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평전
2024년 10월 31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6월 2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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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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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회찬의 62년 동안의 삶을 따라가며 휴머니즘, 노동운동, 진보정치에 대한 그의 헌신과 열정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완결되지 않은 채 끝난 노회찬의 삶과 꿈을 되새기고,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자신의 꿈을 고통스럽게 밀고 나갔던 노회찬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기록을 시작하며
프롤로그: 새로운 정치언어의 탄생
제1장 “나를 키운 8할은 학교였다”
1950∼1972년: 2개의 고향, 반항적 모범생
어머니의 피란길 / 아버지, 하이네를 사랑한 식민지 청년 / 약방 집 아들 / 모범생과 반항아 사이 / 정의감과 무력 행위 / 가난을 벗어나다 / 부산중의 ‘노괴물’ / 부산고 낙방 미스터리 / ▂ 노회찬 가족사의 잃어버린 고리, 실향사민
제2장 첼로와 유인물
1972∼1975년: 탈출, 자유, 질풍노도의 3년
1972년 10월 17일 / 낙방의 행운 / 외삼촌의 아우라, 조카를 물들이다 / 14년 후 세계정세를 전망한 까닭 /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잡지 한 권 / 화동에서 평생 벗들을 만나다 / 4·19묘지 참배를 제안하다 / 세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소년 / 노괴물에서 노지심으로 / 함석헌, 선우휘, 김상현 / 유신 1주년 기념 ‘거사’ / 소년 노회찬의 ‘잡설’ / 새해 첫날 정치를 생각하다
소년들을 투사로 만든 시대 /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 입시생
제3장 참당암의 결의
1976∼1983년: 삶의 목표를 세우고 ‘민중의 바다’로
해변 도시의 젊은이들 / 스무 살의 일기 / ‘의지를 앞세우지 않는 직업전투원’ /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생활 / 선운사 참당암에 간 까닭 / 노동 현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다 / 구원과 깨달음 / ▂ 의형제 김종해
제4장 지하에서 꿈꾼 지상의 혁명
1983∼1992년: 투쟁과 사랑으로 뜨거웠던 젊은 날들
조직책 노회찬을 기억하는 사람들 / 주안과 하인천을 무대로 / 어머니의 스크랩북 / 인천, 한국의 페테르부르크 / ▂ 정파의 탄생 / 지상으로 올라온 투쟁 / 인민노련을 결성하다 / 1987년 대통령 선거 / 연애 그리고 결혼 / 인민노련의 기관지 / “바다가 보고 싶다” / 감옥에서 보낸 휴식의 시간 / 해바라기를 기르며 / 감옥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 / ▂ 한국사회주의노동당과 신노선
제5장 창당으로 가는 여정
1992∼2000년: 흔들림 속의 전진, 창당을 위한 파종
백의종군, 다시 시작하다 / 역사적 낙관주의자 / 동지는 간데없고 / 40대 위기론을 ‘떠벌리고’ 다닌 까닭 / 『매일노동뉴스』 창간 / 노무현과 노회찬이 같은 당? / 나이 마흔에 떠난 첫 해외여행 / “권 위원장님, 대선에 나가시죠” / ‘국민승리21’, 실패가 남긴 소중한 성과들 / 위기의 부부 / ▂ 혁명은 CMS에서
제6장 민주노동당 창당과 일생일대의 승부
2000∼2004년: ‘쇄빙선’ 리더십, 여의도 상륙 작전 진두지휘
“내 모든 시간을 지배한 진보정당” / 민주노동당호에 오른 젊은 선원들 / 2000년 총선, 씨앗을 심다 / 1인 2표제, 한국 정치사의 일대 사건 / “눈떠보니 제3당… 우리도 미래가 있구나!” / 100만 표를 넘겨라 / 보수 양당의 진보정당 봉쇄 / 노무현 탄핵 폭풍, ‘해석 투쟁’에서 승리하다 / 불판을 타고, 탄핵의 강을 넘다 / 상선약수 리더십
