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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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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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발로 숫눈을 밟은 당신에게
랜딩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러면 나의 절망을 말해줄 테니
집들이
oort
내일부터 장마 시작
시간순
이건 사람만이 이야기하는 미래
해령
방문
새로운 안부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눈이 필요할 것 같아서 오보를 내린 날이 있다
억양
obdachlos
미래의 집
러브레터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앉아서
2부
오른발로 숫눈을 밟은 당신에게
플래시포워드
미래사彌來寺
요약본
세매라는 새
생활
포물선
수원
끝물
걱정하지 마세요
사랑해야 하는 딸들
나의 아이
귀연
피사체가 되는 연습
눈을 묻히고 현관으로 들어설 미래
사물이 사람을 먼저 알아챈다
바라던 일이 오후에 이루어짐
가정 계약
오로라가 아니라
3부
추신
안식일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저녁이 올 것은 아침부터 정해져 있다
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
에세이
미래의 냄새
작품해설
송현지 : 다시, 당신에게
당신은 체온이 필요한 사람이군요, 그는 이어서 이야기하고. 함께 살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질문했다.
- 「랜딩」 부분
너의 동네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꽃은 나의 골목에도 피어 있었다. 그렇게 멀리 있는 곳,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을 말하던 게, 너무 가까이에 보여서. 진심이 맞니, 물으려다 진심이 맞다고 맹세해, 라고 다그쳤다. 그 꽃을 알려주었으니 너는 매해 여름에 책임이 있다.
-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부분
교차로가 사방으로 그어진 광장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 아무나 붙잡고 / 같이 살아봐요, /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 낮이 밝으면 / 어깨엔 아무것도 두르지 않고 가뿐하게 / 언덕길을 내려갈 거예요. / 나는 나를 다 보여줬어요.
- 「집들이」 부분
이런 볕을 받고 자랄 수 있는 나무라니. 다음 생엔 이곳의 가로수로 태어나고 싶어. 가지가 잘려도 괜찮겠냐고 네가 물었다. 더운 도시에선 나무가 약속이 되기도 한다
- 「방문」 부분
장마가 끝나면 나는 이 집에 없을 거예요. /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는 걸 자제하고 있다고.
- 「내일부터 장마 시작」 부분
침대보를 정리하다 / 내 것이 아닌 머리카락을 보면 반가웠다.
- 「이건 사람만이 이야기하는 미래」 부분
일 년에 한 번씩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 오늘이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이 되겠구나, 생각해요./ 너는 오늘도 창문을 닫고 잠을 자고 / 내일이면 ‘어제 불꽃놀이 보셨어요?’가 세상의 안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 「새로운 안부」 부분
“장례를 치른 사랑을 보면 마음이 놓였다”
흔들리는 심장의 여진을 옮겨 적은 애틋한 시편들
가벼운 볼륨의 소시집으로 사랑받았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은 봉주연을 시작으로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정규 시집으로 거듭난다. 정규 시집의 시작인 이 시집에는 마흔두 편의 곡진한 시편과 이 시편들을 더욱 환히 밝혀줄 송현지 평론가의 애정 어린 해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계단 한 칸 한 칸 공들여 오르는 마음으로 시를 쓰겠다”고 등단 소감에서 밝힌 봉주연은 그렇게 공들여 쌓아 올린 자신의 시 세계를 첫 시집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에서 마음껏 펼쳐 보인다.
봉주연의 시는 ‘너’라는 특정한 수신인을 향한다. ‘너’와 “미래의 집”을 상상하고 “매일 밤 하나의 방에서 소등을 함께 하자는 약속”을 한다. 사랑이란 “만나기 전부터 서로의 정체를 맞혀보는 놀이”다. ‘너’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과 상상 속에서 미지未知의 존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되듯, ‘너’는 이 편지의 수신인이기 때문에 비로소 각별해진다. “당신에게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한다면 / 그건 네가 내게서 멀지 않다는 뜻”이라고 조심스레 마음을 내비치며 사랑은 시작된다.
그 속에서 ‘나’는 “할 수 있는 사랑을 다 해버릴까봐 겁이” 날 정도로 전심을 다해 사랑하다가도,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만큼 푹신한 변명”을 쌓는다. 마침내 “장례를 끝마친 사랑을 보면 마음이 놓였다”고 건조하게 끝을 말하고, “침대보를 정리하다 / 내 것이 아닌 머리카락을 보면 반가웠다”며 사랑이 지나간 흔적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징그러운 마음을 품지도 버리지도 못하면서” 사랑의 모든 모습을 다 경험한 듯, 그리하여 울지 않고 사랑의 장례도 치러줄 만한. 봉주연은 위태로운 감정의 진폭을 똑바로 직시하며 심장의 여진을 옮겨 적는다.
