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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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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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톤의 일상에서 발견한 미움과 사랑의 ‘낙차’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
“무언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날이면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체로 거기에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실이다. 내가 좋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는 진실, 때로는 너무 중요한 것이 생김으로써 나쁜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진실, 나쁜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진실, 그럼에도 사람은 미움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진실…. 그 진실로 나는 적어도 나에 대해 풍요롭게 알게 되었다. (…)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다. 거기에는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프롤로그 중에서)
“내 사랑이 이토록 옹졸하고 좀스러울 줄이야”
‘짙은 애정’과 미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쌍이다
총 2부로 이루어진 이 책의 1부에서는 ‘나’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문제”라며 균질하고 온화한 사랑만을 미덕으로 여기는 세상에 반기를 들기도 하고, “세상 제일의 개 호두”를 위해 엄마가 다른 개를 흉보는 것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사랑의 감정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나뿐인 동생을 향한 자신의 독점욕·집착 등을 마주하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옭아매려는 자신에서 벗어나 소중한 이가 끝내 자신을 “배반”하고 홀로 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한편 작가는 타인을 이유 없이 혐오하는 사람의 마음 또한 들여다보는데, 딥페이크 범죄를 당한 작가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낱낱이 밝히며 여성을 향한 그릇된 혐오감에서 저지른 범죄자의 훼손된 영혼을 고발하기도 한다. 작가는 사람을 방해하는 것도 사람, 버티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의 삶과 맥락을 공유할 수 있는 지인들을 통해 치유를 얻는다.
2부에서는 작가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러준다. 양극성 장애를 앓는 동생을 보며 심장이 너덜너덜해지기도 하고, 때론 삶을 저버리려고 하는 동생에게 “죽여버린다”며 깊은 사랑에서 오는 두려움을 분노로 드러내기도 한다. 화실 강사로 일하며 만난 초등학생 아이에게는 “나무는 갈색이지만 갈색이 아님”을 익히는 법을 알려준다. 눈 오는 날 한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곤 반대로 위태로운 장소에 서 있는 타인을 상상하며 눈물짓기도 한다. 핼러윈 이태원의 한 거리, 완벽하고도 어색한 옷차림으로 자기 자신을 한껏 꾸민 젊은이들에게 평소와 다른 오늘을 허락해주는 것. 그 승인으로 인해 무언가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을 상상하며 그 어떤 거대한 슬픔과 비난에도 맞설 수 있을 만큼 그날의 이태원을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한때는 내 사랑이 너르고 깊은 줄만 알았다. 하지만 동생을 향한 내 사랑은 깊긴 하되 목구멍마냥 좁은 모양이다. 때론 목구멍 안쪽부터 뜻하지 않은 말들이 울컥 올라오고, 그럴 때마다 나는 거울 앞에서 서서 입을 벌리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 거기 누군가를 옭아매려는 컴컴한 심연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들켰다간 나를 곤란하게 할 심연이. 입을 닫으며 생각한다. 내 사랑이 이토록 옹졸하고 좀스럽고 짜칠 줄이야.”(60~61쪽)
“미움받을 용기만큼 미워하는 마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삶에 도사린 갖가지 모순과 양가적 감정에도
더욱 세게 용기를 움켜쥐는 책
한때 베스트셀러 도서에서 비롯된 ‘미움받을 용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미움받을 용기만큼 무언가를 미워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체로 싫어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들을 내세운다. ‘미움’을 드러내는 이를 종종 곤란하게 여기기도 한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나쁜 것이고, 부정적인 감정은 품지 말고 털어버리라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괜찮은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쌓아야 하는 ‘스펙’처럼 세상을 향해 긍정적인 마음을 품지 않는 이는 ‘별로’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작가는 “사실 그래서 곤란한 건 내 쪽”이라고 말한다. 마음먹은 대로 감정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온 사람들과 달리 일찍이 세상 모든 풍파와 쓴맛을 겪어본 이들에게는 매번 긍정해야 하는 마음이란 때론 가질 수 없는 강요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 온전한 사랑을 받을 때, 그것을 공평하게 받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늘이 자란다. 사랑과 욕망하는 것 앞에서 가질 수 없음을 인지할 때 결코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없다. 그렇게 사랑과 관심은 차별을 포함한다.
