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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주인공들

오자은 지음
생각의힘

2024년 12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2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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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43.81MB)   |  약 16.5만 자
ISBN 9791193166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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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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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실패와 고투와 일어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여자 주인공들이다. 이야기의 힘이 다해가는 지금도 굳건히 ‘소설의 힘’을 믿으며 한국 현대소설을 연구해온 오자은이 여자 주인공들의 여정을 좇으며, 자기 증명에 부단히도 애썼던 이름을 복원하려 시도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장 서사는 어떻게 (불)가능했는지, 어떤 성공과 부여가 있었고 어떤 실패와 굴절이 있었는지 각 시대의 마음을 읽어내며 그 경로를 추적한다. 박완서에서 최은영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간 속에서 시대와 조우하고 시대를 극복하며 끝내 살아남아 우리에게 온 여자 주인공들을 호명한다. 이경, 수연, 이화, 희원, 희재, 진희, 석화, 지연…….
《여자 주인공들》은 한국 현대소설의 계급, 젠더, 도시성에 대한 글을 쓰고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대중을 대상으로 발표한 첫 문학비평집이다. 기발표한 논문을 바탕으로,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대중 독자라면 누구나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고쳐 쓰고 새로 쓴 결과물이다. 소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과 마음, 운명이 걸어온 역사를 살피는 책이 우리에게 도착했다. 가장 강하고 뜨거운 자리에 선 이름들이 독자의 품속을 파고든다.
책머리에∥문제적 여성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1장 K-장녀의 존재론
- 《나목》의 이경

2장 ‘여아 살해’ 주문과 탈주술의 서사
- 《도시의 흉년》의 수연

3장 성(聖) 처녀와 성(性) 처녀
- 《겨울여자》의 이화

4장 여성은 성장할 수 있는가
- 《레테의 연가》의 희원

5장 중산층 가정의 데모하는 딸들
- 김향숙 소설의 ‘언캐니’한 딸들

6장 ‘문학 여공’과 ‘소설가’ 사이
- 《외딴방》의 희재언니와 열여덟의 나

7장 90년대식(式) 연애, 90년대산(産) 사랑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진희

8장 ‘절대’와 ‘환영’ 사이, 어느 중년 여성 예술가의 불온한 사랑
- 《그녀의 여자》의 현석화

9장 ‘건널 수 없는 강’은 결코 건너지 않는 사랑
- 《밝은 밤》의 여자들

참고문헌

이 책에 실린 여자 주인공들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흔한 이름과 독특한 이름이 섞여 있다. 이경, 수연, 이화, 희원, 희재, 진희, 석화, 지연……. 장마다 일부러 여자 주인공을 힘주어 호명하는 듯 그 이름을 눌러썼다. 여러 이름을 가진 복수의 인물이지만 이 책을 다 쓰고 난 내게는 마치 단 하나의 여자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여자는 이 책을 쓴 나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을 여성 독자들이기도 하고, 남성 독자들에게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녀이기도 할 것이다.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보는 것에는 공모와 저항 사이, 그 문제적 여성 인물들을 통해 여성소설사를 재구하겠다는 나의 큰 욕심도 담겨 있다.
_11쪽, 책머리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한 가지 구체적인 궁금증을 갖게 된다. 아버지의 조력 없이 혼자 세상을 헤쳐나간 장남의 자수성가 이야기 말고, 장녀의 이야기는 왜 없는가? 전쟁통에 죽거나 사라진 아버지와 오빠 대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동시에 그 아수라장에서 스스로 성장해야 했던 장녀의 이야기는 어디 있다는 말인가? 실제로 전후에는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많은 남성들의 사망과 부상으로 생긴 경제적·물리적 공백을 여성들이 메꾸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으로 인한 남성의 부재와 실업 증가는 여성들에게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부과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것이 ‘한시적인 일’인 것처럼 비가시화되어 정당한 노동으로 대우받기 어려웠을 뿐, 8 많은 딸들이 아버지와 오빠를 대신 하여 생계를 부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부재하는 아버지와 오빠의 그늘에 가린 채 고독하고 외로웠던,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위성처럼 겉돌 수밖에 없었던 장녀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전후 한국 현대소설에서 장녀 성장 서사의 원형, 가장 원천적인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박완서의 《나목》에서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_20~21쪽, 1장 K-장녀의 존재론

