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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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2 대비
3 호화로운 생존
4 피신처
5 외계 정착촌
6 은밀하게
7 미래의 최종 안식처
8 지도의 빨간색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우리는 가장 암울한 시나리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는 거의 소진되어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해체를 맞이할 운명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거리에서, 그리고 각국 정부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파시스트들을 보라. 이상해지고 변덕스러워지고 악의적으로 변해 가는 날씨를 보라. 명목상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와 권력은 점점 더 몇몇 무도한 이들의 수중에 집중되고 있는 반면, 삶이 팍팍해지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전후의 시혜 조치를 통해 맺어진 기존 동맹 관계는 최근에 심각한 위기 상황에 접어들었다. 세계 정치가 펼쳐지는 정교한 무대, 샹들리에가 빛나는 고급스러운 회의장은 해체되고,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지고, 자본주의라는 조악한 기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돈이라는 허구적인 개념만 마지막에 남아서 지고한 진리가 되고, 우리는 점점 더 높이 쌓이면서 썩어 가는 사실들이라는 슬러지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종말의 징후를 읽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든 간에, 종말의 징후는 은밀하지만 끈덕지게 어디에든 널려 있다. - 15~16면
프레퍼는 두려움에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환상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붕괴는 우리 문화에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은 남성성 중심의 생활 양식으로, 맨땅에서 화장실을 뚝딱 지을 수 있는 ─ 또는 석궁을 써서 아내와 자녀를 침입자로부터 보호하거나, 자기가 잡은 사슴을 그 자리에서 해체할 수 있는 ─ 남성이 곧바로 신흥 엘리트로 등극하는 세상 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 간에, 종말은 대다수에게는 비참함과 죽음을 의미하겠지만, 준비된 이에게는 첫 번째 원칙, 남성이 남성인 세상으로 돌아감을 의미할 것이다. 그 남성이 백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 53~54면
요즘은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기 가 더 쉬운 시대라는 말이 어디에서나 들린다. 모두가 늘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데, 내가 볼 때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인 듯했다. 과대망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억만장자들이 다가올 붕괴에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공리를 곧이곧대로 표명한 양 비쳤다. 결국에는 비싼 값에 구원을 살 수 있는 이들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뉴질랜드는 일종의 임시 아라라트산이 되었다. 다가올 홍수로부터 피신할 곳이었다. - 103~104면
화성 개척을 설파하는 이들이 초기 유럽 이주 정착민들 을 영웅시하는 방식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정치적 폭력과 기후 변화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탈출하는 이민자들을 가차 없이 악당인 듯 묘사하는 시대에, 역겨울 만치 부를 자랑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다른 행성을 식민지화하고 소행성을 채굴하고 지구라는 연기를 내뿜는 난파선에서 탈출할 자유를 누리는 반면, 가난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은 침략군, 야만인 무리처럼 취급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미래가 아니었나? - 155~156면
나는 내 삶의 불편한 깊은 곳에서 하나의 역설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되는 경험은 다가오는 어둠을 눈에 보이게 했고, 어둠이 내 삶의 가장자리까지 더 다가온 양 보이게 했고, 그러면서도 그 무렵에 나는 미래의 희망이 샘솟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 어둠이 깔리기 직전에 세상에 아이를 내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희망을 갖도록 강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따라서 내가 점점 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그 미래를 살아가야 할 세상에 태어난 아들 때문일 수도 있었다. - 213면
체르노빌의 엄청난 역설은 여기에 있다. 이곳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생태적 재앙이 일어난 자리, 소련 주민 12만 명이 살다가 수십 년 동안 기본적으로 사람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이곳은 사실상 유럽 전체에서 가장 큰 자연 보호 구역이 되어 있다. 즉 이 구역에 들어가는 것은 인류 타락 이전의 낙원에 한 발을 딛고 종말 이후의 황무지에 다른 한 발을 딛는 것이다. - 246면
미래가 두려움의 원천인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즉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미래를 너무나 몰라서 거의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말 감수성, 종말론 양식은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길을 제공하기 때문에 유혹적이다. - 319면
『가디언』, 『에스콰이어』가 선정한 올해의 책
종말론적 사고의 진실을 탐구하는,
대개 흥미진진하고
종종 유머러스하며
결국에는 희망적인 이야기
곧 세상의 끝이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기후 재앙, 핵전쟁, 팬데믹, 민주주의의 위기, 자본주의의 취약성 등 종말을 암시하는 징후가 널려 있다. 실제로 세계의 종말, 또는 최소한 인류 문명의 종말이 자신의 생애 중에 발생할 것이라고 믿는 미국인이 약 30퍼센트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이다. 물론 이런 사고방식이 인류 문명 자체만큼 오래되었으며, 재앙을 상상하는 일이 옛날부터 급속한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으레 나오는 반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말이 정말로 임박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 마크 오코널은 곧 종말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리하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스코틀랜드의 고지대, 사우스다코타주의 최첨단 벙커, 유토피아로 불리는 뉴질랜드,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등 세계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기후 변화가 가져올 재앙을 두려워하는 환경론자도 있고, 화성에서 새 삶을 꿈꾸는 억만장자도 있다. 또 과거 미국의 호시절을 갈망하는 우파 음모론자도 있다. 이 책에는 그 여정이 흥미진진하고 유머러스하게 기록되어 있다. 냉소적인 저널리스트이자 두 자녀를 가진 평범한 아빠인 오코널은 종말론과 종말론자들의 사고와 행동을 낱낱이 분석한다. 이로써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들에게 우리 자신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반추하게 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쪽은 현재다. 나는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조금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자격이 있다는 주장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미래에 관심을 갖는 주된 이유는 그저 그것이 우리 자신의 시대를 들여다보는 렌즈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공포, 신경증, 기이한 열병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최후의 나날을 살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확실한 것,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 본문 중에서
프레퍼들, 일론 머스크, 피터 틸…….
