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대가
2024년 12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1월 2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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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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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기후위기가 재앙으로 치닫는 과정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는 곡물 가격의 압박을 받았던 서민들의 경험을 재구성한다. 저자는 흩어져 있던 당대의 여러 기록에서 찾아낸 정보를 토대로 4세기 전 중국 사회의 생필품 값이 얼마인지, 서민들이 어떻게 비용을 감당하려 애썼는지, 그리고 기후 변화가 수확을 파괴하고 가격을 상승시켰을 때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또한 명 말의 극단적인 가격이 은의 유입과 화폐 공급량 때문이라는 종래 통설을 반박하며 지구적 무역 때문이 아니라 환경 재앙임을 분명히 밝힌다. 명대 중국이 정치, 경제, 사회, 인구 부양 등에서 당시 세계에서는 가장 선진적인 체제로 위기에 대응하는 회복력이 있었음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1640년대 같은 외부적인 환경 재난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생존 가능과 불가능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자연’이었다.
기후위기와 팬데믹, 치솟는 물가로 서민의 삶이 몰락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문제 상황과 다르지 않다. 티모시 브룩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태평양의 격동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광활한 시베리아 대지 아래에 위치하여 기후 영향에 취약한 반도에 거주한다는 것은 기후 재난이 항상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한국 독자의 기후 문제에 대한 우려에 공감한다. 이정모(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선생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다. 기후의 힘을 보여준다.”며 이 책을 권한다.
서문_ 물가사 연구자로서 나의 이력
1장 천치더의 이야기
명대의 물가 이해
국가의 존재
자료로서의 가격
가능한 것의 한계
기후 변화의 지표인 재난 물가
2장 태평한 날들? 만력 연간의 가격 체제
장부 관리
두 명의 주현관
은 1냥, 1돈, 1푼의 가치
광저우의 스페인 사람들
화북 평원의 지방관
만력 가격 체제에서의 생활비
소득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물가
사치품 경제의 물가
3장 은, 물가, 그리고 해상 무역
해외 무역
조공과 무역
남중국해의 물가
도자기 무역의 물가
대외 무역이 물가에 미친 영향
무역에 대한지지
마젤란의 교환?
4장 기근 시기의 곡물 가격
곡물 가격
지방지에 기록된 기근 시기의 곡물 가격
기근 가격의 분포
하늘, 기후, 그리고 기근
여섯 번의 위기
물가 상승의 압박
5장 숭정 연간의 가격 급등
명대 장기 물가 변동
만력 연간의 단기 물가 변동
숭정 연간 이후의 가격 안정화
숭정 연간의 가격 급등
명의 몰락과 기근 가격, 그리고 기후의 역할
후기_ 기후와 역사
옮긴이 후기
부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은으로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저렴한 유일한 식품은 두부를 만드는 콩이었다. 천치더는 이 콩의 가격을 중앙에 구멍이 뚫린 얇은 동전으로 매겼는데, 이 동전은 소액 거래에 사용되었다. 이 동전은 ‘글자’라는 뜻의 ‘문文’으로 불렸는데, 이는 동전 앞면에 새겨진 황제의 연호를 의미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이 동전을 말레이어를 따라 ‘카이샤caixa’ 또는 스페인어로 ‘카사caxa’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영어 단어 ‘캐시cash’가 유래했다. ‘캐시’가 영어에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책에서는 저가의 동전을 의미하는 옛 영어 표현인 ‘구리copper’를 동전을 세는 단위인 ‘문文’의 번역어로 사용한다. 1,000문은 명 초에 은 1냥과 명목상 동등 가치로 설정되었으나, 동전은 곧 은에 비해 가치가 상승하여 은 1냥당 동전 700문 정도의 환율로 안정되었다. 따라서 동전 7문은 은 1푼과 동등한 가치가 있었다. 동전 1문은 큰 가치가 없었다. 두부 한 모, 흔한 종이 한 장, 젓가락 두 쌍, 또는 목탄 1파운드를 살 수 있었다. 동전 2문으로는 저렴한 붓, 향나무로 만든 향, 또는 쌀떡을 살 수 있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동전을 귀중하게 여겼고, 부유한 사람들은 동전 하나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_본문 31쪽
