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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안보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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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0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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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1.93MB)
ISBN 9791167902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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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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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쉰세 번째 소설선, 안보윤의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가 출간되었다. 2024년 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신작은 ‘세상 모든 곳의 뒷면’일 뿐으로 존재감 없이 살았던 수영이 무작위적 폭력성을 가진 언니 수미, 이타적인 행위를 가장한 폭력성을 지닌 노견 클리닉센터 원장의 모습을 통해 선택 불가했던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변화를 갖는 내용의 소설이다.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9
작품해설 178
작가의 말 192

* 나는 전수미를 전수미라 부른다. 종종 수미년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미년이 또 사고를 쳤구나. 그런 대사를 늘 입 안에 담고 지냈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전수미 때문에 달력 뒷면에 인쇄된 그림처럼 살았다. 백지로 남겨두기 뭣해서 인쇄는 했지 만 1년이 다 가도록 누구 하나 뒤집어보지 않는 뒷면 그림 말이다. 달력을 버리기 직전에나 성의 없이 넘겨보다 이내 덮어버리게 되는 조악한 것. 그럼에도 1월에는 해돋이를, 3월에는 벚꽃을, 9월에 는 보름달을 채워 넣는 악착같은 마음으로 나는 살았다.
-9-10쪽

* 엄마도 도망가고 싶어. 아빠도 머리가 너무 아프다. 지금은 언니가 큰일이잖니. 오늘 하굣길에 언니가 자전거를 다섯 대나 부쉈다는 얘기 들었지? 경찰서에 학교에 수리점까지 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우선 언니부터 해결하고 너는 조금만 뒤에. 우리 수영이는 똑똑하니까 아빠 말 이해하지? 엄마가 믿을 사람은 수영이 너뿐이야. 알지?
-27쪽

* 돌이켜보면 전수미는 자신을 해치는 일만큼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수치와 모욕을 견디는 건 항상 주변인들이었고, 평안을 구걸하는 것도 항상 주변인의 몫이었다. 멋대로 사람을 휘둘러 지배력을 확인하는 것,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것. 전수미는 엄마 아빠의 불안을 양분 삼아 하루가 다르게 전능해진 셈이었다.
-32쪽

* “저 쿠팡 물류센터에서 3년 일했어요. 인내심, 끈기, 체력, 정신력, 다 자신 있습니다.”
“그런데 왜 3년만 했어요?”
“어깨 인대가 끊어져서 잘렸어요.”
물류센터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그랬다. 여긴 지옥이지만 여기서 버텼다는 건 굉장한 이력이 될 거라고. 어디 가서 일하든 쿠팡에서 견뎠다는 말만 하면 돼. 인대가 끊어졌어도 산재 처리 안 받았다고,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 한 번도 결근하지 않고 매일 그 자리에서 일만 했다고 말해. 전부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그들의 말대로 했다. 말하면서 잠깐 의아해지기는 했다. 그토록 완벽한 지옥을 견뎌냈다고 말해야 채용될 수 있는 곳이라면 이곳도 그에 못지않은 지옥인 거 아닐까.
-45-46쪽

* 개들은 모두 조용하고 안전하게 죽는다.
사랑하는 주인의 품에서,
대부분 금요일 밤에.
왜 궁금해하지 않을까. 이곳의 개들이 왜 금요일에 많이 죽는지. 사실은 여러 요일이 있다. 자영업자의 개는 월요일에, 회사원의 개는 금요일에, 프리랜서의 개는 수요일과 목요일 한낮에 죽는다. 그것을 나는 안다. 소란도 알고 야간근무하는 하림도 알 것이다. 수의사가 상주하는 돌봄센터니 더없이 명확한 치료와 돌봄이 이루어지겠지. 사실이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한다. 하지만 보호자들은 진짜로 모르는 걸까. 개들을 치료하는 것도 개들을 안락사시키는 것도 모두 수의사의 일이다.
-53-54쪽

* 처음엔 다들 저렇다. 애틋해하고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하고 당장이라도 개를 끌어안고 도망칠 것처럼 여지를 남긴 채 머뭇거린다. 그러다 곧 멀어지고 둔감해지고 뜸해지고 어디에도 발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보호자들은 기계적으로 홈캠을 돌려보며 우리에게 따진다. 제대로 케어하고 있는 거 맞아요? 왜 우리 개만 이렇게 우울해 보여요? 개가 우울해하지 않도록 자주 면회를 와달라 부탁하면 더 큰소리를 낸다.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으니 거금을 들여 센터에 맡기는 거잖아요. 내 삶이 얼마나 고된지 알기나 해요?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당신이 짐작이나 할 수 있겠어? 기껏해야 개 똥오줌이나 치우고 있는 주제에.
-74-75쪽

