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사회
2024년 12월 06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1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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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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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희망과 행위
희망과 인식
삶의 형태로서의 희망
미주
색인
우리는 살면서 절망의 바닥에 도달할 때가 종종 있다. 다시 올라올 힘이 없을 때, ‘희망의 정신’이 있어야 비로소 그 절망의 바닥에서 두 눈을 뜨고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 수고로움이 모두 흩어져 사라지고 고요해진 밑바닥에서 손으로 다시 흙을 쥐는 순간, 아무도 정복할 수 없는 나만의 ‘바닷가의 보헤미아’가 내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벨과 첼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희망, 존재를 가능케 하는 탄생성을 지닌 희망이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p. 8 〈역자 서문〉 중에서
불안은 훌륭한 지배 도구다. 대중을 순종하게 하고, 공갈에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안한 분위기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없다. 이는 억압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불안을 공공연히 부추기는 혐오 발언이나 이른바 쉿 스톰은 자유로운 의견 표출을 가로막는다. 심지어 오늘날 우리는 사유에 대한 불안마저 가지고 있다. 사유할 용기가 사라져 가는 듯하다. 사유는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불안의 분위기 속에서는 같은 것들끼리 순환한다. 대세 순응주의가 만연해진다. 불안은 ‘다른 것’으로의 접근을 차단한다. 다른 것은 ‘동일한 것’의 논리에 해당하는 효율성과 생산성의 논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pp. 16~17 〈들어가며〉 중에서
희망적 사유는 낙관적 사유와 다르다. 희망과 달리, 낙관주의에는 부정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낙관적 사유에는 의구심도, 절망도 없다. 완전한 긍정이 낙관주의의 본질이다. 낙관주의는 어떠한 것이 좋은 쪽으로 흘러갈 거라고 굳게 확신하는 사유 방식이다. 따라서 낙관주의자에게 시간은 닫혀 있다. 낙관주의자는 닫혀 있지 않은 미래, 가능성의 여지로서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낙관주의자에게는 새로이 발생하는 것이 없다. 낙관주의자에게 놀라움을 안겨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 미래란 ‘처리 가능한 대상’이다. 그러나 실제 미래라는 시간은 ‘처리 불가능성’ 안에 존재한다. 낙관주의자는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에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이들은 기대하지 않은 것 또는 예측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pp. 22~23 〈들어가며〉 중에서
오늘날 만연한 불안은 실제로는 영구적인 재앙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조적인 이유와 연관된, 그래서 구체적인 사건에서는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넓게 퍼진 불안에 괴로워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불안의 체제다. 사람들을 서로에게서 떼어 내, 각자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도록 했다. 총체적 경쟁과 늘어 가는 성과 강박은 공동체를 침식시킨다. 자기애적 고립은 외로움과 불안을 낳는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점점 불안으로 채워진다. 실패에 대한 불안,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충족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 뒤따르지 못하거나 도태될 거라는 불안. 그러나 고루 퍼진 이러한 불안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생산성을 높여 준다.
pp. 30~31 〈들어가며〉 중에서
동물에게 언어적 능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동물이 쓰는 언어는 인간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시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공감적 미래의 개념이 없다. 그러나 희망은 미래 안에 존재한다. 동물은 의미를 지닌 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의사소통한다. 그러나 동물이 약속하는 말을 할 수는 없다. 또한 동물의 언어는 서사적이지 않다. 그래서 동물들은 서사가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동물도 ‘원하는 것’은 충분히 표현할 수 있지만, 희망은 서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므로 동물이 표현할 수 없다. 서사적 이야기는 시간에 대한 의식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동물은 내일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킬 능력이 없다. 내일이라는 개념은 서사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은 이러한 서사적 미래에 접근할 수 없다.
