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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지만 무너지지 않는 삶에 대하여

알에이치코리아

2024년 12월 12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9월 1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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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99.38MB)
ISBN 9788925527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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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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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더 이상 일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불확실의 시대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어떤 시대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직업과 직장에 얽매인 채 쳇바퀴를 돌리듯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그리하여 생의 어느 순간에 사고처럼 ‘번아웃’을 맞닥뜨리게 되면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력하게 지쳐버린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업무를 수행하지도 휴식을 취하지도 못하는 심각한 탈진 증상을 겪는 이들은 물론 지속적인 무기력과 만성 피로 및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 그리고 이로 인한 불안, 우울, 권태, 죄책감 등 온갖 마이너스적인 감정들로 ‘마음의 통각’을 느끼는 모든 이들을 위한 단 한 권의 해독제와 같은 책 『지쳤지만 무너지지 않는 삶에 대하여』가 출간됐다.

문화사학자이자 번아웃 상담 코치로 활동 중인 저자 안나 카타리나 샤프너는 번아웃이라는 시대적 전염병을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해 ‘불타버린’ 이후 조용한 절망에 빠져 있는 작은 영웅들의 훈장이라고 정의한다. 전작 『자기계발 수업』에서 ‘자기계발’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시공간을 초월한 작가, 학자, 사상가들의 지혜를 총망라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지친 영혼’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해 심리학, 철학, 문학, 사회학적 연구 지식을 총동원한다.

다만 이번 책에서는 이미 여분의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독자들을 고려해 A부터 Z까지 총 26편의 짧은 글들을 실었다. 인류사 내내 존재했던 피로라는 개념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이 26가지 키워드들은 번아웃의 근원과 역사를 탐구하는 동시에, 탈진의 잿더미 속에서도 마음의 피로를 돌보고 자신만의 행복을 재발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영감을 전한다. 지금 이 순간 피곤하지만 그 이상으로 불안하고, 일하지도 쉬지도 못하는 상태로 일상을 버텨내는 이들에게, 인문학이 말하는 쉼표로 이어가는 충만한 삶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추천사
서문

Acceptance 받아들임
: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받아들인 것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축소시킬 수 없다.”

Burnout 번아웃
: 번아웃의 역설, 모든 것을 불태운 영웅의 훈장

Capitalism 자본주의
: 돈을 버는 데 쓰는 시간, 삶을 사는 데 쓰는 시간

Dante 단테
: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신곡』의 여정

Energy 에너지
: 기력이 바닥나 껍데기만 남은 듯한 당신에게

Failure 실패
: “또 실패했는가? 괜찮다. 다시 도전하라. 그리고 더 나은 실패를 경험하라.”

Ghosts 유령
: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가엾은 유령 노동자 바틀비의 이야기

Heaviness 삶의 무게
: 피로와 무기력이라는 생의 중력에 짓눌릴 때

Inner Critic 내면의 비평가
: ‘나를 비난하는 나’와 긴 여행을 완주하는 방법

Joy 기쁨
: 모든 즐거움이 부재하는 권태를 벗어나려면

Kaizen 카이젠(개선)
: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는 발걸음

Life-Cost 인생의 비용
: 최소한의 것들로만 꾸린 간소한 삶의 미학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 현재는 가장 소중한 것이자 존재하는 유일한 것

Narrative 내러티브
: ‘지친 영혼’의 정체를 둘러싼 시대별 서사의 흐름

Oblomov 오블로모프
: 게으른 사람, 태만한 사람, 번아웃에 빠진 사람, 어쩌면 안티히어로였던 소설 속 주인공의 마지막

Perfectionism 완벽주의
: 완벽주의자는 어떻게 스스로를 망가뜨리는가

Qi 기(氣)
: 인간의 에너지를 다루는 고대 동양의 지혜

Rest 휴식
: 충분히 지쳤지만, 깊게 잠들지 못하는 이들에게

Stoicism 스토아주의
: 스토아 철학에서 배우는 인생의 고난과 고통

Time 시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Urgency 긴박감
: 속도 중독자들이 쉼 없이 내달리는 이상한 세상