제7장 눈부신 활약과 분당의 아픔
2004∼2008년: 성공-실패, 승리-패배의 롤러코스트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날 / 초선 의원 노회찬의 아주 오래된 꿈 / 정치인가, 정책인가 / 법사위 보이콧 / 뜨거운 주한미군 현안, 집요한 추궁 / 노회찬의 ‘현안 정치’ / 삼성 X파일, 7년 싸움의 시작 /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를 입증하다 / 몰래 떠난 여행 / 민생특위, 상인들의 폭발적 반응 / ▂ 노회찬의 법안들 / 아픈 곳이 중심이다 / 낮은 곳, 소수자들과의 연대 / 소통과 공감의 정치인 / 평양 방문 / 대통령 후보 출마는 의무 / 노회찬의 제7공화국 / 뜻밖의 패배 / 초라한 대선 성적표 / 분당의 소용돌이 / ▂ 분당에 이르기까지
제8장 진보신당과 주체의 재구성
2008∼2012년: 정당의 이합집산 속 ‘생활정치’ 실천
첫 지역구 도전과 석패 / 처음으로 당대표를 맡다 / 중학생도, 동네 할머니도 찾아오는 당 / 스마트폰에 반한 ‘남자가 봐도 멋진 남자’ / 서울시장 선거, 평생 먹을 욕을 다 먹다 / 난생처음 청바지를 입다 / 대표직에서 물러나다 / “나를 용서하지 말라” / 노회찬과 유시민 / ▂ 진보정당 통합의 막전 막후
제9장 ‘정치적 사형’ 그리고 부활
2012∼2016년: 사민주의와 진보의 ‘세속화’를 내세우다
재선 의원이 되다 / ▂ 부정선거 소용돌이에 빠져 다시 침몰하다 / 노회찬의 마지막 호소 / 보좌관이 고마워한 이유 / 진보정의당 출범과 6411 버스 연설 / 2012년 대선, 출마의 뜻을 접은 까닭 / ‘정치적 사형’ 선고 / 사민주의를 말하다 / 노회찬의 ‘슬기로운 이중생활’ / 동작구 재보궐선거 석패 / 일본과 영국을 여행하다 / 진보의 세속화 / “집권해야 혁명할 수 있다” / 노회찬과 심상정 / 창원으로 가다
제10장 노회찬의 정신과 이념
휴머니즘-사회주의-사민주의
휴머니즘과 민중성 / 사회주의와 급진성 / 사민주의와 현실성
제11장 너무 짧았던 마지막 봄
2016∼2018년: 당당한 전진을 위한 ‘멈춤’
다시 법사위로 / 촛불혁명과 탄핵 / 대선에 불출마하다 / ▂ 이재영과 오재영 / 노회찬이 눈물 흘릴 때 / “협치하려면 문서화해야 한다” / 적폐청산에 대한 노회찬의 생각 / 정의당의 개헌안 ‘국민헌법’을 만들다 / 공동교섭단체 원내대표를 맡다 / 지방선거와 대통령의 제안 / ▂ 노회찬과 연합정치 / 드루킹과 특검 / 워싱턴에서 인민노련 얘기를 하다 / 귀국, 그리고 노회찬의 마지막 하루 / 닷새 동안의 장례식
에필로그: ‘백척간두’에서 내디딘 한 걸음
미주
노회찬이 걸어온 길
도움 주신 분들
노회찬은 1980년 광주의 비극을 목격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광주항쟁 때 부산 집에 있었다. 당시 부산에서는 일본 NHK 전파가 잡혔다. 일본 방송을 통해 광주의 참상을 접하면서 그는 광주 시민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 광주항쟁이 군부에 의해 진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회찬은 혼자만의 진혼제를 올리기 위해 광주에 갔다. 그곳에 다녀온 노회찬이 가까운 고교 친구 최만섭에게 한 말이다.
“내가 마음이 힘들어서 광주를 다녀왔다. 충장로와 금남로 술집을 순회하면서 일부러 고향 사투리를 쓰면서 ‘부산에서 왔습니다’ 하니까 그분들이 내 말 듣고 따뜻하게 맞아주시더라.”
--- 본문 125쪽
가을이 왔다. 몇 차례 밟히고 뽑히기도 했던 해바라기는 어느덧 씨를 맺기 시작했다. 한 번 뽑혔을 때 가운데 큰 줄기가 꺾이는 바람에 선산의 등 굽은 소나무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늦가을 찬 기운에도 씨앗이 알차게 여물어갔다. ... 그 봄에 노회찬은 출소했고, 뽑히고 밟히면서 자란 그 해바라기 씨앗 몇 개를 가지고 나와서 부산집 마당에 심었다. ... 1994년 노회찬이 진보정당 건설의 전망이 잘 보이지 않아 어려움을 겪던 시절, 그는 청주교도소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해바라기를 떠올리면서 이렇게 기록했다. “해바라기를 길러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해바라기는 어떤 땅에서도 다 잘 자란다. 그 자태는 숱한 잡종교배 끝에 만들어낸 화려한 꽃에 비할 수 없지만, 그 열매는 어떤 화초보다도 크고 풍성하다.
