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스터
2024년 11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5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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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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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다루던 자들. 원장의 모계들은 ‘휴지인’으로 불렸다. 코를 풀 때 쓰는 그 휴지가 아니고 휴지인(休知人), 쉼을 아는 사람들이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치유자, 힐러였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휴지인이라는 말은 ‘쉼을 아는 자만이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뜻을 품었다. 천 년간 휴지인을 찾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었다. ‘기인’들이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인간 무리에 섞여 사는 종족들. 방귀쟁이 며느리, 재주 많은 삼 형제, 우렁이 각시 등등. 현대 사람들이 전래 동화나 설화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인들은 사실 죄다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원장의 모계 어른들이 그런 기인들을 치료, 치유해 왔던 것이다. 비범한 인물들의 심신을 다루는 일이었기에 휴지인들에게는 그에 맞는 특별한 능력이 요구되었다. 아니, 특별한 운명이 요구되어 왔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태어나기를 휴지인 집안의 여자로 태어나야만 기인들을 다룰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운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그저 운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중생활〉 중에서
“작가님, 그게 어떤 책인데요?”
“선비들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이어 온 비법이 적힌 책이란다.”
“뭐죠? 과거 시험 족집게 비법, 뭐 이런 건가요?”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구탁 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구탁 씨는 굴하지 않고 설명했다.
“아니, 그런 비법이 아니라 도술이지. 그 책 안에 바로 너를 잠들게 한 그 졸귀가 갇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있는 용이를 바라보았다.
‘너희 아버지, 왜 이러시냐?’
하지만 용이는 내 눈빛에 담긴 의미를 읽지 못하는 듯했다.
“아빠, 그 졸귀가 잠을 불러와서 졸귀는 아닌 거죠?”
“그래,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니. 가장 하찮은 병졸, 그 병졸을 뜻하는 졸귀란다. 힘이 없고 형태도 없어서 현실에선 인간을 괴롭히지도 못하고 겨우 꿈속으로 스며 들어가 졸음과 악몽으로 괴롭히는 하찮은 놈이지. 그 꿈에서 인간의 정수를 빨아 먹는 기생충처럼 살아간단다.”
구탁 씨는 한 서가 앞에 멈추었다. 거기서 검붉은색 표지의 작은 소책자를 꺼냈다. 책에서 큼큼한 냄새가 났다.
“이 책의 이름은 육포책. 이 책은 종이로 만든 것이 아니야. 괴물이나 귀신을 천도하는 스님들의 살가죽을 얇게 포를 떠, 스님들의 핏물을 적셔 만들었단 소문이 도는 책이지.”
구탁 씨가 내게 육포책을 건넸다. 헌책 냄새에 피 냄새까지 섞여 구역질이 났다.
“우웩!”
〈몽신체〉 중에서
방으로 돌아와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다이어트에 돌입한 지 꼭 일주일이 지나는 시점이었다.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속옷만 걸친 내 몸은 어쩐지 야생적으로 보였다. 단 한 군데도 맘에 드는 구석이 없는 나의 몸!
그때 어디선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본다. 이제 하다 하다 환청까지 들리나? 정말이지 난감한 열다섯 살 인생이다. 눈을 질끈 감고 체중계에 올라섰다. 쿵! 계기판의 숫자를 확인한 순간, 발끝으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져 내렸다. 말할 수 없이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침대 위에 몸을 던지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뭐가 그렇게 억울해?”
삼색 고양이의 목소리는 명쾌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뭐야, 너? 어디에 숨어서 날 지켜보는 거야?”
주변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악악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뱃속 깊은 곳에서 연달아 꼬르륵 소리가 났다.
미적으로도 그렇지만 눈치라곤 전혀 없는 나의 몸아! 제발 정신 좀 차려! 몸의 주인은 나라고!
식욕에 지지 않기 위해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었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알로그루밍〉 중에서
“인류를 위한 거룩한 희생이라고 생각해다오.”
말을 마친 성명진 박사가 기계를 조작하자, 기계톱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성시아는 몸에 주입된 약품 때문인지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성명진 박사의 말을 들었다.
“그래도 넌 내 딸이니까 어떻게 될지 알려주마. 헤드가 절단된 채 생존한다면 너는 노아 1호에 실릴 거다. 실험용 우주선으로 헤드들이 프록시마 b로 무사히 갈 수 있는지를 입증하겠지. 물론 나는 자신 있어. 그러니까 나를 믿어라, 딸아.”