〈표 2.2〉는 은 1푼으로 구매할 수 있는 품목들을 보여준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1푼은 오이, 매실 등과 같은 채소 1근(1과 3분의 1파운드 또는 600그램)의 거의 보편적인 가격이었으나, 파와 생강 같은 기본 요리 재료의 값으로는 너무 높은 가격이었으며, 이것들은 은 1푼의 5분의 1 또는 그 이하, 즉 동전 1문 또는 2문이었다. 은 1푼은 하이루이가 1근의 술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술은 여러 가격대에서 구할 수 있었다(선방은 1병당 은 4푼에서 20푼까지의 가격을 제시했다). 육류의 표준 가격이 1근당 은 2푼이었기 때문에, 은 1푼으로는 반 근(300그램 또는 3분의 2파운드)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가축은 도축된 고기의 절반 가격이었다. 신선하거나 절인 생선은 보통 육류와 같은 가격에 팔렸지만, 1602년의 편지에서 예수회 선교사 디에고 판토하는 베이징에서 송어 1근을 은 1푼에 살 수 있다고 썼다. _본문 87쪽
명나라로 흘러 들어온 은이 약 1억 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 경제에 화폐 공급을 확대하여 물가 상승을 초래했을까? 많은 역사학자들이 비교적 산발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가격 자료를 바탕으로 그렇다고 결론 내리곤 했지만, 대부분의 경제사학자들은 이제 그 가설에서 물러났다. 이 장은 후자 그룹과 함께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른 해석을 제안할 것이다. 우리는 시선을 거꾸로 돌려 명조 말기에 은의 물결을 타고 중국 무역에 참여하려 했던 영국인의 관점에서 당시의 국제적인 은 문제에 접근할 것이다. 물가가 경제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명조 전반기 조공 체제의 시기를 살펴보고, 이어서 명조 마지막 반세기 동안 상품과 은을 거래한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상인들이 남긴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모든 비용의 기록들을 검토할 것이다. 이 장은 은 무역의 유익한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일부 명대 인사들의 목소리를 간략히 고찰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_본문 140~141쪽
1627년에 천계제가 사망한 뒤 그의 16세 동생이 숭정제가 되었는데, 이때 기후가 다시 악화하기 시작했다. 이해부터 최고가는 매년 갱신되었다. ‘만력 Ⅱ’ 시절에는 구치위안과 우잉지가 곡물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우잉지가 숭정 연간의 재난을 회상하며 글을 쓸 때, ‘만력 Ⅱ’의 가격은 이후에 일어날 것에 비하면 괜찮은 수준이었다. “1640년, 1641년, 1642년을 거쳐 은 3.6냥에 달했고, 가격은 계속해서 올랐다. 주변 부현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우잉지는 ‘숭정 위기(1638~1644)’ 시기를 돌아보며 ‘만력 Ⅱ’를 높은 가격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곧 가격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던 때로 여겼다. 당시에 그는 “도시 주민들은 메밀이나 보리가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상태였다. 이제 이 곡물들은 1석당 동전 5,000문에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산둥과 허난에서는 좁쌀의 가격이 1두(1석이 아니라 1두이다!)당 1만 문에 이른다.”고 관찰했다. 이는 베이징보다 12배나 비쌌다. 난징의 가격이 끔찍한 반면, 베이징에서의 생활은 “비교하면 천국에서 사는 것과 같다.”고 우영지는 평가했다. 기대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_본문 232~233쪽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기후의 힘을 보여준다”
_이정모(전 국립과천과학관장)
“기근 시기 곡물 가격은 기후 변화의 지표이자 기후(환경)사의 최고 증거, 기후사가 물가사 없이 서술될 수 없으며, 물가사도 기후사 없이는 서술될 수 없다”
명 말 ‘숭정 위기’(1638~1644) 동안 중국에서는 전례 없이 심각한 수준의 한파와 가뭄, 전염병, 돌풍, 지진, 메뚜기 떼 피해가 복합적으로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사지로 내몰렸다. ‘천년 만의 가장 심각한 7년’이었고 그중 1642년은 최악의 해였다. 양쯔강 삼각주 부근 퉁샹현의 사대부 천치더는 이렇게 썼다. “이 시기에는 시장에도 구매할 수 있는 쌀이 없었다. 곡물을 가진 상인이 있어도, 사람들은 가격을 묻지 않고 지나쳤다. 부유한 자들은 콩이나 밀을 찾아 헤맸고, 가난한 사람들은 왕겨나 썩은 음식물을 찾아 헤맸다. 몇 두의 왕겨나 나무껍질을 얻을 수 있는 것만도 기쁜 일이었다.”명제국은 2년 후 붕괴되었다.