“미래의 생애가 될 감정”
결말이 정해져 있더라도 끝까지 사랑 쪽으로 나아가는 마음
송현지 평론가가 작품 해설에서 언급했듯, 봉주연은 자신의 시가 고전적이고 단순한 러브레터로 읽힐 위험을 무릅쓰고 ‘편지’ 형식을 택했다. “동시대 많은 시들이 서정시의 저 오랜 정의에서 멀어지고 있는”(송현지) 와중에, 서정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편지를 택했다는 것은 어쩌면 젊은 시인에게는 큰 용기이자 그에게 ‘편지’라는 형식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편지를 받아볼 ‘당신’이 간절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원적 외로움”이 깃든 ‘나’는 언제나 “체온이 필요한 사람”이고 “함께 살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아무나 붙잡고 / 같이 살아봐요,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편지는 (도착될)미래를 향해 지금 쓰이는 글이자 도착 이후에는 과거(에 작성된 내용)를 현시점에서 읽게 되는 특수한 글로서 여기에는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있다.” (송현지) 그리하여 편지 양식을 빌려온 봉주연의 시에는 독특한 시간관이 드러나 있다. 과거-현재-미래를 직선적으로 인지하는 인간과는 달리, 마치 영화 〈컨택트〉처럼 시인은 시 속에서 사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전부 조망한다. 그리하여 “결말을 다 알고서도 같은 선택을 할 건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나를 믿”는지 묻는다.
시인은 “밀려들어 오는 불안 속에서도, 언제나 끝을 예감하면서도”(송현지) “다녀올게, 그래도 우리 괜찮아”라고 말하며 사랑 쪽으로 나아간다. 모든 사랑의 결말에는 예정된 헤어짐과 파국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알고 있는 눈빛으로 포옹”을 한다. “모든 미래를 다 경험해서 / 더 이상 이룰 게 없는 사람”일지라도 “사람의 손을 잡고 미래를 그려”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 지점에서 만나듯 “편지는 서로의 마음이 가장 가까이 겹쳐지는 글”이다. 이 시집이 우리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라는 것이, 다음 편지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 못내 기쁜 지점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Ⅹ』는 봉주연, 김연덕, 안미린, 유선혜의 개성을 담은 시집을 분기별로 선보이게 된다. 젊고 세련된 감각으로 한국 시 문학이 지닌 진폭을 담아낼 이번 시리즈는 비주얼 아티스트 강서경 작가의 표지 작업과 함께해 예술의 지평을 넓혀갈 예정이다.
핀 시리즈 공통 테마 〈에세이〉_‘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에 붙인 에세이는, 시인의 내면 읽기와 다름없는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출발한다. 이로써 독자들이 시를 통해서만 느꼈던 시인의 내밀한 세계를 좀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이 에세이가 ‘공통 테마’라는 특별한 연결고리로 시인들의 자유로운 사유공간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서를 서로 다른 색채로, 서로 다른 개성으로 보여주는, 깊숙한 내면으로의 초대라는 점은 핀 시인선에서만 볼 수 있는 매혹적인 부분이다. 새로운 감각으로 네 시인이 풀어나가는 이번 볼륨의 에세이 주제는 ‘향’이다.
에세이「미래의 냄새」에는 신문사 편집기자로서 재난을 객관적으로 활자화해야만 하는 시인의 고뇌가 담겨 있다. 재난 기사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미리 써놓고 날짜만 바꿔서 보도하는 뉴스. 그러나 시인은 건조하고 무감각하게 나열된 헤드라인에서도 ‘떠내려가는 이가 붙잡는 악력’을 느끼고 ‘차오르는 물의 냄새’를 맡는다. 활자로 다가오는 비非실감의 재난, 그 비실감투성이 속에서도 유일하게 실감을 느끼는 이가 바로 시인 아닐까. 그렇게 예정된 재난의 헤드라인 속에서도 시인은 희망을 찾는다. 사랑하는 친구와 바다 냄새를 맡으며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 냄새를 맡게 될 거라고 시인은 또 다른 ‘예측 가능한 미래’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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