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공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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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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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공익》은 오랜 시간 소수자, 약자와 함께 싸워온 변호사 류하경의 첫 저서로, 스쿨미투 정보공개 청구, 경비 노동자 갑질 사망 사건, 삼성 최초 노조 설립 투쟁 등 직접 변호를 맡았던 굵직한 갈등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 개념을 톺아보는 책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깊은 논의 없이 일종의 당위로서 강요되어 온 ‘공익’의 진짜 의미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저자는 우리가 쉽게 ‘공익’ 사건이라 떠올리는 사건조차도 모두 ‘사익’ 사건으로 수렴한다며, 어쩌면 ‘공익’은 “사회적 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그 추구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일 것이란 도발적 주장을 펼친다. 그렇다면 허용되지 않는 사익이란 무엇인가.
허용되지 않는 사익은 기존 시스템을 흔들고 균열을 내는 사익이다. 국가 운영 방식과 사회 체제에 질문을 던지는 사익이다. 따라서 지배 세력이 볼 때 그 추구 행위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시민의 편의, 사회적 합의, 다수의 행복이라는 정치적 언어를 통해 그 사익들을 불온하고 과격하다고 선동한다. 다수의 공익을 해치는 이기적인 사익이라 낙인찍는다. 장애인의 사익, 아동의 사익, 난민의 사익, 성소수자의 사익이 그러하다. 이 책은 ‘길거리의 변호사’, ‘위험한 변호사’라고 불릴 정도로 투쟁 현장과 가깝게 지내온 저자의 경험을 통해 왜곡되고 둔갑된 ‘불온한 사익’들의 얼굴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저자는 ‘공익’을 완벽히 정의 내리는 것보다 모든 ‘사익’이 공평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경기장을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별 노력 없이도 모두가 귀 기울이는 자의 사익과, 소리 지르고 바닥에 드러눕고 유서를 남겨야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의 사익이 동등한 경기 조건에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 경기장을 평탄하게 만들고자 싸워온 저자의 노력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1장. 공룡과의 싸움―국가는 국민의 공익을 보호하는가
대한문의 아이히만과 피고인이 된 변호사
스쿨미투, 국가는 가해자의 대변인이었다
살려달라 말하니 공무집행방해가 됐다
‘비례위성정당’이 망친 것들
강아지 ‘로마’의 가족 등록 소송기
바이러스가 목소리를 막을 순 없다
2장. 무엇이 공익인가―불온한 사익 투쟁들의 이면
자기 가슴에 칼을 꽂은 철거민
‘영혼 살인’, 경비 노동자의 유언
청소 노동자를 고소한 대학생
메탄올 실명 사건 판결문을 받아 들며
‘공장의 전두환’, 힘센 자는 수단이 많다
세상을 흔든 이마트 노동자들
80년 삼성 ‘흑역사’를 무너뜨린 다윗들
이혼하기 쉬운 나라가 행복한 나라
3장. 나의 사익 투쟁기―변호사를 변호합니다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 패배한다
변호인을 위한 변호
선비와 상인의 경계에서
변호인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나는 왜 로스쿨 개혁 운동에 나섰나
변호사시험 운영 방식과 ‘5탈제’는 위헌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그 이후
때로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최악을 피하는 법
나가는 글―“평화비용”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공익’도 결국 누군가의 ‘사익·이권’이다. 장애인의 사익, 성소수자의 사익, 아동의 사익, 난민의 사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공익’이라고 부르는가? (…) 지배 세력이 볼 때 그 사익 추구가 정치·경제적으로 ‘위험하지 않으면’ 공익이라 부르는 것이 허용된다. 심지어 사람들은 동정하고 박수쳐 응원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이라는 개념은 ‘사회적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위험하지 않다고 보아 그 추구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이다. 이렇게 정의되는 공익의 틀 안에서 하는 활동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류의 투쟁은 이 ‘공익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계속되어 왔다. 만들어진 경기장 안에서의 경기를 넘어서 경기장 자체를 더 넓히는 공사(工事). - 4~6쪽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살기 위해 한 번 고양이를 물 수 있다고 한다. 노점상들은 한 번이 아니라 매일 궁지에 몰려서 덩치 큰 용역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물건들을 파괴당했다. 이러다가는 꼼짝없이 죽을 것 같아서 대항했다. 소리도 치고 밀기도 하고 저항했다.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제발 좀 도와달라고 우리를 좀 살려달라고 외치기 위해 집회를 열었다. 이게 공무집행을 방해한 것이란다. (…) “많이 기대들 하셨을 텐데”라고 말하고 나니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다음에 하려고 했던 말이 “변호사가 능력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고 울어버렸다. 다가오는 사람들 손을 잡고, 안았다. 승패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러움 때문이 더 컸다. - 50쪽