이 천명에는 남녀 쌍둥이는 상피 붙는다는 저주의 예언이 놓여 있다. 그렇다면 “남매 쌍둥이를 그대로 기르면 자라서 상피 붙게 돼 있다는 항간 일부의 끔찍한 속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동시에 태어났을 때, 살려야 하는 아이는 남아고 그 남아의 보존을 위해 여아는 죽어야만 한다. 여기에서 ‘저주받은 여자아이’를 실제로 저주하는, 그러한 속설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존재는 이 남매의 할머니이다. 모두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기, 한정된 재원 속에서 남자아이만을 골라 대를 잇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경제적 셈법이 ‘율법’이라는 외피를 쓴 것이리라. 그리고 그 율법의 내부에는 여자아이는 언제든지 공동체의 도덕을 흩트리고 오염시킬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는 인식이 놓여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에 그것을 강제하는 할머니는 공동체의 생존과 대의라는 큰 목표 아래 집단의 도덕을 통솔하는 이상야릇한 권력을 행사하며 주인공인 수연과 수빈에게 저주의 운명을 내리고 궁극적으로는 수연을 축출함으로써 공동체의 유지를 도모하고자 한다.
_62~63쪽, 2장 ‘여아 살해’ 주문과 탈주술의 서사

소설이든 영화든 70년대 대중문화에서 명문 여대생 이화의 성적 일탈은 곧 센세이션이었고, 70년대 대중소설은 《겨울여자》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겨울여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당대 ‘호스티스 소설’의 일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자 주인공의 특수한 위치로 인해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문제적 텍스트였다. 무엇보다 이화는 남자에게 상처받지도 않고 남자 때문에 자살하지도 않으며 비극적 운명을 경험하지도 않는다. 넉넉한 집안의 사랑 많은 부모는 그녀의 평범하지 않은 선택들을 지지해주고, 만나는 남자는 모두 그녀에게 감복되어 교화된다. 그렇다면 당시 대중은 불쌍하지도 않고 쉽게 동정할 수도 없는 이화를 통해 무엇을 보고 느꼈던 것일까? 단지 많이 배웠으며 집안도 유복한 여대생이 경험하는 남성 편력에 대한 관음증 때문에?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_78쪽, 3장 성(聖) 처녀와 성(性) 처녀

젊은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그녀의 변화와 성찰 과정을 그린 《레테의 연가》는 상당히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작가 후기에서 밝혔듯 젊은 여성에게 자기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이문열의 의도, 젊은 여성들에게 통과의례처럼 읽히는 작품을 쓰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은 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성장소설적 구성으로 구체화된다. 유부남과의 ‘불륜’은 성장소설의 주체가 경험하는 사랑의 위기와 실연에 해당하는 것이며, 잡지사 기자로서의 직업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정확한 삶의 방향이 결정되지 않은 여자 주인공이 자신이 속한 속물적 세계와 대립하고 여러 인물을 만나고 깨달으며 예술과 삶 사이를 갈등하다가 일정한 답을 찾아간다는 줄거리 역시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문법에 충실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질문이 발생한다. 80년대 초반, 불륜 멜로서사라는 외연에도 불구하고 또는 통속소설이라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왜 작가 이문열은 여성의 ‘성장’을 중심 서사로 한 소설을 내놓은 것일까?
_114~115쪽, 4장 여성은 성장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80년대라는 시대의 독특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쪽에선 중산층에 대한 환상과 중산층적 라이프 스타일이 확산되어 일상 속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면, 또 다른 한쪽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모두 알다시피 당시는 민주화의 열망을 누르고 복귀한 군부독재의 폭압적 정치와 이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데모와 집회로 뜨거운 날들이었다. ‘사적인’ 중산층 가정마저도 이러한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80년대 소설 속에서 다수 발견할 수 있듯이, 중산층 가정의 아내는 해직 교수나 해직 교사가 되어 변해버린 남편과 맞닥뜨리게 되었고 중산층 가정의 부모는 데모하는 운동권 자식과 갈등하고 충돌하게 되었다. 즉 평온한 가정에 갑작스럽게 틈입한 이 ‘정치성’을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다루고 대처하는가가 중요한 과제가 된 셈이다. 그리고 만약 여기에서 운동하는 자식이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면? 문제는 한층 심각해진다.
_154쪽, 5장 중산층 가정의 데모하는 딸들

앞서 언급한 장남수, 석정남, 송효순의 수기는 모두 일상인, 학생, 노동자, 여성으로 이어지는 사회의 다양한 정체성에 자기 자신을 대어보지만 언제나 이에 부적합하거나 미달되는 존재, 누락된 존재로 판정받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경험은 ‘여공다움’에 대해 주어진 몇 개의 정체성-‘산업 역군으로서 자립해가는 당당한 여성’이라는 국가의 전시, ‘가난하고 못 배운 공장 다니는 여자애’라는 대중적 정체성, ‘남자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성적 대상’이라는 취약한 섹슈얼리티의 표상 등-과 불화하고 불일치하는 어긋남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여공’은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설명해줄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일부와만 부합하는 가장 협소한 레테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수기는 사회의 규정이나 통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고 승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반복적으로 탐색하는 자기 정체화의 서사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정체화의 방법으로 ‘문학’이 아주 중요하게 등장한다는 것.
_193~194쪽, 6장 ‘문학 여공’과 ‘소설가’ 사이

