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2024년 12월 09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0월 2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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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359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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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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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들어가며
1부 불확실성의 과학
1장 모든 곳에 존재하는 혼돈
2장 혼돈기하학
3장 잡음, 백만 불짜리 나비들
4장 양자적 불확정성: 잃어버린 진실?
2부 혼돈계 예측하기
5장 몬테카를로에 닿는 두 가지 길
6장 기후변화: 재앙인가, 그저 작은 변화일 뿐인가?
7장 팬데믹: 바이러스와 정치인 사이에서
8장 금융붕괴: 기상학자가 경제를 예측한다면?
9장 치명적 충돌: 전쟁, 갈등 그리고 생존의 물리학
10장 결정을 해, 결정을!: 과학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
3부 혼돈의 우주에서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에 서 있는가
11장 양자적 불확정성: 다시 찾은 현실?
12장 잡음으로 가득 찬 우리의 뇌
13장 자유의지, 의식 그리고 신
감사의 글
참고문헌
주석
찾아보기
박사과정이 끝나가던 무렵에 나는 블랙홀 전문가가 되었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호킹 연구팀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중력을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졸업이 다가오자 그것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일이 사람들의 안녕이나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내 연구의 세부 사항에 정말로 관심이 있는 물리학자는 전 세계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_서문, 18〜19쪽
불확실성은 인생의 본질이다. 단어 자체의 어감은 그리 달갑지 않지만 우리의 삶은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다음 주에 자동차 사고를 당할지, 복권 1등에 당첨되어 팔자를 고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멀리 내다볼수록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몇 년 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또 찾아와서 내 투자금이 몽땅 날아가는 건 아닐까? 아니면 전 세계에 팬데믹이 닥치거나,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거나, 기후가 급격하게 변하진 않을까? 일일이 따져보면 확실한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미래에 닥칠 일을 훤히 내다보는 존재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창조적이고 활기 넘치는 종으로 남아 있을까?
_들어가며, 26쪽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구가 궤도를 이탈할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프린스턴대학교의 연구팀은 다양한 초기 조건의 앙상블을 대상으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실행했는데, 앞으로 수십억 년 안에 지구가 태양계를 벗어나는 끔찍한 상황은 단 한 번도 재현되지 않았다. 즉, 지구가 태양계를 벗어날 확률이 거의 0에 가깝다는 뜻이다.(그렇다고 완전히 0은 아니다!) 그러나 걱정스럽게도 이 앙상블 예측에 의하면 수십억 년 후에 수성의 궤도가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여 약 1퍼센트의 확률로 금성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_1장 모든 곳에 존재하는 혼돈, 45〜46쪽
여기서 우리는 비선형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입력과 출력이 정비례하지 않는 물리계를 비선형계라 한다. 비근한 예로 복권 당첨금, 기쁨의 정도가 바로 이런 관계에 있다. 당신이 100만 원짜리 복권에 당첨된다면 펄펄 뛰며 기뻐할 것이다. 그런데 당첨금액이 200만 원이라고 해서 2배로 기쁠까? 물론 100만 원에 당첨되었을 때보다 더 기쁘겠지만 기쁨의 정도가 2배로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 슈퍼복권에 당첨되어 1000만 원을 손에 넣었을 때도 10배로 기쁘지는 않다.(만일 당신이 엄청나게 부자라면 100만 원을 100억 원으로 바꿔서 상상해보라.) 이것이 바로 비선형계의 특징이다.
_1장 모든 곳에 존재하는 혼돈, 51〜52쪽
날씨 상태 공간의 차원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대기에서 일어난 모든 소용돌이를 고려한다면 날씨 상태 공간은 컴퓨터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크다.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에 슈퍼-슈퍼컴퓨터가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현재 사용되는 일기예보모형의 상태 공간은 10억 차원을 가뿐하게 넘는다. 물론 이 정도는 슈퍼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지만, 날씨가 가질 수 있는 실제 상태 공간의 차원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된다.
_2장 혼돈기하학, 64쪽
미래의 불확실성이 초기의 불확실성 고리(작은 원) 위치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이유는 계를 서술하는 방정식이 비선형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1987년 10월의 허리케인이나 2008년에 닥친 금융위기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앙상블 시스템을 이용하면 계가 ‘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불안정한 상태로 이동할 때 사전경고를 내릴 수 있다.
