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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살해 클럽

모호
난다

2024년 12월 18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6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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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417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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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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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는 1950년에 사망할 때까지 당시 소비에트 문화계의 중심지인 모스크바에서 수많은 단편소설과 중편소설을 써냈다. 그러나 그의 생전에 그의 글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은 없었다. 그의 사망 39년 후에야 그의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었고 거의 동시에 유럽 및 영미권에서 잇따라 번역 출간되었다. 출간되자마자 그는 “러시아의 보르헤스” “러시아의 카프카”라고 불렸으며 그의 글에는 우아하고 지적이며 존재의 신비에 가닿게 한다는 평이 뒤따랐다.
『문자 살해 클럽』은 문자가 상상을 억압하고 변질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비밀 모임을 그린다. 문자를 혐오하는 이들은 매주 토요일 비밀의 방에 모여 문자화되지 않은 이야기를 돌아가며 나눈다. 문자로부터 상상을 구원하려는, 문자에 의해 변질되지 않는 순수한 세계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는 고대 로마에서부터 중세 프랑스, 디스토피아적 미래 세계에까지 이어진다.
이 도서는 목차가 없습니다.

자, 이걸 기억해두시오, 친구. 만약 도서관 서가에 책 한 권이 더 놓인다면 그건 실제 삶에서 한 사람이 줄어든다는 얘기라오. 서가와 세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세상 쪽이오. 거품은 밝은 데로 뜨고, 자신은 바닥으로 꺼진다? 아니, 고맙지만 나는 됐소.
_8쪽

사실 작가들이란 전문적으로 단어를 조련하는 자들이라, 해당 행에 걸어들어오는 단어들이 살아 있는 존재라면, 단어들은 아마도 펜촉을 두려워할 테고, 또 증오할 거요. 마치 길들이는 짐승들에 채찍질하듯 하니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볼까? 카라쿨이라고 불리는 품종의 양 모피 만드는 법에 대해 들어본 적 있소? 그 공급업자들끼리 쓰는 용어가 있거든. 그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태어나지 않은 어린 양의 피부에 있는 무늬와 털의 곱슬기를 추적하고 정확하게 원하는 조합을 기다리면서 출산 전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양을 죽여버리지. 그들은 이걸 ‘무늬를 수정한다’라고 말하지요. 우리도 결국 구상을 그렇게 다루는 거잖소. 제조업자들이고 살해자들이지.
_14쪽

글쎄요, 이거 아시오? 한번은 괴테가 에커만에게 이렇게 말했소. 셰익스피어는 200년간 영문학 전체의 성장을 억눌러온 지나치게 무성한 나무라고 말이오. 그런데 그 말의 장본인인 괴테에 대해, 30년쯤 지나서 뵈르네가 이렇게 썼다오. ‘독문학이라는 몸체에 고루 뻗은 괴물 같은 종양’이로다. 둘 다 옳았다오. 우리의 문자화가 서로를 억압한다면, 또 작가들이 서로의 작업을 방해한다면, 그들은 독자들의 구상조차 방해하는 거요. 말하자면, 독자는 구상을 지닐 수 없게 되고 그에 대한 권리는 이 일에 대해 좀더 힘있고 경험 많은 단어 전문가들에 빼앗기는 셈이지요. 도서관들은 독자의 상상력을 짓밟았고 소수 작가 그룹이 내놓은 전문적인 글들이 서가와 머리를 토할 정도로 가득 채웠소. 문자 과잉은 박멸해야 마땅하오.
_19~20쪽

“규정 5항에 따라 이 원고는 잉크를 흘리지 않고 사형에 처합니다. 이의 있습니까?”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의장은 재빠른 움직임으로 노트를 석탄 위에 던졌다.
_57쪽