--- 본문 186쪽
아버님, 어머님!
인간이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을 근절시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그런 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로 저의 직업입니다. 이것은 무슨 이상한 사상에 물든 결과가 아닙니다. 義(의)롭게 살아야 한다. 불의와 싸우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개인의 출세와 영달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살아야 한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국민학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개근상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면서 배운 내용이며 또 그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온 것들입니다.
--- 본문 191~192쪽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오십 대, 육십 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 본문 430~431쪽
“인간이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을 근절시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그런 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로 저의 직업입니다.”(1992년 부모님께 보낸 옥중편지에서, 본문 191~192쪽)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노회찬의 삶을 집대성한 『노회찬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기획한 노회찬재단은 노회찬의 말과 글, 행적을 모아 ‘노회찬 아카이브’를 구성하였으며, 저자 이광호는 여기에 노회찬의 가족, 동지, 친구들의 기억을 보태 방대한 원고를 정리하였다.
노회찬의 삶을 노동운동과 완전히 분리하여 서술할 수는 없으나, ‘운동사’ 그 자체가 아닌, 이러한 운동의 흐름을 직접 겪어낸 노회찬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 노회찬의 62년 동안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보여준 휴머니즘, 노동운동 및 진보정치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라는 원칙을 적용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노회찬의 고민과 그 과정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결단, 그에 따른 인간적 고뇌와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담았다. 또한 ‘2023년 현시점의 정본 전기’를 지향하며 노회찬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현재 사회 상황에 적합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노회찬이 학생운동을 넘어 노동운동에 뛰어들고, 투쟁과 사랑으로 뜨거웠던 젊은 날들을 거쳐, 이후 한국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진보정치에 몸담기까지, 그가 경험하고 성찰하며 행동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휴머니스트 노회찬은 지금 뭐라고 말할까?”
노회찬의 삶을 통해 엿본 그의 단면은 독재에 저항하고 억압과 착취에 분노한 휴머니스트다. 혐오와 갈등, 차별과 편견, 냉소와 체념을 발견하기가 무척 쉬워진 사회. 인간에 대한 사랑이 더욱 절실해진 지금이다.
노회찬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최근 부쩍 첨예해진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라면 우리와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지금 노회찬이라면 뭐라고 말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된다. 이 질문은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자는 호소이며, 연대를 요청하는 메아리다.
이 책을 통해 완결되지 않은 채 끝난 노회찬의 삶과 꿈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내고,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고통스럽게 밀고 나갔던 인간 노회찬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앞세우는 노회찬 정신은 ‘평등과 공정’이다. 노회찬 하면 떠오르는 ‘삼겹살 불판’이나 ‘6411 버스’가 그의 생각을 전부 설명할 수 없듯이, 노회찬의 정신을 한 가지 단어나 사상으로 특정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나, 평등과 공정이 현재 사회에 절실한 가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가로막는 불평등과 불의가 여전히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평등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노회찬의 직업이었고, 그 바탕에는 휴머니즘이 있었다. 이 책은 노회찬의 휴머니즘이 “구체적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휴머니즘이었다”(본문 479쪽)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노회찬, 우리가 모른 노회찬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사회·정치운동을 직업으로 삼은 반항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2018년 7월의 어느 날.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복도에는 조문을 하러 온 사람들의 긴 줄이 계단으로 타고 층층이 이어졌다. 노회찬을 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먼저 온 사람 나중 온 사람만 있을 뿐 윗사람 아랫사람은 없어서 국회의장도 차례를 기다려 조문을 했다. 고인을 잃은 안타까움을 간직한 채 저마다 소곤소곤 적당히 복작대는 분위기에는 저잣거리부터 국회의사당까지 평등을 실천하려던 고인의 뜻이 어린 듯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친구 같았던 정치인을 떠나보냈다.
노회찬의 삶은 어땠을까? 뭇사람들에게 익숙한 건 국회의원으로서의 그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모범적인 학생이기도 했고, 시험에 낙방해 분루를 삼킨 수험생이기도 했으며, 어려서부터 사회변혁을 꿈꿨던 될성부른 혁명가이기도 했다.