헌법에는 여러 기본권이 명시되어 있는데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어떤 것을 더 우선시할지, 어떻게 조화시킬지 고민하게 된다. 모든 기본권은 소중하고 나름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 사람들은 모임을 피했고 대화도 줄였다. 그러다 보니 모여서만 가능한 일들을 하기 어려워졌고, 해야 하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답답한 경우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으로 집회, 시위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때가 그랬다. (…) 물론 생명·안전권 역시 여느 기본권 못지않게 중요한 기본권이다. 그렇다면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또 다른 하나는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 99~100쪽
노조는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정당한 목적과 ‘평화 집회’라는 정당한 수단으로 쟁의행위를 했다. 그런데 학생 세 명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업무방해죄 형사고소·고발과 민사 손해배상청구까지 하는 일이 발생했다. 노조 쟁의행위의 소음이 수업을 방해한다는 이유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들 학생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는 학생들을 사랑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소박한 마음인 것이고, 사실 미안해해야 할 주체는 학교다. 노동자들을 지나치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게 하고,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이유 없이 묵살했기 때문이다. - 141쪽
충격적인 것은 이 사건으로 언론과 국회에서 난리가 나고 그리하여 노동부의 긴급 점검이 있고 난 뒤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 현장에서 추가 피해자가 또 발생했다는 점이다. (…) 근로감독관은 해당 사업주가 “지난해 말부터 절삭용제를 에탄올로 교체했고 앞으로도 메탄올은 취급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한 것만을 믿고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거짓말이었고 그래서 또 똑같은 실명 피해자가 생겨버렸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 소송 중간에 판사의 조정 지시에 의해 상대 업체들과 보상 금액 수준을 상의하던 시기가 있었다. 변호사들과 식사하던 중 한 노동자가 울부짖으며 말했다. “돈 필요 없어요. 지금 돈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결국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판결 선고가 내려졌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이 사건 발생 원인의 황당함과 업체들의 책임에 대해 엄히 꾸짖었으며 그 결과 판시된 배상 금액은 조정절차 당시의 예상 금액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우리 변호사들 역시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돈이 무슨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 153~154쪽
한번은 규모가 있는 뉴스 방송사에서 프로젝트 자문 의뢰가 왔다. 주말임에도 양해 없는 개인 휴대전화 연락은 차치하더라도 문제가 좀 있었다. 프로젝트 참여 및 자문은 무료로 해주어야 한다는 요구다. ‘공익’, 인권, 빈곤 계층 등 무료 자문 대상 기준에 맞지 않고 귀 방송사 정도면 충분히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도 차고 넘치기 때문에 위 제안은 적절하지 않다고 정중히 답변했다. 방송사의 담당자가 반문하기를, ‘청년 일자리’라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프로젝트인데 무료로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 이에, 나 역시 청년이고 벌이가 시원찮은데 귀사의 제안은 해당 프로젝트 주제도 배반하고 있으므로 유감을 표하며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방송사는 왜 특별한 사정 없이 무료 노동을 요구한 걸까. (…) 변호사의 ‘사’자는 선비 사(士)자다. 판사와 검사는 일 사(事)자를 쓴다. 변호사는 선비와 같이 고매한 이상을 추구하고 도를 닦듯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는 취지의 작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변호사는 고용된 자인 경우 임금노동자이므로 사용자 또는 법인에 이윤을 창출해 주어야 하고, 개인사업자인 경우에는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들의 급여 등 운영비용을 벌고 제 생활비도 구해야 하므로 더욱 상인과 같이 명석한 경제적 판단이 필요하다. - 236~239쪽