pp. 57~58 〈희망과 행위〉 중에서
밤의 꿈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과 달리, 낮의 꿈은 유토피아적 잠재력과 정치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낮의 꿈에서만 아름다움, 숭고함, 변용이 나타날 수 있다. 밤의 꿈에는 유토피아적 시 야, 유토피아적 움직임이 없다. 밤의 꿈은 행위하는 것을 싫어한다. 혁명가들은 낮의 꿈을 꾼다. 혁명가들은 앞을 향한 꿈을, 그것도 함께 꾼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꿈은 강렬한 희망에서 유발된 낮의 꿈이다. 밤의 꿈에 희망의 자리는 없다. 밤의 꿈은 대부분 소원과 불안의 꿈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밤의 꿈의 기능은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적인 경험을 처리하는 것이다. 밤의 꿈에는 미래의 차원이 없다.
pp. 67~68 〈희망과 행위〉 중에서
에로스 없이는 동일함의 지옥에 갇히게 된다. 들뢰즈는 심오한 질문을 던졌다. “‘친구’가 사유하기 위 한 조건이 (…) 된다면 ‘친구’의 의미는 무엇일까? 연인, 오히려 연인이 맞지 않는가? 그 친구가 순수 사유에서는 배제되었다고 여겼던 타자와의 생생한 관계를 다시금 사유 속으로 포함하지 않는가?” 인공지능은 친구도, 연인도 없으므로 사유할 수 없다. 인공지능에게 에로스는 없다. 인공지능에게는 타자를 향한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pp. 113~114 〈희망과 인식〉 중에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현존재는 ‘일상성’에 빠지거나 ‘존재할 수 있음에 대해 불안해’한다. 고양된 기분이나 고조된 기분은 현존재의 본질적인 측면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지닌 부담스러움의 특성을 계속해서 주장한다. 그는 희망마저도 부담스러움의 특성으로 귀속시킨다. 그러나 희망은 고양된 기분이 되어 우리에게서 실존의 부담을 덜어 내 준다. 희망은 현존재의 부담을 덜어 주거나 가볍게 해 준다. 그러한 희망에서 우리가 ‘내던져짐’과 ‘죄책’을 초월할 수 있게 해 주는 움직임과 약동이 나온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현존재는 죄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그런 현존재에게 은혜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희망은 은혜를 받을 줄 안다. 또한 하이데거는 희망의 시간성을 ‘이미 존재함의 양태’라고 잘못 해석한다. 희망은 ‘아직 아닌 존재의 양태’로 특징지어진다. 하이데거는 ‘Avenir’로서의 미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pp. 156~157 〈삶의 형태로서의 희망〉 중에서
미래도 없고, 연대도 사라지고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 『불안사회』 출간!
“왜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잃어버렸나?”
팬데믹, 전쟁, 기후위기가 불러일으키는 거시적 불안부터 취업난, 노후빈곤, 물가상승이 불러일으키는 일상적 불안까지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다중 위기 속에 놓여있다. 하나의 재앙에서 다음 재앙으로 마치 줄타기하듯 이어지는 삶에서는 불확실성의 공포와 짙은 무기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인 한병철은 신작 『불안사회』에서 이 시대의 질병을 ‘불안’이라 진단하며, 난무하는 불안에 미래와 자아를 빼앗긴 현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물론 미래에 닥칠 위험을 감지하고 우려하는 것은 정당한 불안이다. 문제는 질병처럼 ‘창궐’하는 불안이다. 불안을 자극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결코 미래지향적이라고 볼 수 없다. 엄습하는 정체 모를 위협감에 대화와 경청, 공감과 화해가 붕괴된 사회는 감옥과 다름없다. 불안만으로는 미래에 닥칠 그 어떤 문제와 위험에도 적절히 대비할 수 없다.
이 책을 먼저 접한 해외의 독자들은 “한마디로 최고다”, “그는 언제나 우리 사회와 정신에 대해 아주 훌륭한 성찰을 내놓는다”, “독자들을 철학과 문학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지평선 너머로 데려가는 책”이라며 그의 메시지에 열광했다. 실패에 대한 불안, 소외에 대한 불안, 도태에 대한 불안…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계속 불안하게 하는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생존사회에서
우리를 병자로 만드는 ‘불안’에 대한 고찰
우리를 집어삼킨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안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은 쫓기듯 주식 투자를 하고,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로 집을 산다. 직장에서는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체력과 정신을 갈아 넣고,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진심 없는 인간관계에 매달리기도 한다. 전에 없던 펜데믹을 겪은 후 상황은 더 나빠졌다. 전쟁, 기후위기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국가나 체제가 우리를 도울 수 없다는 불신은 우리 사회를 더욱 개인주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안개 속에 갇힌 미래를 위한 끊임없는 희생과 막연한 비상체제에 사람들은 지쳐가고, 그 와중에도 늘어만 가는 경쟁과 성과 강박 속에서 연대와 공감은 힘없이 붕괴된다. 실패에 대한 불안, 뒤따르지 못하거나 도태될 거라는 불안이 우리의 자아를 빼앗는다.
