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한옥집
2024년 12월 03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1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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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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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거리고 시끌벅적하던 골목길, 사랑스럽고 풍성한 갖가지 푸성귀와 야채들이 자라던 남새밭, 삐뚤빼뚤 짝이 안 맞는 신발이 가득하던 툇마루, 고소한 밥 냄새를 풍기던 가마솥,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를 골라서 내어주는 친절한 귀신이 살던 뒷간…. 한 지붕 아래 3대가 함께 살던 가족, 허물없는 한 울타리 식구와 마찬가지였던 이웃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제민천 주위의 다정한 마을까지.
한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리네가 살아온 정겨운 장면들을 소환한 작가는 “나의 한옥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없을 것 같다.”라며 가장 나다운 모습을 한옥집에서 찾았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가는 이 책을 펴낸 이후 엄마를 주인공으로 한 《오토바이 타는 여자》를 쓰고, 이야기를 품은 ‘집’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촌놈》을 출간했다.
《안녕, 나의 한옥집》은 아련하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작가의 유년 시절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는 존재였는지를 일깨워준다. 동시에 “내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 각자의 정서와 정체성은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 시절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개정판을 내면서. 한옥집 골목길, 그곳에 다시 서다
프롤로그. 그 시절 내가 가장 사랑했던 친구에게
1장. 한옥집의 세계로: 한옥집과 나
골목을 지나 나의 한옥집으로
이보다 강렬한 곳이 또 있을까
까치에게 헌 이를 남기지 못한 자의 저주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그렇게 언니는 완전범죄를 꿈꾸었지만
독일제 파마 약의 비극
초코파이 한 개와 흰 우유 한 개
팔팔 끓던 솥뚜껑에는 왜 앉았을까
언니의 눈물
그 길에는 개가 살았다
꼬리가 긴 아이
그날의 설렘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걸
토끼가 절구를 빻던 달과 깜깜한 밤하늘
2장. 한옥집은 그네들과 함께 꾸던 꿈이다: 한옥집과 사람들
코끝을 간질이는 그 방의 향기와 감촉은 그대로인데
한옥집에서 40년을 산 소년 이야기
오토바이 타는 여자
왕촌 살던 처녀
드가의 그림 속 발레리나 소녀들을 꿈꾸며
동자승 얼굴의 환영은 어디로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금슬 좋은 부부
3장. 한옥집을 나와 거리에 서다: 한옥집과 공주 이야기
이승도 저승도, 삶도 죽음도, 사람도 귀신도
그때 그 책들은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자수가 놓인 옷감들이 바람에 흩날리듯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아카시아꽃 흐드러진 멧돼지 농장에서
환상동화의 한 페이지처럼
아름다운 것을 향하여
웅진과 고마나루와 유년의 신화 속에서
흐르는 제민천의 물소리도 맑구나
빛의 교회
나의 다리는 언제나 그곳에 남아
4장. 한옥집이 써 내려간 이야기: 한옥과 집
그렇게 집은 한 생애를 마감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당 한가운데서 계절을 느꼈다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할머니의 식초병
상실은 그리움으로, 소멸은 추억으로
따스한 봄날의 생일잔치를
그때 그 이야기들은 황홀했었지
그 밤은 깊고 신비로웠다
한옥집 기와 위로 붉은 어스름이 내려앉고
공주에서 제일 좋은 집
잃어버린 것들
내가 살았던 집
에필로그. 유년의 꿈과 환상 가운데 행복했던 시간들
한옥집 안에 들어와 보는 건 근 30년 만이다. 할머니까지 이 집을 떠나신 후 처음이다. 언제나 밖에서만 보고 갔을 뿐 안에 들어올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내게도, 한옥집에게도 용기가 필요했고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오늘 이 시간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바로 그 순간이다. (……) 소리는 점점 커져 자매들의 웃음소리가, 속삭이는 비밀 얘기가, 그 시간들이 짙게 다가온다.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와 한옥집의 여름과 한옥집 밤의 속삭임과 어린 나의 꿈들이. 막내를 부르는 할머니 소리와 친구들의 수선스런 목소리가, 언니들의 재잘재잘 소리가 들린다. 심장이 쿵쿵댄다. 기억이 회오리친다. 눈물이 차오른다.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직도 내 안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던 곳. 그대로 존재하고 있던 이야기. 여기는 나의 원점. 나의 시작이자 나의 끝. p.33
두고 온 삶을 뒤로 하고 이방인의 삶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그저 이대로도 괜찮다 싶던 어느 날, 병이 도졌다. 아니 중병이 시작됐다. 가슴이 먹먹한 병. 그리운 게 많아서 죽을 것 같은 병. 보고픈 이들이 많아서 마음이 터질 것 같은 병. 코로나 때문에 마음대로 오갈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이 먼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나,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글을 써야 한다면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했다.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친구, 나의 한옥집에 대해.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p.36
