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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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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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사냥은 이렇게 작동한다. ‘집게손’ 모양이 들어간 콘텐츠가 지목된다. 페미의 상징이 삽입되었다는 주장에, 기업에서는 사과문을 내고 콘텐츠를 수정한다.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제기되면 해당 기업의 여성 노동자가 위협을 받는다. 이러한 페미사냥은 언뜻 잠깐의 소동, 온라인상의 잡음쯤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자리에서 해고되고, 여성 소비자와 창작자들이 위축되며, ‘페미니스트’가 낙인이 되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1장 사냥터가 된 놀이터
2장 페미가 깨뜨린 환상
3장 여자 일베 만들기
4장 소비자 권리라는 억지
5장 시장 논리가 가린 진실
6장 즐겁고 끈질긴 놀이를 위하여
나가며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감사의 말
참고 문헌
동시대 많은 페미니스트가 소비에 있어 욕망과 신념을 조율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이들이 자신이 오랫동안 즐겨 온 ‘암청색 알탕 영화’나 남돌(남자 아이돌), BL(Boy’s Love의 약칭, 남성 간 동성애를 다루는 서브컬처 장르)을 불매함으로써 남성 일색의 문화 시장을 바꾸겠다고 선언할 때 내 마음은 복잡했다.
사실 「클로저스」 팬덤은 페미니스트 여성 사이에선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는데, 아는 사람들에겐 개선할 가치도 없이 빻아서였고 대부분은 존재조차 몰라서였다. 과연 그렇게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클로저스」를 하면서 페미니스트로서 개입과 자정이 가능할까?
─ 「들어가며」 중에서
오늘날 친밀성의 추구는 연애·결혼이 아닌 영역에서도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다. 과연 지금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 일자리, 임금, 주거, 재생산과 같은 ‘먹고사는 일’뿐일까?
이러한 한계에 대응해 나는 취미와 소비, ‘덕질’,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처럼 ‘노는 일’에 몰입하고 영향을 받는 것이 줄곧 무시당하고 폄하되어 왔다는 사실을 짚고 싶다. 여기에는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이, 팬 활동보다는 현실의 관계가 더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위계 역시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현상에 대한 논의에서는 온라인에서의 일상과 놀이에 대한 질문이 나오거나 솔직한 응답이 이어지기가 드물다. 게임에서 여성을 희롱하는 시나리오가 사라져서, 내가 속한 커뮤니티가 다른 커뮤니티에 조롱당하는 게 싫어서 집단 행동에 참여했다고 말하기보다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에 분노했다고 주장하는 쪽이 훨씬 쉽고 명분도 선다.
─ 1장 ‘사냥터가 된 놀이터’ 43~44쪽
서브컬처 소비자의 특징은 자기 문화의 장르 도식과 취향에 익숙하고, 자신이 애호하는 콘텐츠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생산하고 교환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오타쿠 문화 전반을 하나의 ‘계(界)’로 인지한다. 오타쿠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끊임없이 주시하며 내부인의 자의식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들은 또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열성적으로, 때로는 과시적으로 서브컬처 콘텐츠와 문화를 소비한다. 다른 이들보다 소비에 있어 충성도가 높다는 뜻이지만, 오타쿠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고 소비하느냐로 자기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하기도 한다. 어쩌면 무엇에든 다소 과한 점이 오타쿠 문화에서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러한 특징이 페미사냥의 폭발적 동력과 지속성을 뒷받침하는 데에도 쓰였다. 일반적인 소비자는 자신이 소비하는 대상에 페미 딱지가 붙었다고 해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떼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브컬처 소비자는 그렇게 했다.
─ 2장 ‘페미가 깨뜨린 환상’ 55~56쪽
메갈리안은 남성들의 재미를 위협했다. 한국의 온라인 하위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가치로, 남초 커뮤니티를 구동하는 핵심축은 유머다. 커뮤니티의 활력은 양질의 ‘유잼’ 게시글이 얼마나 자주 리젠되는지에 달렸다. 이런 온라인 하위문화의 재미는 상당 부분 여성혐오에 근거했고, 성적 대상화된 여성 이미지와 포르노의 공유는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은 ‘남자끼리의 재미’를 가로막거나 문제시해 ‘유잼’의 확산을 막고, 이로써 커뮤니티의 평판을 깎는 존재로 상정됐다. 이와 동시에 여성들은 뒤로는 남성들이 만든 유머나 지식 정보와 같은 자원을 체리피킹 하는 존재로 간주됐다.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남성중심적 커뮤니티 문화와 정체성을 재생산하고자 여성을 적대적 타자로 설정하고 여성 다수의 공간이 되는 일, 일명 커뮤니티의 ‘여초화’를 경계하는 담론을 생산했다.
─ 3장 ‘여자 일베 만들기’ 82~83쪽
바야흐로 ‘소비자 기만’이라는 수사가 등장했다. 창작자가 ‘남성혐오’적인 페미를 지지하므로 그들의 창작물을 소비한 남성 소비자는 기만당했다는 것이다. 소비자 기만은 소비자가 소비를 통해 얻으리라 기대한 정당한 편익을 얻지 못하거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불공정한 교환이 일어난 상황을 말한다. 이 소비자들은 웹툰을 구매해 읽고 즐겼으므로 비용에 따른 대가를 이미 얻었다. 그들은 왜 자신이 기만당했다고 주장한 걸까?