* 나는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고 제일 먼저 무시당하고 항상 크게 다쳤다. 급여의 상당 부분을 떼어먹히고 손쉽게 교체당했다. 그래도 나는 매일같이 노력했다. 전수미와 살면서 유일하게 배운 것은 그것뿐이었으니까. 3월에는 벚꽃을 9월에는 보름달을 12월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려 넣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살았다. 악착같이 버티는 사람이 제일 참담하게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117쪽

* 반려동물도 가족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같잖은 소리라고 생각해요. 의사결정권도 선택권도 권리행사능력도 없는 게 무슨 가족인가요. 개들이 짖거나 물건을 부수면 인간들은 아무렇지 않게 개를 내다 버립니다. 개가 이웃을 물기라도 하면 세상 합당한 이유를 찾았다는 듯 안락사시켜요. 그저 시간이 흘러 개가 늙었을 뿐인 데도 인간들은 억울해합니다. 개한테서 악취가 난다고, 털이 빠지고 피부병이 생겨 흉측해졌다고, 돈이 많이 든다고 화를 내요. 세상에 그런 가족이 어딨습니까.”
-127쪽

* 끝까지 비겁하구나,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상상에서조차 뒤로 물러서 있다. 보호자가 알아서 진실을 캐내기를, 직접 나를 응징하러 이곳까지 오기를 다만 기다리고 있다. 구 원장에게 했던 거짓말이 떠올라 얼굴이 뜨거워진다. 나는 고작 이 정도의 인간이니 또 그런 짓을 할지 모른다. 구 원장에게 했던 것처럼, 나를 찾아온 보호자에게 뻔뻔한 얼굴을 하고 또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제가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지금 거울을 보면 그 안에 있는 건 나일까 전수미일까. 몸속이 소리 없이 일렁인다. 더듬이들이 진저리치듯 떨고 있다.
-157쪽

* 잘나가던 업체가 갑자기 망하는 건 으레 그런 이유다. 반윤리적인 행위와 내부 고발. 나는 구 원장의 돌봄센터가 망하길 바란다. 그러니 기꺼이 내부 고발자가 될 것이다. 나는 전수미가 자신이 저지른 만큼의, 꼭 그만큼의 형량을 받길 바란다. 그러니 기꺼이 가족 고발자가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는 나 자신의 고발자도 되어야 한다. 태풍이의 병증을 내가 어떤 식으로 외면했는지, 더 나아가 그날 자작나무 숲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자가 내게 했던 일과 내가 남자에게 했던 일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전부 설명해야 할 것이다.
-183-184

