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
2024년 12월 13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1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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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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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키에 마른 몸, 투 블록과 상고머리를 오가는 커트 머리,
25호 파운데이션을 발라도 톤 업이 되는 피부와 짙은 쌍꺼풀을 가졌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이주배경’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아시아 출신의 이주민 여성이 이룬 가족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불렀다. 다문화는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지만, 특정 소수자 집단을 일컫는 데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종국에는 문화적 다름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쓰임이 변했다. 저자는 차별을 내포하게 된 단어 ‘다문화’를 대신해 국제 통용어인 ‘이주배경청년’으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1990년대에 시작한 정부의 국제결혼 지원사업은 미혼 남성에게 국제결혼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했고, 통일교회의 주선으로 수많은 외국 여성들이 한국 남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저자는 엄마 아빠의 이런 결혼이, 자신이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너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내가 나인 게 나에게조차 이질적일 때, 남들은 의구심 없이 받아들이는 출생이 나에게는 이례적인 사건일 때, 일찍이 부자연스러움의 감각이 몸에 밴 아이에게 삶이 곤경에 불과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는 숨지 않는 편을 택한다. 어느 날은 이주노동자를 비하하는 친구에게 울분을 토하며 말한다. 나는 다문화가정 자녀라고. 너희들이 웃고 떠든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또 어느 날은 자신과 닮은 이주배경아동에게 말한다. 우리 엄마도 필리핀 사람이라고. 나도 너와 같다고. 이렇듯 이 책에는 한 아이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 최초의 순간이, 나아가 한 걸음씩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가 한 편의 성장담이기도 한 이유다.
외국인은 아니지만
걸어도 걸어도
다문화 아이
시간이 멈춘 곳
옛날 집
2부 엄마의 안녕
통일교회
농부 남편의 조력자
어디에나 이모들이
한국어 수업
바이링구얼 환상
무엇이든 어디서나 한꺼번에
필리핀 가족
한국식 필리핀 가정식
엄마의 꿈
3부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
나만 모르는 세상
혼자만의 방
배려와 차별
나와 닮은 아이
신고 전화
나의 최선
시작과 끝
나가며 어떤 책임
나는 작은 키에 마른 몸, 투 블록과 상고머리를 오가는 커트 머리, 25호 파운데이션을 발라도 톤 업이 되는 피부와 짙은 쌍꺼풀을 가졌다. 만나는 사람이 고만고만한 시골 마을을 떠나 도시로 나오고 나서는 외모에 관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9면)
연애를 하기는커녕 일면식도 없던 외국인 둘이서 처음 만난 날 곧바로 혼인 신고서에 서명을 했고 사흘 후 합동결혼식을 통해 가정을 이뤘다. 나는 자라면서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 같았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이 개인적으로도 이상한 선택이지만,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마다 언제나 나를 붙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내 동생들. (15면)
우리 집에 정 같은 것을 붙인 적 없다고 여겨왔는데. 그냥 태어나 보니 우리 집이었다. 아주 어릴 때는 남들도 당연히 다 이런 줄로만 알다가 차츰 다른 집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되면서 우리 집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집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나 추억 따위는 없는 줄 알았다. 남기고 싶은 것보다 버리고 싶고 잊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을 줄 알았는데. 부서지고 어긋나고 비뚤어진 옛집을 싹 허물고 반듯하고 깨끗한 새 집을 얻는 것이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눈물이 계속 흘렀다. (38-39면)
외국에서 온 이모들이 일하는 곳은 빨래 공장만이 아니다. 우리 엄마처럼 집안의 농사를 함께 하는 경우도 많지만, 내가 아는 이모들은 거의 다 밖에 나가 일을 한다. 식품 가공 공장에 나가고 식당에서 서빙과 설거지를 한다. 방과후 교실이나 도서관에서 보조를 하고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에서 청소나 간병을 한다. 작은 네일숍에서 손톱을 다듬고 마트에서 계산을 한다. 틈틈이 농사도 짓는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반찬거리와 옷을 산다. 한때 사람들이 동남아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혐오 표현을 서슴지 않기도 했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 동네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우리 집도 우리 마을도 엄마와 이모들의 노동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우리 마을에 사는 이주여성 중에 전업주부는 없다. (58-59면)
