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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전나무의 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7
세라 온 주잇 지음 | 임슬애 옮김
휴머니스트

2025년 01월 1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2월 0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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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3.32MB)
ISBN 9791170872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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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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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 캐더가 ‘미국 문학의 3대 걸작’이라 극찬하고 직접 편집했던 세라 온 주잇의 대표작. 국내 첫 출간. 작가도 단행본으로는 처음 선보인다. 미국 지방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당대 최고의 작가였던 주잇은 헨리 제임스의 《보스턴 사람들》의 집필에 영감을 준 실제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다. 《뾰족한 전나무의 땅》은 특출난 주인공이 없고 ‘더닛 랜딩’이라는 하나의 마을과 몇 명의 개성 있는 등장인물을 다루는 삽화 형태의 서사 구조다. 이름 없는 화자는 그곳에서 여름을 보내며 서로에게 한 시절을 온전히 내어주는 이들의 삶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함께 경청하게 되는 독자는 살아가는 지역이 길러내는 사람들과 그들이 이룬 공동체, 밀려오는 시간에 완만히 퇴적되는 곡진한 그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제1장 돌아옴 _9
제2장 토드 부인 _11
제3장 학교 _18
제4장 학교 창가에서 _22
제5장 리틀페이지 선장 _27
제6장 기다림의 땅 _37
제7장 바다 먼 곳의 섬 _47
제8장 그린 아일랜드 _53
제9장 윌리엄 _69
제10장 페니로열이 자라는 땅 _74
제11장 나이 든 가수들 _81
제12장 낯선 돛 _86
제13장 가여운 조애나 _96
제14장 은둔 생활 _112
제15장 셸히프 아일랜드에서 _122
제16장 대모험 _128
제17장 산길 _137
제18장 보든가 모임 _147
제19장 만찬이 끝나고 _164
제20장 바닷가 따라 걷다가 _172
제21장 뒤돌아본 풍경 _192

해설 | 잔잔한 파도처럼 가만가만 밀려드는 기억들 _198

“여느 사람이 겪을 만한 골칫거리는 죄다 겪었지만 쓰러지지 않았지. 누구에게든 용기 내라고 격려하실 줄도 알고. 삶에 조금도 상하지 않았어.”(50쪽)

“만나러 갈 엄마만 있다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살 수 있는 거야.”(59쪽)

행복한 생각을 할 때마다 영원히 마음 한쪽은 후회에 젖을 수밖에 없다는 듯한 한숨이었다.(65~66쪽)

오래전부터 단순한 자기 이해를 넘어서서 한 사람이 사회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자기만의 몫을 감사히 여겨온 사람이었다.(66쪽)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 살면 어땠을지 알기 전에 먼저 가버렸고. 사랑이란 게 참 묘해.”(79쪽)

사랑이 필요한 모든 것을 한껏 사랑해온 마음이란!(84쪽)

우리 모두의 생에는 외따로이 고립된 장소가 있다고, 끝없는 후회와 비밀스러운 행복에 바쳐진 장소가 있다고, 우리 모두가 한 시간이나 하루쯤은 동행 없는 은둔자이며 외톨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이 역사의 어느 시대에 속했든 우리는 이 똑같은 감옥의 수감자들을 이해하고 만다고도.(126~127쪽)

“도넛에 관해 저렇게 올바른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낼 의향이 있어.”(142쪽)

식물학자가 자연의 낭비에 놀라듯, 발아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수많은 씨앗과 온갖 사용되지 못한 자원에 놀라듯 아연했다. 사회의 예비력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단한 것이었다. 필요한 것은 그저 기회와 자극제였다는 사실을 수많은 보든가 사람들의 얼굴이 보여주고 있었다.(163쪽)

장례식에도 사회적인 이점과 만족이 있었다. “다음 여름에”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아직 여름이 우리 것이고 나뭇잎이 초록임에도.(167쪽)

우리는 줄곧 같은 마음으로 살 것이다. 외양은 바스러지고 세월의 흔적을 내보일지라도.(171쪽)

