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현
2025년 01월 24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1월 0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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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5740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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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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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바다와 해양생물의 보존을 바라는 해양 과학자 ‘유진’과 깊은 바닷속에 서식하는 발라비 종족 ‘네하’. 원을 그리듯 영영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두 존재가 우연히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순간, 지독히 깊은 수심도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어도 환경도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더 오래 눈을 맞추고 머지않아 닥쳐올 위험으로부터 상대방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내던질 뿐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바다에서 서로를 알아본 두 존재의 눈부신 만남을 보고 나면, 누구라도 한 번쯤 오래도록 기억될 소중한 존재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빛나는 조각
신호
접촉
탐사
첫 번째 만남
해무
기록
두 번째 만남
경고
수면 위로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저런 걸 본 적이 있던가. 네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저 알 수 없는 물체가 이 세계에 속한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계속해서 파들거리던 등의 지느러미들도 일순 활동을 멈췄다. 가까이 다가가봐도 좋을까. 뭔가 위험한 생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네하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잡아야 해. 저걸 잡아서 확인해야 해. 그런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잠식했다. (25쪽)
“사, 사람인가?”
유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다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그럴 리는 당연히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서유진. 유진은 뺨을 가볍게 툭툭 치고 눈을 여러 번 비비고 난 후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건 꿈이 아니었다. 사진 속에는 인간의 형상이 분명 보였다. 그것도 아주 길쭉하게 인간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늘어놓은 듯한, 그러니까 마치 이건…….
‘인어?’ (48쪽)
길쭉하고 가느다란 머리털, 사방으로 뻗은 팔과 다리 그리고 가장 위에 달린 얼굴까지 전부 발라비와 같았다. 네하는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고, 인간을 묘사한 그림 바로 옆에 붙은 설명을 또박또박 읽었다.
“육지 종족, 발라비의 천적 중 하나, 해양생태계를 비롯해 가장 위험한 종족 중 하나, 연구 자료 부족…….”
인간 챕터는 다른 생물들처럼 설명이나 묘사가 풍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설명이 전부 발라비들의 금지구역이 설정된 이유가 인간 때문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었다. (81쪽)
유진이 좋아하는 바다의 고요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쓰레기로 뒤덮인 바다의 표면은 검고 잿빛의 혼탁수로 가득하지만, 그 아래는 유진이 평생을 사랑해온 바다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풍경임에도 유진은 늘 이 온전함에 감사했다. 바다의 생태는 엉망이 된 지 오래일지언정 그 아래서 부단히 노력하는 생물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 덕분에 바다가 가진 고유의 색이 아직까지는 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93~94쪽)
유진과 네하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네하는 ‘인간’이라는 단어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잠수정 유리 너머로 보이는 놀란 표정의 생물은 책에서 본 그림의 묘사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아니, 저걸 단순히 ‘닮았다’고만 말할 수 없었다. 인간. 저것이 인간이구나. 정말로 발라비와 같은 모습으로 생긴 저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구나. (111~112쪽)
인간을 등지고 마을로 내려올 때만 해도 바로 키라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 두근거리는 마음, 일생일대의 경험을 했다는 사실로 펄떡거리는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을 구역에 진입한 후 생각이 바뀌었다. 당분간은 키라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32쪽)
네레이드는 절대 인간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며 함부로 건드려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질지 예측할 수 없고 네레이드를 다시 만나지 못할 가능성도 높지만, 이 사실만은 너무나 명백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생물도 허투루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은 여느 때보다 더 자명했다.
최대한 이 존재를 숨기며 보호해야 한다. 그게 새롭게 떠오른 유진의 사명이었다. (146쪽)
잠수정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네하와 유진은 조금 더 가깝게 붙어 서로를 응시했다. 이 순간이 다시 찾아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해류를 읽고 바다를 바라보며 아주 작은 흐름, 아주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둘은 그 자잘한 기회와 또 한 번 반복된 우연의 일치가 만들어낸 지금을 놀랍도록 담담히 받아들였다. 네하와 유진은 반드시 만나야 했던 처연한 이야기 속 존재처럼 눈을 맞췄다. (160쪽)
“인간과 닮은 생명체라고요? 왜 진작 보고하지 않았나요?”
몇 주 만에 중앙 기지에 얼굴을 내비친 국장의 낮은 목소리가 네레이드의 그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유진의 귓가에 들려왔다. 유진은 고개를 들어 국장의 표정을 확인했다. 국장의 등 뒤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석주가 유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석주는 웃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그 어느 때보다 더 비열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173~174쪽)
“안 돼!”