Vampires (에너지) 뱀파이어
: 나의 에너지를 흡혈하는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법

Work 일
: ‘당신은 누구인가요?’란 질문에 직업은 포함되지 않는다

Xenia 크세니아(환대)
: 지친 자신을 지나친 다정함으로 돌보는 시간

Yellow 노랑
: 생의 잿더미에도 빛을 비추는 나만의 작은 태양

Zeitgeist 시대정신
: 탈진의 시대, 다음 단계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주석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는 탈진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 중독성 강한 정보통신 기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부과하는 끝없는 심리적ㆍ사회적 압박은 우리를 탈진 상태에 이를 때까지 일하도록 몰아붙인다. 최근 몇 년간 직장에서 우울증, 만성 스트레스, 번아웃을 겪는 사례가 전례 없이 증가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재택근무로 전환됐을 때도 상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마치 일이 삶의 모든 부분을 장악한 것 같다. 게다가 우리는 삶의 모든 측면을 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생의 동반자, 친구, 자녀와의 관계를 비롯해 건강과 체력 유지, 자기 계발과 개인적 성장에 이르기까지 인생에서 점점 더 많은 영역을 수고로운 노동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만연하다. 우리는 이 모든 영역에서 열심히 ‘노력work on’해서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단어 선택은 일이 인간의 사고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_P.17~18

우리는 직장 생활에서 끊임없이 도덕적 상해moral injury(개인의 도덕적ㆍ윤리적 신념이나 가치와 충돌하는 경험에서 발생하는 심리적ㆍ정신적 고통이나 트라우마-옮긴이)를 입지만, 재정적인 이유로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회복탄력성을 길러라’, ‘깊이 심호흡해라’, ‘일과 삶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해라’ 따위의 조언도 신물이 난다. 그렇다면 탈진
상태에 이르게 한 외부적인 원인을 바꾸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인이자 흑인이자 레즈비언이었던 오드리 로드는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받아들인 것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축소시킬 수 없다”라고 했다. 급진적 수용, 즉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패배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현명한 결정이다.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에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_P.32~33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번아웃은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진단명이기도 하다. 마치 19세기 번아웃의 전신으로 유행병처럼 번졌던 멜랑콜리아나 신경 쇠약증처럼 말이다. 멜랑콜리아는 창의성, 학문적 소양, 천재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고, 신경 쇠약증은 높은 지능, 감수성, 예술적 기질과 연결되어 있었다. 번아웃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들과 유사한 맥락에서 일종의 영웅적 훈장이라고 볼 수 있다. 번아웃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자신의 모든 것, 혹은 그 이상을 바쳐 일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불태워 일했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맡은 바 임무를 양심에 한 점 거리낌 없이 충실히 수행했다는 뜻이다. 번아웃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다. 책임감이 지나쳐 감당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맡아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게으름을 모르는 사람이다. 패배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_P.45~46

도널드 트럼프는 다른 사람을 패배자라고 부르는 데 거침이 없다. 트럼프가 쓴 책을 보면 패배자야말로 가장 최악의 인간상이다. 트럼프는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 거짓말쟁이, 비도덕적인 사람, 심지어 범죄자보다도 패배자가 더 최악이라고 말한다. 트럼프의 정의에 따르면 패배자는 돈이나 권력을 잃은 사람 혹은 돈이나 권력을 극대화할 기회를 탕진하는 사람이다. 가장 강하고 똑똑한 사람, 더 정확하게는 가장 무자비한 사람만이 성공하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 능력이 없는 나약한 인간이다.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비단 트럼프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패배자’를 악인으로 간주하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태도의 이면에는 부와 권력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고, 그로 인해 무력하고 의존적인 처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시대를 초월한 뿌리 깊은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_P.81