_2장 혼돈기하학, 79쪽
1950년대의 전문가들은 대기의 변화가 워낙 심한데다가, 곳곳에 다양한 규모로 소용돌이까지 일어나고 있어서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로렌즈도 대기의 자유도는 3밖에 안 되는데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둘 다 옳은 말이다. 1963년에 로렌즈는 세 개의 변수를 갖는 모형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예측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으며, 1969년에는 변수가 많은 물리계(큰 소용돌이와 작은 소용돌이)가 변수가 적은 계보다 예측이 더 어렵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대기의 상태를 예측하기 어려운 실질적 이유는 전자가 아닌 후자에 있다.
_3장 잡음, 백만 불짜리 나비들, 103쪽
불확정성의 본질은 인식론적인가, 아니면 존재론적인가? 인식론적이라면 양자적 불확정성은 ‘물리계는 정확하게 정의되는데 그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할 뿐’이라는 뜻이고, 존재론적이라면 ‘우리가 관심을 가지든 말든 불확정성은 자연에 원래부터 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양자적 불확정성이 존재론적 특성이라고 믿고 있다.(그 이유는 앞으로 논의할 것이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세상은 무수히 많은 양자적 입자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는 곧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_4장 양자적 불확정성: 잃어버린 진실?, 117〜118쪽
리처드슨의 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최초의 전자식 디지털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실현되었다. 그 후 프린스턴대학교의 천재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존 폰 노이만은 기상학자 줄 차니를 필두로 한 연구팀을 조직하여 본격적인 일기예보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이런 모형은 나비에-스토크스방정식과 같은 물리 법칙을 기반으로 한다. 이들을 피츠로이, 블랜포드, 워커가 제안했던 이전의 모형(경험과 통계에 기초한 모형, 데이터기반모형이라고도 한다)과 구별하기 위해 물리기반모형이라 부르기로 한다. 차니의 연구팀은 물리기반모형을 실행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가능한 전자식 디지털컴퓨터’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이었다.
_5장 몬테카를로에 닿는 두 가지 길, 152쪽
결정론에 기초한 모형에 확률적 개념을 어떻게 주입할 수 있을까? 방법이 있긴 있다. 몇 해 전에 리스가 개발한 몬테카를로 계산법을 도입하면 된다. 단, 리스처럼 예측값의 평균을 취하는 대신에 앙상블 멤버로부터 다양한 날씨 패턴이 나타날 확률을 예측해야 한다. 1985년에 머피와 나는 세계 최초로 물리기반모형에 기초한 앙상블 예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_5장 몬테카를로에 닿는 두 가지 길, 163쪽
간단히 말해서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주어진 정보의 불확실한 정도부터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 과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 5장에서 날씨를 예측할 때 사용했던 앙상블 기법이 바로 불확실성을 가늠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사실 앙상블의 세 가지 기능을 모르고서는 기후변화를 절대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방금 말한 세 가지 기능이란 첫 번째는 기후과학의 불확실한 피드백 효과를 추정하는 것, 두 번째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수립된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 세 번째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혼돈과 인간이 유발한 혼돈을 구별하는 것이다.
_6장 기후변화: 재앙인가, 그저 작은 변화일 뿐인가, 181쪽
혼돈계가 똑같은 길을 두 번 이상 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실제 기상 현상이 탄소 배출로 인해 발생했다고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핵심은 이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로 인해 앞서 서술한 재앙이 초래될 확률이 1000년당 1회에서 10년당 1회로 무려 100배나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통계자료를 활용하면 산림관리법을 강화하거나 홍수 방어 시설을 구축하는 등 급하게 보완해야 할 부분을 선별할 수 있다.
_6장 기후변화: 재앙인가, 그저 작은 변화일 뿐인가, 202쪽
영국의 정치인들은 전염병에 대처할 때 최대한 과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후변화 문제에서도 그랬듯이 과학 자체는 특정 정책을 옹호하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을 줄이고 싶을 때 기후과학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게 유리하다’고 권할 뿐, ‘탄소 배출량을 반드시 줄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의무 사항으로 여기는 주체는 과학이 아니라 인간이다. 마찬가지로 의료 서비스가 마비되는 사태를 방지하고 싶을 때 코로나 관련 과학 이론은 ‘대인접촉을 줄이는 쪽이 유리하다’고 권할 뿐, ‘대인접촉을 완전 차단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것도 인간의 판단에 따라 가중치가 달라질 수 있다.