이야기하기 기억하기
다가오는 그리움 환대하기

이름 없는 화자가 여름을 보내기 위해 작은 어촌 마을인 더닛 랜딩에 도착한다. 은둔자가 되고자 했던 화자는 하숙집 주인이자 약초 애호가인 ‘토드 부인’의 세심한 환대에 결코 은둔할 수 없는 곳임을 깨닫는다. ‘스위트브라이어’, ‘코스트메리’, ‘발삼’, ‘세이지’, ‘전나무’ 등이 뿌리내린 모습을 바라보며 더닛의 풍경을 그려보고, ‘리틀페이지 선장’, ‘윌리엄’, ‘일라이자 틸리’ 등을 만나 대화하며 그들의 삶을 체험한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모두 애정을 지닌 지역의 토양에서 자라나는 존재들이다. 주잇은 그 존재들을 이야기 속 배경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고유의 서사를 풍부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토드 부인이 우리 이웃의 역사를 전부 이야기해주었다.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인의 말을 빌리자면 “저마다 고생을 잔뜩 하고 그 고생의 명암을 전부 깨우칠 때까지” 함께했다.(23쪽)

극단적인 상황과 인물이 없는 《뾰족한 전나무의 땅》은 공동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꾸리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과거에 향수를 느끼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정체성을 가꾸려고 한다. 낮 동안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듣고 온 화자가 토드 부인에게 이야기를 전할 때 토드 부인은 이미 여러 번 들은 말인 걸 알지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계승되어야 하는 유대감이 있다는 듯. “한 사람이 사회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자기만의 몫을” 수행해야 한다는 듯.
《뾰족한 전나무의 땅》이 더욱 빛나는 건 더닛 랜딩이라는 공동체가 다양성을 살피고 존중한다는 데 있다.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조애나 토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받고 품었던 끔찍한 생각 때문에 신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해 아무도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작은 섬에 혼자 틀어박혀 죽을 때까지 홀로 살아간다. 섬에서 나오라는 사람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이내 공동체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난 삶”을 살기로 정한 조애나를 존중한다. 그럼에도 “고기 잡으러 가는 길에 섬에 들러” 선물 꾸러미를 조용히 두고 오거나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지 세심히 살핀다. 그의 장례식을 치를 때는 조애나가 “줄곧 뭍에 남아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했던 것처럼 다들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참석하며 한 여성의 개인사를 공동체의 역사로 섬세하고 존중 어린 태도로 귀속시킨다.

세상에는 언니처럼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어.(121쪽)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리듬”
고향, 기억, 죽음, 여성의 서

여성의 세계에 대한, 철저한 여성의 책
1896년 처음 출간된 《뾰족한 전나무의 땅》은 영미권 독자와 평론가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주잇은 당대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거듭났으며 헨리 제임스는 “아름다운 작은 성취”, 어슐러 K. 르 귄은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리듬”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1930년대 이후 《뾰족한 전나무의 땅》은 서서히 잊혔다. 다시 주목받은 건 20세기 후반 페미니즘 비평가들이 이 책을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한 뒤였다. 그들은 그간 이 책이 읽히지 않았던 이유로 ‘여성이 여성에 대해 말하는, 특히 노인 여성에 대해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뾰족한 전나무의 땅》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사려 깊으며 미래 지향적인 인물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 시대에 요구되었던 ‘종속적인 여성’이 없다. 자유롭게 살아가며 자기만의 방에서 글을 쓰며 생활하는 이름 모를 화자, 남편을 여읜 뒤 허브 사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토드 부인 등 《뾰족한 전나무의 땅》 속 여성들은 “우리 시간 다 잡아먹을 남자들”과 함께할 생각이 없다.
주잇 역시 평생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다. 줄곧 여성들을 사랑했고 가까운 여성들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었다. 보스턴에서 문학 살롱을 개최하던 애니 필즈와 반지를 교환하고 서약을 낭독하는 등 ‘보스턴 결혼’ 생활을 했으며 윌라 캐더의 모든 초기작을 세심히 읽어주며 소설가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왔다. 캐더에게 건넨 “당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만약 그 방식이 새로운 것이라면, 그것이 당신을 두렵게 하게 두지 마세요. ……진실을 쓰고,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하거나 떠나게 하세요”라는 조언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여성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죽음, 외딴섬 위로 내리는 갑작스러운 햇살
화자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노인이다. 환갑을 훌쩍 넘었으며 이미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너무 많이 겪었다. ‘포스딕 부인’은 “뱃사람들과 뱃사람의 아내들로 이뤄진 대가족의 어머니였으나, 그들 대부분”을 먼저 떠나보냈고, 토드 부인의 집에 온 날에는 얼마 전 자매 ‘루이자’가 죽었음을 알린다. 그들에게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이미 일상이었다.
오랜만에 잔치가 열리자 만남의 기회가 얼마나 값진지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겠구나”라고 말하며 기뻐한다. 노인들은 맞잡은 손을 놓지 못한다.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되리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다음 여름에”라는 말을 애틋하게 반복할 뿐이다. “아직 여름이 우리 것이고 나뭇잎이 초록임에도.”