소설 속 화자는 바틀비를 ‘움직임이 없다’, ‘온화하다’, ‘시체 같다’ 같은 단어로 묘사하며, 유령 같은 창백함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바틀비는 어떠한 욕구도 없는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대답할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먼저 말하는 법이 없다. 오늘날로 치면 바틀비는 아마도 번아웃이나, 삶의 경험에서 그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무쾌감증을 앓고 있다고 묘사될 것이다. 세상과 단절되고 소외된 채 바틀비는 아무것에도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누구의 도움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화자인 변호사가 다른 일을 제안하자 바틀비는 자신이 까다롭지 않다고 주장하면서도 모조리 거절한다. 입에 맞는 음식만 있으면 기꺼이 먹겠다고 주장하면서도 끝끝내 굶어 죽고 마는 카프카의 단편 소설 「굶주린 예술가A Hunger Artist」(1924)의 주인공과도 닮았다.
_P.95

내면의 비평가가 활동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생각은 그저 단어일 뿐이고 믿음은 사실이 아니라 그저 믿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시답잖은 소음일 뿐이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며 친구도 없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내면의 비평가가 ‘너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며 친구도 없어’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내면의 비평가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로 자신을 폭격할 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고 다짐해 보라. ‘내 안의 비평가가 또 더러운 입을 놀리고 있네’라고 소리 내어 말해 보라.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내가 …라고 생각하고 있네’라는 객관화만으로도 내면의 비평가가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크게 축소할 수 있다.
해리스는 인간의 마음을 회전 초밥집에서 초밥 접시를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에 비유한다. 여러 가지 초밥이 우리 앞을 끊임없이 스쳐 지나간다. 그중에 먹고 싶은 것만 집어서 먹으면 된다. 먹고 싶지 않은 것은 그대로 지나가게 두면 된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일일이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고, 그런 생각으로 괜히 식사 시간을 망칠 필요도 없다
_P.122~123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는 그의 저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The Power of Now: A Guide to Spiritual Enlightenment』(1997)에서 지금 이 순간이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리가 가진 전부이기에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재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대부분 과거나 미래를 맴돈다. 기억과 기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과거는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며, 원인과 결과라는 서사를 제공한다. 반면에 ‘미래는 어떤 형태로든 구원과 성취를 약속한다.’
그러나 둘 다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현재뿐이다. 현재는 가장 소중한 것일 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현재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살아서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_P.166

완벽주의가 언제 어디서 유래했는지 그 기원을 탐구하다 보면,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완벽주의자는 기준이 높은 부모 밑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있는 그대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게 만드는 부모나 원하는 성취를 이루어냈을 때만 조건부로 애정을 주는 부모 밑에서 자랐을 수도 있다. 여기에 어린 시절 들었던 지나치게 비판적인 말을 내면화하는 경향까지 더해지면, 어른이 되었을 때 신체적인 건강과 정서적인 안녕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러나 완벽주의는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가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완벽주의는 경쟁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 사회가 낳은 결과물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가장 완벽하고 가장 기능적인 사람이 승리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 문화는 결점이 없고 매끄럽고 완벽한 존재를 소중히 여기도록 장려하는 반면에 모든 종류의 불완전함, 특히 노화와 약점과 기능 장애를 두려워하도록 부추긴다. 인공적인 미학을 추구하며, 결점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은 포토샵으로 보정해 버린다. 우리는 구부러지고 흠집이 난 것도 아름답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_P.201~202

스토아학파는 운명을 한탄할 시간이 없다고 여기며, 피해자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한다. ‘원망ressentiment’할 대상을 찾는 이 시대의 문화는 스토아학파에게는 완전히 딴세상 이야기다. 누구나 불운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 세상의 이치다. 이 진리를 빨리 받아들일수록 좋다. 스토아학파는 삶은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오늘날 서구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기대하는 삶의 지평은 이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행복과 웰빙을 넘어서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꿈꾼다. 그런 삶이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은 강한 불공평함을 느낀다.
_P.244~245

