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2024년 12월 01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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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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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작가 연보
독후감-장정일(소설가, 시인)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마련이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가 지나치게 어려워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_p. 9
두려운 것도 그저 두려운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면 시가 된다. 무시무시한 것도 자기를 떠나 그저 홀로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하면 그림이 된다. 실연이 예술의 제목이 되는 것도 온전히 그런 것 때문이다. 실연의 괴로움을 잊고 그 다정한 면과 동정이 깃드는 면, 근심 어린 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자면 실연의 괴로움 자체가 넘치는 면을 단지 객관적으로 눈앞에 떠올리기 때문에 문학과 미술의 재료가 된다._p. 43
“여기하고 도시하고 어느 쪽이 좋습니까?”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조용한 데가 오히려 마음 편할걸요?”
“마음이 편하든 편치 않든 세상은 마음먹기 달린 것 아닌가요? 벼룩 나라에 싫증이 났다고 모기 나라로 이사해봤자 별수 없잖아요.”
“벼룩도 모기도 없는 나라에 가면 되잖아요?”_p. 65~66
보통의 그림은 느낌은 없어도 물체만 있으면 된다. 제2의 그림은 물체와 느낌이 양립하면 된다. 제3의 그림에 이르면 존재하는 것은 단지 마음뿐이므로, 그림이 되게 하려면 반드시 이 마음에 알맞은 대상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이 대상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난다 해도 쉽게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된다 해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과는 전혀 정취를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_p.87
보고 있으니 빨간 것이 물 위에 뚝 떨어졌다. 고요한 봄날에 움직인 것은 단지 이 한 송이뿐이다. 얼마 후에 또 뚝 떨어졌다. 저 꽃은 결코 지지 않는다. 허물어지지 않고 꽃잎이 붙은 채로 가지를 떠난다. 가지를 떠날 때는 한꺼번에 떠나기에 미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떨어져도 송이째 있는 것을 보면 어쩐지 독살스럽다. 또 뚝 떨어진다. 저렇게 떨어지는 동안, 못의 물이 붉어질 거라 생각했다._p.136
개인의 기호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일본의 산수를 주로 그리고자 한다면, 역시 우리도 일본 고유의 공기와 색을 내야 한다. 아무리 프랑스의 그림이 훌륭하다고 해도, 그 색을 그대로 옮겨와서 일본의 풍경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역시 직접 눈으로 자연을 접하고 아침저녁으로 다양하게 변하는 구름의 모습과 안개의 자태를 연구한 끝에, 이 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삼각의자를 둘러메고 뛰쳐나가야 한다._p.160
드디어 현실 세계로 끌려 나왔다. 기차가 보이는 곳을 현실 세계라고 한다. 기차만큼 20세기 문명을 대표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수백 명이나 되는 인간을 같은 상자에 채워 넣고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인정사정없다. 채워 넣어진 인간은 모두 같은 속력으로 같은 정거장에 정차하고, 그렇게 똑같이 증기의 혜택을 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차를 탄다고 한다. 나는 실린다고 한다. 사람들은 기차로 간다고 말한다. 나는 운반된다고 말한다. 기차만큼 개성을 경멸하는 것은 없다._p.125
독특한 예술관으로 자아와 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일본 근대 문학의 혁신을 꿈꾸다,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는 사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의 셰익스피어’, ‘일본의 국민 작가’ 등으로 불리며 폭넒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적나라한 자아의 고백을 통해 인생의 진실을 묘사하던 자연주의 문학이 힘을 얻던 당대의 일본 문단에서 독특한 미의식과 유머와 풍자, 비평의 정신이 담긴 작품을 발표하며 독자적 위치를 확립했다.
소세키 문학을 연구하는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였던 한도 가즈토시는 “소세키의 작품은 현대 소설로도 읽힌다. 그가 집필한 시기는 러일전쟁의 승리로 입신출세와 금권주의, 향락주의가 심해지던 시대였고, 한편으로는 장기불황으로 일본인들에게 염세주의가 확산되었던 불안의 시대로, 그 모습이 현대와 유사했고, 그가 세상을 직시하며 소설에서 다룬 테마가 오늘날에도 통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도쿄대학 명예교수인 고모리 요이치는 “소세키는 동시대의 풍속이나 사건을 절묘하게 끼워넣어 독자의 관심을 유도한다. 그러면서도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고 작품마다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 다른 장르를 다룸으로써 유사한 작품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순문학이면서도 대중소설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20세기 초 소세키는 근대 문명의 어두운 면에 공포감을 느끼며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통찰했다. 외국 유학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교양과 넓은 시야, 그리고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바탕으로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이러한 소세키의 질문은 이해와 인정을 논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비인정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인정을 만나는,
서정적인 언어로 그려낸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소설
《풀베개》의 주인공 ‘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골 마을과 온천장의 모습은 주인공의 시선에 여과되어 실제와 다르게 비현실적이다. 주인공은 인간 세상의 이해나 인정을 벗어나 한적한 산간 마을에 머무르면서 그림을 완성하고자 한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을 찾아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주인공을 따라 독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해볼 수 있다.
또한 하이쿠나 한시, 그림 등을 작품에 차용하는 장르적 시도와 함께 자연을 시적으로 형상화해 동양적 미를 구현하는 것은 이 작품의 큰 특징이다. 소세키는 《풀베개》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한 사상가, 문인, 화가들의 작품을 논하고, 직접 하이쿠를 짓거나 한시와 영시를 인용한다. 여러 예술론을 섭렵해 그에 동의를 표하거나 반박함으로써 자신의 예술관을 펼쳐 보이고,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면서 서사의 맥락과는 무관한 문장 자체의 미를 추구한다.
