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케이크 무장 혁명사
2024년 12월 23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2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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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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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더 가벼워져야 했다. 한입의 컵케이크처럼 작고 귀엽고 달콤해야 했다.”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지영은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 『고독사 워크숍』, 소설집 『이달의 이웃비』 『테레사의 오리무중』 등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은 2013년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작가로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의 판타지적 감각은 ‘선’ 안에 깃든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며 ‘악’을 발굴해내는 이야기를 동화처럼 펼쳐낸다. 선행(先行)이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컵케이크처럼 달콤하고 아름다운 실천”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은 ‘선’에 대한 찬사보다 더 자극적인, ‘악’을 향한 비난에 드러내는 증오심 위로 형형색색의 스프링클을 뿌려주는 환상을 전한다.
이들이 의식하고 있는 ‘개인적 욕망’의 실체,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선함’에 대한 그들의 믿음. ‘컵케이크 혁명사’를 통해 이들의 욕망이 어떻게 위악과 위선의 모습으로 거듭 뒤집히며 그들이 갈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바라보도록 만드는가가 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주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_「해설」에서
1. 나는 아름답다
2. 굿보이의 탄생
3. 모럴의 발명
4. 굿보이 프로젝트
5. 착한 사람들을 위한 컵케이크
6. 착한 사람들을 위한 컵케이크라는 포르노그래피
7. 호모에스테티쿠스
8. 컵케이크 자경단
9. 혁명은 혁명가를 타도한다
10. 천 개의 컵케이크 축제
에필로그
해설 : 위선(僞善)의 미학 _선우은실(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나는 어쩌면 그의 파멸을 은밀히 소망해왔는지도 모른다. 그가 여전히 혁명을 꿈꾸기를 바라면서, 그가 혁명에 실패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며 파멸에 이르기를 동시에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일찍이 혁명을 그만둔 나의 젊음, 내가 잃어버린 소년에 대한 위로와 보상이라도 되는 듯이. (11쪽)
나는 일찍이 세상의 비밀을 깨우쳤다. 아름다운 것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것에서 온다. 그렇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만이 모든 것이 소멸해가는 전 지구적인 위기의 이때,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섹시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18쪽)
가장 최적의 각도를 찾아 가장 예쁘게 찍힌 사진일수록, 타라는 그것이 실제의 자신과 일치한다고 믿는다. 모두가 베니 같은 외모를 타고나는 건 아니므로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왜곡과 오류는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라는 것을 베니는 이해한다. 행복을 추구한다면 왜곡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33-34쪽)
진짜 아름다운 것은 윤리적이며 도덕적이어야 한다. 나는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나쁜 남자 따위. 나쁜 남자의 시대는 갔다. 진짜 섹시한 것은 착한 것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섹시한 것은 착한 남자, 착한 소년인 자신인 것이다. (54쪽)
한 장의 티셔츠에는 세계의 모든 것이 담겨 있어. 슈퍼맨과 배트맨, 간디와 마릴린 먼로, 피카소와 아인슈타인과 베토벤과 잭 더 리퍼와 예수, 유령과 피노키오, 피사의 사탑과 그랜드캐니언, 은하철도, 펭귄과 방울뱀, 베레타 M92와 개망초꽃, 전쟁과 평화, LOVE YOU와 FUCK YOU까지 티셔츠에는 그 모든 것이 있어. 가장 위대한 건 티셔츠라고. (75쪽)
처음에 베니가 다정한 눈빛으로 친절을 베풀 때면, 뭐야, 얘는 진짜 좋은 애네,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베니의 친절을 받고 있으면 나는 구제불능의 쓰레기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것은 베니에게 내가 단지 자선의 대상, 자신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아름다움을 빛내줄 또다른 베품의 대상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113쪽)
나는 베니를 따라잡는 데 더욱 열중했다. 베니야말로 내게는 맛도 좋고 보기도 좋은 착한 컵케이크였다. 포르노에 중독되듯이 내가 베니에 중독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나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약간의 오르가슴을 경험하자 나는 더욱 베니를 따라잡는 데 몰두했다. (118쪽)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요한의 말대로 모두 미학적 인간, 호모에스테티쿠스였다. 베니가 아름다움에 과하게 집착하는 면이 있기는 했지만 무언가에 대한 절대적이며 순수한 추구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기도 했다. (142쪽)
그동안에도 인터넷에는 매일매일 자, 다 같이 욕해주세요, 라는 식의 영상들, 누가 누군가를 욕하고 누가 누군가를 폭행하고 누가 어디서 매너 없는 행동을 하고…… 버러지 같은 인간들의 고발성 영상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왔고, 열띤 관심과 파장을 일으켰다. (149쪽)
“길에 껌 따위를 뱉고 다니는 더러운 인간들의 도로에 컵케이크 하나쯤 투척한다고 해서 더 더러워질 것도 없어.” 베니는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보며 사납게 물었다.