진희의 90년대이자 삼십 대를 그린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그 바통을 이어받아 전면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분위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체 새로운 시대란 무엇인가? 이 소설은 진희의 연애 이야기와 사랑론을 펼쳐놓는 동시에 다양한 담론이 등장한다. 읽다 보면 진희의 서사 자체가 이러한 담론을 구현하기 위해 직조된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예를 들면 ‘몸’ 담론, 여성의 임신 중절 이슈, 동성애 문제,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의 부상, 젠더 권력적 관점에서의 성 정치, 일부일처제에 대한 저항까지. 진희가 가는 곳곳마다 그와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거나 혹은 주변 인물이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식으로 이러한 담론이 시시때때로 펼쳐진다. 여성학을 전공한 것으로 나오는 동료 여교수, 그 반대편에서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시니어 남교수, 갑자기 등장해서 여성 문제에 대해 취재하는 잡지사 기자와 같이, 진희 주변의 ‘마치 꼭 만들어진 듯한’ 인물 배치는 이러한 심증을 더욱 굳히게 만든다.
_230쪽, 7장 90년대식(式) 연애, 90년대산(産) 사랑

그동안 이 소설은 금기의 사랑을 주로 다뤄온 서영은이 동성애 서사에 도전함으로써 그 파격성을 극대화했다는 입장에서 대체로 이해되어 왔다. 다만 그러한 기존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주의 깊게 다뤄지지 않은 한 가지 문제, 바로 현석화가 ‘예술가’라는 점을 경유할 때 이 소설의 금기 위반이 갖는 독특한 의미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리하자면 ‘아들의 연인과 동성애적 사랑에 빠진 중년 여성 예술가’라는-‘아들의 연인과의 사랑’, ‘동성애’, ‘중년 여성’ 등 어느 하나 간단하지 않은 키워드들-한국 문학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키워드들을 ‘예술가소설’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보다 세밀하게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배경에는 여러 예술가소설의 모티프가 놓여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확연한 연관성을 드러내는 것은 예술가소설의 고전인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_258쪽, 8장 ‘절대’와 ‘환영’ 사이, 어느 중년 여성 예술가의 불온한 사랑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의 숙모와 혜인처럼, 최은영 소설들 속 관계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대부분 인생에서 한때 가장 솔직한 마음을 공유했으나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끊겨버린 존재들에 대한 이해라는 점이다. 보통 세상은 끝까지 가는 우정, 끝까지 함께하는 연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의 가치를 높게 쳐주지만 최은영의 소설에서 다루는 관계의 의미는 이와 사뭇 다르다. 이제는 멀어졌지만, 연락이 끊겼지만,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지만,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한때 가장 나 자신에 가까웠던 타인에 대한 현재의 이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러니까 ‘무해함’을 그저 세상의 치열하고 어두운 이면은 외면하고 천진하고 예쁜 언어로 아름답게 가공한 감정이라고 치부한다면, 그것은 ‘무해함’을 그리고 그 ‘무해함’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대중의 마음을 납작하게 생각한 것 아닐까. ‘무해함’은 인간과 다른 인간이 관계 맺는 한 방식에 붙인 새로운 이름이기 때문이다.
_295쪽, 9장 ‘건널 수 없는 강’은 결코 건너지 않는 사랑

