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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기적

문예세계문학선 133
장 주네 지음 | 박형섭 옮김
문예출판사

2024년 12월 28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2월 1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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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8.65MB)   |  약 24.8만 자
ISBN 978893102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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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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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로 태어나 생후 7개월 만에 유기되어 청소년기 때부터 감화원을 들락거린 장 주네는 반항의 주제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가장 개성 있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작가다.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에 뛰어들기까지 30여 년 동안 감화원, 절도, 동성애, 부랑 생활을 이어온 주네는 자신이 경험한 삶에서 출발해 기존 세계의 규범과 대립하는 독창적인 미학을 창조했다. 그리하여 ‘악의 성자’로 칭송받았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가장 신성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만드는 주네의 시적 언어는 수많은 사람을 매혹했다. 1947년, 주네가 반복되는 절도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자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장 콕토, 앙드레 브르통 등이 탄원해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20세기 후반의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 불린 수전 손택 역시 주네를 혁명가라 칭한 바 있다. 주네의 삶과 그의 작품은 동시대 유럽과 영미권의 퀴어 연구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는 등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장미의 기적》은 주네의 두 번째 소설이다. 1943년 상테 형무소에서 탈고한 원고다. 감옥에서 육체는 억압되었을지라도 자유로운 정신으로 모색한 세계를 시적 산문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주네는 이 책에 도둑, 남창, 동성애자, 부랑자 등에 대한 애착을 담았다. 즉 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방편으로 악에 몰두하는 자들의 삶을 탐닉했다. 규범 ‘바깥’의 삶을 상상 가능한 삶, 아름다운 삶으로 복권하여 삶을 가로지르는 폭력적 위계에 균열을 낸 것이다. 주네는 익숙함, 아름다움, 존엄함 등의 정의를 비판적으로 심문하여 새로운 미학으로 나아갔다.
작품 해설 | 악의 토양에서 핀 언어의 꽃, 《장미의 기적》
장정일 해제 | 주네를 가볍게 해주기
장 주네 연보

■여러 형무소를 전전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죄수라면 퐁트브로라는 이름만 들어도 나처럼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고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죄수들을 지배하는 그 강력한 힘의 본질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밝혀낼 수가 없다. (7쪽)

■퐁트브로 형무소는 여전히 아주 부드러운 순백의 섬광 같은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다. 매우 캄캄한 감방 속에서 나오는 그 빛은 사형수 아르카몬의 마음에서 발하는 광채 덕분이다. (8쪽)

■그렇게 잘생긴 부랑자들에게 매혹된 것은 그들이 발하는 빛과 어둠 때문이다. 나는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그 점을 말해볼 생각이다. (20쪽)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강도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39쪽)

■당신들 세계의 사물은 내게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내 시스템 속으로 옮겨 왔다. 거기서 사물은 흉악한 의미를 지닌다. 소설을 읽을 때도 사건은 작가가 부여한 의미, 당신들이 거기에서 발견하는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띨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다른 곳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어가기 위해서다. (114쪽)

■강도질할 때 그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쾌감을 느꼈고, 심지어 사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얼마나 멋진 쾌감이란 말인가! 어떠한 불안감도 훼손할 수 없는 쾌감이었다. (120~121쪽)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메트레 감화원에는 흉악하고도 사랑스러운 악마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오늘날 퐁트브로 죄수들은 무엇을 동경하며 살까? 하늘에서 별이 사라져버렸다. (137쪽)

■옆자리의 장난꾸러기 녀석들이 내 작은 궁둥이만 보면 거기가 발기된다고 말하며 바람을 일으켜 내 옷자락을 부풀려놓았다. 나는 이 복잡한 취침 의식이 좋았다. (162쪽)

■뷜캉은 훔친 보석으로 빛났다. (164쪽)

