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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지음
사이드웨이

2025년 01월 21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2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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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8.82MB)
ISBN 9791191998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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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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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전직 서기관의 고백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10년 동안 일했고,
그 무의미한 일을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한국 공직사회와 공무원에 관한 폭탄과 같은 책이 출간되었다.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을 일하다가 스스로 그만둔 전직 서기관 노한동이 쓴 책이다. 그는 공직사회에서 오랫동안 몸담은 내부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각으로 정부와 관료 조직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그 조직 구성원들이 사적 이익과 생존을 위해 방패막이로 두른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심층적으로 비판한다. 무기력한 일상과 좌절, 가짜 노동과 쓸데없는 규칙, 구조적 비효율과 책임 회피의 메커니즘으로 가득한 공직사회의 특성을 전면적으로 파헤친다.

한강 작가가 포함되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그늘과 여파, 『구름빵』과 『검정고무신』 불공정 계약 사태가 근본적인 창작자 보호 대책으로 연결되지 못한 이유,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윗사람의 심기를 맞추는 데 전적으로 집중된 성과평가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극복하는 대책으로 만들어진 ‘조직문화 새로고침(F5)’ 같은 공무원식 말장난에 대한 비판까지…. 문체부 내외를 입체적으로 넘나드는 작가의 공직 비판은 더없이 신랄하고 폭발적이다. 제도적인 영역과 문화적인 영역을 두루 조망하고,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요인들을 총괄적으로 파악한다. 정책과 예산과 인사와 법령의 문제를 세세하게 훑으면서도 공무원들에게 무력감과 좌절감을 안기는 공기를 르포적으로 복원한다.

공무원들은 아주 영리하다. 그래서 아주 무능하다. 그 체계적인 무능은 공무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무능과 무기력을 숨기는 공직사회의 관성과 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작가는 거기에 질려 공무원의 삶을 때려치웠지만, 그는 여전히 그 조직에 대한 깊은 애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는 대한민국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선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하는 우리 공직사회의 한계와 폐단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이 책을 썼다. 노한동은 우리 사회를 앞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관료와 행정의 힘을 진정으로 믿고 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을 그만둔 게 아니라, 그저 ‘거짓말’을 그만두었을 뿐이다
프롤로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1부 공직사회라는 이상한 세계

1장 차원이 다른 삶
2장 나는 운이 좋았지
3장 무난한 사람
4장 보고서에 정답은 없다
5장 점심의 정치학
6장 말과(末課)의 설움
7장 온콜(on-call)


2부 영리해서 무능한 관료

8장 나는 옳고, 너는 따라야 한다
9장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
10장 예산의 비밀
11장 우문현답
12장 호치키스를 잘 찍어야 출세하지만
13장 파킨슨의 법칙
14장 관료의 기술


3부 실패의 이유

15장 케이와 K 사이
16장 런닝맨과 올블랑
17장 호날두와 선동열
18장 악을 모두 해소해도 남는 문제
19장 우리 사회는 책의 비문을 쓰고 있다
20장 창작자가 우선이라는 거짓말


4부 새로운 항로를 찾아

21장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22장 모두가 Z자형으로 순환할 필요는 없다
23장 당장이라도 가능한
24장 주피터냐, 헤라클레스냐
25장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26장 관료의 쓸모


에필로그 우리는 모두 서해대교를 건너고 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사회의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포부로 빛나던 젊은 공무원들도 처음에는 현실에 실망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조직 논리에 길든다. 공직사회의 수많은 헛짓거리 때문에 진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할 여유가 없어서기도 하지만, 실상은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그저 세월을 버티기만 하면 정해진 승진과 적당한 명예가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기 때문이다.
- 「프롤로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중에서

차차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나 같이 공부 잘하고 우리 사회의 관습에 기댄 사고구조를 가진 평범한 ‘범생이’의 눈으로 봐도 공직사회는 지극히 이상한 사회였다. 체계적으로 무능했고, 구조적으로 비합리적이면서도 내부에선 그걸 지적하거나 고칠 의지가 없었고, ‘이상한 나라의 임금님’처럼 윗사람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추켜세웠다. 그런 분위기에선 너무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관료가 국가와 사회를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에 반복적으로 실패했다.
- 「1부 공직사회라는 이상한 세계, ‘1장 차원이 다른 삶’」 중에서