세상 모든 곳의 ‘전수영’들에게 보내는 헌사

‘전수미’의 그림자 속에서도 꿋꿋하게 허리를 펴고 자라난 세상 어느 곳의 ‘전수영’들은 또 다시 악착같이 나타날 것이고 어떻게든 고발을 이어갈 것이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뒤틀린 세상 속엔 이미 나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탓에 지금 이곳의 고발자는 곧 자신의 치부까지도 들춰낼 결단을 동반한 “나 자신의 고발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 최소한 “전수미가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살아왔”던 ‘나’의 끈덕진 고집처럼 누군가의 오기와 진심은 다른 이의 용기가 되어 바깥으로 조금씩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선과 악에 대한, 불가해한 악의와 위험한 매혹으로 똘똘 뭉친 ‘전수미’에 대한 서사가 아니다. “고작 이 정도의 인간”, 한참을 고뇌하고 방황한 뒤에야 가까스로 최소한의 인간을 지켜낸 세상 모든 곳의 ‘전수영’들에게 헌사된 이야기이다.
-조대한, 「작품해설」 중에서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핀 소설〉, 그 쉰세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분기별 출간하는 것으로,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출간되었거나 출간 예정되어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00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2018년 4월 25일 출간)
002 박형서 『당신의 노후』(2018년 5월 25일 출간)
003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2018년 6월 25일 출간)
004 윤성희 『첫 문장』(2018년 7월 25일 출간)
005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2018년 8월 25일 출간)
006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2018년 9월 25일 출간)
007 정용준 『유령』(2018년 10월 25일 출간)
008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2018년 11월 25일 출간)
009 김성중 『이슬라』(2018년 12월 25일 출간)
010 손보미 『우연의 신』(2019년 1월 25일 출간)
011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2019년 2월 25일 출간)
012 최은미 『어제는 봄』(2019년 3월 25일 출간)
013 김인숙 『벚꽃의 우주』(2019년 4월 25일 출간)
014 이혜경 『기억의 습지』(2019년 5월 25일 출간)
015 임철우 『돌담에 속삭이는』(2019년 6월 25일 출간)
016 최 윤 『파랑대문』(2019년 7월 25일 출간)
017 이승우 『캉탕』(2019년 8월 25일 출간)
018 하성란 『크리스마스캐럴』(2019년 9월 25일 출간)
019 임 현 『당신과 다른 나』(2019년 10월 25일 출간)
020 정지돈 『야간 경비원의 일기』(2019년 11월 25일 출간)
021 박민정 『서독 이모』(2019년 12월 25일)
022 최정화 『메모리 익스체인지』(2020년 1월 25일)
023 김엄지 『폭죽무덤』(2020년 2월 25일)
024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2020년 3월 25일)
025 이영도 『마트 이야기-시하와 칸타의 장』(2020년 4월 25일)
026 듀 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2020년 5월 25일)
027 조 현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2020년 6월 25일)
028 백민석 『플라스틱맨』(2020년 7월 25일)
029 김희선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2020년 8월 25일)
030 최제훈 『단지 살인마』(2020년 9월 25일)
031 정소현 『가해자들』 (2020년 10월 25일)
032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2020년 12월 25일)
033 최진영 『내가 되는 꿈』 (2021년 2월 25일)
034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詩』 (2021년 4월 25일)
035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2021년 6월 25일)
036 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2021년 8월 25일)
037 우다영 『북해에서』 (2021년 10월 25일)
038 김초엽 『므레모사』(2021년 12월 25일)
039 오한기 『산책하기 좋은 날』(2022년 2월 25일)
040 서수진 『유진과 데이브』(2022년 4월 25일)
041 한정현 『마고麻姑-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2022년 6월 25일)
042 이주란 『어느 날의 나』(2022년 8월 25일)
043 천선란 『랑과 나의 사막』(2022년 10월 25일)
044 이서수 『몸과 여자들』(2022년 12월 25일)
045 천희란 『K의 장례』(2023년 2월 25일)
046 문진영 『딩』(2023년 4월 25일)
047 임솔아 『짐승처럼』(2023년 6월 25일)
048 강화길 『풀업』(2023년 8월 25일)
049 김지연 『태초의 냄새』(2023년 10월 25일)
050 이장욱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2024년 1월 25일)
051 김 솔 『행간을 걷다』(2024년 4월 25일)
052 김멜라 『환희의 책』(2024년 7월 25일)
053 안보윤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2024년 10월 25일)
054 예소연(근간)
055 박지영(근간)
056 위수정(근간)


현대문학 × 아티스트 윤석남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윤석남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중퇴하고, 프랫 인스티튜트 1년 과정과 아트 스튜던트 리그 오브 뉴욕을 수료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을 개척했으며, 회화, 설치, 조각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이루었다. 서울, 베니스, 뉴욕, 토리노, 시드니, 상하이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으며, 영국 테이트갤러리, 서울 88올림픽공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호주 퀸즈랜드 아트 갤러리, 일본 후쿠오카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중섭미술상〉 〈국무총리상〉 〈김세중 조각상〉 〈이인성 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민훈장모란장〉을 수훈했다.

작가정보

저자(글) 안보윤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나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 7의 고백』 『밤은 내가 가질게』, 중편소설 『알마의 숲』,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밤의 행방』 『여진』 등이 있으며, 〈자음과모음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무덤이나 납골당에 무기한 수납되고 싶지 않다. 3년쯤 지나면 추모 팻말을 뽑아버리는 수목장은 없을까. 죽음 이후 아무것도 갱신할 필요가 없는 곳. 그런 곳을 찾아달라고 하면 나의 언니는 서운해하고 많이 울고 내게 너무한다고 욕을 하다 끝내는 찾아줄 것이다. 도움을 청할 가족이나 친구가 주변에 있으신가요? 네, 있어요. 틀림없이 있어요.

그러시군요.
그것 참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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