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복덕방
2024년 12월 09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2월 0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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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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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공간을 빌려드립니다,
이상하고 기이한 도깨비 복덕방(福德房)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도깨비 복덕방. 무심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도깨비 모양 풍경이 울리고, 저 안쪽 깊은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장이 걸어 나와 고객을 맞이하는 곳. 거부할 수 없는 제안과 그 제안을 믿을 수 없는 마음 간의 팽팽한 대결. 그러나 사장이 내주는 차를 마신 순간 이미 게임은 시작되었다는 사실. 그 도깨비 복덕방이 반짝, 간판에 불을 밝히며 비밀스러운 영업을 개시한다.
6개월 단위로 이직하며 인간 혐오의 감정과 함께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던 민웅은 마침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동안의 삶의 방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줄 이상적인 회사를 만난다. 민웅과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우림 건축사사무소. 이곳에 뼈를 묻겠다 결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입사 1년 6개월, 정규직 발령 9개월 만에 회사가 망했다. 직장을 잃은 것도 큰일이지만 더욱 민웅을 괴롭히는 것은 역시 내 삶의 방식이 잘못된 것일까, 하는 회의감이다. 자정이 넘은 시각, 마지막으로 퇴근하는 민웅의 눈에 휘황찬란하게 조명을 두른 건물 하나가 들어온다. ‘도깨비 福德房’이란 간판이 달렸지만 한자를 잘 읽지 못하는 민웅은 찻집으로 착각하고 복덕방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그곳의 사장이 꽤나 특이하다. 동그란 안경을 쓴 귀여운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서는 유격대 조교 같은 근엄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잘못 들어온 손님에게 느닷없이 이사할 집까지 추천한다. 심지어 집세는 무료다. 막연하게 변화의 필요를 느끼긴 했으나 귀촌은 생각지도 않았기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민웅. 그런데 사장의 말을 들을수록 점점 빠져든다. 설명을 하는 건지 혼을 내는 건지 알 수 없는 사장의 단호한 말에 묘하게 설득당한 민웅은 마침내 임대차 계약서에 사인한다. 다음 날 민웅은 대청호 근처의 폐가 같은 새집으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생긴 지 이제 막 두 시간 되었다는 도깨비 복덕방이 준비해둔 신비한 일들은 무엇일까. 도깨비 복덕방의 매직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생의 끝에 몰린 사람에게 홀연히 나타나 복과 덕을 주는 곳
어둠이 깊은 만큼 더욱 강렬하게 터지는 카타르시스
중호의 불운은 끝이 없다. 소방관인 아버지의 사고와 연이은 수술. 그 수술마저 의료과실로 잘못되어 재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수술할 의사가 없으니 병원에서 나가란다. 의료 파업 때문이다. 그 와중에 폭행 가해자 누명까지 쓰고 기소될 상황에 처한다. 상대는 경찰과 검찰의 관계자와 줄이 닿는 사람이다.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지만 중호는 깨끗하게 싸움을 포기하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합의하기로 한다.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셋집을 빼고자 찾아간 부동산에서 중호는 또 한 번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자신이 사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고 이미 낙찰까지 다 끝났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집주인이 작정하고 사기를 친 것이었다. 중호가 구제받을 길은 없다. 전세금을 고스란히 빼앗기고 맨몸으로 쫓겨나는 것뿐. 해일처럼 몰아치는 불행을 더 이상 감당할 자신이 없어진 중호는 급기야 한강 다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를 만나 도깨비 복덕방의 명함을 받는다. 그곳으로 찾아가라는 말과 함께. 제1금융권의 대출이 모두 막힌 중호는 콩팥 하나쯤 떼 줄 각오로 도깨비 복덕방을 찾고, 예의 그 만화에나 나올 법한 아이의 모습을 한 사장이 중호를 맞는다. 그곳에서 중호는 믿을 수 없는 제안을 받고 사기인가 의심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결국 임대차 계약서에 사인한다. 또다시, 생긴 지 이제 나흘 하고 열한 시간 됐다는 도깨비 복덕방의 매직이 시작된다. 이번 매직은 꽤나 강렬하고 스펙터클하다. 그동안의 불운이 반전이 되어 돌아오는 먹먹한 감동을 경험을 할 수 있다.
