듯 뭉클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동욱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집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가 있고』 『우리의 파안』, 소설집 『여우의 빛』이 있다. 수주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빛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입체가 되었다

무수하지만 단 하나의 각도를 가진

2025년 1월
이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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