기득권 법조인들의 ‘지대추구’, 이것이 로스쿨 및 변호사시험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이다. 마냥 밥그릇 싸움으로만 치부할 일이 결코 아니다. (…) 지금의 방법으로 기존 변호사들이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익 목적의 법조인 양성 제도 자체를 망가뜨림으로써 얻게 되는 ‘반사회적 이익’이다. 법학에서는 이를 두고 ‘사회적 보호 가치가 없는 반사 이익’에 불과하다고 하여 행위 선택 과정에서 무시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하는 자를 제재한다. 변호사는 실력을 키우고 전문 영역을 발굴하거나 직역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관예우, 전관 출신 일부 변호사들의 무책임한 수임과 터무니없는 수임료 책정, 선임계 없는 전화 변론, 브로커를 통한 불법 수임. 이를 근절하려는 노력은 대체 어떤 변호사단체가 나서서 하고 있는가? 시장을 좀먹고 법조인 전체를 욕되게 하는 이런 거악에 대해서는 ‘형님, 아우’ 하면서 감추고 덮으면서, 막 태어나려는 꿈 많은 예비 법조인들을 밟아서 푼돈이나 지켜보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푼돈도 못 지키고 공멸하는 길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 253~254쪽
국가는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는가
골리앗과 맞서 싸운 ‘불온한’ 다윗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기본권이 대치되는 상황에서, 국가는 어떤 입장을 취해왔을까? 1장 ‘공룡과의 싸움’에서는 누구보다 국민의 권익을 앞서 보장해야 할 것 같은 국가가, 역으로 어떻게 자기의 이익을 보전하면서 국민 개인과 갈등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국가는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공권력에서 비롯된 폭력을 사용하거나, 변명하거나, 근거 없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국가가 사회 질서를 빌미로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다. 저자는 2013년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집회에 나가 재판받았던 경험, 변호사 생활 내내 접했던 노점상 투쟁의 풍경을 예로 든다. 경찰 및 공무원은 이들 투쟁을 강압적으로 진압하면서 ‘특수공무집행방해’ 죄목을 들거나, “심히 공익을 저해”하는 경우를 요건으로 하는 ‘행정대집행법’을 적용했다. 즉 투쟁가들이 공적 질서를 방해하고 다수의 공익을 해쳤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박근혜 정권 시절 대한문에서 해고 노동자 강제 진압을 주도하고, 민주노총 사무실을 강제 침탈하기도 했던 경비과장 최성영은 그 사건들 후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경정에서 총경으로 승진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를 폭력 진압하고 해산 명령에 불복종한 노조 간부들을 긴급 체포한 당일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공장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들에서 국가의 폭력은 과연 국민의 ‘공익’을 위한 것이었을까?
우리 사회는 그동안 ‘공익’을 구성하는 요건에 관해 깊이 논의하거나 혹은 그 정의와 조건을 타협하기 위해 대화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국가는 ‘누군가의 사익’을 사회적 합의, 시민의 편의, 다수의 행복이라는 정치적 언어를 사용하여 ‘완전무결한 공익’으로 둔갑시킨다. 심지어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을 ‘공익을 저해’하는 행위라며 강제 진압하고 탄압한다. 이 책의 1장은 우리 사회가 공익을 논의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는 모든 안개를 걷어내고,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탄압되는 개개인의 정당한 사익 추구에 눈뜨게 한다. 따라서 사익과 공익의 추구는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에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나가는 개념임을 깨닫게 된다.
사익과 사익이 맞설 때,
누구의 손을 들어야 하는가
개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주체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라면, 그 논의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이론적으로 개인의 권리 및 기본권은 그 자체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는 이권 갈등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생산적인 논의를 어려워한다. 2장 ‘무엇이 공익인가’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사익이 부딪히는 현장을 살펴보면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공익 추구와 부합하는 방향일지 탐구한다. 스쳐 지나가는 인상 비평이 아니라, 저자가 실제 사건을 경험하며 쌓아온 치밀한 근거와 논리가 인상 깊다.