석가모니는 “누군가에게 분노를 품는 일은 그 사람이 죽기를 바라면서 내가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는 말을 남겼다. 나르시시스트도 뱀파이어만큼이나 자력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스스로가 위대한
존재라는 허울뿐인 환상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에 진정한 자기 인식이 없고 따라서 발전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지속적이고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없으며 진정한 친밀감을 느낄 수도 없다. 한마디로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성공하고 화려한 삶을 사는 듯해 보이지만 영원히 그들만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_P.284

21세기의 일에는 특별한 슬픔이 깃들어 있다. 일은 일 중독자들만의 마약이 아니라 대중의 새로운 아편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노동에서 소외되는 이유를 두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우리는 생산의 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을 할수록 그 이익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 둘째, 점점 더 복잡해지는 분업화로 인해 노동자는 더 이상 노동의 결과물을 볼 수 없다. … 마르크스가 젊은 시절에는 노동을 통한 해방을 꿈꾸었지만 노년기에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나이 든 마르크스가 젊은 마르크스보다 현명했음이 분명하다.
_P.296~297

우리는 집단적 마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간에 끼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눈앞에서 현재의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 새로운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 철학자 재커리 스타인Zachary Stein은 우리 시대를 ‘세계와 세계 사이의 시간’, 즉 ‘한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는 동시에 다른 세계가 탄생하기를 기다리는’ 전환기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생되는 불확실성은 수많은 걱정을 낳고 있다. 이 또한 우리를 여러모로 지치게 하는 원인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변화나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둘 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시인 존 키츠Joan Keats는 사람들에게 ‘부정적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고 말했다. 부정적 능력이란, ‘불확실성과 미스터리와 의심을 묵묵히 견디며 사실과 이성을 좇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자녀와 손주들의 미래를 계획하고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류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으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가장 큰 부담 중 하나일 것이다.
_P.321~322

“탈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과연 위로가 될지 모르겠으나
이 지독한 피로는 인류가 태초부터 지녔던 숙명이었다.”
인류 역사를 아우르는 석학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피로의 인문학 A to Z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유난히 침울하고 변화가 빠른 것처럼 느껴지며, 실제로도 그렇다. 기후 변화, 전쟁, 팬데믹, 불안정한 경제 상황, 점점 심화되는 정치적 양극화는 기존의 생활 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탈진 상태는 사실 시대를 초월한 현상이다.
이 책은 탈진에 관한 짧은 글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본주의, 에너지, 인생의 비용, 휴식, 시간, 완벽주의, 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최신 연구부터 역사 속 고대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헌을 넘나들며 배울 점을 찾았다. A부터 Z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음에 끌리는 챕터부터 읽으면 된다. 순서는 상관없다. 이 책을 집어 들었다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많지 않다는 뜻임을 알기에 모든 글은 짧게 썼다. 하루에 하나 이상 읽지 않는 걸 권장한다.”
_‘서문’ 중에서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한마디로 ‘탈진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업무 성과와 매출을 최우선시하는 분위기, 따라잡기 버거울 만큼 발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 기술, 중독성과 휘발성이 강한 온갖 미디어 매체들, 견고한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시간과 인간관계와 감정마저 효율을 따져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적 기준이 인간을 무형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끝없이 내달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원히 굴러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완벽주의라는 허상을 좇거나, 조직이나 타인의 부당한 요구에 압도당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들려오는 내면의 부정적인 목소리에 시달리다 어느 순간 두 다리가 땅에 붙박인 듯 멈춰 서게 되면서 컨베이어 벨트 밖으로 튕겨 나간다. 이처럼 더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탈진 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저자가 건네는 유일하지만 확실한 위로는 인간은 태초부터 지쳐 있을 수밖에 없던 존재라는 것. 지금 느끼는 감정의 이름이 무엇이든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사실은 모두가 지치고 불안한 영혼들이라는 것, 하지만 누구나 다시금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이 책 속 표현대로라면 (긍정적인 의미로) ‘인간은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당장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커피와 설탕, 알코올과 쇼핑, 범람하는 도파민은 그 무엇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이 책은 불안이 습관이 된 번아웃 중독자들, 지쳤지만 쉬이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일의 중력에 짓눌린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돕기 위해 쓰였다. 피로의 역사이자 동시에 회복의 역사를 다룸으로써 온전한 휴식과 안식년이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이 책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당신에게, 언제든 종이 주치의가 되어줄 것이다.” _최재훈
“번아웃을 주제로 한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는 듯했다.” _한창수