남성 웹툰 소비자의 소비자 기만 주장은 소비자가 비용을 투여했으니 창작자와의 관계와 창작자의 사생활 및 인격에까지 일정한 권리를 가진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디시인사이드 웹툰 갤러리(웹갤)에 쓰인 아래 댓글은 페미사냥에서 이러한 감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 준다. 작가를 좋아하고 구독하는 등 작가에게 적극적으로 시간과 관심을 투여했는데, 애정을 받은 창작자가 “뒤에서” 남성을 비하하는 이들과 어울리는 기만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 4장 ‘소비자 권리라는 억지’ 109~110쪽
페미사냥이 소수의 ‘오타쿠’와 반페미니스트의 전유물일 때 이는 일부의 일탈 행동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기존의 남성 중심 문화와 맞닿게 된 페미사냥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다수의 동조자를 불러왔다. 시장경제의 진짜 주체인 남성 소비자라는 자의식을 지키려는 이용자, 그러한 소비자에 반응한 기업, 페미 노동자의 퇴출을 옳다고 보고 쾌감을 얻는 사람들, 이 모든 과정을 유머 코드로 만들어 퍼뜨린 사람들까지. 모두가 웃고 있다면 이는 더 이상 일탈이 아니다.
─ 5장 ‘시장 논리가 가린 진실’ 150~151쪽
페미사냥이 빼앗는 것은 페미니스트의 구체적인 이야기다. ‘페미’라는 낙인으로 우리는 자기 세계와 고유한 즐거움과 삶의 면면들을 빼앗기거나 스스로 침묵 속에 가뒀다. 사냥에 다시 저항하려면 굴하지 않고 다시 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꼭 강조하고 싶은 점은, 페미니스트가 이야기를 나누는 데 원래 뛰어나다는 것이다.
여성학과 페미니즘 운동에서 서사화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성차별적 사회구조에서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 이름 불리지 못한 사람들, 때로는 연구자와 활동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는 일. 그들이 이야기를 꺼내어 말하게 하고, 책임을 다해 성실히 듣고, 빈칸과 행간을 채워 읽으며 이야기 속에 복잡하게 쌓인 층층의 켜를 두꺼운 그대로 드러내는 일. 각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사소한, 마음에 안 드는, 숨기고 싶은, 서로 충돌하고 모순되는 이야기를 검열 없이 터놓는 일.
─ 6장 ‘즐겁고 끈질긴 놀이를 위하여’ 177~178쪽
★ 임소연, 김수아 추천
그들은 왜 페미사냥을 하는가?
여성들의 즐거운 놀이터가 낙인의 사냥터가 되기까지
온라인 커뮤니티와 대중문화 시장에서 일어난 일
페미사냥에 대한 기존 분석은 문제의 원인을 일부 남성들의 일탈로 묘사했다. 비정상적 남성성을 가진 특정 커뮤니티에서의 소행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페미니즘 또한 청년 세대의 박탈감의 표출이라는 식으로 설명되어 왔다. 군대, 취업, 결혼 등에서 위기를 겪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태의 전말일까?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철저한 훈련을 받은 연구자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이기도 한 저자 이민주는 페미사냥의 본질을 소비와 놀이에서 찾는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현대인은 일상의 많은 시간을 온라인 환경 속에서 보낸다. 특히 오늘날 가정이나 직장보다 더 큰 소속감과 친밀감을 선사하는 것이 온라인 커뮤니티다. 그리고 커뮤니티 유저들을 움직이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재미’다.
‘페미가 묻은’ 게임의 회사에 대고 관련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페미사냥의 기저에는 순전한 재미 추구가 작동한다. 성차별적인 시장 속에서 남성 유저들은 ‘페미 때문에 즐길 수 없는’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면서 동조자들과 낄낄대고 결속된다. 이때 페미니스트는 이들의 즐거움을 빼앗는 가해자 자리에 위치하며, 기업은 고충을 시정하면서 ‘소통하는 경영’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이러한 왜곡된 소비자주의가 정당화되는 과정이 바로 페미사냥이다.
한국의 페미니즘이 선 갈림길에서,
페미사냥꾼들의 억지 전략을 해부하고
즐거움의 역량을 보존하기 위한 승부수
명료한 논리와 철저한 역사적 관점으로 쓰인 『페미사냥』은 2010년대의 페미니즘 리부트 이래로 여성학 연구가 축적한 저력을 보여 준다. 기성 연구가 반페미니즘을 일종의 타자로 삼아 평가와 단죄를 가했다면, 1994년생의 젊은 연구자는 ‘서브컬처 오타쿠’로서 내부에서 분석을 전개한다.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의 시선으로 사태의 핵심을 찌른다.
헛소리도 꾸준히 하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듯, ‘집게손’ 모양을 걸고넘어지는 소란은 사람들의 피로와 무관심을 거쳐 사회적 논란이 된다.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과 혐오 속에서도 저자는 ‘빻은’ 콘텐츠에 대한 개입을 시도하고, 좌절하면서도 체념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즐겁지 않고 마냥 지쳐 버린 이 현실을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음모론이 대안사실이 되어 가는 갈림길에서, 페미사냥의 결말을 다르게 쓰길 원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새로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세대의 시각
공부와 삶을 잇는
인문 시리즈 ‘탐구’
새로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대의 시각. 민음사 ‘탐구’는 오늘날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성과를 한눈에 보는 시리즈다. 지금 주목해야 할 젊은 저자들이 자기 삶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솔직하게 꺼내 놓고,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는 제안을 독자에게 건넨다. 낯선 학문이 이곳에서 다시 해석되고, 각자의 현실이 새로운 길로 연결된다. 2022년 『철학책 독서 모임』으로 시작해 누적 4만 부 판매를 기록하며 독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탐구 시리즈는 2025년 ‘젠더와 언어 탐구’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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