공직사회는 블랙리스트를 지시받고 실행할 때도 무기력했지만, 처벌과 조사가 끝난 이후에도 그에 대한 반응을 최대한 자제하는 걸 어떤 미덕처럼 여겼다. 사석에서라도 블랙리스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든가, 원치 않은 일을 해야 했던 억울함을 토로한다든가, 그 일에 관하여 통렬한 반성을 하는 사람은 대단히 찾기 어려웠다. 모두가 그 사건은 잊기로 약속한 듯이 말이다. 시간이 좀 지나 공직사회를 자세히 알게 된 이후 느낀 사실이지만, 그런 침묵은 사실 체념과 냉소에 가까웠다. 공무원이 공익에 헌신하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고? 그건 정말 이 사회를 모르는 사람들의 낭만적인 소리였다.
- 「1부 공직사회라는 이상한 세계, ‘2장 나는 운이 좋았지’」 중에서

그러나 세상엔 1장짜리 보고서로 모두 담을 수 없는 문제들이 가득하다.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거나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으며, 해결 방안 역시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정부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다룰 때도 ‘핵심만 간단하게’라는 원칙에 경도된다. 보고서 1장에 모든 내용이 깔끔하게 담길 수 있도록 문제점과 원인, 해결 방안을 2~3가지의 맥락으로 포섭하고, 서로 조응되게 구성하여 현실을 의도적으로 평탄화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타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현실의 이해관계는 몇 가지의 단순한 맥락으로, 의도적으로 치환된다.
- 「1부 공직사회라는 이상한 세계, ‘3장 무난한 사람’」 중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공직사회에서 통용되는 성과평가와 승진의 기준은 ‘무엇을 얼마나 잘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얼마나 가까이에서 보좌했는가’이다.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윗사람의 심기를 맞추는 데 전적으로 집중되고 쏠린 이 시스템은 공무원이 보수적이고 회피적인 태도를 갖도록 만들며, 조직 내의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이나 전반적인 혁신을 방해한다. 결국 성과보다는 순응이 더 큰 가치를 인정받는 환경에선 개인의 능력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조직 전체의 발전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 「1부 공직사회라는 이상한 세계, ‘6장 말과(末課)의 설움’」 중에서

공직사회를 포장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이상(理想)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된 의미의 공익은 흐려진 채 무수한 비효율적 관습이 일상화된 ‘이상(異常)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공무원은 나름대로 공익을 위한다는 다짐과 이상으로 이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다짐은 현실의 공직사회와 충돌하며 마모된다. 공직사회가 이 악순환을 반복하는 한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말은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1부 공직사회라는 이상한 세계, ‘7장 온콜(on-call)’」 중에서

이러한 구조에서 관료는 똑똑할수록 조직 우선주의와 상명하복이 가장 유리한 생존 기술임을 더욱 치열하게 터득한다. 즉, 정책 대상의 입장과 기분을 헤아리고 현장에 집중할 시간에 조직과 윗사람의 의도를 읽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뻔한 결론이 도출된다. 그 결과 관료에겐 정책 대상을 자신이 성공하기 위한 재료쯤으로 보는 오만한 자세가 깃든다. 겉으로 아무리 정중히 예의를 갖춘들 ‘나는 옳고, 너는 따라야 한다’라는 식으로 오만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까지 숨길 순 없다.
- 「2부 영리해서 무능한 관료, ‘8장 나는 옳고, 너는 따라야 한다’」 중에서

중앙부처 공무원은 지원 사업의 구조를 효율화하여 예산을 감축하면 오히려 질책을 받는다. 각 부처는 해당 분야의 예산을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를 예로 들면, 이 부처에선 오래전부터 ‘문화
재정 2%’라는 목표를 두었다. 현재 1% 초반인 국가 전체 예산 대비 문화예술·체육·관광 예산 비율을 선진국 수준인 2%까지 늘려야 한다는 목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예산을 두 배로 늘려도 모자랄 판에 눈치 없이 예산을 자발적으로 줄이겠다고 하는 직원이 상사의 눈에 과연 어떻게 보이겠는가?
- 「2부 영리해서 무능한 관료, ‘10장 예산의 비밀’」 중에서

