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초록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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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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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의 환경교육과 강연 현장에서 독자들은 물었다. 이 책은 그 물음들에 대한 솔직한 대답이다. 20년 차 환경작가 박경화는 깨끗하고 튼튼한 포장지나 택배상자를 버리지 않고 모았다가 상점과 우체국에 되돌려주러 가고, 고장 난 우산에서 천을 뜯어내 야외에서 쓸 수 있는 작은 돗자리로 탈바꿈시킨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여행 갈 때도 직접 만든 수젓집에 수저를 챙기고,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엔 열심히 재봉틀을 돌려 만든 천 마스크를 주변에 나눴다. 유기식물을 거두고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일처럼 도시 생활 속에서도 초록빛 일상을 만들기 위해 발품을 팔고 몸을 아끼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시대, 환경문제가 심각한 건 알아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그는 몸소 친환경 라이프를 보여주며 말한다. 처음엔 낯설고 불편할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 무엇보다 뿌듯하고 즐겁다고, 작고 가까운 것부터 한 걸음씩 '이번 생은 초록빛'으로 물들여보자고.
“독자들을 만날 때마다 반복해서 받는 질문에 대해 언젠가 생활 에세이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환경 실천법이라고 하면 손수건을 사용하고 에코백을 챙기고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는 것을 쉽게 떠올린다. 물론 이런 행동도 중요하지만 환경 실천법은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양하고, 어쩌면 지구의 인구수만큼이나 무궁무진할 것이다.” _서문 중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에코 라이프
어제보다 무해한 오늘을 위한 작은 상상력
이 책은 저자의 친환경 일상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보여준다. 1장 '오래 쓰는 즐거움'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물건이나 살림살이를 '에코하게' 다루는 습관과 그 습관들에서 비롯된 소소하고 즐거운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반찬 등을 담기 좋아 틈틈이 모은 유리병에 꼭 맞는 뚜껑을 찾으려 백방으로 수소문한 일, 고향집의 손잡이 부러진 칼을 서울까지 들고 와 도심 속 대장간을 찾아 기어이 수리한 일, 이전 거주자가 쓰던 오래된 가스레인지를 두고 고민하다 깨끗이 닦아 계속 쓰기로 결심한 일 등에서 우리가 보통 쉽게 쓰고 쉽게 지나치는 물건도 제 몫을 다할 때까지 정성으로 거두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4천 원이면 새 칼을 산다는 걸 생각하면 손잡이를 교체하는 데 8천 원을 지불하는 것은 언뜻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자는 말한다. “칼날은 아직 멀쩡하고 더구나 우리 엄마가 온갖 음식을 다듬고 만들었던 역사가 담겨 있지 않은가?”(33쪽) 그의 눈에는 한번 세상에 태어난 물건이 수명을 다하는 날까지 소중하게 쓰이는 것은 “연세 드신 어르신이 마당이나 밭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다가 저녁에 잠이 들듯 고요하게 세상을 떠나는”(41쪽) 일처럼 숭고하다. 2장 '나누는 재미'에서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몽골 초원에 겨울옷 등을 기증한 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주방용품 등을 동네 커뮤니티 SNS에 올려 새 주인을 찾아준 일, 감염병 시대를 겪으며 자투리 천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이곳저곳에 선물한 일처럼 '비움'으로써 '연결'되는 나눔의 순간들이 펼쳐진다. 이는 내 소유를 줄이고 물자를 절약하는 일인 동시에 “잠깐의 만남이지만 가까이에 열심히 사는 이웃들이 있고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는”(91쪽) 재미이기도 하다. 지구 환경에 대한 관심이 사람에 대한 애정과 교차하며 삶의 인식이 확장되고 평범한 하루하루에 뿌듯한 기쁨이 채워진다. 3장 '초록초록, 식물과 더불어'에서는 삭막한 도시살이를 푸릇푸릇하게 가꿔주는 반려식물 이야기, 골목 화분 이야기, 텃밭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자의 '금손'에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 많다. 이를테면 '식물을 키우고 싶다면 냉장고를 열어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그는 과일을 먹고 남은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고 다시 나무로 키워내는 실력을 보여준다. 