크리스마스에 뉴욕 맨해튼에 간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안 그래도 화려한 맨해튼의 야경은 불빛으로 더욱 화려해지고, 백화점 앞에 반짝이는 장식들은 세계 최고 디자이너들의 솜씨로 가히 장관을 이루지만 그 어느 것도 30여 년 전 한국의 작은 도시 공주에 생겼던 ‘아트박스’와 ‘바른손팬시’의 아름다움을 이길 수 있는 건 없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의 기억은 그리움의 색과 환상을 입어 아트박스도, 바른손팬시도 더 진한 동경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지금 한국에도 여기 미국에도 그보다 훨씬 더 큰 문구점들이 많지만 나는 여전히 기억 속의 작은 가게를 떠올린다. 지금은 그 자리에 없겠지만, 소녀들의 설렘과 꿈과 두근거림은 아직도 그 자리를 맴돌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p.219
하나의 다리가 내 세상 안에 들어오려면 적어도 몇 번은 두 다리로 건너고, 버스를 타고 수십 번은 지나며, 수백 번은 출렁이는 강을 바라보고 맛보아야만 한다. 그리하여 나의 마음과 하나가 되고, 나의 이야기를 가득 품어줄 수 있어야 비로소 ‘나의 다리’가 되는 것이다. 금강철교과 금강대교는 여지껏 둘이었고 지금껏 둘인 ‘나의 다리’다. 공주를 떠난 뒤로도 지금까지 또 다른 다리가 추가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만큼 원래의 존재가 소중하고 애틋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목록 중 하나에 함부로 무언가를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p.243
내가 사랑하던 집. 나의 유년의 삶과 추억이 가득한 집. 나의 유년과 가장 찬란한 시간을 꽃피우고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해주며 스스로를 지켜온 집은 우리가 그 집을, 장독대와 그 오래된 나무를 버리고 나왔을 때, 스스로의 생애를 이미 마감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집이, 나와 옛 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생명을 갖고 그리움의 색을 입기를 바란다. 사라진 옛집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살아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나의 옛집이 지금 그 집에서 사는 이들과 함께 그의 새로운 생의 주기를 아름답게 가꾸어나가고 있기를 소망한다. p.250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나는 수없이 많은 ‘어린 나’를 만났다. 작은 나를 찾아내서 그 아이를 한옥집 대문을 열고 들여보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저절로 그 아이가 집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하나하나 문을 열고, 빼꼼히 쳐다보고, 대문 밖을 나와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아이가 가는 길은 나의 기억이 되었고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때론 눈을 감고 있어도 눈물이 났고, 눈을 뜨고 있어도 그곳이 보였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실제 만나는 듯도 했다. 꿈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되살려내면서 나는 정말로 꿈 가운데, 환상 가운데 있었다. 돌아갈 수 없을 줄 알았던 유년의 시절 가운데 있었다. p.320
“아, 이런 글이 있었던가!
이런 글을 내가 언제 읽었던가!”
- 나태주 시인
우리가 사랑했던 시절에 관한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우리는 모두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이 책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장면 장면으로 남아 있는 유년의 꿈과 다정함, 고향에 대한 향수를 안겨준다. 마음속 깊은 곳에 본향과 유년, 느림과 불편함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는 우리를 그 시간, 그 장소로 데려다준다. 그 시절로 돌아간 우리는 바쁜 하루하루의 삶에서 잠시 놓여나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지난날 이 책의 작가는 사랑스럽다.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사랑스러움이다. 한옥을 배경으로 한 작가의 다채로운 모험과 경험은 비슷한 일을 겪어본 이도, 한옥에 살지 않았어도 유년 시절을 지나온 이라면 그 시절의 명랑함에 충분히 공감하는 이야기다. 무명실에 묶어 이를 빼다가 꿀꺽 삼켜버리고, 라면 끓이는 솥 주변을 어슬렁대다가 솥뚜껑에 엉덩이를 데고, 치렁치렁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공주놀이를 하고, 야매 미장원에 가서 펌을 하다가 피부 발진으로 고생고생하고…. 잠시 몇십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당신에게 ‘집’은 어떤 존재인가요?
내 이야기를 간직한 집을 지켜내기 위하여
이 책은 단순히 한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소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옥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종적 횡적 인물들의 인생 이야기(2장), 집이 모여 동네를 이루던 마을의 세계(3장), 생명의 탄생과 결혼과 죽음을 겪으며 온전한 집의 형태를 완성해나가는 한옥이라는 집의 ‘집됨’(4장)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한옥에 살았던 이들이 궁금해지고, 충남 공주 제민천 근처 마을에 가보고 싶어진다. 충남 공주의 대표 문인 나태주 시인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의 현장인 공주의 형편은 많이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글 속에는 그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존재한다. 글의 승리요 힘이다. 이거야말로 또 다른 건설이요 창조다. 그리하여 문장은 잔인하지만, 한편으로는 위대하기도 한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 마을, 그 집은 전과 달라졌지만 기억 속의 그곳은 위대하게도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살아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생명체로 여기지 않았던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집 작가는 “집은, 살아온 살아갈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에, 보호하고 지키지 않으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라고 했다. 그에 대답하듯 저자는 한옥을 “나의 첫째이자 마지막이 될 친구”라며, 그를 기억해주고 추억해주면서 집을 보호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래오래 지켜내기 위해 옛 친구를 그리워하듯 안부를 전한다. “안녕, 나의 한옥집”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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