“왜, 내가 미친 거 같니? 내가 괴물 같아?” (152쪽)
“악을 통해서만 더 효과적으로 구현되는 선도 있긴 하지.” (154쪽)
생각해보면, 베니는 세상의 선을 밝히기 위해 악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타인의 추악함을 자신의 아름다움을 빛내줄 등불로 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188쪽)
누군가를 악의 축으로 비난한다고 해서, 내가 선이 되는 것도, 내가 더 아름다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한 명을 공개재판하고, 그를 마녀로 만들어 돌팔매를 하면서 나는 다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선의 의지가 아니었다. (200쪽)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사람들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준(나), 선을 실행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나눠주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베니, 티셔츠에 새긴 메시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요한, 자신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모든 행위는 선이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타라, 베니에게 품은 마음으로 그와 함께 남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은 베티. 이들은 ‘굿보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아름다운(선)”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인다.
‘굿보이 프로젝트’란 선행을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보상으로 직접 만든 컵케이크를 선물하는 것으로 일종의 몰래카메라 같은 것이었다. 인터넷상에서 비난받을 행위를 찍어 올리고 화제가 되는 것에 “반대로 사소하지만 착한 일 하는 사람들을 찍어서 올리”고 “또 그런 영상들을 사람들이 올리도록 선도하”다보면 “분명히 좋은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길 거”라는 생각이었다. 굿보이 프로젝트는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고 그들이 찍어올린 ‘선’에 찬사가 이어진다. 사람들의 찬사가 커질수록 그들은 “선하고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한다는” “중독성 강한, 빠져나올 수 없는 포르노”, “착한 컵케이크라는 포르노에 중독”되어간다.
서서히 드러나는 욕망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선’에 대한 찬사보다는 ‘악’을 처단하는 데에 더 큰 카타르시스 느끼며 열광하고 몰려간다. 굿보이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면서 한동안 오르던 컵케이크 판매나 트위터 팔로잉 수도 정체된다. 이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선)’ 역시 더욱 자극적이고 더욱 새로워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선’ 뒤에 숨긴 그들의 욕망을 서서히 드러낸다.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한때 왕따를 당하며 히키코모리로 세상과 단절의 생활을 했던 준은 베니의 것인 최고의 아름다움의 자리에 서고 싶어지고, 베니는 얼굴에 나는 작은 뾰루지마저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요한은 여전히 SNS에서 떠도는 짧은 문구를 베껴와 자신의 철학인양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떠들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볼에 보조개를 찍는 쁘띠성형을 하듯 타라는 기부나 자선을 행한다.
어쨌거나 세상을 바꾸고 싶은 꿈을 꾸는 건 세상이 맘에 안 드는 못난이들뿐일 터였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역시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못난 사람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쁘띠성형을 꿈꾸는 우리 같은 사람들뿐인지도 몰랐다. _95쪽
이들은 그들의 ‘아름다움(선)’을 위해 ‘악’을 유도한다. 나아가 개인적으로 ‘악의 처단’을 주문받고 이를 해결해주는 ‘자경단’의 모습으로 변한다. 급기야 반 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선생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중학생의 의뢰를 받고 여선생의 악행을 찾기 위해 감시하다 어린 학생과 함께 모텔을 들어가는 장면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그러나 여선생의 자살 시도가 이어지고 모텔 장면은 의뢰를 한 학생이 꾸민 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학생의 말만 믿고 그녀를 단죄하기 위해 일을 꾸몄던 이들은 결국 자괴감에 뿔뿔이 흩어져 연락마저 끊고 각자의 삶을 산다.
누군가를 악의 축으로 비난한다고 해서 내가 선이 되는 것도, 내가 더 아름다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한 명을 공개재판하고, 그를 마녀로 만들어 돌팔매를 하면서 나는 다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선의 의지가 아니었다. 처음에 우리는 분명히, 그런 현상에 대한 반발로, 선으로써 선의 의지를 실현시키겠다는 생각에서 굿보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거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_199-200쪽
‘선’을 위한 ‘악’
우리는 착한 사람들을 위한 컵케이크의 단맛에 중독되어 있었다. 포르노에 한번 중독되면 계속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듯, 우리도 역시 더 강한 것을 원했다. 그것이 아름다움이 원하는 것,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아름다움이 가야 하는 길인지도 몰랐다.
“그것이 하늘에서 오건 지옥에서 오건.” _155쪽
이들이 꿈꾸었던 ‘아름다움(선)’은 ‘악’으로 ‘선’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소설이 ‘위선’을 다룬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위악에 대한 것”(「해설」에서)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는 타인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보다 타인의 악행을 보며 증오를 표출하면서 얻는 카타르시스, 또한 내가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더욱 자극적이기 때문에 그곳으로 몰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그리는 “천 개의 컵게이크”라는 동화 같은 결말은 독자들에게 ‘선’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할 것이고 이 갈망들이 모였을 때 사회는 새로운 ‘혁명’을 마지하게 될 것이다.
그때 내가 원한 건, 아주 착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그냥 대놓고 착한 이야기, 착한 사람들이 나오는 착한 이야기. 그러나 늘 그렇듯 그 바람은 실패하고 마는데,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착하다는 게 무언지 잘 모르거나 줄곧 오해하고 있고, 아마도 그래서 계속 착하거나 다정한 사람들과 구원에 대한 착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실패하는 방식으로 계속 써나가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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