_7장 팬데믹: 바이러스와 정치인 사이에서, 212쪽
기후변화 문제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정보를 알려주는 건 전문가들이고, 그로부터 정책(사회적 거리 두기와 국경 폐쇄 등의 강화 또는 완화)을 결정하는 건 정치인들의 몫이다. 물론 예측이 불확실할수록 정책을 결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겠지만, 그렇다고 정책을 결정하기 쉬우면서 신뢰도는 떨어지는 예측을 내놓는 것은 과학자의 도리가 아니다. 혹여 그랬다가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 정치인들은 과학자 중에서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_7장 팬데믹: 바이러스와 정치인 사이에서, 231쪽
경제의 예측 가능성을 정량화하려면 좋은 모형이 필요하다. 그런데 ‘좋은 경제모형’이란 무엇일까? 2008년에 프랑스의 경제학자 그자비에 가베와 그의 동료들은 여러 경제학자와 토론을 거친 후 〈좋은 모형이 갖춰야 할 일곱 가지 속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제시한 항목은 간결함, 다루기 쉬움, 개념적 통찰, 일반화 가능성, 반증 가능성, 경험과의 일치, 예측의 정확성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처음 네 개 항목만 인정하고 나머지 세 개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나는 경제학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만일 내가 동료 기상학자들에게 일기예보와 관련하여 좋은 모형과 나쁜 모형의 차이를 묻는다면, 당연히 ‘정확하면 좋은 모형이고, 부정확하면 나쁜 모형’이라는 답이 돌아왔을 것이다. 일기예보의 정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문제 삼을 수도 있지만(예컨대 평범한 날씨와 극단적인 날씨 중 어느 쪽을 더 잘 맞추는지) 이런 것은 세부적 문제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학자들에게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반증 가능성, 경험과의 일치, 예측의 정확성)이 기상학자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나는 일기예보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간결함’을 꼽는 기상학자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_8장 금융붕괴: 기상학자가 경제를 예측한다면?, 237〜238쪽
8장에서 말한 대로 내가 이 책을 탈고할 무렵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것은 몇 달 간격으로 진행되는 예측 시스템을 통해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데, 주된 원인은 침공 몇 달 전부터 러시아군이 국경 지대로 집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리처드슨의 갈등 조건은 이미 충족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오랜 세월 동안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는 점,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줄곧 불만을 품어왔다는 점, 최근 몇 년 사이에 러시아의 군비가 전면적으로 증강된 점 등은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는 증거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궈의 충돌모형에서 전쟁이 발발하기 몇 년 전부터 충돌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_9장 치명적 충돌: 전쟁, 갈등 그리고 생존의 물리학, 267〜268쪽
앙상블 예측을 참고하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시기를 훨씬 분별력 있게 결정할 수 있다. 구호 기관과 지원 단체 관계자들은 재난이 닥치기 전에 구호 대상을 정하는 것을 선제대응활동이라 부른다. 내 친구가 임계 확률값에 따라 천막 대여 여부를 결정한 것처럼, 구호 기관은 비용-손실 비율의 추정치에 기초하여 임계 확률을 미리 정해놓고 재난 발생 확률이 이 값보다 클 때 예방조치를 취한다.
_10장 결정을 해, 결정을!: 과학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 287쪽
기후변화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화석연료를 태우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는가? 과학이 내놓은 답은 ‘그렇다’이다.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인가? 이것도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그렇다’이다.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하면 기후변화가 위험한 수준으로 일어나는가? 과학은 결코 ‘예스맨’이 아니지만 이것도 분명히 ‘그렇다’이다. 분위기가 점점 암울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가? 과학은 바로 이 결정적인 질문에서 갑자기 불가지론적인 태도를 보인다. 과학에 귀를 기울이라고 주장하는 환경운동가들은 이 점을 간과한 것 같다. 독일의 물리학자 자비네 호젠펠더는 과학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설명했다.(그녀는 분명히 술 취한 독일인들이 철도 교량에서 하는 짓을 보고 이런 비유를 떠올렸을 것이다.) 과학은 고압전선에 소변을 보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는다. 다만 소변이 성능 좋은 전도체임을 알려줄 뿐이다.
