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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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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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헌책방의 주인이 된다면?
다카시마 산고. 평생 홋카이도에서 살다 하루아침에 도쿄 진보초 거리의 헌책방 주인이 되었다. 책방 이름은 ‘다카시마 헌책방’.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가 가족과는 드물게 왕래하며 결혼도 하지 않고 수십 년간 혼자서 책방을 운영하던 오빠 다카시마 지로가 갑작스럽게 죽었기 때문이다. 산고는 오빠가 살던 집에 머물며 그곳에 남겨진 살림들을 보고, 그간 오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해볼 뿐이다. 마침내 헌책방 문을 다시 여는 날. 평소 책 읽는 일이야 좋아했지만 장사 경험도 없고 도쿄 생활도 낯설기만 한데 쌀쌀한 가을날의 바람이 유독 차갑게 느껴진다. 과연 다카시마 산고는 헌책방 주인으로 첫날을 무사히 시작할 수 있을까?
전날 팔린 책을 메모하고 비슷한 책을 찾아 매일 채워넣고 있다. 지로 오빠처럼 책을 분별하는 눈은 없으므로 같은 작가의 책이나, 문고본이라면 같은 출판사의 비슷한 두께의 책을 골라 같은 가격을 매겨서 책장에 꽂는다.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모르겠다. 직접 가격을 매기는 일에는 전혀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하다보면 이 책장의 책도 조금은 줄어들려나. (본문 80p)
다카시마 헌책방은 입구 쪽에서 초저가 문고본이나 베스트셀러 중고책을 취급하면서, 안쪽에서는 희귀한 절판본 등 작은할아버지 취향의 책을 진열해두고 있다. 작은할아버지는 교수님 같은 전문가나 연구자들이 오면 “그러고 보니 전에 시장에서 이런 걸 발견했는데요” 하고 부탁하지도 않은 고서를 안에서 꺼내와 보여주는…… 그런 유형의 헌책방 주인이었다. (본문 19p)
다카시마 미키키. 진보초 거리에서 가까운 O여자대학 국문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논문도 진척이 없고 진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한 어느 날, 홋카이도에 살던 고모할머니 산고가 갑자기 도쿄로 와 작은할아버지 지로의 헌책방을 맡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모할머니가 걱정되니 헌책방에 다녀오라는 엄마의 지시가 있었지만, 미키키는 나름대로 지로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있었기에 다시 문을 여는 책방의 앞날이 궁금하다. 다정한 분이었던 지로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책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과연 다카시마 헌책방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제2화
제3화
제4화
제5화
최종화
“손님들은 책방 앞에 놓인 문고본만 보고 가.”
“아, 맞아요. 지로 할아버지도 그렇게 말하셨어요. 그건 호객용이라 거기서 책을 고른 손님이 안으로 들어와 실내에 있는 책도 좀 보고 사줬으면 하는데 실제로 그런 사람은 열 명 중 하나라고.” (47p)
“제가 이것저것이라고 했던 건 주로 경제서나 자기계발서나 주식투자서 같은……”
“아, 뭔지 알겠네요. 서점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코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저축한 10만 엔을 주식투자로 순식간에 1억 만드는 법!』 같은 책이군요!”
“거봐요. 아까는 저한테 무시당했다면서 당신이야말로 그런 식으로 저를 무시하잖아요.”
이번에는 겐분 씨가 다소 호전적으로 미키키를 가리켰다.