공직사회의 깊숙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현장을 방문하라는 근엄한 지시를 한다. 하지만 이미 고위공직자들은 현장과 차고 넘치게 만나는 중이다. 불행하게도 그들을 위한 잘 짜인 극본을 준비하느라 진짜 현장과 만나야 하는 실무자는 또 시간을 뺏긴다. 그리고 관료는 힘겨운 소통 대신 간편한 고립과 무능을 택한다.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다. 대통령의 근엄한 지시를 담은 뉴스를 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실소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 「2부 영리해서 무능한 관료, ‘11장 우문현답’」 중에서

공직에서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은 1급 공무원의 처지에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벌여야 한다. 일반직 공무원에서 정무직 차관으로 신분이 상승하려면, 지금까지의 승진과는 다르게 대통령실과 장관 등 정권의 눈에 쏙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행정고시를 붙고 사무관으로 입직할 때부터 꿈꾸던 일생일대의 출세가 눈앞에 있는데 그 기회를 간발의 차이로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공직의 커리어를 어디에서 마감하느냐에 따라 퇴직 후 갈 수 있는 자리의 ‘급’도 결정되기 때문에 이건 단순히 명예의 문제만은 아니다.
- 「2부 영리해서 무능한 관료, ‘13장 파킨슨의 법칙’」 중에서

시간을 지체하고 책임을 분산하기 위한 목적의 정책 연구용역과 위원회 운영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관련 예산을 줄여야 한다. 예산이 없다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 공조직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각종 사업비 안에 연구용역과 위원회 운영 예산을 교묘히 녹여 반영하기 때문에, 예산 각목 명세서를 하나
하나 뜯어 보아도 관련 예산이 어디에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지 외부에선 전혀 알 수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심지어 예산을 심의하는 기재부 담당자조차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국회나 언론 등 외부에서 이를 속속들이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 「2부 영리해서 무능한 관료, ‘14장 관료의 기술’」 중에서

공직사회는 왜 지조 없이 흔들리는가? 정책은 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실패하는가? 관료들은 정치의 외풍이 너무 세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집권 세력이 바뀔 때마다 행정의 사소한 행위까지 지배하며 공무원을 줄 세우기에 그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없는 척을 해야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애초에 공직사회에 영혼이 있는가? 앞서 예를 들었듯이, 국어 정책에 대한 주무 부처의 강고한 철학이 있었다면 부처 전체가 장관의 성향에 따라 케이와 K 사이를 극단적으로 왔다갔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옳다고 믿는 영혼과 철학이 없는데 어떻게 흔들리지 않겠는가?
- 「3부 실패의 이유, ‘15장 케이와 K 사이’」 중에서

사건에 대응하는 일련의 모습에서 공직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더욱 뚜렷해진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행정력을 쏟아붓고, 정책 목표와는 무관한 헛된 일에 시달리는 동안 정부는 정작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여기에 선악 구도를 만드는 데 능한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적 행동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들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고 단기적인 이슈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와 공직사회의 자원은 끝없이 낭비된다. ‘호날두 노쇼’와 ‘선동렬 감독 논란’은 단지 시끄러운 해프닝이 아니었다. 정부가 일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악순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 「3부 실패의 이유, ‘17장 호날두와 선동열’」 중에서

책의 위기가 출판산업의 공급 측면에서 발생했다는 가설에 일리가 있다면, 출판문화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예산의 규모가 너무 작은 것도 분명하다. 출판사와 서점을 지원하는 문체부 예산은 2024년 기준 약 560억 원이다. 앞서 말한 독서 예산 약 5천억 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또한 출판이 한 나라의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교해도 맞지 않다. 일례로 문체부에서 일 년에 ‘축구’ 한 종목을 지원하는 예산만 약 500억 원이다. 아무리 한국인에게 축구가 중요하다고 해도, 한 나라의 문화의 근간이 되는 출판산업과 그 위상을 비교하긴 어렵지 않은가.
- 「3부 실패의 이유, ‘19장 우리 사회는 책의 비문을 쓰고 있다’」 중에서