_10장 결정을 해, 결정을!: 과학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 304〜305쪽
“작은 것일수록 근본적이다.” 이것은 20~21세기에 걸쳐 이론물리학을 떠받쳐온 핵심 철학 중 하나로서, 가끔은 방법론적 환원주의라 불리기도 한다. 지금도 입자물리학자들은 스위스의 레만호수 밑에 거대한 입자가속기를 설치해놓고엄청나게 큰 에너지로 입자를 충돌시켜서 극미세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탐구 대상이 작을수록 자연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방법론적 환원주의가 잘못된 철학이며 그 때문에 물리학이 180도 틀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_11장 양자적 불확정성: 다시 찾은 현실?, 337〜338쪽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레카를 외쳤던 순간에서 힌트를 얻을 수있지 않을까? 그들이 창의력을 발휘하여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있었던 것은 두 모드 사이에서 이루어진 미묘한 상호작용 덕분이었다. 전력집중 모드에서 발휘되는 창의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결정적인 유레카의 순간은 주로 저전력 모드에서 찾아오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모드에서 뇌가 잡음에 민감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각 결정의 장단점을 빠짐없이 나열한 후 며칠 동안 그것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것이 유레카의 순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개개의 결정으로부터 초래되는 모든 가능한 미래로 앙상블을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든 앙상블 멤버의 확률을 일일이 계산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각 앙상블 멤버가 그리게 될 ‘스토리 라인’을 구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기후과학에서도 확률을 계산하기 어려울 때 각앙상블 멤버의 ‘가장 그럴듯한 스토리 라인’을 구축하는 일이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_12장 잡음으로 가득 찬 우리의 뇌, 360쪽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 가라는 가족의 권유를 거부해온 사람으로서, 형이상학적인 생각에 빠질 때마다 우주적 불변 집합을 종교의 대안으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각 집합에 속한 점들은 과거 한때 존재했던 것과 지금 존재하는 것, 미래에 존재하게 될 것, 과거에 존재할 수도 있었던 것 지금 존재할 수도 있는 것, 미래에 존재하게 될 수도 있는 것 등이 있다. 이 집합은 그야말로 모든 가능한 것들의 집합체이자 전지적 구조체인 것이다. 우리는 알고리듬의 결정 불가능성이라는 제약 때문에 무엇이 현실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이 점들은 우주의 상태 공간에서 어떤 상태가 물리적 현실이고 어떤 상태가 현실이 아닌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또한 불변 집합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서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변 집합은 우리의 기도를 들을 수 있을까? 우리의 희망과 소원, 이런 것들을 담은 기도는 이 장의 앞부분에서 논했던 자기 참조적 과정, 즉 우리에게 도덕적 책임을 부과하는 과정의 일부이므로 어떤 면에서 보면 답은 ‘그렇다’이다.
_13장 자유의지, 의식 그리고 신, 381〜382쪽
“혼돈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이해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 김범준(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로저 펜로즈(2020년), 마나베 슈쿠로(2021년) 추천★
★확률예보 시스템 구축하고, IPCC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중심 역할을 했던 과학자★
전도유망한 블랙홀 물리학자, 호킹의 제안을 거절하고 ‘기후변화의 물리학’에 뛰어들다
파머처럼 독특한 이력을 가진 과학자도 드물 것이다. 그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론물리학자다. 스티븐 호킹, 마틴 리스 등의 지도교수이기도 한 데니스 시아마, 2020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저 펜로즈 등을 스승으로 둔 그는 중력, 특별히 블랙홀 전문가로서 단단한 초석을 쌓았다. 박사과정이 끝나갈 무렵,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재 호킹의 연구팀에 합류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돌연 영국 기상청에 이력서를 제출한다. 진로를 두고 고민할 때, 그는 “무엇보다도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일이 사람들의 안녕이나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했다.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평범한 과학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 그는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기상학자로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정기적으로 출간하는 평가보고서의 저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더불어 2007년 IPCC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기여한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기후과학자로서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기상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할 만한 국제기상기구상(IMO Prize)을 수상했다. 혼돈 이론의 선구자로도 알려진 에드워드 로렌즈가 받은 상이기도 하다. 파머의 삶에서 블랙홀은 온전히 작용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날씨라는 복잡미묘하고 신비로운 현상에 끌리는 그의 마음까지 끌어당기지는 못했다. 덕분에 그는 일상이 된 일기예보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적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학자가 되었다.