간편식과 배달음식이 흔한 시대에 밭에서 직접 캔 냉이를 다듬어 무치고 국을 끓이거나, 텃밭에서 자란 상추로 '과식'을 하고도 그 왕성한 성장을 따라잡지 못해 여기저기 나누기 바쁜 일상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녹색 힐링의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4장 '아끼는 기쁨'에는 오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사한 고향 근처 신도시 아파트에서 각종 첨단 설비를 경험하며 느낀 에너지에 대한 고민, 점점 더 편리한 쪽으로만 기우는 세상에서 늘어가는 가전제품에 대한 고민, 더 이상 '물 쓰듯' 쓸 수 없는 물과 음식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마지막 5장 '뚜벅뚜벅, 나의 삶'은 보다 천천히,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려는 태도를 들려준다. 이동수단 없이 두 발로 하는 걷기여행, 자동차 없는 지방 생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환경 이야기를 전하는 강의 활동 등 빠르고 즉각적인 것을 선호하는 현대사회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저자의 삶을 찬찬히 따라가게 된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천 마스크를 열심히 만들어서 일회용 마스크를 줄이는 것은 재봉틀로 지구를 구하는 일이라고…. 아니, 이렇게 거창한 의미 부여는 부담스럽군.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그저 마스크 착용이 필요 없는 안전하고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니까. _104쪽
“무섭고 우울해지는 환경 이야기? 희망은 가까이에 있다”
나의 '한 걸음'이 '우리'를 살린다는 믿음으로
저자의 에코한 하루 속에서, 우리가 흔히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수도 있다. 조금이나마 환경을 생각하는 현대인이라면 몇 개쯤 가지고 있는 에코백과 텀블러가 대표적이다. 에코백의 경우 131회 이상 사용해야 비닐봉지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220회 이상 사용해야 일회용 종이컵보다 낫다. 따라서 친환경 제품이라고 해도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는 오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대개 재활용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의류의 '실상'도 알려준다. 전 세계에서 보낸 헌 옷들이 모이는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는 거대한 옷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다. 중고 시장에서 판매되지 못한 옷은 태우거나 의류 폐기장으로 보내야 하는데 폐기장들이 이미 포화 상태로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먹이를 찾는 소들이 옷 더미를 헤집다가 더러운 옷 조각을 씹어 삼킨다. 바다로 흘러간 옷 쓰레기는 가라앉거나 파도를 따라 이동하다 배의 추진기에 감겨 어민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오늘도 우리 손에 들린 텀블러와 에코백에서, 도시 골목길에 흔히 보이는 의류 수거함에서 독자는 '진짜' 환경을 생각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한 걸음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저자는 '조금씩 시야를 넓히라'고 제안한다. “나 혼자 실천해서 되겠냐는 둥 분리배출해봐야 다 섞어서 가져가더라는 둥 비관적인 이야기도 많지만”(241쪽) 저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하나라도 실천하다 보면 새로운 방법을 궁리하게 되고, 소비자에게 부담을 많이 주는 부분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나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인‧공공기관에 해결을 요구할 수 있다. 환경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력을 키우다 보면 '예전에는 환경 실천법을 다룬 책도 있었어' 하며 옛이야기를 나누는 때가 올 수도 있다고, 《이번 생은 초록빛》은 꾸준한 희망을 담아 말한다.
지구를 살린다는 건 뭔가 거대하고 비장한 각오가 필요할 것 같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된다. 다만 작은 실천에만 머물지 않고, 작심삼일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시야를 넓히면서 한 단계씩 꾸준히 나아가면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다. _71쪽
1장. 오래 쓰는 즐거움
내 사랑 유리병
작은 텀블러 하나면 충분해
수리해서 쓴다는 것
가스레인지의 수명이 궁금해
빨랫줄이 있던 풍경
마지막까지 쓸모 있게
2장. 나누는 재미
헌 옷은 어디로 갈까
잘 돌려주는 기술
중요한 건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야
의미 있게 이별하는 법
천 마스크, 감염병 시대의 작은 선물
3장. 초록초록, 식물과 더불어
나비란, 동네를 점령하라
냉이와 함께 봄기운을 먹다
유기식물 구출하기
식물을 키우고 싶다면 냉장고를 열어라
나의 힐링 텃밭
들어나 봤나, 채소 과식
4장. 아끼는 기쁨
지구를 위한 한 시간
우리 집 에너지, 더 줄일 순 없을까
가전제품은 선택사항일 뿐