구름빵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창작자 보호 차원에서 「저작권법」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창작자 보호라는 본연의 기능을 제외하면 문체부의 존재 의의에 무엇이 남을까. 솔직히 산업의 지원이나 보조금 집행은 다른 부처나 지자체에서 맡아도 그만인데 말이다. 하지만 공조직은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아도 웬만해서는 없어지거나 대체되지 않는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비난 여론이 드세어질 때도 있지만, 그때의 바람만 잘 피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공직사회와 관료는 반복된 학습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접근 대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졸속 대책이 판을 친다.
- 「3부 실패의 이유, ‘20장 창작자가 우선이라는 거짓말’」 중에서

그동안 공직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며 도입한 제도는 그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왜 현실에선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거나 때론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까? 무엇보다도 다양한 층위에서 일어나는 관료들의 저항, 그리고 제도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이나 학자들이 내놓는 백화점식 대안 나열도 그런 의미에선 위험하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속담처럼, 공직사회에 미칠 영향을 세밀하게 고민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병폐를 도려내겠다는 무모한 시도는 그나마 공직사회를 지탱하던 관료들의 선의마저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 「4부 새로운 항로를 찾아, ‘21장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중에서

이러한 제도적 변화를 통해서 관료가 전문성을 갖게 되면, 그 효과는 단순히 정책의 품질 제고에 그치지 않는다. 전문성은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는 가장 큰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탄탄한 논리로 무장한 하급자를 대상으로는 제아무리 상급자라도 할지라도 잘못된 일을 무작정 밀어붙이기 어렵다. 부당한 명령이 우리나라 행정에서 쉽게 이루어지는 이유는 현장과 이론을 겸비한 진정한 행정가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컨대 관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Z자형 순환보직 제도의 관행을 개선하고, 인사 정책의 불필요한 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
- 「4부 새로운 항로를 찾아, ‘22장 모두가 Z자형으로 순환할 필요는 없다’」 중에서

공직사회의 문제 중 많은 부분이 여기서 비롯된다. 관료가 가진 권한은 약한데 결과에 대한 책임만 져야 하는 신세이니 자연히 업무에 무기력해진다. 정무직으로 승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정치권에 줄을 대야 하는 최상층부 고위공무원을 제외한 대다수 일반직 공무원은 책임 소재가 있을 만한 일을 회피하는 것이 우월한 전략이 된다. 그리고 이는 정부의 무능으로 귀결된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공무원들은 이러한 상황에 무력감을 넘어 좌절감을 느낀다. 직업 관료로서 공익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봉사할 포부를 갖고 입직했지만, 현실에선 별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없으면서 여기저기서 치이기만 하기 때문이다.
- 「4부 새로운 항로를 찾아, ‘24장 주피터냐, 헤라클레스냐’」 중에서

우리나라 정부의 관료는 정말 불쉿 잡일까? 개인적 경험의 한계상 백만 명가량 되는 공무원 조직 전체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대다수 공무원은 각자의 직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불쉿 잡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이들은 대개 사회적 필요가 있는 업무를 맡고 있고, 업무 수행에 필요한 법적 권한과 수단도 갖추고 있으며,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공무원이 하는 일은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하거나 해로운 업무가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는 뜻이다.
- 「4부 새로운 항로를 찾아, ‘25장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중에서

공직사회를 혁신하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고 싶다면, 관료의 가짜 노동을 줄이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관행과 업무를 반석 위에 올려, 정말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일인지 아닌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정책의 결정이나 내용과 무관한 관례적이고 쓸데없는 회의는 없는지, 누군가의 조바심 때문에 틀만 바꿔 같은 내용을 무한으로 중복해서 자료를 작성하는 관행은 없는지 등에 대해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 업무는 모조리 없애야 한다. 공직사회는 가짜 노동이 진짜 노동을 압도하는 곳이기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일의 필요성을 따져봐야 한다.
- 「4부 새로운 항로를 찾아, ‘26장 관료의 쓸모’」 중에서

하지만 반대로, 관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짜 일을 잘해보려고 노력하였는가? 혹은 어려운 상황을 능숙하게 헤쳐 나갈 실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고 있는가? 나는, 모두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윗사람의 심기를 보좌하는 데 익숙하고 남이 써 준 자료에 의존하며 진짜 일은 등한시하는 공무원은 어려운 정책적 환경과 관계없
이 공직사회의 무능한 시스템이 길러내는 결과물이다. 옛 동료들에게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정치인의 실력과 선의를 믿지 않는 만큼 관료의 그것 역시 믿지 않는다.
- 「에필로그: 우리는 모두 서해대교를 건너고 있다」 중에서