■형무소라는 것이 불쌍한 녀석들의 집합소로 보인다. 그러나 좀 더 멀리 나아가서 내 통찰력이 죄수들의 내면을 비추면, 그들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그들과 그들의 작업에 대한 감동이 새롭게 일어난다. 이러한 이해는 어느 날 뷜캉이 “강도질하러 아파트에 들어가면 갑자기 발기가 돼서 사정을 한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완전해졌다. 이쯤 되면 내가 왜 뷜캉을 구세주로 취급하는지 당신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66쪽)

■메트레에서 보낸 밤을 말하면서 어떻게 당신들에게 그곳의 악마적인 달콤함을 전할 것인가? 어쨌거나 회계 사무실 벽을 따라서 등나무와 장미가 꽃과 향기를 뒤섞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여름날 해 질 무렵 5시경 한 손을 뚫린 호주머니에 처박고 성기를 주무르는 열다섯에서 스물의 혈기 왕성한 소년들에게 근친상간을 하는 식물이 꽃향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260~261쪽)

■메트레가 내 어머니로 화신(化身)되자 디베르와 내가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되었고, 디베르를 사랑한다는 것이 근친상간을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284쪽)

■변태적 사랑의 원천이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나는 귀가 머리에 들러붙은 사람, 가벼운 말더듬이, 세 손가락이 절단된 사람들을 열렬히 사랑했다. (291쪽)

■나는 훔치는 행위를 좋아했다. 그 행위 자체가 우아하게 보였다. (319쪽)

■결국 감옥 출신인 내가 감옥 출신의 소년을 사랑했고, 또 그 소년이 감옥을 출입하는 소년을 사랑했다. (322쪽)

■너무 슬프다! 감화원이여, 내 심장을 뜯어내 그대의 얼굴에 던지고 싶어라! 천사들의 후예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343쪽)

■그의 기둥은 완전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기둥은 때때로 전율했고, 그 진동이 옷으로 옮겨 가고는 했다. 불알은 엄청나게 컸다. 그 살덩이는 매우 팽팽해 결코 늘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는 성기를 아래쪽이 아니라 앞에 세우고 있었다. 그의 태도는 감화원에서 구심점이 되었다. (361~362쪽)

■아르카몬에 도달하려면 미덕과 정반대로 가야만 했다. (382쪽)

■그가 형무소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어느 날 아침 산책하던 중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비로소 형무소 생활을 수용 가능한 삶의 형태로 여기는 사람들도 세상에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형무소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점을 믿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으나, 범죄자 중에 가장 아름다운 녀석이 형무소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383쪽)

■아르카몬은 죽었다. 뷜캉도 죽었다. …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름을 저쪽 시간 너머에까지 알릴 것이다. 대상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 그러면 그들의 이름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다. (419~420쪽)

‘악의 성자’ 장 주네
도둑, 동성애자, 폭력, 감옥의 세계에
신성성을 부여해 미(美)의 위계를 전복하다

★‘한국의 장 주네’ 장정일 작가 해제 수록

한 시인이 또 다른 시인의 시집을 훔치다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판사가 물었다. “만약 누군가 당신 책을 훔친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시인은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답했다. 판사가 다시 물었다. “이 책의 가격을 아는가?” 시인은 “가격은 모르지만 그 가치는 알고 있다”고 답했다. 시인은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시인의 이름은 장 주네. 그가 자신의 첫 시 〈사형수〉를 발표하고 첫 소설 《꽃의 노트르담》을 쓰기 시작한 즈음의 일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생후 7개월 만에 유기되어 청소년기 때부터 감화원을 들락거린 장 주네는 반항의 주제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가장 개성 있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작가다.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에 뛰어들기까지 30여 년 동안 감화원, 절도, 동성애, 부랑 생활을 이어온 주네는 자신이 경험한 삶에서 출발해 기존 세계의 규범과 대립하는 독창적인 미학을 창조했다. 그리하여 ‘악의 성자’로 칭송받았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가장 신성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만드는 주네의 시적 언어는 수많은 사람을 매혹했다. 1947년, 주네가 반복되는 절도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자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장 콕토, 앙드레 브르통 등이 탄원해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20세기 후반의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 불린 수전 손택 역시 주네를 혁명가라 칭한 바 있다. 주네의 삶과 그의 작품은 동시대 유럽과 영미권의 퀴어 연구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는 등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장미의 기적》은 주네의 두 번째 소설이다. 1943년 상테 형무소에서 탈고한 원고다. 감옥에서 육체는 억압되었을지라도 자유로운 정신으로 모색한 세계를 시적 산문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주네는 이 책에 도둑, 남창, 동성애자, 부랑자 등에 대한 애착을 담았다. 즉 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방편으로 악에 몰두하는 자들의 삶을 탐닉했다. 규범 ‘바깥’의 삶을 상상 가능한 삶, 아름다운 삶으로 복권하여 삶을 가로지르는 폭력적 위계에 균열을 낸 것이다. 주네는 익숙함, 아름다움, 존엄함 등의 정의를 비판적으로 심문하여 새로운 미학으로 나아갔다.