유진이 크게 소리 질렀다. 그 소리를 네하도 듣긴 했으나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네하는 유진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바라봤고, 이게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유진이 내지르는 비명이 경고의 메시지라는 것만은 직감할 수 있었다. (195~196쪽)
해저 900미터 아래에서 보내온
낯선 생명체의 다정한 신호
어두컴컴한 심해에 터전을 잡은 발라비 종족의 일원 ‘네하’는 오늘도 마을 구성원들 몰래 ‘빛의 경계’로 향한다. 발라비 종족에게 금지구역으로 통하는 그곳은 육지의 빛이 희미하게나마 전달되는, 심해에 사는 네하에게는 신비하고도 낯선 공간이다. 여느 때처럼 마을을 빠져나온 네하가 소꿉친구인 ‘키라’의 도움 아래 빛의 경계를 탐험하던 그때, 난생처음 보는 작은 조각이 네하의 눈에 들어온다. 바닷속에 떠도는 물건을 숱하게 주워본 네하에게도 생경한 조각이다. 처음 보는 물건에 들뜬 네하는 그 조각을 마을로 가져가려고 조각을 담을 만한 자루를 찾는다. 그리고 그 순간, 조각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한편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심해 자원을 연구하는 ‘유진’은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 회의감을 느끼던 차였다. 그런데 몇 년간 잠잠하던 유진의 핸드폰에 뜻밖의 알림 메시지가 온다. 인간이 감히 가 닿을 수 없는 수심 1600미터 지점에서 최근 분실한 측정기의 신호가 잡힌 것. 믿기지 않는 메시지 내용에 반신반의하는 유진은 혹시 모를 연구의 성과를 기대하며 측정기의 기록을 다운받고, 기록에 남은 사진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화면에는 유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존재의 모습이 떠 있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세 장 중 두 장에는 아주 작은 불빛과 비닐처럼 투명한 인간의 형상이 명백하게 찍혀 있었다. (50쪽)
네하는 빛나는 조각을 이상하게 여겨 키라와 함께 단서를 추적한다. 그러다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금서에까지 손을 대게 되고, 우연히 인간에 대한 정보를 보게 된다. 절대 접촉하지 말라는 금서의 경고에도 네하는 발라비와 흡사하게 생긴 인간이라는 존재에 호기심을 거두지 못하고, 동시에 빛나는 조각이 육지에서 왔음을 직감한다. 결국 네하는 혹시 모를 인간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금지구역 너머 광원 근처까지 헤엄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심해까지 내려온 유진의 잠수정을 마주치게 된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찰나의 만남
그리고 종족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연대
『작별의 현』은 영영 마주칠 일 없는 공간에 살던 네하와 유진이 우연히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끝내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다. 처음 보는 낯선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반드시 만나고야 말겠다는 무모함으로 시작되는 두 인물의 관계는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낯선 물보라를 일으킨다. 종족이 다른 두 인물의 교집합은 우정과 사랑처럼 보편적인 감정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누군가를 소중히 하는 마음과 모든 걸 내려놓고서라도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마음은 바닷속뿐만 아니라 독자의 마음에도 작은 파동을 불러일으킨다.
수천수만 번의 상상에서 빠져나와 실제로 벌어진 지금 이 순간의 일. 돌아가면 다시는 바다로 내려올 수 없는 징계를 당한다고 해도 좋았다. 이제는 기록도 정리도 필요 없었다.
오직 두 눈으로 확인하고 기억하자. (161쪽)
그런 마음 덕분일까. 경계와 두려움도 잠시 네하와 유진은 금방 서로를 알아본다. 마치 만나야 할 존재가 만나게 된 것처럼 둘은 다정히 눈을 맞춘다. 말을 전할 수도, 그렇다고 오래도록 서로를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그들에게 허락된 건 오로지 눈으로 나누는 대화가 전부다. 생전 처음, 어쩌면 모든 역사를 통틀어 처음일 만남은 그렇게 잠깐이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서로에게 남긴다.
하지만 발라비 종족도, 유진의 연구소도 그들의 만남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욕심과 원한으로 얼룩진 두 종족의 과거가 네하와 유진의 발목을 잡는다.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만 자명해질 뿐이다. 연구 대상을 목도하고도 그 생명체를 지키려 하는 유진과 자신의 천적인 인간을 기꺼이 만나려는 네하의 외로운 유영이 그렇게 시작된다.
찰나의 만남이 만든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네하와 유진의 결말은 과연 작별일까. 그들처럼 낯선 누군가를 이해해보려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가. 그렇다면 그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작별의 현』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이기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다름을 이해하고 단단해지는 연대의 힘을 독자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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