중국 벼농사의 특성상 한파와 많은 강수량보다 한파와 가뭄의 조합이 훨씬 위험했다. 여기에 팬데믹이 겹치면서 물가는 치솟았고 인플레이션은 명의 경제와 사회 체제를 무너뜨리며 정치 체제도 함께 무너졌다. 티모시 브룩 교수는 명제국을 몰락시킨 극단적인 곡물 가격과 인플레이션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은 ‘기후’였다고 단언한다. 수백 개의 가격 데이터를 수집한 후, 그 시점이 소빙하기 기후 변화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중국을 사로잡은 것은 정치적 실패가 아니라 기후적 실패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물가에 초점을 맞출까? 기근 시 곡물 가격을 기후(환경)사와 연결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이 기후 변동을 물리적 지표를 통해 추적하지만 어떠한 기후 시뮬레이션도 1640년대 가격 재앙으로 “사람들이 완전히 지쳐 버린”그 순간을 정확히 포착할 수 없다. 이것이 명대 기후사가 물가사 없이는 서술될 수 없으며, 물가사도 기후사 없이는 서술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곡물이 한파나 가뭄으로 망가질 때, 그 영향은 인간이 기근을 겪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곡물의 기근 가격을 형성했다. 기근 시 곡물 가격이 기후 변화의 척도이고, 우리가 가진 환경사적 증거 중 최고라는 것이 티모시 브룩의 통찰력 있는 설명이다. 이 책은 천치더가 기록한 1640~1642년의 재난 상황과 물가 자료(「재황기사(災荒記事)」를 명대 역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삼아 이야기를 확장해간다.
“서민들 가정이 한 해를 버티기 위해서는 은 14냥, 중산층의 가정은 23냥 이상”
저자는 명과 청 그리고 민국 시대의 약 3천 권에 달하는 지방지와 수필, 일기, 회고록 그리고 영국 동인도회사의 장부까지 모았다. 777건의 방대한 기근 시기 곡물 가격 자료를 추출하여 쌀, 보리, 밀, 콩 등 곡물과 72개 상품을 더해 광범위하게 가격을 비교했다. 물가를 기후 변화의 결과로서만 바라보지 않고, 그 관계를 바꾸어 명대의 물가를 기후 변화를 감지하는 대리지표로서 활용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물가 변동과 기후 변동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것이다. 여기서 물가가 기후 변화의 대리지표로서 기능하려면, 기후 변화의 충격이 없는 상황에서는 물가에 눈에 띄는 변동이 없어야 한다. 하여 저자는, 이 책의 2장에서 명대의 물가가 외부 충격이 없는 한 일정한 가격 범위 속에서 평준화 압력이 작동하는 ‘가격 체제’ 속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저자는 명대 연평균 인플레이션율을 0.3퍼센트로 추정했다) ‘공정 가격’이라는 관념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특히 이 책에서 티모시 브룩의 빼어난 학술적 공헌은 명대 서민 가정이 먹고살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한 연간 생활비와 벌이를 추정한 점이다. 노동자, 군인, 자영업자, 장인, 어부 등 가장 가난한 가정이 한 해를 버티기 위해 은 14냥이 조금 넘는 돈이 필요했고, 중산층의 생활비는 23냥 이상이었다. 서민들의 연간 임금은 은 5냥에서 12냥 사이였으며 부족분은 텃밭에서 먹거리를 생산하여 해결했다. 중산층의 임금은 14냥에서 22냥 사이였고 이들 역시 텃밭 같은 부수입이 조금 더 있었다. 또한 저자는 명대의 가격 체제를 재구성했는데 은 1푼, 1돈, 1냥으로 살 수 있는 각각 25가지 물건을 추출하여 제시하는데 무척 세세하고 흥미롭다. 역사가 단순히 위대한 통치자나 강력한 군대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존해야 했던 조건에 관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명 말의 극단적 물가 상승은 지구적 ‘은 무역’ 때문이 아닌 ‘기후’ 문제였다
티모시 브룩은 명 말의 기록적인 물가 상승의 원인이 화폐 공급량 때문이었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반기를 든다. 중국사가 세계사의 일부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은의 전 지구적 유통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문제는 물가가 급등하기 전에 이미 은이 중국으로 유입되었고, ‘숭정 위기’ 동안 곡물 가격이 은의 이동에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명제국의 경제는 유럽 전체 경제와 비슷한 규모로 충분히 컸기 때문에 유입된 은을 상업적 교환 시스템에 통합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불안정해지지 않았다. 이렇게 은의 유입 때문 위기를 초래했다는 견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사치품 물가와 곡물 물가의 변동을 구분하며 당시 중국의 시장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동하는가를 재조명한다.
중국이라는 농경 사회의 곡물 가격은 농업 번영과 인간 생존, 그리고 정치적 안정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척도였다. 그 경계를 무너뜨린 것은 화폐 공급이 아니라 소빙하기 동안 농업 생산의 자연 조건이 악화된 것이었다. 곡물 가격은 태양 에너지와 인간의 수요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장치다. 경제가 에너지원으로 태양 복사에 의존할 때, ‘자연’은 사회나 국가의 생존 가능성을 결정하는 요소임을 인식해야 함을 강조한다. 요컨대 저자의 주장은 전 지구적 무역 때문이 아니라 전 지구적 기후가 명나라의 곡물 가격을 치명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여섯 차례의 기후위기, 장기적인 회복력과 한순간의 붕괴 사이
저자는 명대의 가격 체제와 기근 시기의 곡물 가격을 종합한 끝에 3세기에 걸친 명제국의 역사 중 물가 폭등과 환경 재앙이 일치했던 대기근 기간을 식별해냈다. 저자가 전작 『하버드 중국사 원명_곤경에 빠진 제국』에서 소개한 여섯 번의 ‘위기’로, 영락 위기(1403~1406), 경태 위기(1450~1456) 가정 위기(1544~1545), 만력 위기1(1586~1589), 만력 위기2(1615~1620), 숭정 위기(1638~1644)다.