“그래서 여러분 같은 독서가들에게 책 얘기를 하기가 싫은 거예요. 우리 회사 사람들도 그렇고, 다들 문예서나 연구서가 아닌 책을 읽는 사람을 자본주의에 영혼을 판 한심한 인간, 속물이라고 생각해요.” (111p)
할아버지는 계산대 앞에서 책을 읽고 계실 때도 많았지만,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책 정리를 하는 모습이다. 책장을 돌면서 손님이 꽂아놓은 책을 다시 반듯하게 정렬하거나 손가락 끝으로 책을 끄집어내 순서를 바꾸는 등, 할아버지는 언제나 사부작사부작 작은 소리를 내면서 책을 만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나에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미키키도 기억해두는 게 좋아. 책은 ‘만지면 팔린다’라는 말이 있어. 이렇게 책들을 정리하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그후에 팔리거든.” (169p)
조금 전까지 퉁명스럽게 굴거나 인상을 찡그렸던 게 신기할 정도로 허물없는 대화가 한창이다. 둘 사이는 어떻게 되어갈까.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나에게는 이들이 부러울 정도로 빛나 보인다. 호감이나 애정이나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런 식으로, 자신이 느낀 감정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건 인생의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 둘은 모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의 나는 그저 다정한 할머니, 고기 사주는 고모할머니로 이곳에 있어야겠다. (180p)
잘 먹겠습니다, 하고 작게 속삭인 뒤 스푼을 집었다. 따끈따끈하고 소고기 덩어리는 스푼으로 잘릴 만큼 부드럽게 푹 익었다. 토마토의 풍미도 살짝 느껴지는 데미그라스 소스 맛이다. 지친 몸에 활력이 되살아난다. 식후 커피를 마실 즈음에는 기분이 완전히 평온해졌음을 알았다. 맛있는 식사와 더불어 어린이책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도 큰 도움이 된 듯하다. (222p)
“제일 두려운 건 그러는 사이에 다들 서서히 그 생활에 익숙해지는 거예요. 책과 책방이 없어지고 도서관이 문을 닫은 세상에. 물론 아까도 말했듯이 전자책이나 인터넷 자료는 활성화될지도 모르죠. 결국 다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은근슬쩍 조금씩 책이 사라져갈 거예요.” 두 사람은 마침내 눈싸움을 멈추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출판사 직원, 소설가 지망생, 문학부 대학원생. 취향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매일 책에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삭막하고 쓸쓸한 세상이 되겠네요.” 나는 조용히 세상에서 책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244p)
『낮술』 하라다 히카 신작 소설
서점 리스본 · 땡스북스 추천!
맛깔나는 음식으로 더욱 풍요로운 헌책방 거리
실제 진보초의 유명한 식당과 음식을 경험하는 즐거움
『헌책 식당』은 『낮술』 『우선 이것부터 먹고』 『도서관의 야식』 등으로 맛깔나는 음식과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온 하라다 히카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이번에는 세계 최대의 헌책방 거리로 알려진 도쿄 진보초에 자리한 작은 서점 ‘다카시마 헌책방’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루아침에 헌책방 주인이 된 산고 할머니, 도쿄에서의 모든 게 처음인 산고 할머니를 돕는 대학원생 미키키를 중심으로 책방 위층의 ‘츠지도 출판사’, 철도 서적만 전문으로 다루는 옆집의 ‘시오도메 서점’, 진보초 거리에 어울리는 블렌딩 커피를 파는 ‘북엔드 카페’의 사람들과 책방을 찾는 다양한 손님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네. 서점들이 전부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푹 빠져버렸네요. 가게 앞에 빼곡히 진열된 헌책만 봐도 갖고 싶은 게 자꾸 눈에 띄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가게별로 특색이 있더군요.”
“맞아요, 헌책방은 저마다 스타일이 가지각색이니까요.”