침묵을 깨지 않고 침묵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까? 해설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글쎄요, 한마디로 말해서, 책이 책을 한 방에 죽인 겁니다. 나의 사람-주제 원고가 어떻게 타버렸는지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타버렸다고 해두죠.
_97~98쪽
이렇게 네번째 밤이 끝나간다. 내 말도 끝나가고. 이렇듯 전혀 뜻밖에 시작된 내 글쓰기 인생은 갓 태어난 채로 죽을 것이다. 부활은 없을 테다. 말하자면 나는 작가로서 재능이 없지 않은가, 이것은 사실이다, 나는 언어를 잘 다루지도 못한다. 나를 데려가 복수의 도구로 고용한 것은 바로 저들이다. 이제 저들의 뜻이 이루어졌으니 나는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
_214쪽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는 1887년 키예프의 폴란드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에는 모스크바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 1950년에 사망하였다. 당시 소비에트 문화계의 중심지였던 모스크바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는 백과사전 책임편집자, 폴란드어 번역가, 연극 이론가 등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단편소설과 중편소설을 써냈다. 그러나 그의 글이 그의 생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일은 없었다.
‘러시아가 놓친 천재’로 불리는 크르지자놉스키의 글은 ‘낯선 비유를 통해 밀도 높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는 평범한 일상에서 역설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이한 플롯으로 조립해낸다.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찬 작품을 써낸 작가에 대해 그러나 당대 소비에트 사회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당시 그는 “칸트주의자”로 통했는데 이는 곧 역사적 유물론이 지배하고 있던 소비에트 사회에서 반동적인 관념주의자라는 낙인과 다르지 않았다. 막심 고리키는 그의 작품에 대해 ‘지나치게 지적’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작품이 소비에트 사회가 아닌 지난 19세기에나 어울리지 노동자 계급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은 죽기까지 그를 따라다녔고 그의 글은 매번 검열에 막혀 출간에 실패했다.
작가가 당대 사회와 불화를 겪었다는 전기적 사실은 자연스레 그의 작품에서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암시(이 경우 반스탈린적 요소)를 찾게 만든다. 그러나 “크르지자놉스키의 소설에는 반소비에트적인 것이나 선동적인 것은 없었다. 동시에 그의 텍스트는 전혀 소비에트적이지도 않았다. 그의 소설은 완전히 다른 차원과 다른 시간에서 온 것이었다”.(‘역자 후기’ 중에서) 그의 사망 39년 후 그의 작품은 러시아와 유럽 및 영미권 국가에서 잇따라 출간되었다. 그는 즉시 “러시아의 보르헤스” “러시아의 카프카”라고 불렸으며 그의 글에 대해서는 우아하고 지적이며 존재의 신비에 가닿게 한다는 평이 뒤따랐다.

*
1922년 모스크바로 이주한 이후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는 궁핍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그는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고향을 방문한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장서를 모두 팔아버린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돈이 없어 서가를 채우지 못했지만 비상한 기억력으로 팔아버린 책의 내용을 모두 기억해낸다.
작가의 경험은 『문자 살해 클럽』 속 제즈의 사연으로 반복된다. 제즈는 자신이 대면한 ‘텅 빈 서가의 공허’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를 보고 쓰이지 않은 글자를 읽기 시작한다. 그는 그 글자들이 보이는 족족 ‘필사’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완성된 소설은 불티나게 팔린다. 제즈는 어느 날 자신이 텅 빈 서가에 존재하고 있던 “순수하고 실체 없이 자유로운 구상”을 문자화함으로써 더럽히고 변질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체의 창작 행위를 중단하고 자신과 뜻이 맞는 이들을 모아 매주 토요일 ‘문자 살해 클럽’을 연다. 이들은 매주 돌아가며 문자화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눈다.
문자와 구상의 관계가 육체와 영혼의 관계와 같다면 후자를 전자로부터 구출해낼 수 있을까? 글쓰기로 변질되지 않는 순수한 구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문자 살해 클럽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질문에 사로잡혀 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구술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배우, 중세 유럽의 광대-성직자였던 골리아드, 중세 봉쇄수도원의 종교음악 작곡가,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하는 진동세포를 기반으로 세상을 기계화하는 과학자와 정치가, 입의 존재 목적을 두고 언쟁을 벌이며 답을 얻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친구들, 저승으로 갈 여비 오볼을 빼앗겨 스틱스강을 건너지 못하는 죽은 자. 이 이야기들은 문자에서 벗어나려는 클럽원들의 움직임과 중첩되며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편 이토록 문자를 혐오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글로 쓰였고 우리는 그 글을 보고 있다. 이 책에 쓰인 글자 하나하나는 자신이 담고 있는 것의 정수를 매 순간 배반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누가 클럽의 규약을 어겼는가, 누가 신성한 비밀을 누출하였는가? 그리고 왜?

작가정보

‘러시아가 놓친 천재’로 불리는 소설가, 극작가, 연극 이론가, 번역가. 키예프의 폴란드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3년 키예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극장과 음악원 등에서 연극 이론과 음악 이론을 강의했다. 1922년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긴 후 1930년대 초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을 벌였다. 우아하고 지적이며, 기이하지만 예외 없이
아름다운 그의 걸작 『문자 살해 클럽』 『뮌하우젠의 귀환』 『미래에 관한 회상』 등이 모두 이 시기 집필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에 대해 당시 소련 사회는 ‘노동자 계급에 적당하지 않다’는 평을 내렸고 그의 생전에 그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일은 없었다.
사후 4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러시아와 유럽 및 영미권에서 출간되었고 즉시 “러시아의 보르헤스” “러시아의 카프카”라는 평을 받았다.

번역 서정

서울에서 노문학과 영문학을, 모스크바에서 정치문화를 공부했다. 그리스와 베네수엘라, 노르웨이, 오만에서 살았고 현재는 브라질의 상파울루에 거주하고 있다.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관심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산문을 싣고 러시아어와 영어로 된 글을 우리말로 옮긴다. 산문집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낙타의 눈』 『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을 썼고,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행복한 장례식』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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