무능한 일상과 좌절, 가짜 노동과 쓸데없는 규칙,
구조적 비효율과 책임 회피의 메커니즘으로 가득한 공직사회

냉소와 체념이 넘치는 이 공간으로,
지금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공직사회는 역설로 가득 찬 곳이다. 복잡한 현실을 5분 만에 읽을 수 있는 한 장의 보고서로 이해하려 하고, 현장과 갈수록 멀어지면서도 술자리에서는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을 외친다. 입만 열면 ‘적극 행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저 ‘존버’를 잘한 순서대로 승진시키고, 국민의 공복을 자처하지만 그 누구보다 권력자에게 약하고 국민에게 강하다. 1급 공무원은 ‘관료 사회의 꽃’으로 불리지만 정작 별 역할은 없는 ‘파킨슨의 법칙’의 산물이고, 공무원은 헌법에 의해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만 그 어느 조직보다 정권과 여론에 휩쓸린 채 중심을 잡지 못한다. 정부세종청사의 외형은 수평과 연결의 이상을 담고 있지만 정작 내부의 구조는 직원 간의 토론과 소통에 무감한 큐비클(cubicle)로 가득하고, 예산은 ‘국민의 혈세’라 떠받들면서도 예산 규모를 전년도보다 늘리기만 하면 사업의 성과와 관계없이 칭찬받는다. 관료는 진짜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기르기보다는 공직사회의 역설에 적응한 ‘영리한 무능’을 익히는 데 탁월하다. 요컨대, 공직사회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항상 바쁘기만 하다.” (본문 8페이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쓴 저자 노한동이 책의 프롤로그에 적어둔 대목이다. 이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이 드는가? 공직사회를 향한 지나치게 편향된 감정과 시각으로 쓰였다고 느껴지는가? 그런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저기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다 바보는 아닐 텐데, 너무 극단적이고 박하기만 한 평가라고 생각하는가? 일리 있는 의문일 것이다. 혹은 저 묘사가 연 600조 원을 굴리는 선진 대한민국 정부를 너무 얕보고 무시한다는 생각이 드는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은 분명 도발적이다.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하고 무기력해졌는지를 분석하는 저자의 펜대는 잘 벼려진 검처럼 날카롭다. 그러나 힘주어 칼을 휘두르는 일엔 많은 이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를 꼬나보고 의심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건 당연하다.

아무리 그 안에서 10년을 일했다고 한들 저자의 공직사회 비판이 무조건 옳을 리는 없다. 동시에 독자들은 그간 이 책과 비슷한 책을 본 적이 없었다는 점에도 자연스레 주목할 것이다. 여태껏 노한동처럼 자신이 머무르던 관료 사회의 폐단을 집요하게, 전면적으로 폭로한 실무 공직자가 한 명도 없었던 사실 또한 떠올릴 것이다. 그럼 그렇지. 저자가 신중하지 못했다. 그는 대체 무슨 자신감, 오만함으로 이런 책을 썼단 말인가? 그의 폭로엔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이런 의심이 들고 있다면, 이 책을 본격적으로 펴들기 전에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되짚어 보자.

공무원의 절반은 이직을 희망하고, 공시 경쟁률도 한창때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공무원 일반퇴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5년 차 미만 퇴사자는 2배 이상 늘었고, 5~7년 차 퇴사자 수는 3배 이상 증가했다. 국민 중 정부를 신뢰한다는 비율은 21.3%에 불과하며, 공무원의 직무만족 인식이 역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은 조사 대상 67개국 중 20위를 기록했고, 정부 효율성은 39위를 기록했다. 정부가 민간의 발전을 견인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하는 꼴이라는 이 격차는 몇 년째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때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지원 사업에서 배제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젠 정무직 고위 공무원들만 그에 대한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최근엔 정권의 부당한 지시를 수행한 실무 공무원들이 형사 처벌 등 법적 책임을 지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나는 중이다. 지난 몇 년간 공무원의 임금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했고, 물가를 고려한 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민간 대비 공무원의 보수 수준은 2004년 95.9%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해 2023년 83.1%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9급 1호봉 공무원의 기본급이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 모두 공무원만 되면 똑똑함과 탁월함을 잃는가”
한국 공직사회가 직면한 현실을 철저하게 기록하다