작가는 무언가를 부러워하는 마음에 생기는 미움 탓에 찌질하고 옹졸한 스스로가 싫다가도 자신이 좋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 안의 미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곰곰이 들여다본다. “삶의 도사린 갖가지 모순과 양가적인 감정”에 위선을 떨기보다 ‘미움’에서 찾아낼 수 있는 진실을 발견한다. 너무 중요한 것이 생김으로써 나쁜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과, 나쁜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것, 그럼에도 사람은 미움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것을. 그 진실을 품은 채 작가는 오늘도 한 발 나아갈 용기를 움켜쥔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105쪽)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106쪽)
1부 나에 관한 것
엄마는 사랑할 때 흉을 본다
마음이 흐린 날엔 사주를 보러 간다
중인배들
낙차
배반을 격려하기
아름다움에는 더 많은 것이 속해 있어
냉장고라는 은유
한 뼘의 자리
RIP 내 안의 디오니소스
미리 죽기
딥페이크 사진의 초상
2부 당신에 관한 것
할머니의 에르메스
젖소와 여자들
후회와 살기
눈 내리는 계절에
쓰잘데기 없는 예체능
무너지기 쉬운 사람들
우정
나의 쪼그라든 개구리
번화가로 모여드는 사람들
바람이 분다
죽은 할머니 안심시키기
무언가를 미워하는 다른 사람을 보면 가장 먼저 이 사람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지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 상대방 역시 나처럼 딱히 좋은 것의 집합은 아닌 모양이라고. 그런 습관은 상대가 나를 곤란하게 해도 그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을 내게 길러준다. 미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할수록 사람을 더 잘 견디게 된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다. 거기에는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_9쪽
그러나 그 와중에도 호두라는 세상 제일의 개 때문에, 다른 개들은 순식간에 호두보다 못생겨진다. 엄마의 가장 큰 문제는, 엄마가 수많은 개 중 호두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대신, 제발 남의 개 흉 좀 그만 보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엄마는 민망해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개는 호두보다 못생겼다고 꿋꿋이 속삭인다. 모든 걸 똑같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게 자신의 사랑이라는 듯이. 흉보는 일과 사랑은 붙어 있다는 듯이. 거기에서 나는 균등하지 않은 사랑을 발견한다._15쪽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_25쪽
사랑하는 것, 욕망하는 것 앞에서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스스로가 찌질하고 옹졸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때. 나는 담담한 척 자조를 공유하면서 이런 마음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다. 그런 자조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누가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사랑을 받는다고 깎아내리려는 의미도, 훌륭해지려는 노력 없이 날로 먹고 싶다는 의미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건 사랑과 관심이 차별을 포함한다는 걸 이미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의 우스갯소리. (…) 어쩌면 그건 대인배는 못 되어도 소인배는 되고 싶지 않은, 쾌활한 중인배들의 한숨._39쪽
오래전에는 배반하는 용기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반당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내 심연을 들여다볼 용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내가 아는 그 사람이길 바라는 걸 그만두는 용기. 그 애가 낯설어지길 바라는 용기. 그 애가 저 자신에게 온 초대장을 들고 제 세상으로 나가도록 밀어줄 용기. 언젠가 내 온 마음을 다한 존재의 뒤편에 놓여야만 한다는 슬픔을 감내할 용기. 내가 미처 몰랐던 건 누군가를 향한 커다란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런 용기란 정말로 아프다는 것이다. 무뎌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만큼._61쪽
때로 아름다움이란 좋은 것의 집합이다. 누구나 가지긴 어려울 정도로 비싸고 세련된 우아한 무언가다. 배제하고 엄선해낸 결과다. 그 사실을 수긍하기까지의 고통을 기억하면서. 이제 나는 동거인과 함께 그런 아름다움을 지향점으로 둔다. 거기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래야 나아갈 수 있으니까. 내 할머니의 손녀답게 말해보자면, 어쩌면 아름다움은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아름다움이란 그리움이다. 별 볼일 없는 물건이 풍기는 소중한 사람과의 기억이다._75쪽