언어를 도둑질해 독보적 시적 언어를 꽃피운 장 주네,
억압당한 쾌락, 사랑, 환희에서 기적을 목도하다

주네는 자신이 청소년기를 보낸 메트레 감화원과 서른 즈음에 수감된 퐁트브로 형무소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주네가 수감자 동료들에게 품은 사랑과 환상, 환희에 상상력을 더한 시적 산문이 내내 이어진다. 아르카몬, 뷜캉, 디베르. 주네가 지극히 순수한 사랑의 욕망을 품은 자들이다. 아르카몬은 광채를 발하는 사형수다. 그는 ‘페니스’ 그 자체인 인물로, 모든 수감자가 그 권위를 인정하는 신과 같은 존재다. 뷜캉은 감화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다. 강도질할 때 쾌감을 느끼며 심지어 사정까지 하는 천상 도둑이다. 디베르는 주네를 육체적, 감정적으로 점유한 남자로 주네가 감옥에서 그와 나눈 쾌락은 숭배로 나아갈 정도로 강렬했다. 감옥 안에서 주네와 결혼한 자이기도 했다. 셋 말고도 주네의 몸과 마음을 점유한 수감자는 무수히 많다. 모든 수감자는 메트레 감화원이 낳은 형제였다. 즉, 서로를 사랑하며 쾌락의 대상으로 삼는 근친상간의 당사자였다. 비위생적인 형무소에서 지내며 냄새를 풍기는 자들이 나누는 쾌락과 사랑에서는 꽃향기가 났다. 기적이었다.

주네는 지독하고 집요하게 언어에 매달렸다. 주네 이야기의 청자이자 이 책의 독자, 즉 ‘당신들’에게 동료 수감자와 감화원의 악마적인 달콤함을 전하기 위해서다. ‘당신들’은 감화원 바깥에 사는 사람들이다. 수감자들을 ‘괴물’로 보는 편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런 ‘당신들’에게 그 반대편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온전히 전하려면 언어에 절박하게 매달려야만 한다. 언어의 한계를 마주해야만 한다. 뷜캉의 아름다움을 내내 찬미하던 주네는 마침내 더는 사용할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행복해한다. 기존 언어가 소진된 곳, 기존 언어를 다른 의미로 채워야만 하는 곳에서 비로소 뷜캉의 아름다움을 인식할 가능성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기성 언어의 끝에서, 주네는 마침내 언어를 도둑질하는 데 성공했다. 도둑은 주네의 필연적 운명이었다. 절도와 시 모두 사물(혹은 정신)을 원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주네 특유의 아름다운 시적 산문은 기존 세계의 질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위계를 뒤집는 도둑질에서 피어났다.