명대 대부분의 시기에 쌀 1두의 정상 가격은 은 3~4푼, 만력 연간과 그 이후는 4~5푼 정도였던 것이 환경 위기가 닥친 기근 시기에는 은 10푼에서 30푼 사이로 뛰었다. 특히 숭정 위기에는 1두당 은 1냥에서 2냥으로, 어떤 지역에서는 4냥에 달하기도 했다. 지방지에 기근시 곡물 가격이 기록된 777건 중 32퍼센트가 1638년에서 1644년 사이의 숭정 위기 7년에 집중되어 있었다. 명대에 기후 변화는 수차례 있었지만 숭정 이전의 위기 때 물가 변동 폭은 일정 수준을 뛰어넘지 않았다. 일부 ‘위기’는 1456년 겨울 경태제에 대한 궁정 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재앙으로 끝났지만 대부분은 ‘회복력’이 발휘되어 다시 안정화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앞선 다섯 차례의 위기 때 회복력을 발휘한 것과 1640년대의 붕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숭정 위기’는 여러 차례 환경 위기의 단계적 축적의 결과였던가? 여기서 티모시 브룩은 장기적인 기후 혼란과 단기적인 기후 혼란, 즉 기후 변화와 날씨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명대 중국인들은 환경 압박에 대해 두드러진 회복력을 보였다. 관개 및 배수로와 같은 인프라 구축, 벼의 조기 숙성 같은 작물 변이, 곡물 창고 및 곡물 시장과 같은 제도 개발, 양수 펌프와 같은 기술 고안, 식량 공급 압박을 완화하기 위한 인구 조절 등의 혁신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장기적인 혼란은 인간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숭정 위기’는 환경 재앙의 규모가 달랐다. 갑작스럽고 심각할 경우 적응을 촉진하기보다는 압도하는 경향이 더 컸던 것이다. 저자는 숭정 위기 같이 극단적인 재앙이 닥칠 때의 역사적 자료들에서는 적응에 관한 묘사가 없고 그저 단순히 대규모 기근이 발생했으며 아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간단히 언급한다 했다. 4세기 전 그들은 압도당했던 것이다.
중국의 소빙하기 중 최악의 시기 동안 한파와 가뭄이 곡물 생산에 미쳤던 부담은 1850년대까지 재현되지 않았다. 청대 사람들은 숭정 이후의 가격에 적응하고 18세기에 새로운 가격 체제로 이행했지만, 19세기 중반 소빙하기가 끝날 무렵에 발생한 기후 변화는 기근, 내란 및 그에 따른 왕조의 붕괴로 이어졌다. 몇십 년 전부터 기후위기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환경 압박과 그 규모에 대해 외면하거나 크게 주목하지 않지 않았나? 최근의 식료품 가격 폭등은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해법과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이 책을 펼쳐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작가정보
Timothy Brook
1973년 캐나다 토론토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스탠퍼드대와 토론토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의 중국사 교수이자 캐나다 왕립학회 회원이다. 그의 주요 관심분야는 명대의 사회·문화사,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중국 침략, 세계사와 인권에 대한 역사학적 관점이다. 저서로 『쾌락의 혼돈-중국 명대의 상업과 문화』 『근대 중국의 친일합작』 『베르메르의 모자』 『셀던의 중국지도』 등이 있다.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전6권)의 책임편집자로 편찬을 이끌었으며, 그중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을 썼다.
작가의 말
지은이의 말
한국이 기후 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저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기후 문제에 민감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동아시아에서 역사적 변화를 분석함에 있어 기후를 고려한 최초의 학자들 중 하나라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나는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 제가 발견한 내용을 잘 이해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도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곡물 가격과 기후 변화 사이의 연관성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의견을 듣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 연관성은 명나라가 겪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조선에도 거대한 정치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옮긴이의 말
이 책의 제목에 대해 첨언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묘사한 명 말 상황은 광범위한 사회경제와 환경의 변화였다. 당시 사람들은 왕조의 붕괴를 넘어 가격 체계의 붕괴, 기후 변화에 따른 생계 조건의 파탄 등 전반적인 몰락을 경험했고, 사람들은 극심한 고난과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다층적인 내용을 잘 담아낸 제목이 ‘몰락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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