“내일 비가 올 확률은 60퍼센트”, 예측의 새로운 역사를 연 확률예보의 탄생
앙상블 예측 시스템은 초기 조건을 조금씩 바꿔가며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실행하여 얻은 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각기 다른 초기 조건으로 내일의 대기 상태를 50번 시뮬레이션했는데 그중 20번 비가 내렸다면, 내일 비가 올 확률은 40퍼센트가 되는 식이다. 우리가 일기예보에서 접하는 ‘강우 확률’은 이 앙상블 예측을 통해 도출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확률은 일기예보의 부정확함을 얼버무리는 수단이 아니다. 확률예보는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어떤 현상, 사건에 대한 확률을 토대로 비용-손실 비율과 같은 값을 도출하여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이 책의 10장에서는 “열흘 후에 집에서 가든파티를 열기로 했는데 천막을 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비가 오지 않는데 천막을 빌려놓았으면 불필요한 낭비를 한 것이고, 비가 오는데 천막을 빌려놓지 않았다면 파티에 온 손님들에게 대단한 실례를 끼치게 된다. 그는 일기예보에서 알려준 강우 확률을 기초로 하여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런데 가든파티의 천막 대여가 아니라 생계 수단과 관련이 있고, 심지어 목숨까지 걸린 일이라면 어떨까. 특정 지역 하천의 범람, 대규모 홍수 같은 사건 등이 그러할 것이다. 확률, 통계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은 날씨뿐 아니라 우리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 바이러스 감염 경로와 사망자 추이 등을 분석하고(7장), 금융 생태계가 붕괴하는 시점을 예측하고(8장), 전쟁과 같은 국가 간 충돌을 사전에 인지하는 방법(9장)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파머는 이를 증명했다. 생존과 발전, 번영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앙상블 예측 기법은 두루 적용할 수 있으며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쓸모 있는, 즉 정확한 확률이 중요한 것이고, 파머는 확률이 그 쓸모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그의 업적은 “비가 온다”에서 “비가 올 확률이 60퍼센트다”로의 진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기후변화, 세계 경제, 전염병의 위기를 파고드는 최전선의 과학
“과학 자체는 특정 정책을 옹호하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을 줄이고 싶을 때 기후과학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게 유리하다’고 권할 뿐, ‘탄소 배출량을 반드시 줄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서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실재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실제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과학자의 미덕일 것이다. 그는 과학의 태도를 가지고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들의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우선 그는 기후변화가 매우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기후 극소주의자,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기후 극대주의자라고 정의하고 두 진영 모두 과학의 메시지를 가볍게 여기고 있다고 지적한다(6장). 전자는 치명적인 상황에 다다를 가능성을 경시하고 있고, 후자는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식으로 당위성을 과도하게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머는 스스로를 극대주의자에 가깝다고 평가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의무와 윤리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태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또한 파머는 경제학자, 특히 그들이 좋은 모형의 조건으로 꼽은 항목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8장). 그는 예측의 정확성, 경험과의 일치, 반증 가능성에 낮은 점수를 준 경제학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들이 선호하는 개념적 모형은 현상의 이유를 이해할 때는 도움이 되지만 예측할 때는 거의 무용지물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가 보기에 경제학자의 모형이 의사결정에 별 쓸모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20~21세기에 걸쳐 이론물리학을 떠받쳐온 핵심 철학인 방법론적 환원주의에 대해서도 “잘못된 철학이며 그 때문에 물리학이 백팔십도 틀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여과 없이 표현한다(11장). 지금도 극미세 영역을 탐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근간을 흔들어버린 그의 생각은 무척 도발적이고,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하다. 파격은 과학의 정신을 잘 담아내는 단어일 것이다. 더 나은 설명을 할 수 있다면 옛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머는 파격의 과학자다.