수감자, 도둑, 동성애자, 부랑자의 창세기
상상력으로 빚어낸 시적 세계로 ‘당신들’의 세계를 위협하다

주네가 범한 이중의 도둑질(물건, 언어)에서 창안된 시적 산문은 수감자들에게 신성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메트레 감화원은 원래 수도원이었다. 그러나 단지 장소의 계승만이 신성성의 이유는 아니다. 주네는 반복해서 아르카몬을 신에 빗대고, 다른 수감자를 수도자에 빗댄다. 자신의 언어를 종교에 탐닉한 신비주의자의 언어와 견준다. 주네는 이 책 제목을 ‘천사의 아이들’로 지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당신들’ 세계의 위계를 뒤집은 곳에서는 가장 흉악한 도둑이 신이다. 이 세계의 신인 아르카몬은 자신의 팔을 감싼 쇠사슬을 장미꽃으로 변모케 하는 기적을 행한다. 신이 행한 이 기적으로 전에 없던 세계가 열린다. 《장미의 기적》은 수감자, 도둑, 동성애자, 부랑자의 창세기다.

상상력(혹은 ‘망상’)은 주네가 좁디좁은 감화원에서 언어와 세계를 창조한 원동력이었다. 주네는 줄곧 바다를 항해하는 갤리선의 세계를 몽상한다. 갤리선은 제약 많은 현실에서의 불만족을 해소하는 자유의 공간이다. 갤리선에서 주네의 고독은 곧바로 쾌락으로 실현되고 주네의 얼굴과 몸은 누구보다 젊고 아름답게 변한다. 갤리선에서의 주네는 가장 강한 남자인 선장의 애무를 독차지할 수 있다. 갤리선의 몽상은 일상으로 이어진다. 상상력으로 잔뜩 부풀린 갤리선의 세계는 제약 많은 현실의 답답함을 달래주고, 주네의 사랑과 환희에 깊이를 더해준다. 현실과 환상의 연쇄 작용으로 주네와 그 동료, 연인들의 세계는 점차 단단해진다. ‘당신들’의 세계에 필적할 내적 완결성을 획득해 기존 세계를 위협한다.

하지만 도둑질에서 출발한 주네의 언어와 세계는 이내 스러진다. 메트레 감화원은 폐쇄되었다. 그곳에 수감된 흉악하고 사랑스러운 악마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주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늘에서 별이 사라져버렸다”. 아르카몬은 죽었다. 뷜캉도 죽었다. 뷜캉의 죽음은 수감자들 사이에서 가벼운 화젯거리로 떠돌았을 뿐이고, 언론의 관심을 받은 아르카몬의 처형 역시 이내 종이(신문)의 무덤에 묻혀 잊힐 것이다. 그러나 악의 성자이자 창조자인 주네는 살아남아 자신이 창조하고, 경험했으며, 목격한 기적을 기록한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저쪽 시간 너머에까지 알릴 것이다. 대상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물을 것이다. 뷜캉, 아르카몬, 디베르란 누구였는가? 그러면 그들의 이름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다. 마치 천 년 전에 죽은 별에서 오는 빛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처럼.”


작가와 작품 세계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옮긴이 해제,
‘한국의 장 주네’ 장정일 작가가 제안하는 주네에 대한 새로운 독법!

책에는 저명한 불문학자이자 이 책의 역자인 박형섭 교수의 해제와 ‘한국의 장 주네’라 불리는 장정일 작가(물론 그는 자신이 주네와 달리 소년원의 세계를 한사코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칭하는 사람들을 ‘바보’라 언급한 바 있다)의 해제가 함께 실렸다. 박형섭의 해제는 장 주네의 삶과 작품 세계, 《장미의 기적》의 문학사적 의의 등 작가와 작품 전반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돕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더 심화된 이해를 원하는 독자가 참고할 만한 자료 소개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장정일은 주네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제안한다. 주네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개 약자를 대상으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이들의 범죄가 기성 체제에 대한 반항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약자(특히 여성)를 부조리한 사회의 대속물로 삼는 무자비한 범죄를 옹호하는 일은 더는 올바르지 않다. 이에 장정일은 주네의 작품에 녹아 있는 작가의 독서 이력을 근거로 주네의 소설을 피카레스크 소설(악동소설, 악한소설)로 읽자고 제안한다. 피카레스크 소설은 권선징악과 교훈을 강조하는 이야기의 오랜 전통을 철저히 거부하고 자기 생존만이 중요한 밑바닥 인생이 ‘악한’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피카레스크 소설은 ‘내가 바뀌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뭐 하러 변화를 추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품고 있는데, 기존의 모든 가치관이 파괴된 양차 대전 이후 거의 모든 현대 소설로 그 문제의식이 확장되었다(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려보라). 주네의 작품을 피카레스크 소설로 읽을 수 있다면, 이를 철학적으로 읽어온 독법을 문학사적, 장르적 독법으로 전환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아포리아에 부딪힌 주네의 소설을 구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정일의 주장이다. 주네를 ‘가볍게’ 해주자는 제안이다.