양갱에 대해 “겉이 매끈하고 치밀한데다가 반투명한 속에 광선을 받아들일 때는 아무리 봐도 하나의 미술품이다”라고 표현하거나, 동백이 지는 모습을 보고 “또 하나 큰 송이가 피를 칠한 사람의 혼백처럼 떨어진다”라고 묘사한 부분은 세심한 관찰력과 탁월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예다.
이렇게 시적인 문체는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온천이나 사찰과 고미술품, 다도, 샤미센 등의 소재와 어우러져 동양적인 풍류를 자아내고, 독자로 하여금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에 들어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설령 독자가 그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림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 즐거울 것이다. 그걸로 만족하면 된다. 자신의 완성되지 못한 그림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길을 떠나기는 한 것일까?
_‘독후감’: 장정일(소설가, 시인)
이 소설은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나쓰메가 도연명(365~427)의〈도화원기桃花源記〉를 모방했다는 해석이 정설로 나돈다. 나코이 온천이 주인공의 무릉도원인 것이다. 그런데 그가 도쿄에서 나코이 온천으로 여행을 하기는 한 것일까? 도쿄와 나코이 온천이 진짜로 서로 이질적인 공간일까? … 여기와 저기가 같다면 여행은 불가능하다. 둘 가운데 하나를 버리거나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나쓰메는 이 작품을 발표한 해에 《문장세계》라는 잡지에 이 소설은 사람들이 보통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쓴 것이라면서 여기에는 플롯도 없고 사건의 발전도 없다고 말했다. 그저 아름답다는 어떤 느낌만 독자의 머리에 남기고 싶다는 것이 이 소설을 쓴 목적이다. 그러나 그는 결말에 이르러 ‘하이쿠적 소설’을 배반했는데, 그 배반은 주인공이 드디어 그가 찾는 ‘마음’을 보았을 때 일어났다. 덜거덕덜거덕 돌아가는 “쇠바퀴”에 깔려버린 “애련”. 현대의 상징 사전 속에서 기차는 인간도 잡아먹고 자연도 잡아먹는 일직선적이고 양적(생산)인 역사발전법칙을 뜻한다. 거기에 깔리고도 애련은 다시 살아날까? 나쓰메는 나미의 입을 빌려 대답한다. “죽어서 돌아와.”(이상 185쪽) 죽을 각오가 있어야만 기차에 저항할 수 있다는 건지, 아무런 몫 없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서만 기차에 대항할 수 있다는 건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나쓰메의 힘이고, 그가 계속 읽히는 이유다.
■■■새롭게 펴내는 ‘책세상 세계문학’은 이전 ‘책세상문고ㆍ세계문학’이 영미나 유럽 문학 중심의 세계문학 소개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3세계 문학에서 고전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 이념과 장르를 막론하고 문학이라 불리는 모든 형태의 텍스트를 선보였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지향점은 이어가되 작품 목록은 전면 재구성해, 고답적인 분위기는 덜어내고 젊고 현대적인 시각과 감각을 불어넣어 감성과 향수를 고양하는 문학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번역과 장정에 공들인 고품격 세계문학을 추구한다. ‘원문에 충실한 정확하고 우리말다운 번역’, ‘책 속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작품 독후감’, ‘신뢰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담은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 ‘작품의 개성을 살린 유니크한 디자인과 장정’을 바탕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읽어보고 싶고 소장하고 싶은 ‘제대로 만든, 함께 읽는’ 책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고전은 단순히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지성의 토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夏目漱石(1867~1916)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 1867년 2월 9일 에도 우시고메 바바시모요코초(지금의 도쿄 신주쿠구)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00년 문부성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2년 동안 영국에서 유학했다. 1903년 귀국한 뒤 제1고등학교, 도쿄제국대학 강사로 활동하다 1905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해 호평을 얻으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도련님》, 《풀베개》, 《태풍》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인기를 얻었고, 1907년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해 《우미인초》 연재를 시작으로 《갱부》, 《산시로》, 《그 후》, 《마음》 등의 작품을 꾸준히 연재하며 전업 작가로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16년 위궤양이 악화되어 4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소설, 수필, 하이쿠, 한시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시인, 번역가. 동국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인재개발원 주임교수를 거쳐 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문화체육관광부·한국연구재단·국립중앙도서관 등 정부 여러 부처에서 심사위원·추천위원으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수많은 저서와 번역서를 출간했고 일본 문학과 관련한 많은 논문을 썼다.
주요 시집과 산문집으로는 《종달새 대화 듣기》, 《사선은 둥근 생각을 품고 있다》, 《파문의 그늘》, 《진심의 꽃-돌아보니 가난도 아름다운 동행이었네》가 있고, 연구서와 번역서로는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일본 시인》, 《일본 시인, ‘한국’을 노래하다》, 《미요시 다쓰지三好達治 시를 읽는다》, 《시사일본어》(공저), 《일본어 번역 실무 연습》, 《미디어 문화와 상호 이미지 형성》(일본어판, 공저), 《일본 하이쿠 선집》, 《철 늦은 국화-다시 읽는 일본 단편소설 걸작선》, 《한국 사람 다치하라 세이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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