“그동안 아무도 공직사회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도 내게 이 사회를 명확하게 설명할 의무감과 책임감을 불러일으켰다. 공직사회는 공무원 수로만 따져도 110만 명이 넘는 거대한 사회이다. 공무원과 함께 정책을 집행하는 공공기관 임직원도 40만 명이 넘는다. 단순히 숫자만 큰 것이 아니다. 정부는 세금을 그 재원으로 하여 법에서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고 사회의 규칙을 제정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조직 중 하나다. 우리가 공직사회를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당위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따라서 내가 경험한 지난 10년간의 사적인 에피소드는 2020년대 현재 공직사회가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공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선 진정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차원이 다른 삶’은 나의 실패담을 기록하는 이 책에서 비로소 시작하는 건지도 모른다.” (본문 24~25페이지)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 우리 공직사회에는 엄청난 역설이 존재한다. 지금까진 아무도 그 안의 세계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지만 공직사회에는 그 안팎의 사람들을 체념하고 냉소하게 만드는 헛짓거리와 거대한 무능이 가득하다. 2010년대 이후 진짜 필요한 일이 아닌 헛짓거리에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으며 느끼는 공무원들의 자괴감은 서서히 임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젊은 공무원들의 ‘공직 탈출 러시’에 관한 기사들이 쉼 없이 쏟아지는 중이며, ‘공무원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흉한 말이 유행한 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린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공무원들의 뉴스는 그리 드물지 않게 미디어에서 만나볼 수 있다.

노한동은 최근 공직사회가 겪고 있는 붕괴 현상이 단순히 처우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공무원의 월급을 올린다고 해서 공직사회의 체계적 무능은 해결되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라는 그럴듯한 말로 무능과 무기력을 숨기는 공직사회의 관성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노한동의 가장 첨예한 문제의식이 등장한다. 공직사회 내부의 구성원들은 이런 구조를 앞장서서 개혁하기보단 나름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그것을 활용하고 강화하는 편을 택했다는 게 그것이다. 공무원들은, 특히 그 안에서 오랫동안 영리하게 생존에 성공한 고위직 공무원들은, 결코 비효율적이고 공통의 철학이 부재한 구조의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관료가 공직사회라는 이상한 세계에 갇힌 피해자가 아니라 그 세계를 영리하게 활용하며 무능을 공고히 하는 주범(主犯)에 가깝다고 생각한다.”(86페이지) 이게 바로 저자가 공직사회의 무능한 시스템이 길러내는 관료에 대해서 그토록 엄격한 이유다.

독자들은 아직도 저자의 부정적인 시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저자의 시각이 관료와 정부에 대해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읽고 저자의 선명한 메시지에 관심이 생겼다면, 일단 이 책의 본문을 꼼꼼하게 읽어보라. 이 책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관료 사회가 지닌 병폐에 관한 종합적인 분석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초임 사무관 시절 직접 그 실행에 가담했을 뻔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포함해서, 문체부 내외를 입체적으로 넘나드는 작가의 공직 비판은 더없이 신랄하고 폭발적이다. 제도적인 영역과 문화적인 영역을 두루 조망하고,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요인들을 총괄적으로 파악한다. 정책과 예산과 인사와 법령의 문제를 세세하게 훑으면서도 공무원들에게 무력감과 좌절감을 안기는 공기를 르포적으로 복원한다. 책을 읽으면서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왜 “똑똑했던 사람이 공무원이 되면 탁월함을 잃는 이유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평했는지를 공감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공직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괴롭게 만드는 ‘거짓말’의 정체
행정의 힘과 가치, 정부의 유능함을 되찾기 위한 이 한 권의 책