핸드폰을 오래오래 사용할 권리
웬만해선 노푸족을 이길 수 없다
조기대가리를 다지던 날
5장. 뚜벅뚜벅, 나의 삶
새로운 것에 눈뜨는 걷기여행
지방에서 자동차 없이 사는 법
환경강의, 재밌고 희망적이어야 해
때론 로그아웃이 필요해
플라스틱 병뚜껑 판매 사이트에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글이 꽤 있었다. 유리병에 딱 맞는 뚜껑을 발견해서 기쁘다는 글과 진작 알았더라면 멀쩡한 유리병을 버리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 다양한 크기의 병뚜껑을 제작해달라는 요구까지…. 모두 내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작은 유리병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있었고 다들 병뚜껑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_15쪽
주방칼의 손잡이 교체는 순식간에 끝났다. 대장장이의 양심으로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손잡이를 갈고 칼날도 갈아주는 거라며 대장간집 아들은 활짝 웃었다. 이런 자부심과 친절함은 늘 기분 좋게 만든다. 칼 손잡이를 교체하는 데 8천 원을 지불했다. 4천 원이면 새 칼을 살 수 있지만 두 배의 값을 지불한 셈이다. 그러나 이 칼날은 아직 멀쩡하고 더구나 우리 엄마가 온갖 음식을 다듬고 만들었던 역사가 담겨 있지 않은가? 손잡이 일부분이 부러졌다고 해서 통째로 버려진다는 건 칼의 처지에서 보면 억울하지 않을까? _33쪽
우리는 옷을 적당히 입다가 의류 수거함에 넣으면 우리나라에서 재판매가 되든, 외국으로 수출하든, 잘라서 농업용 덮개를 만들든 누군가 입거나 재활용이 잘될 거라고 믿었다. 한때 골목에 여러 종류의 의류 수거함이 경쟁하듯 설치되고, 헌 옷을 모으려는 이들과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인기가 높으니 어디선가 새로운 쓸모를 찾게 될 거라고 안심했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버린 헌 옷이 아프리카의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니 정말로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_68쪽
오랜만에 고향집에 갔더니 늘 그랬듯 엄마가 갖가지 채소를 잔뜩 챙겨줬다. 그중에서 동글동글 귀여운 애호박이 호박잎에 싸여 있었다. 보드라운 애호박이 다치지 않게 두꺼운 호박잎이 여러 겹 감싸고 있었다. 맞아, 우리에겐 호박잎이 있었지. 동남아 지역에서 두꺼운 바나나 잎으로 음식이나 채소를 돌돌 말아 포장하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잎사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자연이 만든 포장지,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천연 포장지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_86쪽
새로 돋아난 나비란의 새순이 무성하게 자랄 때마다 약국 앞 긴 의자에서 나눔을 했다. 늘 그랬듯 비대면 접선장소는 동네 약국 앞이었다. 일 년에도 여러 차례, 여러 해 동안 꾸준히 나눔을 했다. 마을 SNS에 나비란 나눔 안내글을 올리면 약속시간에 벌써 와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환한 얼굴로 나를 반기던 이가 시집이나 사탕 같은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_114쪽
텃밭을 시작할 무렵,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채소를 많이 심으면 다 먹지 못하고 나눠 주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애써 가꾼 채소는 아까워서 차마 버릴 수 없고 친구나 이웃들에게 나눠 주려면 그것도 번거로운 일이 된다는 것이다. 처음 일구는 텃밭이라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만큼 채소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싶어서 흘려들었는데, 그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촘촘하게 싹이 튼 어린 상추는 열심히 솎아 먹어도 쑥쑥 자랐다. (…) 한 바구니 가득 뜯고 난 후 며칠 뒤 텃밭에 가보면 언제 뜯었나 싶을 정도로 그만큼 또 자라 있었다. _161쪽
핸드폰을 수리해서 오래 사용하고 싶은데, 부품이 없거나 수리비가 비싸서 새 제품을 사는 것이 도리어 낫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속에선 부글부글 화산이 폭발한다. 새것을 사면 된다는 걸 누가 모를까. 다만 내가 사용하는 소중한 물건을 오래오래 사용할 권리, 내 선택권을 갖고 싶다는 것이다. _194쪽
멀리서 보면 해수욕장에는 깨끗하고 고운 모래가 가득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크고 작은 쓰레기들이 섞여 있다. 온갖 생활 쓰레기와 낡은 어업 도구들이 띠를 이루고 있고, 돌고래 같은 죽은 짐승의 사체에는 역한 냄새가 풍겼다. 어느 어촌마을에서는 해안을 지나 마을 뒤편 산길로 접어들자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쓰레기가 나타났다. 생활 쓰레기뿐 아니라 부표와 그물 같은 어구, 풍어제에 사용한 알록달록한 대나무 깃발들, 심지어 낡은 배까지도 버려져 있는 거대한 쓰레기장이었다. _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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