책 속에 등장하는 시대를 넘나드는 저명한 작가, 학자, 사상가들은 앞다투어 본인의 영혼이 바닥까지 소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현재’보다 비교적 덜 피로했던 ‘과거’의 한때를 향수에 젖어 돌아본다. 저자는 역사 속 석학들과 현존하는 학자들까지 아우르며 다양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탈진이라는 증상을 파헤친다. 중세 시대 무기력에 빠져 신앙심을 잃어가는 수도사들, 르네상스 시대의 연금술사가 끝끝내 만들고 싶어 했던 전설의 피로 회복제, 외부의 자극을 지나치게 크게 받아들이는 신경증 환자의 사례 등을 소개하며 인간 내면의 소진 상태를 섬세하게 살펴본다.

동시에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갔던 『신곡』 속 단테의 여정,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가엾은 유령 노동자 바틀비의 이야기, 최소한의 ‘인생 비용’만을 노동으로 구하고 홀로 숲속으로 들어가 버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번아웃과의 공존법, 피로와 함께 생활을 꾸려가는 방법도 알려주고자 한다. 나아가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에게서 인생의 고난과 고통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혜안을 빌려와, 기진맥진해진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더 나은 상태로 도약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

공감과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현명한 에피소드와 함께 창의적인 조언들이 가득한 이 책을 저자는 순서대로 읽는 것보다 가장 끌리는, 동시에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키워드부터 읽을 것을 권한다. 이 책은 선인들의 지혜를 빌려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학구적인 인문서이자, 이미 지쳐 있는 독자들이 탈진이라는 잿더미 속에서 일어나 다시금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실질적인 조언을 함께 담고 있다. 심리학, 철학, 사회학적 연구에 바탕을 뒀으나 여기서 발견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원칙들을 제안하고 있어 자기계발서의 색채도 동시에 띠고 있다. 스스로가 완전히 바닥난 것처럼 무기력하다면,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불안하고 불안에 떨다 또다시 피곤해지는 탈진의 연결고리에 갇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내면의 피로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것이 숨 가쁘게 변화하는 불확실의 시대, 이제는 지나친 다정함으로 자신을 돌봐야 할 때”이기 때문이

작가정보

Anna Katharina Schaffner

영국 켄트대학교 문화사 교수이자 작가. 과학적 연구 결과에 기반한 코칭 기술과 고대 석학들의 지혜를 결합해 지친 현대인들에게 활력과 에너지를 재발견하도록 도와주는 번아웃 전문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다. 자기 계발, 탈진 증후군, 문화사, 의료인문학, 정신병리학, 정신분석학의 역사 등에 관심이 많으며, 국내 번역서로 『자기계발 수업: 인류의 성장 열망이 이끌어낸 열 가지 핵심 주제』가 있다. 『지쳤지만 무너지지 않는 삶에 대하여』는 작가의 전문 분야인 피로와 탈진 증후군의 증상들, 즉 우울증·불안증·무기력증 등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를 철학·심리학·사회학·문학 등 다방면의 관점에서 연구한 결과물이다.

카이스트 경영과학과 졸업 후 미국 듀케인대학교에서 레토릭 및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했다. 다년간 번역가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놀라움의 힘』, 『정확히 읽어내는 타로 리딩』, 『프로방스에서의 25년』, 『외로움의 해부학』, 『발견의 시대』, 『알렉산더 해밀턴(공역)』, 『영향력과 설득』, 『더미를 위한 밀레니얼 세대 인사관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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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지쳤지만 무너지지 않는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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