“공직사회는 일을 못 한다. 관료가 게을러서도, 철밥통이어서도 아니다. 그저 쓸데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공직사회의 무능과 무기력은 공무원이 일을 안 해서가 아니라 쓸데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 생긴다. 겉보기에 정교해 보이는 공직사회는 실상 가짜 노동과 쓸데없는 규칙으로 가득 차 있어 본질적인 업무를 왜곡하고 무기력을 양산한다. 우리는 그동안 무능의 본질을 외면한 채, 관료가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인 비효율과 책임 회피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방치했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일을 걷어내고, 관료가 본래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꿰뚫어 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관료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공직사회의 자기방어적인 거짓말을 들춰내야 한다. 나는 공직사회에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데 실패했지만, 나의 실패를 딛고 누군가는 성공담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본문 274페이지)

2013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출판, 체육, 저작권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담당했던 저자 노한동은 2023년,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공무원을 그만두었다. 그는 공직사회에서 10년간 경험하고 관찰한 무능과 무기력, 헛짓거리를 사람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싶었다는 것을 자신의 퇴직 사유라 밝힌다. 그렇지만 그런 저자라고 해서 왜 일말의 주저와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인생의 선배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먹던 우물에 침 뱉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공개적으로 공직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과연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일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든 것도 솔직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노한동은 대체 왜 이러한 작업에 착수했던 것인가? 또 그는 왜 허먼 멜빌의 그 유명한 캐릭터, 필경사 바틀비를 인용하면서 현대 사무직 노동자의 저항을 스스로 실천하려 했던 것인가? 왜 그는 무기력한 가짜 노동에 환멸을 느끼고 영혼 없이 일하는 일을 거부했는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읽은 독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작가는 자신이 헛짓거리에 질려 그만둔 대한민국 관료 조직에 대한 깊은 애정을 여전히 숨기지 못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하여 정부의 유능함이 얼마나 중요하고 결정적인 변수인지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없는 척을 해야 살아남는’ 그 기괴한 공직사회를 그토록 철저하게 파헤쳤던 것이다. 즉, 공무원 개개인의 유능함과 선의, 그들이 우리 사회를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영혼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관료 사회 내부를 그토록 강력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대통령은 5년이면 바뀌고 정무직 장·차관은 1~2년이면 바뀌지만, 일반직 공무원은 30년 이상 한 분야에서 근무한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공무원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신분에 대한 불안 없이 안심하고 맡은 업무를 수행하도록 신분을 보장한다. 관료들은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그저 세월을 버티기만 해도 정해진 승진과 적당한 명예가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노한동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노한동이 특별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지극히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어쩌면, 그는 그저 조금 더 일관된 사람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단지 자신의 ‘두 얼굴’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평소엔 공익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법과 제도가 준 권한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갑’의 얼굴을 하다가도 진짜 일해야 하는 때가 오면 정권, 국회, 여론의 뒤에 숨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을’의 얼굴을 하는 조직 내부의 분위기, 또 스스로가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생활과 ‘먹고사니즘’의 거짓말이 조금은 불편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지금 그 안의 모두를 무기력의 늪으로 몰아가며 공직사회 전반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노한동은 대한민국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선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하는 우리 공직사회의 한계와 폐단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이 책을 썼다. 그는 우리 사회를 앞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관료와 행정의 힘을 진정으로 믿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두자. 그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을 그만둔 게 아니라, 그저 ‘거짓말’을 그만두었을 뿐이라고.

작가정보

저자(글) 노한동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재학 중 행정고등고시(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에 합격해, 2013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출판, 체육, 저작권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담당했다. 2023년,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공무원을 그만두었다. 공직사회에서 10년간 경험하고 관찰한 무능과 무기력, 헛짓거리를 사람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계인’으로서의 자의식이 있다. 서울에서도 학구열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목동의 학원가에서 학창 시절 내내 공부했지만, 정작 한 번도 ‘목동 아파트’에 살거나 목동에 있는 학교에 다닌 적은 없었던 경험이 그 뿌리다. 경계 안에 아슬하게 속해 있으면서도 내밀한 중심엔 포함되지 않았다는 자각은, 공직사회에 10년간 몸담으면서도 그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글을 쓰고 싶다. 머리에서 생각한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몸으로 겪은 사실적인 세계를 기록하고자 한다. 현실을 직시하되 냉소에 빠지지 않고, 비판하되 더 나은 가능성을 상상하며 사회의 중심과 경계를 넘나드는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경험과 용기가 쌓여 더 깊고 넓은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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