마을과 사람과 시절에 대한
주잇의 사랑스러운 애착

미국 지방주의 문학의 선구자라는 세간의 평가와 “자기 공간을 향한 나의 애착은 야옹, 하고 운 적 있는 그 어떤 고양이보다도 강하답니다”라고 스스로 묘사한 것처럼 주잇은 자기 공간에 깊이 속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왕진을 따라다니며 많은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았고, 어려서부터 앓았던 류머티즘성관절염으로 흙길과 바닷가로 자주 산책을 다녔다. “난 다른 집을 바란 적이 없어”라고 말하는 ‘블래킷 부인’처럼 자연스럽게 지역에 대한 애정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뉴잉글랜드의 생활을 묘사한 《뾰족한 전나무의 땅》을 대표작으로 남긴 것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겹쳐보기도 했다”라고 말하는 성해나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독자는 《뾰족한 전나무의 땅》을 읽으며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현재를 꿋꿋이 견뎌내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기억의 공동체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마을이든 자연이든. 과거에 있든. 미래에 있든.

작가정보

Sarah Orne Jewett | 1849년 미국 메인주 사우스버윅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가 어부들과 농부들을 왕진할 때 따라다니며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체험했고, 어린 시절 류머티즘성관절염 진단을 받아 자주 산책해야 했는데 그때 고향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주로 메인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기대 많은 작품을 남긴 주잇은 당대 최고의 지역주의 소설가였다. 대표작인 《뾰족한 전나무의 땅》(1896)은 살아가는 지역이 길러내는 사람들과 그들이 이룬 공동체, 그리고 밀려오는 시간에 완만히 퇴적되는 곡진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어슐러 K. 르 귄이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리듬”이라며 극찬했고 윌라 캐더는 ‘미국 문학의 3대 걸작’이라 한 뒤 직접 편집까지 맡았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디프헤이븐》(1877), 《시골 의사》(1884), 《백로》(1886) 등이 있다. 주잇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가까운 여성들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으며 살았다. 특히 보스턴에서 문학 살롱을 개최하던 애니 필즈와 각별했으며 둘은 헨리 제임스의 《보스턴 사람들》 집필에 영감을준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한 주잇은 캐더의 모든 초기작을 세심히 읽어주며 소설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02년 불의의 마차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해 작가로서의 경력이 사실상 끝났고 1909년 몇 차례 뇌졸중을 겪은 후 사우스버윅에서 사망했다.

고려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영 번역을 전공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숨을 참던 나날》, 《우리가 있던 자리에》, 《영광》, 《더 로스트 키친》, 《가장자리》,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두 번째 장소》, 《모든 열정이 다하고》, 《잠 못 드는 밤》, 《루시 게이하트》, 《8월은 악마의 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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