노회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과서다. “인류가 현재까지 성취해낸 자연, 인간, 사회에 대한 과학적 지식, 보편적 가치와 철학으로 채워진 책.”(본문 43쪽) 이것이 노회찬이 말하는 교과서였으며, 그는 자신의 삶에 교과서가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 바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정의감과 인류애는 확고한 가치로 그의 내면에 자리 잡았다.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하고 이른바 ‘10월 유신’을 발표한 날, 열여섯 노회찬은 부리나케 집으로 가 교과서를 펼쳤다. 교과서에는 그가 생각한 대로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날로부터 1년 후인 1973년 11월 29일.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유신독재 반대 유인물을 제작하여 살포했다. “소년들을 투사로 만든 시대”(본문 105쪽)에서 노회찬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는 ‘반항적 모범생’이었다.
노회찬만큼 운동과 투쟁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라면 대학생 시절에도 학생운동으로 이름깨나 날렸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대학생이라는, 당시로선 특권적일 수 있는 지위를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저항과 변혁의 맹아는 노동 현장에 있다고 판단하고 일찍부터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1979년에 대학에 입학했으나 용접을 배우러 다녔고, 83년에 용접 자격증을 따 서울, 부천, 인천의 공장에서 일을 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84년부터는 노동 현장으로 가는 대학생 운동가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으니 노회찬은 그보다 조금 빨랐던 셈이다.
그가 얼마나 철저히 노동자로서 생활했는지는 아내와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그의 아내 김지선 씨조차 부산의 시어머니를 만나서야 남편이 고려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정도였다. 김 씨도 당시 내로라하는 노동운동가였고, 비혼으로 운동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노회찬의 절절한 청혼에 마음이 움직여 1988년 부산의 시댁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그해 12월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1987년 6월 항쟁은 제도적 민주화의 길을 살짝 열어주었지만 투쟁의 현장은 여전히 엄동설한이었다. 정부는 여전히 노동조합을 좌경 세력으로만 치부하며 탄압을 했고 노동운동가들은 언제 체포영장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활동을 해야 했다. 노회찬 역시 1989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대공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당시 면회가 금지되었지만 김지선 씨는 매일 홍제동 경찰청 대공분실을 찾아가 기어이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부는 경찰이 알지 못하게 동지들한테 전할 비밀 쪽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는 2년 4개월 남짓 되는 기간 노회찬은 어머니에게 83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두 배가 넘어 172통에 이른다. 비록 징역살이를 하고 있지만 올바른 일을 했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다고 결연한 ‘위로’를 담은 편지글 말미에는 면회 오실 때 멀미하시지 않게 ‘귀밑에’를 챙기라는 노회찬 특유의 잔정이 서려 있다.
진보정당 역사와 얽힌 삶의 여적
1990년대 노회찬의 삶은 영화로우면서도 안타깝기도 한,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진보정당의 역사와 겹쳐 펼쳐진다. “불판 갈아보자”는 촌철살인으로 하룻밤 새 화려하게 떠오른 정치 신인으로 비쳤지만 그 뒤에는 기나긴 노력과 활동, 공부가 있었다. 거대정당들에 비하면 덜 알려진 소수정당, 진보정당의 역사가 노회찬의 삶과 얽히고설켜 있음을 평전은 잔잔히 풀어내고 있다.
노회찬은 모범생이자 반항아였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 이미 모두 알고 있었던 가치를 당당히 외치고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사회가 불의하면 싸우는 게 당연한, 그게 모범이라고 생각한 반항아였다. 그의 부모님이 함경남도 흥남에서 어떻게 피란해 부산까지 오게 되었는지, 노회찬은 부산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한쪽 가족 이야기의 실종이 한국 현대사와 어떻게 엮여 있는지, 어떻게 첼로와 책을 좋아하는 모범생이면서 반항아인 소년으로 자라게 되었는지도 평전은 새로운 자료와 증언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노회찬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억할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노회찬 평전』이 그의 삶을 톺아보는 여러 평가 중 하나일 뿐 노회찬 전기가 아닌 이유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우리의 이웃으로서, 일터의 노동자로서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말들을 나누었는지를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는 것은 그의 삶을 평가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터이다. 감히 독자에게 권하건대 조금 더 알아도 좋다. 그럴 만한 사람이다, 노회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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