같은 복덕방, 다른 판타지
100퍼센트 고객 맞춤 저세상 서비스
100퍼센트 고객 맞춤 서비스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도깨비 복덕방이 펼쳐 보이는 판타지는 각각의 사정에 따라 다 다르다. 미호의 경우엔 그것이 음식이다. 토종 한국인임에도 파란 눈에 금발로 태어난 미호. 미호의 학교생활은 수난의 연속이었고, 보다 못한 엄마는 미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흐른 후 미호는 미 중부 주립대 심리학과에 합격하고, 미호의 이사를 돕기 위해 엄마가 미국으로 들어왔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사고는 크지 않았으나 검사 과정에서 엄마가 파킨슨병 초기 단계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종합병원 이사장의 아들이자 그 자신이 의사이기도 한 사고 가해자는 미호와 엄마를 극진히 보살핀다. 미호는 점점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끼지만 벗어날 길이 없다. 엄마의 병이 진행 중이었으므로.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미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남자와 결혼한다. 미호의 불행은 진작 시작되었고 결혼은 그 불행의 늪으로 더욱 깊이 빠져드는 시발점에 불과하다. 남편의 외도와 엄마의 죽음 그리고 딸아이의 사고. 미호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평생을 갇혀 산 집에서 죽을 순 없지. 미호는 죽음에 어울리는 멋진 풍광을 찾아 홀린 듯 홍포 전망대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묘한 외양을 한 도깨비 복덕방을 만난다. 복덕방이 호텔을 겸한다는 것도 이상하기만 한데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숙박료다. 숙박 계약서에 적힌 금액이 천만 원. 어이없어하는 미호를 향해 사장이 말한다. “돈이 없는 양반도 아니고 천만 원에 뭘 그렇게 벌벌 떱니까? 우리처럼 고객 니즈에 딱 맞는 곳이 또 어디 있다고.”(261쪽) 발끈하는 미호. 그러나 결국 계약서에 사인하고 마는데…… 미호의 인생에서 다시없을, 이전 공간들보다 더 한층 화려하고 아찔하고 아름다운 매직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전지적’ 관찰자
그리고 도깨비 복덕방의 정체
위의 세 사람은 누군가에게 선택받은 이들이다. 그들은 생의 끝에 몰려 죽음을 생각한 순간 혹은 깊디깊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댈 때 도깨비 복덕방을 만났다. 기적의 복권 같은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들에게 삶을 계속 이어가도록 기회를 부여한 것일까. 이에 대한 힌트는 작가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절망 그 자체였던 어느 한때가, 돌아보니 정말 좋은 결과의 시작점이었”(357쪽)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작가는 『도깨비 복덕방』 속 대사처럼 “존버가 답이다”(152쪽)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섣부른 판단으로 인한 오해는,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혹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이것에 대한 경계가 『도깨비 복덕방』의 토대가 되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면 누가, 어떤 이유로 위의 세 사람을 선택한 것일까. 그리고 도깨비 복덕방의 정체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전지적’ 관찰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관찰자가 누구인지, 하는 일은 무엇인지, 도깨비 복덕방과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 추리하는 것도 독서의 한 재미가 될 것이다. 조금만 “존버”하면 된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
따뜻한 식사 한 끼
에필로그
작가의 말
그때 휘황찬란하게 조명을 두른 건물 하나가 민웅의 눈에 들어왔다.
도깨비 福德房
요란하기도 하지. 상호를 읽을 수 없어 뭐 하는 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뜻 보니 전통찻집 같았다. 휘황한 조명에 마음이 이끌렸다. 그래. 나도 한 번쯤은 저렇게 휘황찬란한 곳에 있고 싶다, 라는 속마음을 누르고 차라도 한잔하면서 술이나 좀 깨자, 라는 마음으로 민웅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19~20쪽)
“여기는 어딥니까?”
“대청호에서 15분 거리의 마을입니다.”
“대, 대청호요? 금강의 본류를 가로지르는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생성된 그 인공 호수 대청호요?”
“그렇습니다. 대청호를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은 처음입니다만, 정확합니다. 그 대청호 부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니 제가 왜 그런 깡촌에…….”
“깡촌이라니요.”
사장이 민웅을 나무라듯 반문하더니 태블릿의 페이지를 넘기자, 화창하게 흐드러진 벚꽃 길을 비롯해 대청호 인근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졌다.
“새 삶을 구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뭘 자꾸 새 삶이래.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감방이라도 갔다 온 줄 알겠어. (28~29쪽)
“똑같은 머리로 혼자 고민하는 건, 한 번 끓인 알탕을 일주일째 재탕해서 먹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찌개가 8일째에 갑자기 맛있어질 리 있겠습니까? 상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죠. 그래서 새로운 시각과 시도가 필요합니다. 지독하게 꼬이기만 하는 삶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면 그게 뭐든 한번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만 될 테니까요.”