“오래된 책을 늘어놓았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 아닐까요? 그것 말고는 모든 게 다 달라요. 가게의 규모, 책장의 진열 방식이나 조명에 따라 분위기도 다르고, 무엇보다 어떤 책을 선별했는지에 따라 헌책방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요. 이를테면 약간 오래된 희소본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사와구치 서점의 이층과 게야키 서점을 같은 분야로 묶을 수도 있겠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죠.” (본문 306p)
본디의 비프 카레에는 큼직한 고기가 들어 있다. 밥에는 치즈가 뿌려져 있고, 따로 감자 두 알과 버터가 곁들여진 구성이다. 향이 진한 짙은 갈색의 카레를 소스 포트에서 작은 국자로 떠 밥에 얹을 때의 그 설렘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한입 먹자마자, 아 역시 오길 잘했다, 하고 생각한다. 입에 닿는 느낌이 순하고 부드러워 마치 비프 스튜를 먹는 것도 같지만 곧 반전이 닥친다. 실은 그 속에 향신료의 매콤함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맛있어! 마음속으로 외쳤다. 역시 진보초의 카레 챔피언답다. (본문 87p)
하라다 히카의 작품에서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산고 할머니와 미키키는 책방을 보면서 교대로 밖에 나가 점심을 사 먹고 오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와 끼니를 해결한다. 그러면서 틈틈이 책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심지어 테이블과 의자를 내주고는 자신들의 음식을 함께 먹자고 권한다. 3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초밥집의 게누키스시(조릿대 잎으로 감싼 초밥), 진보초 거리 최고의 비프 카레, 어린이책 전문 북카페에서 파는 따끈파삭한 카레빵, 튀긴 면에 소스를 부어 먹는 방식의 독특한 야키소바, 그리고 문호들이 사랑했던 시원한 맥주까지. 이처럼 하라다 히카가 세심하게 요리해내는 이야기는 당장이라도 재미있는 책과 맛있는 음식을 찾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픈 의욕을 일게 한다. 혹은 잊고 있었던 책이나 음식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나만의 책과 음식 이야기를 써보도록 자극하기도 한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다양한 의미로 더는 배고프지 않다.”
책 읽기의 맛, 따뜻한 한끼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
다카시마 헌책방을 찾는 이들은 직업도 취향도 사고방식도 다르지만 다들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책방 일을 좋아하지만 논문에는 진척이 없는 국문과 대학원생, 빨리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싶어하는 출판사 마케터, 글 쓸 의욕을 잃은 소설가 지망생, 수많은 요리책을 봤지만 전혀 실력이 늘지 않는 주부, 실직 후 막막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책을 찾고 있는 중년 남성까지.
“아뇨, 그런 책을 찾는 게 아니에요. 배운다기보다 기분전환이 될 만한 거라도……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 책이라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겠네요.”
“저, 그렇지만 제가, 돈이 없어요.”
그 말을 하고서 그는 흠칫 놀라 숨을 삼켰다. 돈도 없으면서 책방에 왔다고 여길까봐 걱정한 것일 테다. 나는 그 소리는 못 들은 척했다.
“괜찮아요, 원하는 만큼 보세요.”
그야 이 책방은 오빠의 것이고…… 책도 전부 오빠 것인걸,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원래는 나도 돈이라곤 한 푼도 없었다. (본문 158p)
그가 묻지도 않았는데 한 말에 따르면, 그는 대학 시절부터 틈틈이 소설 투고를 시작해 현재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소설을 계속 쓰고 있다고 한다. 첫 소설이 최종후보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곧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또 주변 사람들도 그를 그런 식으로 대해서 왠지 그만두려야 그만둘 수도 없는 모양이다. 산고 할머니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 전까지 보였던 자의식 과잉의 작가 지망생 청년은 사라지고, 조금씩 자신감을 상실해가는 길 잃은 어린양으로 보이기도 한다.(본문 229p)
책방 주인이 되는 걸 두려워했던 산고 할머니는 책방을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고 그때마다 떠오르는 책들을 추천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책방 일의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곁에서 할머니를 도우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미키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서점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기 시작한다. 이처럼 책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 서점가와 그곳에 언제나 열려 있는 상냥한 헌책방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책과 음식, 이야기와 사람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끈끈하고도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작가정보
1970년 일본 가나가와현 출생. 2005년 『리틀 프린세스 2호』로 제34회 NHK 창작 라디오 드라마 각본 공모전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고 방송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2007년 『시작되지 않는 티타임』으로 제31회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방송과 문학을 아우르는 감각으로 일상적 소재를 섬세하고도 속도감 있게 그려냄으로써 폭넓은 세대의 호응을 받으며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낮술』(전3권) 『할머니와 나의 3천 엔』 『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 등이 있다.
상명대학교 일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문학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낮술』(전3권) 『탱고 인 더 다크』 『엄마가 했어』 『신을 기다리고 있어』 『결국 왔구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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