엄마는 단어가 입 밖으로 제대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는 엄마의 서툰 한국어를 들으며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을 찾기 위해 스무고개 하듯 이것저것 단어를 던져보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할 때가 많았다. 마음은 누구보다도 가까웠지만 엄마와 우리 사이에는 벽이 있었다. (65면)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엄마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제 엄마의 꿈은 고향에 돌아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면 필리핀으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해.” 우리가 어른이 되어 독립을 하고 아빠마저 떠나면 한국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한국에는 당신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92면)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대학 졸업식에 엄마가 오는 것을 걱정하던 써니가 취업 시장에서 사회적 ‘배려’로 받은 가점 탓에 단숨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 씁쓸하다. 차별은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고, 그럼에도 시기와 질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배려는 최대한 숨어서 받아야 하고, 가족과 친척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수치와 불안을 느끼는 우리는 정말이지 불안하게 흔들리는 사회적 약자가 맞다. (109-110면)
엄마의 한탄은 우리 자매들에게 단단히 박혔다. 자연스럽게 ‘아빠와 할머니는 도대체 왜 그럴까? 엄마만 고생시키고 스스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어. 차라리 없는 게 나을 것 같아’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자랐다. 엄마가 가사 노동을 도맡아 하는데 아빠와 할머니는 일을 나누기는커녕 고마워하는 마음조차 없었다. 엄마가 힘든 게 너무 싫었다. (138면)
“엄마는 한국에 오기로 결심했을 때 이런 생활을 기대했을까?
엄마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는 딸의 시선으로 엄마를 기록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자신만큼이나 엄마를 들여다봤다. 한국말이 서툰 엄마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스무고개 하듯 단어를 던지던 어린 시절처럼. 엄마에게 한국은 “상처를 받은 공간” 그러나 동시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공간이다. 저자의 눈에 통일교 교인들은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국제결혼을 주선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이지만 엄마에게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엄마는 허리를 펼 시간도 없이 종일 고된 일을 하고도 넉넉한 벌이를 보장받지 못하는 농사에서 뿌듯함과 기쁨을 느낀다. 저자는 자신이 상상하는 범위 밖의 이야기를 서툰 한국말로 말하는 엄마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끊이지 않는 한탄에 지쳐 화가 난 적도 있다. “엄마가 한국에 대해 더 찾아봤어야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결정했어야지. 엄마가 한 결혼이니까 엄마가 감당해야지.” 원망과 연민에 갈팡질팡하던 저자는 이내 말을 삼키고 엄마와 엄마의 모국어로 대화하는 상상을 한다. 엄마의 속엣말을 들을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서 기억과 마음을 대신 기록한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는 이주여성을 사회학적 시선으로 서술하는 책은 아니다. 청년의 가난, 지방의 소멸, 여성 폭력이라는 사회의 첨예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소수자들을 문제 상황 안에 가두고 변화를 촉구하는 책도 아니다. 아주 개인적인 시선으로 누군가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분투하는 책이고, 그래서 훼손될 수 없는 한 사람의 서사를, 망가질 수 없는 존엄을 말하는 책이다.
‘우리’라는 대명사는 ‘다문화’와 닮았다. 나와 너를 품는 듯 보이지만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이들은 밀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가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 저자와 저자의 엄마와 같은 이주배경청년? 이 책에 공명하는 독자? 아니면 다문화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모든 사람들? 결국 이 질문은 세상에서의 자기 범주를 묻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그 범주를 넓혀보자고 제안한다. 내 앞의 울타리를 허물어 너의 자리를 만들기. 여기에 데려오는 게 아니라 거기로 가기. 그렇게 ‘우리’의 외연을 넓히기. 그런 희망을 담아 이 책을 우리에게 권한다.
“내가 나와 가족에 대해 책을 쓴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내 동생도, 그리고 이주배경청소년인 동생의 친구도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조금 벅찬 감정이 들었다. 동생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면, 한국에서 이주배경을 가진 청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사가 그만큼 다양하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 다양함과 풍요로움이 젊은 우리 엄마가 겪었던 것보다 이주여성들의 한국살이를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동생들보다 먼저 태어난 이주배경청년으로서 언니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 같아서 뿌듯해진다. 나는 동생들의 더 많은 이야기를 기다린다.”(14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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