알탕 재탕 새로움 더블 콤보에 가마니 같은 걸로 막타를 맞고 나니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얘기를 자꾸 듣다 보니 뭔가 솔깃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최근 몇 차례 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세일즈 포인트가 맞아떨어질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약을 판다는 게 이런 건가? 느닷없이 도를 믿게 된 사람들의 심경을 알 것 같았다. (32쪽)
하루는 시장에서 사 온 캔을 따서 들이밀었는데 지금 그딴 걸 나한테 먹으라는 거냐? 라는 눈빛으로 한동안 민웅을 노려보다가 사라졌다. 처음 본 날도 느꼈지만, 상당히 건방진 고양이였다. 그놈의 꼬리로 바닥을 탁탁, 때리며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민웅을 바라볼 땐 민웅도 바닥을 쿵쿵, 구르며 심기가 편하지 않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고양이를 따라 할 순 없지. (54쪽)
언제 왔는지 알 수 없는 건 차치하고라도 한강 다리 위에 턱시도를 입은 여자가 서 있는 것부터 이상하고 무엇보다 생김새가 너무…….
미인이었다. 여우라고 해야 할지 고양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쪽의 동물이 인간으로 환생하면 딱 이런 모습이겠다 싶은 여자가 늘씬한 키를 자랑하며 중호의 일행인 것처럼 옆에 딱 붙어 서 있었는데, 그 기운이 서늘했다. (134쪽)
“저한테요? 주문을요?”
“네. 따라 하세요. 존버가 답이다.”
“네?”
“따라 하시라고요.”
“그게 주문이라고요?”
“네.”
(중략)
“조, 존버가 다비다.”
“아니, 그렇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웅얼거리지 말고 제가 말한 것처럼 또박또박 정확하게.”
“존버가 답이다. 됐나요?”
“됐습니다. 앞으로도 마음이 꺾일 때마다 그 말을 속으로 생각하지 말고 입 밖으로 소리 내서 말하세요. 그러면 주문의 힘이 생길 테니까.” (152~153쪽)
이런 집을 그냥 빌려준다고?
중호는 아담하니 작은 대문을 열고 정원을 지나 현관 앞에 섰다. 사장에게 들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니 내부는 더 좋았다. 부동산 현장이 사진보다 더 좋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탁 트인 거실이 눈에 들어왔고 천장이 엄청 높아 개방감이 끝내줬다. 현관 입구에 실내 슬리퍼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어 중호는 신발을 갈아 신고, 이제 막 지상에 떨어진 도토리처럼 두리번거리며 실내를 돌아다녔다. (174쪽)
널따란 벽에 같은 색의 방문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배치된 모습은 어느 초현실주의 화가가 그린 그림처럼 보였다. 색감도 그랬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각 방이 모두 다른 세계로 연결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예술이야, 뭐야.” (175쪽)
“오늘 죽을 작정이 아니면, 방을 예약하시죠. 어차피 잠은 자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럼 식사도 바로 하실 수가 있습니다.”
미호는 자기가 지금 뭘 들은 건가 싶었다.
“네?”
“방 예약하면 바로 식사 가능하시다고요. 그리고 여긴 해안 절벽 끝이라 바깥쪽 창은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습니다. 감상하시다가 떨어지고 싶으면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아래 바다는 물길 교차로라 소용돌이가 일거든요. 한 번 떨어지면 인어공주가 와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죽기 딱 좋은 곳이죠.” (256쪽)
벽 한 면이 완전히 통창이었다. 창 너머로 쪽빛 바다가 펼쳐졌고 그 위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듬성듬성 동화 속의 여행자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그 자체로 메이저 미술관에서나 볼 법한 초대형 풍경화 같았다. (267쪽)
방금 쪄낸 호박잎을 청국장에 푹 담갔다가 빼내어, 밥을 감싸 입속에 넣었다. 호박잎의 부드러우면서도 까칠한 식감과 혓바닥 아래까지 적셔 드는 청국장의 맛이 어우러져 입안의 모든 세포가 깨어났다.
이번엔 호박잎에 밥과 쌈장과 오이무침과 김치까지 싼 다음에 한껏 입을 벌리고 입속에 욱여넣었다. 우적우적 씹고 입안에 공간이 조금 생겼을 때, 청국장과 두부를 떠서 또 입에 넣었다.
온갖 재료들이 입안에서 어우러지다, 입천장부터 혀뿌리까지 휘감아 오는 청국장의 짭조름한 따스함이 그 모두를 아울렀다.
미호는 몇 번 씹다가 다시금 급습하듯 치솟는 감정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끅끅 들썩이는 몸을 잠시 추슬렀다. 끊어지는 호흡의 마디를 통제하며 입속에 남은 음식을 꼭꼭 씹어 마저 삼켰다.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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