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우리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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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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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무것도 모르고 일렁이던 계절
디스코그래피/ 캐롤라인 음악사/ 미소가 예쁜 사람/ 당신과 나의 순간/ 열일곱, 위아더나잇
조금만 있으면/ 20131224/ 또또/ 몽유병/ 잘하는 걸 잘하는 일/ 스틸 헝그리
2부 낙하하던 고백의 밤
여름으로 가는 일/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잘 가/ 일몰의 노래
일요일 오후였을까/ 해피버스데이 블루스/ 고백/ 기록적인 장마/ Y가 있는 곳/ 홀리데이
오해/ 이사/ 폭염
3부 꿈결에 걸려온 전화
밤의 야광/ 세라의 독백/ 말할 수 있는 비밀/ 인정이 부족해 잘 살아가고 있다
카레 만들기/ 누나/ 초록의 춤/ 긴장감/ 새/ 지구인/ 편의점과 냉소/ 돌아올 준비
우리의 말
4부 지난 마음이 지나가던 날
안경/ 완벽한 외로움/ 당신 덕분에/ 오래된 새 친구/ 일기/ 혼술과 장면들/ 인사
이상 반복 신호/ 당해낼 만한 생활/ 눈이 오는 날/ 오늘은 맑음
마치며
그러나 하나는 확실하다. 내가 존재하는 한 디스코그래피는 계속되리라는 것. 언제라도 돌아갈 집이 마음속에도 생겨났다. 이름을 바꾸게 되는 일이 또 있으려나. 아마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 계속 솔직하게 들려주고 싶은 밤의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_32쪽 디스코그래피
나는 때때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고, 그녀는 그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내 마음의 조각이 어떤 모양인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알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해 여름 런던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와 재회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바다를 구경하러 갔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술도 마시며 낯선 곳을 여행했다. 알코올 향이 콧등에 스치고 쏟아지는 태양 빛에 잠이 쏟아진다. 그해 여름이었다. _111쪽,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나에게는 다시 J와 관계를 새로 이어나가고, 진심으로 대화하고 주고받을 마음의 여유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 추억이라는 이름을 빌려 오늘날 건넬 말이 없었다. 그 오래전, 서로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며 응원하고 웃으며 나누었던 다정한 대화들은 그렇게 그대로 덮여버렸다. 문득 내 심장이 가난하게 느껴졌다. 어쩌다 내가 이리도 차갑고, 무감한 인간이 되어버렸을까. 우린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고, 가장 따뜻했는데. _168쪽, 말할 수 있는 비밀
들쑥날쑥한 모양의 나무들은 죽음의 춤을 추는 것처럼 멈추지 않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마치 저마다의 사연을 넋두리하는 것처럼 생생한 표정으로 맹렬히 흔들렸다. 초록의 물결은 마치 커다란 달이 뜬 밤바다처럼 두렵고 새삼스러웠다. ‘그래. 아빠는 저들과 함께 있으니 외롭지 않을 거야. 그럴 거야.’ 나무숲은 꽤 길었고, 초록의 춤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맑은 날이었다. _187쪽, 초록의 춤
어느새 난 얼굴도 모르는 편지 속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간 불행을 겪을 때마다 움켜쥐었던 마음의 끈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내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한 내가 되어 숨겨둔 마음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고백했다. 사실 모든 순간에 당신들이 있었다고. 내가 그토록 찾던 설렘과 떨림은 여전히 이곳에 존재한다고.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고. _226쪽, 당신 덕분에
“노래하는 일이든, 글로 적어내는 것이든
결국에는 당신에게 향하는 중입니다”
함병선 작가를 떠올리면 들뜬 감정을 묵직하게 잡아끄는 목소리, 어딘가 수줍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가 쓰는 모든 글이 그와 닮아있다. 흥얼거리는 노랫말, 차분하게 건네는 농담마저 진심과 수줍음이 어려있다. 하지만 그는 사실 밝음만 껴안는 사람이 아니다. 새벽의 시간을 통해 외로움, 상실, 불안, 혼란 등 낙하하는 모든 감정의 낱말들을 그만의 감수성으로 정성스레 다루고 가공한다. 덕분에 그것들은 세상에 없는 음과 율을 갖고 노래와 글, 세레나데로 다시 태어난다. 그의 글과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이다. 그는 자신이 느꼈던 모든 감정이 독자에게 오롯이 가 닿을 수 있게 여러 계절을 할애해 말을 고르고, 다듬어 읽는 이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기 바랐다. 긴 호흡으로 써낸 그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공감과 위로로 문득 떠올라준다면, 글로 당신에게 향할 거라던 그의 작전이 성공한 것으로 봐도 좋겠다.
“한 가지 바라건대, 이 책을 읽는 당신과 언젠가 만나 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너그러운 미소를 보이면서. 끝으로 언제나 사랑하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의 용기를, 사랑을, 피우는 이 순간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고도.”
책에는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반을 처음 구매해 들었던, 터질 듯 울렁거리던 소년의 마음부터 밴드의 보컬이 되기로 결심한 열일곱 시절 그리고 가족이 해체되던 순간, 사랑하는 이를 향한 무수한 고백까지, 지금의 함병선을 이루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가 왜 말을 천천히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왜 여름을 사랑하는지, 사랑하는 이와 먼 곳으로 떠나 무엇을 어루만지며 살고 싶은지 등 기쁨과 슬픔으로 수없이 휘청거렸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드러내며 독자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일렁이던,
이름 없는 계절 같은 우리들의 청춘에게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청춘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가장 설렜던 순간은 언제이며, 아직도 마음에서 덜어내지 못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그리고 당신을 불안하게 하며, 몹시도 설레게 했던 순간은 또 언제였는지 작가는 자신의 비밀을 하나씩 꺼내 보이며 다정하게 말을 건다. 그리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어두운 밤, 검푸르게 펼쳐진 바다 같은 우리의 청춘이 홀로 수없이 부서지던 순간도 정말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던 순간이지 않냐고.
“불안감에 휩싸여있던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믿었고,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제발 내게 조금의 힌트라도 주기를, 안정감을 느끼는 보통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기를 매일 바라고 소망했다.”
작가는 모두가 고요해지는 밤과 새벽에 관해 자주 노래한다. 모든 것이 침묵하고 나면, 솔직한 마음들이 떠오를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두가 관심 가지지 않고, 외면하는 것에 시선을 두는 버릇이 생겼다. 어두운 밤 홀로 빛을 내는 도시의 등대 같은 편의점이나, 이제는 세상에 없거나 단절된 마음들,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일몰의 순간에 떠올린 꼭꼭 숨겨두었던 얼굴까지 유독 깊고 기뻤던, 안아주고 싶었던 순간을 많이 담아낸 까닭이다. 책을 읽을 때 그의 음악을 틀어두어도 좋겠다. 활자와 음악이 한데 섞이는 독자의 풍경을 작가는 기대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자신의 청춘을 떠올리며 가득 안아주시기를 바란다. 그래도 여전히, 믿고 싶은 것들이 있다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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