마지막 남은 희미한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복잡한 기계음과 레이저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몸통과 분리된 성시아의 헤드는 유리관에 담겨 연구실의 한쪽 벽에 진열되었다. 놀랍게도 의식이 남아 있었고, 눈으로 주변을 볼 수도 있었다. 끔찍하게도 바로 옆에 놓인 유리관 안에는 권보라 중사의 헤드가 들어 있었다. 성시아는 눈을 깜빡거리는 것으로 모스 부호를 보냈다.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에 권보라 중사의 헤드는 괜찮다는 눈 깜빡거림으로 모스 부호를 표시했다. 그 후로도 계속 헤드들이 유리관 안에 들어간 채 쌓여 갔다. 그중에는 아는 얼굴도 보였다. 헤드들은 생명 유지 장치가 연결되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생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헤드가 든 유리관들은 계속 교체되었다. 나중에는 둘을 포함해서 열 개 정도만 남게 되었다. 둘은 그 와중에도 눈을 깜빡거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헤드〉 중에서
‘어떻게 운동을 시작하게 됐지?’
처음에는 그냥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왜소한 자신의 체격을 바꾸고 싶었고, 남들 앞에서 자신의 몸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얻은 결과가 마음에 들었고, 남들도 인정해 주기에 계속 열심히 했었다. 그뿐이었다.
“저는…… 그냥 몸도 바꾸고 싶고, 더 건강해지고 싶어서요.”
모자 캡 아래로 그늘이 드리워진 트레이너의 눈매가 살짝 올라갔다.
“그래요? 그럼 왜 숫자에 신경 쓰세요? 맨몸으로도 충분히 그런 몸 만들 수 있는데.”
“어……. 처음에 배울 때부터 아령을 들면서 운동했고……. 또 무게가 점점 늘어야 힘도 세지니까요.”
“힘이 세져야 해요? 힘이 세지는 거랑 건강해지는 건 연결되어 있긴 해도 같은 뜻은 아닌데요?”
“…….”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트레이너의 물음에 승민은 점차 할 말을 잃어갔다. 어린 그의 머리로도 트레이너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었다. 왜 하고 싶으냐. 무엇을 얻고 싶으냐. 승민은 결국 고개를 떨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턱대고 운동을 해 온 것부터가 잘못이었나 싶어 절망감이 들었다.
〈일단 가즈아〉 중에서
내 몸인데 너는 왜 제멋대로 구는 거야?
날마다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청소년기. 하지만 그들의 몸은 날마다 어른이 되어 가느라 바쁘다. 어느 날 불쑥 맞이하게 되는 그 징후들! 내 몸이지만 낯설고, 부끄럽고, 생각보다 멋지지 않다! 특히 다른 친구들보다 더 멋지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커서야 나, 예쁘고 매력 있는 성인이 될 수 있을까?
김경희 작가의 〈알로그루밍〉은 예쁘고 매력적인 몸을 위해 일 년 내내 극단의 다이어트를 감행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다. 다이어트를 하는 친구들끼리 단톡을 하며, 그날 먹은 음식을 밝히고 친구들의 응원 혹은 비난으로 다이어트 효과를 배가시킨다. 주인공 민지 역시 하루 종일 굶고, 먹은 것을 토하기까지 하지만 좀처럼 날씬해지지 않는다. (차라리 식욕이란 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이내 변기를 부여잡았다. 먹은 것을 토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의지와 달리 소화력이 무진장 뛰어난 내 위장은 아무것도 올려 보내 주지 않았다. 역시나 오늘도 폭망이다.-96p) 그런 민지의 주위를 맴도는 날씬하고 도도한 삼색 고양이를 만나면서 그녀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문성진 작가의 〈일단 가즈아〉는 사춘기 소년들의 로망인 남성미 넘치는 근육질 몸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년, 승민의 이야기를 담았다. 볼품없고 존재감 없는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을 디딘 헬스의 세계! 땀과 고통의 대가로 꿈과 같은 현실을 맞게 되었지만(승민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외형적인 면에서는 좋은 말을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외모에 관한 것이든, 몸에 관한 것이든. ‘이런 내가? 이 문승민이? 몸이 좋단 말이야?’ 193p) 어느 날 뜻밖의 암초에 부딪히고 만다. 게으름을 극복하고 다시 헬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럴 거면, 초인적인 능력을 좀 가져보던지
청소년의 일상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부. 입시에 성공하기 위해 하루 종일 앉아서 미친 듯이 공부하는 것이 청소년의 주된 인생이다. 그런 주인의 입장은 나 몰라라 하고, 자리에만 앉으면 미친 듯이 졸고 있는 나의 몸, 졸음의 근원인 세계를 만나게 되는 〈몽신체〉 이야기다.