냉장고를 다 고친 뒤 나가려던 기사는 머뭇거리더니 부탁드릴 게 있다고 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칭찬 글 하나를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아시겠지만 그런 게 정말 큰 힘이 돼요, 이 일을 하다보면 응원이 필요하거든요….” 방금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그가 겸연쩍어 하는 걸 보자니, 좁은 곳에서 1시간 동안 생면부지의 사람과 마주보고 있어 곤란했던 건 나뿐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도 곤란한 나머지 아무 말이나 건네본 거라면? 뭘 해야 할지 몰라 친밀감에라도 기대보려 애쓴 거라면? 뭐가 되었든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응원이야말로 힘이 될 때가 있는 법이었다._80쪽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_105쪽
내가 모르는 얼굴에 그가 모르는 얼굴을 포개면서. 마침내 아침엔 잘 몰랐던 사람을 와락 삼키고 싶다. 벌레 소리와 풀 소리와 물 소리 그리고 상대의 비린내. 그걸 느낄 저녁만을 기다리느라 그리도 질질 시간을 끌었노라고, 내 안에 꿈틀대는 것들이 멋대로 날뛰게 내버려두고 싶다. 아침이 되면 강제로 헤어지고 싶다. 하루치 불가피한 특별함과 감정의 부산물에 눈물짓고 싶다. 전날 밤까지는 그렇게나 생동적이고 낭만적이던 것이 더는 아름답지도 관능적이지도 않다는 데, 내가 간신히 쥐었던 것이 아침 햇살에 파스스 사라져버리는 일에 놀라면서…._117쪽
오히려 내가 나온 딥페이크 사진은 그가 한 인간으로서 어떠한지에 대해 말해준다. 그는 사람을 사람으로서 마주하는 법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는 여성이 의견을 내면 고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과 무관한 한 여성의 삶에 굴욕을 주기 위해 시간을 쏟아왔다. 그 시간들은 이제 그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그로 하여금 그의 영혼은 크게 손상되어 있다. 그러니까 딥페이크 사진은 그에 대한 은밀하고도 낯선 진실들을 품는다. 그를 사회적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기 충분한 진실. 사람들이 그의 곁에서 도망가기에 충분한 진실. 어떤 모습을 가장해왔든, 그가 역겨운 짓을 저질렀다는 건 변함없다는 진실._141~142쪽
하지만 사는 일엔 후회가 있다. 호두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내 가족은 개의 꼬리를 자르는 이 세상을 후회하게 되었으니까. 그 개를 데려온 동생과 쭉 같이 살기 위해, 어느 때보다 온갖 데 열심인 나의 지금은 후회에서 온 것이니까. 동생의 후회란, 실은 동생이 더 입체적인 삶을 꿈꾼다는 증거이니까. 그 꿈이란 꾸는 것, 꿔오는 것, 빌려오는 것이라서. (…) 다만 고작 품만 빌려가고도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을 어색하게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다 보면 좀 궁금해진다. ‘얘는 죽고 싶어서 우는 걸까, 살고 싶어져서 우는 걸까…?’ 그럼 거기 답하듯 호두라는 이름의 후회가 뭉뚝한 꼬리를 흔들며 자신의 부드러운 몸을 갖다 댄다. 뜨끈뜨끈, 다 잔뜩 살아 있다._181쪽
대충 얼버무리고 계산하는 동안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사장의 얼굴이 갑자기 길을 잃은 아이마냥 훅 일그러졌다. 이마는 아직 화를 내고 있었지만 눈은 당황한 것처럼, 웃는 것처럼,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다른 손엔 여전히 수화기가 들려 있었다. 그걸 보는 내 마음도 어쩐지 찌그러지는 것만 같아서 후다닥 나왔다. 사장의 고함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낮 동안의 열기가 무색하리만큼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내가 사람들에게 배워온 것 또한 그 밤의 바람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당황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의 무언가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_208쪽
평범은 때로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한다. 누군가 서투르고 어색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평소와 다른 오늘을 허락해주는 것. 그 승인은 그 애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 애가 기존의 자신보다 조금 더 멀리 가보도록 격려해줄 것이다. 그 애가 다시 그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더라도, 평범을 견디며 서서히 나아갈 만큼의 힘을 만들어줄 것이다._233~234쪽
“같이, 많이 웃고 살아!” 그 말을 의식하면서 나는 영훈과 자주 배를 잡고 웃는다. 나는 영훈이 밖에서는 하지 못할 쓰레기 같은 발언을 내 앞에선 마구 해대서 웃고, 영훈은 벽에 붙어 자는 내 잠버릇 탓에 벽지가 내 다리 모양으로 노래져서 웃는다. 함께 낄낄대다 보면 시시껄렁한 일들에도 빛이 스며들어 할머니가 왜 거듭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도 같다._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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