대표적인 예로 거대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이권이 대립하는 현장이 있다. 저자는 삼성 80년 무노조 ‘신화’를 종식시킨 삼성 최초 노조 조합원들을 변호한 경험부터, 휴대전화 부품 공장 내 안전 시스템 부재로 실명하게 된 2~30대 노동자들과 함께 싸운 경험까지 상세하게 풀어낸다. 두 사건은 노동자가 ‘이윤 추구’를 최고의 목적으로 두는 거대 기업에 맞서 안전한 환경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노동할 권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유사한 사건들에서 기업과 고용인이 아닌,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 방향일 것이라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대다수가 이러한 이권 투쟁을 ‘선’과 ‘악’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통 소수자, 약자의 투쟁에서 이 같은 관점이 주로 발견되는데, 이 경우 투쟁하는 이들에게 소수자다움, 약자다움을 기대하게 된다. 이들이 정해진 틀에서 벗어났을 때 손쉽게 ‘떼쓴다’, ‘욕심이 많다’, ‘위험하다’ 낙인찍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22년 연세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이 쟁의 행위를 하다가 몇몇 학생들에 의해 ‘수업권 방해’ 명목으로 고소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 학생들은 악하고, 노동자들은 선한가.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쟁의권을 보장하는 것이 ‘공익’인가. 섣불리 답을 내리기보다 갈등의 원인과 구조를 다면적으로 접근해 파악해야 한다. 해당 사건에서 저자는 갈등의 원인이 정당한 학습권을 주장하는 학생이나 노동권 보장을 외치는 청소 노동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이들을 고용하고 관리하는 원청 학교와 용역업체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 상황을 바라볼 때, 그 싸움이 동일한 조건하에서 이뤄지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삼성 노조 투쟁 중 고 염호석 조합원의 장례식장에서 경찰은 유족을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해 합의금을 제시하는 등 사측 대리인처럼 굴었다. 이처럼 힘센 자는 수단이 많다. 돈과 권력, 심지어 국가까지 그들을 보호한다. 저자는 각자의 이권이 동일한 경기장에서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우리 사회의 법 제도와 정치가 힘과 수단이 부족한 이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수자, 약자의 이권 투쟁에 귀를 더 기울이고, 함께 싸우는 무기가 되어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언젠가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사익을 위해 투쟁하는 순간을 맞닥뜨릴 것이다. 이때 우리가 부지런히 만들어온 평등한 경기장이 나의 사익 투쟁 역시 지켜줄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세상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고 있는 훌륭한 ‘사익’ 투쟁가들을 응원한다.
선비와 상인의 경계에 선 변호사,
한국 사법 시스템을 향한 이권 투쟁을 벌이다
한국 사회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은 돈과 권력을 지닌 기득권이라 여겨진다. 때문에 변호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쟁을 벌인다고 하면 힘 있는 자의 욕심이라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3장 ‘나의 사익 투쟁기’에서는 저자가 노동자이자, 자영업자이자, 또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개인으로서 벌여온 여러 투쟁의 현장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오랜 시간 ‘공익’변호사로 불려온 저자 역시 ‘불온한 사익’을 추구하는 투쟁가였음이 드러난다.
하나의 예로, 저자는 로스쿨 2기 입학생으로서 ‘로스쿨 개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로스쿨은 기존 사법시험의 부작용을 타파하고자, 변호사 배출 방식을 ‘수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전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변호사시험의 합격 정원을 입학 정원 대비 75%로 고정한 탓에, 현재는 그 합격률이 50% 내외로 낮아졌다. 처음 로스쿨의 취지는 사라지고 또다시 학생들은 무한경쟁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변호사시험에 다섯 번 불합격하는 경우 영영 응시를 제한하는 ‘5탈제’는 더 심각한데, 학생들의 ‘직업선택의 자유’까지 침해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불합리한 제도가 유지되는 것일까?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기성 법조인들의 이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로스쿨생의 이권 투쟁을 막기 위해 로스쿨을 ‘귀족스쿨’, ‘돈스쿨’이라 거짓 선동하기도 한다.
저자의 사익 투쟁기를 통해 정말 다양한 현장에서, 심지어 같은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 내에서도 치밀하고 치열한 이권 투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저버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사익을 보장하는 것이, 꼭 다른 누군가의 사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며 투쟁의 현장에서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하고자 마음 다해 시도할 때 그 공존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옳은 사익을 분간해 내고 그 타당함을 판단하는 적확한 판결문이 아니라, 당장 답을 내릴 수 없어도 끊임없이 부딪히고 발화하는 시끄러운 대화의 장이 아닐까. 점차 첨예해지는 한국 사회의 이권 갈등 속에서 쉽게 선동되거나 휘둘리지 않고자 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권이 대화를 통해 공존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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