이경, 수연, 이화, 희원, 희재, 진희, 석화, 지연…
한국 소설 속 뜨거운 이름들을 호명하며
그들의 삶과 마음, 운명과 마주하는 시간

시작은 박완서이다. “문학은 쓰는 사람에게나 읽는 사람에게나 인간으로서의 자기 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 문학을 읽는 우리는 그 안에서 시대를, 인간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건져낸다. 건져내고 함께 호흡한다. 선하게 아름답고 투명하게 또렷한 이야기. 그러나 오랜 시간 쓰이고 읽힌 수많은 이야기 속 주인공은 어쩐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깊은 고뇌에 빠져 있을지라도 세상과 갈등하고 투쟁하여 언젠가는 위대하고 용감해질 사람들. 혹은 이미 위대하고 용감하거나. 그리고 그들은 남자였다. ‘여자’는 어떤 역할을 부여받았는가? 슬픔에 젖어 불행한 채였지, 이야기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모험을 떠날 수도 없었고, 성장에 필요한 성찰도 대립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들의 욕망과 철학과 주장은 삶의 한 방식인데도 유난하고 멋모르고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정말 그러하였을까?
여기, 실패와 고투와 일어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여자 주인공들이다. 이야기의 힘이 다해가는 지금도 굳건히 ‘소설의 힘’을 믿으며 한국 현대소설을 연구해온 오자은이 여자 주인공들의 여정을 좇으며, 자기 증명에 부단히도 애썼던 이름을 복원하려 시도한다. 책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지난 50년간 한국 땅이 여성을 어떻게 상상해왔는지 말한다. 박완서, 김향숙, 신경숙, 은희경, 서영은, 최은영 등 여러 세대에 속한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조해일, 이문열 두 남성 작가의 작품이 목록에 올랐다.
《여자 주인공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장 서사는 어떻게 (불)가능했는지, 어떤 성공과 부여가 있었고 어떤 실패와 굴절이 있었는지 각 시대의 마음을 읽어내며 그 경로를 추적한다. 각각의 시간 속에서 시대와 조우하고 시대를 극복하며 끝내 살아남아 우리에게 온 여자 주인공들을 호명한다. 이경, 수연, 이화, 희원, 희재, 진희, 석화, 지연……. 이들은 단 한 명의 여자이기도 했고, 수많은 ‘나’이기도 했다. 그들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에 불행했고, 무엇을 욕망했을까? 무엇이 그들을 꺾었고, 무엇이 그들을 아프게 했으며, 무엇이 그들을 일으켰을까?


장녀 성장 서사의 원형을 찾아

오자은은 해방 이후,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한국 소설의 가장 큰 서사적 특징 중 하나로 ‘자수성가 모티프’를 꼽는다. 김원일이건 이문열이건 당대 쟁쟁한 작가들의 소설에서 우리는 혼자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간 장남의 자수성가 이야기를 익숙하게 접해왔다. 의지할 데 없는 가난한 청년이 낯선 고장을 방황하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번민하다가 일정한 해답을 찾은 뒤 서울로 돌아와 ‘정상적인’ 중산층 엘리트 남성으로서 성장하는 스토리. 당시 대중은 이렇듯 중년 남성의 신산했던 과거 성장담을, 전후 폐허 속에서 배곯던 가난을 극복하고 고도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루어낸 한국 사회의 자부심과 포개어 읽었다. 그 자부심은 곧 ‘나’의 자부심이었다. 오자은은 묻는다. 장남의 자수성가 이야기 말고, 장녀의 이야기는 없는가?
다시 박완서이다. 책의 출발점이자 전체 지면을 관통하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것이 “6.25 전쟁 경험을 관통한 세대와 그 세대가 1970~1980년대 한국식 압축적 경제개발 속에서 중산층으로 전이해가며 어떤 역동을 겪는지를 형상화한”(22쪽) 박완서 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이다. 오자은은 한국 소설에서 찾아보기 드문 ‘여성 성장 서사’의 시작점을 박완서라 분석한다. 1장 ‘K-장녀의 존재론’은 1970년대 박완서의 《나목》을 바탕으로 최근 ‘K-장녀’로 불리는 한국 큰딸들의 성장 서사를 재구한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성장 서사의 핵심은 자율성이 더 많이 허락된 남성적 주체의 모델이었기에, 이 틀에 여자 주인공을 그대로 편입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여성은 어떠한 강제 속에서 무엇보다 “여성이 될 것”을 요구받았고, 성장을 방해하는 강력한 장벽과 맞서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성장을 단념시키는 것과 대결하고 시대와 싸워가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성장이어야 했는데, 바로 그러한 서사를 박완서 작품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후 한국 소설사에서 가장 걸출한 ‘장녀 성장 서사’의 탄생이다.


박완서, 김향숙, 은희경, 서영은 최은영 소설 속
불화하고 욕망하며 극복하고 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