‘악’에 대한 집요하고 필사적인 탐닉이 선사하는
미학적, 윤리적 충격

주네는 문학, 예술, 철학, 미학에서 독자적 위상을 가진 작가다. 독자와 연구자들은 시대에 따라 그의 가치를 새로이 갱신했고, 이 시도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주네가 창조한 언어와 세계의 빛깔이 그만큼 다채롭고 풍부하다는 의미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가 자신을 버린 세상을 겨냥해 창조한 결과물이자 도둑, 동성애자, 폭력, 감옥의 세계에 신성성을 부여해 미(美)의 위계를 전복한 《장미의 기적》은 여전히 열린 텍스트인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여기서 무엇을 읽어내는지는 어쩌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억압하는 세계에 대항해 자신만의 도덕성을 벼려낸 ‘악’에 대한 주네의 집요하고도 필사적인 탐닉에 미학적, 윤리적 충격을 받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주네에 대한 해석이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는 건 필연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장 주네

Jean Genet, 1910~1986
1910년 파리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 만에 유기되어 파리빈민구제국에 위탁되었고 이후 프랑스 중부의 한 가정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서 명민함을 보였지만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않았고 절도와 부랑을 반복해 청소년기 때부터 감화원에 수감되었다. 1929년 아랍의 프랑스 식민지 부대에 지원 입대했고 1936년부터는 유럽 전역을 떠돌며 유랑 생활을 했다. 1942년 사형수 모리스 필로르주에게 헌정한 시 〈사형수〉를 발표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동료 수감자가 누이에게 보낼 신파조의 엉터리 시를 뽐내는 데 짜증이 나 쓴 최초의 시였다. 감옥 안에서 첫 소설 《꽃의 노트르담》 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반복되는 절도죄로 종신형을 받았으나 주네의 작품을 읽고 감명받은 장 콕토,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앙드레 브르통 등의 탄원으로 1949년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받았다. 20세기 작가 중 반항의 주제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가장 개성 있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주네는 감옥, 절도, 동성애, 부랑 생활 등을 배경으로 한 소설 《꽃의 노트르담》 《장미의 기적》 《도둑 일기》 등을 남겼다. 이외에도 시와 희곡, 예술론, 영화 시나리오 등 장르를 넘나들며 여러 글을 썼다. 말년에는 베트남 반전운동, 흑인 인권운동,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등에 참여했고 68혁명에도 목소리를 냈다. 1986년, 최후의 원고 《사랑의 포로》 교정을 위해 파리에 왔다가 작은 호텔 방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신은 유언에 따라 지브롤터해협 인근 모로코 라라슈에 묻혔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 연구로 파리 3대학교에서 석사 학위(〈이오네스코 연극의 부조리 연구〉), 파리 8대학교에서 박사 학위(〈이오네스코 혹은 베랑제 사이클의 비극적 의식〉)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이오네스코의 연극적 상상력》, 《아르또와 잔혹연극론》(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도둑 일기》, 《노트와 반노트》, 《이오네스코의 발견》, 《이오네스코 연극미학》, 《문화국가》, 《베케트 연극론》, 《기호와 몽상》, 《사랑과 우연의 장난》, 《잔혹연극론》, 《잔혹성의 미학》, 《코뿔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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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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