이에 한병철은 『불안사회』에서 무엇이 우리를 계속 불안하게 만드는지, 불안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하게 고찰한다. 오늘날의 불안은 사실 영구적인 재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불안의 체제로 인한 것이다. 이 체제는 사람들을 서로에게서 떼어 내 개인으로 존재하도록 만든다. 끊임없는 경쟁과 성과에 대한 강박은 연대를 끊고 개인을 고립시킨다. 불안이 지배한 곳에 자유란 없다. 불안과 자유는 상호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불안은 사회 전체를 감옥, 수용소로 만들어 버린다. 불안은 이정표는 세우지 않으면서, 오로지 경고 표지판만을 세울 뿐이다.
그렇기에 불안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불안에 찬 눈으로 삭막한 미래를 곁눈질할 뿐이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하나의 위기에서 다음 위기로, 하나의 재앙에서 다음 재앙으로, 하나의 문제에서 다음 문제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우울하고 탈진한 미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강렬해진다, 그것이 희망의 변증법이다”
불안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희망’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희망은 낙관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 절망 속에서도 나아가려 애쓰는 마음인 희망과 달리 낙관주의에는 부정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은 ‘전진’이다. 미래도 없고, 연대도 사라지고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희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인에게 ‘희망’에 관한 긍정적인 기억 따위는 없다. 예전부터 희망은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고, 의미 없는 환상을 만들어내며, 실제 삶으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한다고 여겨졌다. 심지어 희망한다는 것은 도피하는 것, 발 디디고 살아야 하는 현재의 삶을 거부하는 것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병철은 이 책에서 희망에 관한 기존의 생각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희망이 소위 ‘회피’하는, 심지어는 ‘배신’한다고들 말하는 ‘삶 자체’ 또는 ‘그 자체로 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저 영양분을 섭취하면 되는, 생존에 필요한 영양만 있으면 되는 삶인가? ‘관념’도 없이, ‘의미’도 없이 그럭저럭 살아지는 ‘그 자체로서의 삶’은 과연 생각할 수 있는, 갈망할 가치가 있는 삶인가?”
_『불안사회』 45쪽
『불안사회』에서는 철학자 스피노자, 비트겐슈타인, 에리히 프롬, 하이데거를 비롯해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 바츨라프 하벨, 아힘 폰 아르님까지 다채로운 인용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비판적으로 인식되었던 희망을 샅샅이 해부해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희망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사회적ˑ개인적 불안이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의 시대에서 연대와 공감, 희망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결코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불안의 공포 대신 희망의 정신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이유다.
작가정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살아 있는 철학자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브라이스가우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와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예술대학교 철학ˑ문화학 교수를 지냈다.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대표작 『피로사회』는 2012년 한국에도 소개되어 주요 언론 매체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사회를 꿰뚫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투명사회』, 『에로스의 종말』, 『서사의 위기』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저자는 최신작 『불안사회』에서 불안이 잠식한 사회에서 끊어져 버린 연대와 만연한 혐오에 경종을 울린다. 짙은 불확실성과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것은 ‘희망의 정신’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희망에 관한 그간의 무지한 착각에서 벗어나 위기를 극복하고, 비로소 생기로운 삶을 되찾을 것이다.
번역 최지수
전문 통번역사이자 박사학위 후 독어학과 통번역학을 연구하고 있다. 한양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출강 중이며, 출판번역 에이전시 글로하나에서 독일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서사의 위기』, 『나를 살리는 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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