불확실한 세상에서
그들은 무엇을 불안해하고 또 욕망하는가?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탐구할수록, 그 이면에는 아주 복잡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챌 것이다. 곧 찾아올 〈끝〉에 대비하겠다고 유통 기한이 수십 년에 달하는 식품을 모으고 생존 장비를 구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프레퍼들은 생존 그 자체를 좇기보다는 사회가 박탈했다고 느끼는 자신들의 남성성을 실현하려는 야심에 사로잡혀 있다. 또 테슬라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와 같이 지구 자체가 사라질 위험에 대비하여 화성에 거주지를 만들겠다는 집념을 가진 집단은 과거 미국의 식민 팽창 역사를 재현함으로써 다시금 호시절을 누리고 싶다는 환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벤처 투자자 피터 틸을 비롯한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경제적 혼란, 사회 불안, 다른 어떤 거대한 사건으로 자신의 거주지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을 때 뉴질랜드로 대피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 결과 뉴질랜드 지역에서는 비싼 값에 구원을 구매하려는 심리에 안성맞춤인 기묘한 부동산 비즈니스가 성행하는 중이다. 한편 종말의 흔적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은 〈종말〉과 관련해 또 다른 감각을 선사해 준다.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가 이제는 떠오르는 관광지로 변모되고 있는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오코널은 형용할 수 없는 혼란을 느끼며 고백한다. 〈내가 보고 있는 광경에는 사실 종말을 상기시키는 것이 전혀 없었다. 핏빛으로 물든 물결이 전혀 없었다. 사후, 조용한 회복이 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종말론적 사고 깊숙한 곳에는 불안이 표출되고,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또 언제나 희망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종말론〉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본질적 복잡성의 결과물이라고 칭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냉철하고도 예리한 시선으로 인간의 내면에 흐르는 복잡한 감정을 매력적으로 파헤치는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아주 두려운 무언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종말을 탐색하는 저자의 여정에는 깊이 있고 폭넓은 철학적 사고가 수반된다. 종말론이라는 개념 속에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사유와 고민이 담겨 있을 수 있는지 놀랄 정도다. 그리고 저자가 뒤집을 때마다 새롭게 드러나는 관점에 감탄
이 절로 나온다. 이 여정을 통해 저자는 종말론이 왜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를 철학적, 심리적으로 깊이 파헤친다. 그리고 삶 속에서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생각의 흐름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읽다 보면 그 깊이에 놀랄 것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작가정보
Mark O’Connell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 문학 평론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현재 가족과 더블린에 살면서, 『뉴욕 타임스 매거진The New York Times Magazine』, 『슬레이트Slate』, 『가디언The Guardian』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그 외 지은 책으로는 『트랜스휴머니즘To be a machine』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고, 전문적인 과학 지식과 인문적 사유가 조화된 번역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 전문 번역가로 인정받고 있다. 케빈 켈리,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포티, 제임스 왓슨 등 저명한 과학자의 대표작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과학의 현재적 흐름을 발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과학 전문 저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바스커빌가의 개와 추리 좀 하는 친구들』, 『청소년을 위한 지구
온난화 논쟁』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 『제2의 기계 시대』, 『인간 본성에 대하여』,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등이 있다. 『만들어진 신』으로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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