불확실한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고유한 능력에 관하여
파머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결점은 비합리성이나 실패의 징후가 아니라, 불확실한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고유한 능력이 결점처럼 드러나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달라고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그는 이 ‘결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불확실한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고유한 능력’이 무엇일까. 조직, 의사결정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제임스 마치 스탠퍼드대학교 명예교수의 메시지로 답을 갈음하면 어떨까. 그는 인간다움의 본질을 ‘결과에 상관없이 기꺼이 행동하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마치는 신뢰가 보장될 때만 누군가를 믿고, 어떤 보상이 있을 때만 사랑하고, 배움이 가치가 있다고 여길 때만 배운다면 인간다움의 본질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결과에 상관없이”라는 말 안에는 삶의 거의 모든 순간에 불확실성을 감지하는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불확실함의 필연성과 중요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파머의 교훈도 녹아들어 있다. 불확실성이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불확실한 세계를 예측하고 이해하는 것. 이것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불확실성의 과학일 것이다.
편집자 레터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맞이했을까? 이 매혹적인 질문에 한번 사로잡히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지금과는 달랐을 수도 있을 세계, 어쩌면 영원히 닿지 못할 세계를 떠올려본다. 이런 상상이 건네는 묘한 기쁨이 있다. 더 나쁜 결과를 피할 수 있었다는 안도감, 혹은 초월적인 긍정의 태도로 삶을 해석하는 ‘럭키비키’의 위로 같은 것들이다. 방대한 과학의 낱말들을 촘촘하게 채워 넣은 이 책의 원고를 다듬으며 그 상상들을 이해하는 새로운 태도를 배웠다. 어떤 선택 혹은 결과는 n개의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인간이 의도하지도 바라지도 않았지만 인간 행위의 결과로 존재하는 질서들이 있다는 것. 언제나 뿌린 대로 거둘 수는 없다는 것. 초기 조건의 영향,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비선형적 특성, 인지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물리적 변수들, 예측 가능성 등을 다루는 ‘불확실성의 과학’이 내게 가르쳐준 지혜는 이런 것이었다. 편집 과정 중에 나의 세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곱씹어본다. 예정되어 있었지만 예기치 못했던 할머니의 죽음, 유래없이 기이한 계절의 흐름, 빗길에 넘어져 다친 다리…. 그리고 서두에 던진 질문을 다시 가져와서 답을 적어본다. 그럴 수도 있지. 다만 오늘은 달라질 수 있겠지.
작가정보
Tim Palmer
옥스퍼드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영국 왕립학회와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이며 대영제국 최고 훈장(CBE) 수여자이기도 하다. 스티븐 호킹의 스승이기도 한 데니스 시아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저 펜로즈의 지도하에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연구하여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날씨로 분야를 바꿔 단기 및 장기 기후를 예측하는 ‘앙상블 예측 시스템(초기 조건, 물리 과정 등이 다른 여러 개의 모형을 실행하여 확률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며 기상학자로서 입지를 굳힌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정기적으로 출간하는 평가보고서의 저자 중 한 사람으로 활동 중이며, 2007년 IPCC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기여한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국제기상기구상(2024), 영국 왕립천문학회 지구물리학 분야 금메달(2023), 유럽지구과학협회 루이스 프라이 리처드슨 메달(2018), 폴 디랙 금메달(2014), 미국기상학회 칼-구스타프 로스비 연구상(2010), 세계기상기구 노버트 거비어-멈 인터내셔널 어워드(2006)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진 자타공인 최고의 기후과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다.
“불확실성의 과학이 매우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어떤 힘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견해를 켜켜이 쌓아온 그의 헌신으로 우리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이론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3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집필과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2006년 제46회 한국출판문화상, 2016년 제34회 한국과학기술도서상 번역상을 받았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엘러건트 유니버스》 《평행우주》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프린키피아》 《마음의 미래》 《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 《엔드 오브 타임》 등 12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더불어 ‘나의 첫 과학책’ 시리즈를 비롯해서 어린이를 위한 과학 동화 집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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