1장이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 《나목》의 이경이 보여준 ‘K-장녀’식 성장법과 그 고투를 담아냈다면, 이어지는 장들은 1930년대 초반 생인 이경 세대 이후 여성들이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각각의 시간 속에서 또 어떤 다른 방식으로 운명과 마주하고 살아갔는지 보여준다. 2장에서는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을 통해 ‘여아 살해’라는 과거의 임신중절 이슈를 경유하여 남아선호의 세계에서 어떻게 딸들이 탈출했는가 확인한다. 3장에서는 대중소설인 《겨울여자》의 이화가 당대의 호스티스 담론을 전복하면서도 동시에 남성 대중의 환상에 어떻게 공모했는지 그 이중적 양상을 읽는다. 이렇듯 1970년대 세 편의 소설을 분석하는 데 있어 핵심은 가부장적 전통이 강력하던 시기, 남성 중심적인 세계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실패하고 또 일어서는가를 살피는 데 있다.
4장과 5장은 1980년대 소설을 다룬다. 4장은 이문열의 《레테의 연가》를 통해 ‘문학소녀 길들이기’라는 주제 아래, 80년대에 불어닥친 문화적 개방과 여성 인권 향상의 흐름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보수의 논리를 들여다보면서 그것이 어떻게 여성을 순치하려 했으며 또 여성은 어떻게 그로부터 벗어났는지 짚는다. 5장에서는 김향숙의 단편들을 통해 남성 중심의 운동권 문화와는 또 다른 ‘중산층 가정의 데모하는 딸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이를 중산층 가정의 정치성 차원에서 읽어낸다.
혼란의 시기였던 1990년대를 다룬 6장과 7장은 이 시기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신경숙과 은희경, 두 작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노동자, 그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를 이야기하는 소설과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중산층 엘리트 전문직 여성을 그린 양극단의 소설을 배치했다. 6장은 신경숙의 《외딴방》을 1970년대 여공 수기와 여공 담론을 경유하면서 읽어내고, 한때 ‘문학 여공’이었던 1990년대의 소설가가 이들의 삶을 재현하는 데 어떠한 윤리적 딜레마를 겪는지 살핀다. 7장은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진희를 고유한 개인을 넘어서 1990년대라는 시대적 특이성을 기입한 상징적 인물로 간주하고, 진희의 냉소와 사소함에 대한 집착을 1980년대에 대항하는 시대적 정서로 의미화한다.
2000년대 소설 중에서는 결이 다른 두 작가, 서영은과 최은영의 작품을 분석한다. 8장은 서영은의 《그녀의 여자》를 읽으며 남성 중심 예술가소설의 오래된 전통을 전복하는 여성 예술가의 비타협과 급진성을 다루고, 9장을 장식한 최은영의 《밝은 밤》은 ‘무해함’ 열풍이 부는 2020년대적 마음의 근원을 ‘여성적 관계의 의미란 무엇인가’에서 찾는다. 《그녀의 여자》가 예외적 여성의 강렬한 파괴성을 보여준다면 《밝은 밤》은 평범하고 약한 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대편에 놓여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여성과 여성의 만남을 통해 남성적 전통과 관계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불같이 반짝이고 뭉근히 타오르는
우리의 이야기, 계보, 어떤 연결에 관하여

1970년대를 시작으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중요한 작품을 두세 편씩 배치하였으나 “그 중요도는 반드시 문학적 ‘정전’의 의미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 시대의 전형성이나 정상성에 공모하면서도 거기에 저항하는 문제적 여성들의 경우에 이 책의 중요한 자리를 내주었”다. 공모와 저항 사이, 문제적 여성 인물들을 통해 여성소설사를 재구했다. 먼저 읽은 문학박사 정희진은 “다학제적 방법론을 통해 문화 연구의 지평을 넓힌, 단숨에 읽히는 이 책을 통해 한국 현대사와 한국 사회를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라 호응하며 출간을 반겼다.
《여자 주인공들》은 한국 현대소설의 계급, 젠더, 도시성에 대한 글을 쓰고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대중을 대상으로 발표한 첫 문학비평집이다. 기발표한 논문을 바탕으로,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대중 독자라면 누구나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고쳐 쓰고 새로 쓴 결과물이다. 지면을 가로지르는 신중하게 면밀하면서도 뜨끈한 온기로 살아 숨 쉬는 비평을 따라가다 보면, 얼핏 없는 듯 보였지만 실은 영화롭게 자기의 자리를 지키던 ‘목소리’들의 존재를 의식하고 어루만지는 읽기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목소리를 포개게 된다. 이경, 수연, 이화, 희원, 희재, 진희, 석화, 지연……. 그리고 이어질 우리의 이름들을 생각하게 된다. 오자은은 “가장 큰 결핍에서 가장 강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국 땅에서 여성의 자리는 오랜 시간 약자의 자리이자 결핍된 자리였다. 2024년 겨울, 소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과 마음, 운명이 걸어온 역사를 살피는 책이 우리에게 도착했다. 가장 강하고 뜨거운 자리에 선 이름들이 독자의 품속을 파고든다.

작가정보

저자(글) 오자은

한국 현대소설 연구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중산층의 정체성 형상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1970~1980년대 소설의 계급, 젠더, 도시성에 대한 글을 쓰고 연구를 해왔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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