짧은 이야기에 방대한 판타지 세계를 담은 박생강 작가의 〈몽신체〉는 성실한 고교생 차정우의 이야기다. (고교생의 시간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끝없는 반복의 나날이다. 그런데 내 삶은 참기름 바른 쳇바퀴다. 달릴 수도 없을 만큼 자꾸자꾸 미끄덩거렸다.-50p)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졸고 있는 정우는 늘 꿈속에서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순두부 모양을 한 순두부 괴물에 쫓긴다. 친구 용이의 아버지이자 판타지 소설가인 구탁 씨를 통해 비밀을 알게 된다. 서울책보고에 기증된 육포책에 담긴 그 비밀은 무엇일까?
그런가 하면 아기장수, 삼신할매, 전우치 등 우리 민속 신화 속 초인적인 존재들의 후예들이 우리 주위에 기인으로서 살아가며, 그들을 돕는 휴지인 가문의 후예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이중생활〉 은 말 그대로 ‘몸은 몬스터’라는 주제 그대로인 몸스터를 다룬다. 주체할 수 없는 괴력을 가진 아기장수의 평범한 일상을 돕고, 삼신할매의 운명을 타고난 여고생의 이마에 흔적으로 표시된 새파란 몽고반점을 커버해 주고, 실수연발인 전우치 후예에 닥친 절명의 순간을 벗어나게 할 예약을 받으며 그들의 특별한 운명이 담긴 몸을 보살펴주는 헤어숍 원장의 이야기는 ‘평범치 않은 몸’을 가진 이들에 대한 위안을 느끼게 한다.
정명섭 작가의 〈헤드〉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지구에서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인간의 몸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다. 회복불가인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인류를 이전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을 개조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몸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이 읽는 내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춘기의 몸은 멋진 나비를 품은 번데기. 번데기 시절의 당혹감과 불안, 아직은 마음껏 꿀 수 있는 꿈을 담은 이야기들!
청소년기, 유독 통제가 되지 않는 몸을 바라보는 그 시절의 나는 ‘과연 이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5인의 소설가가 쓴 5편의 몸에 대한 이 단편들은 ‘변화하는 몸의 신호가 남들보다 더 이르거나 더 늦지 않으면서도, 남들보다 더 예쁘고 더 멋진 몸을 갖고 싶다! ’ ‘내 상황에 맞게 움직여주는 협조적인 몸을 갖고 싶다! ’는 소년·소녀의 열망과 ‘아직은 미완성이니까 혹시 내 몸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즐거운 상상과 판타지를 더한다.
이 책 《몸스터》 중 〈몽신체〉를 쓴 박생강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단편 대부분이 몸을 통한 감각, 상상, 상징이 넘쳐 나는 몸의 판타지로 만들어졌다. 그런 걸 보면 우리의 몸은 몬스터, 그러니까 ‘몸스터’ 같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정보

2013년 《기억, 직지》로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 2016년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으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상, 2020년 《무덤 속의 죽음》으로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빙하 조선》 《기억 서점》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유품정리사》 《체탐인》 《미스 손탁》 등이 있다. 그 밖에도 《100 년 후 학교》 《시험이 사라진 학교》 《떡상의 세계》 《괴이, 학원》 《지금,
다이브》 《취미는 악플, 특기는 막말》 《격리된 아이》 등 다수의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작가의 말
참으로 만만하지 않던 청소년 시절이었다. 어른들에겐 차마 내보일 수 없는 고민들이 있었다. 살다 보니 스스로 숨기고만 싶었던 약점을 따듯한 손길로 감싸 주는 사람들도 만났다. 지금의 내가 사람의 꼴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들의 손길 덕분이다.
〈이중생활〉 백이원
이 소설들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몸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대신 ‘내 몸에 숨은 특별한 힘은 어떤 걸까’ 하고 상상해 보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좋겠다. 몸은 상상하는 대로 이뤄지진 않지만, 몸은 몬스터여서 상상 이상의 파워를 발휘하기도 하니 말이다.
〈몽신체〉 박생강
공부 스트레스와 다이어트 강박, 가족과 친구관계 사이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고양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에 잠시나마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알로그루밍〉 김경희
인간의 신체는 참 신비롭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거나 다른 형태라면, 인간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갔을 게 분명하다. 나와 동료 작가들의 작품이 우리의 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헤드〉 정명섭
그 나이 때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나 역시 신체적 강함을 동경했었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일단 가즈아〉는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던, 그리고 지금도 극복하고 있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일단 가즈아〉 문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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