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낙관
2024년 12월 02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6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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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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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계층 상승과 낭만적 사랑의 대상이나 장면에서부터 정치적인 것 자체에 대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잔인한 낙관의 여러 관계들을 살펴본다.
**장별 주요 내용 소개
1장. 잔인한 낙관
애착의 대상 자체가 더 이상 좋은 삶을 보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됨에도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정동의 상태를 잔인한 낙관으로 규정한다. 사람들이 이런 모순적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급변하는 위기의 일상 속에서 일정한 삶의 형식을 유지하고 그로써 안정감이라는 일종의 환상에 기대기 때문이다. 위기 속 답보 상태에 이렇게 적응하는 삶은 나름의 리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1장에서 벌랜트는 몇 가지 예시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2장. 직관주의자들
만족을 제공하는 동시에 가로막는 역설적 환상에 구속되고 또 그 환상이 대변하는 낙관에 구속되는 “이중 구속”은 일상 자체가 위기가 된 현재의 특성이다. 일상화된 위기 속에서는 익숙한 세계의 현상 유지가 그 자체만으로도 애착의 대상이 되므로, 일상을 유지하는 여러 방식들이 위기 속에서 주체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여기서 습관과 직관은 주권적일 수 없는 주체가 세계와 자신을 관리하는 방법으로서 중요하다. 2장에서는 훈련된 것, 역사를 반영하는 것으로서의 습관과 직관에 대한 미학적 숙고가 기존의 비평에서 부족했음을 지적하고, 여러 텍스트들이 위기 속 주체의 정동적 (재)구성 및 발현을 재현하는 양상을 추적하며, 답보 상태와 위기에 대한 낙관과 그 문제점을 살펴본다.
3장. 더딘 죽음
자유주의적 주체성과 실천적 주권성이라는 전통적 개념이 내포하는 자율성과 통제권에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일상화된 위기 속, 삶을 재생산하기 위한 활동으로 인해 주체가 도리어 소진되고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이 마모되는, 일상화된 위기 속의 삶을 벌랜트는 “더딘 죽음”이라고 표현하고,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심화되는 더딘 죽음 속 주권성의 정동적 조건들을 정치적으로 해부한다. 1980년대 이후 노동조건의 악화와 비만의 확산에 대한 미국 사회의 대응은, 일종의 더딘 죽음으로서의 비만과 그것을 둘러싼 신자유주의의 이해관계를 보여 주는 사례가 된다. 더딘 죽음의 장면에서 주체의 행위성은, 자아와 삶의 발전이라는 목표 지향과는 관계없이 현상을 겨우 유지하면서 익숙한 일상을 연장하는 일견 자기 중단적 혹은 자기 훼방적 활동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벌랜트는 이를 자율적 주권의 행사라는 차원과는 다른 시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측면적 주체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측면적 주체성”은 일반적으로 규범화되는 실천적 주권성의 목적 지향적·직선적·단선적 움직임과 구분되는 옆걸음질, 엇나가기, 샛길로 빠지기 등 자기 방해 행위와도 같은 일종의 측면적 움직임으로 기술되는 행위 주체성에 대한 설명이다.
4장. 두 소녀, 뚱뚱이와 마른이
게이츠킬의 소설 『두 소녀, 뚱뚱이와 마른이』를 사례로 삼아 성폭력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생존하는 정동을 신자유주의 초기 시절의 역사가 준 상처로 논의한다. 『두 소녀, 뚱뚱이와 마른이』의 주인공들이 드러내는 트라우마 이후의 정동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비개인적인 사회성의 형식과 양상을 띤다는 것이 벌랜트의 주요 논지이다. 맺는말에서 벌랜트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두 소녀가 서로의 품에 안겨 마침내 누리는 휴식)을 역사화한다. 트라우마를 경험하며 형성된 두 소녀의 삶과 내면, 그들이 발견하는 임시적 휴식에 대한 벌랜트의 분석은 (트라우마가 만들어 낸 개인의 내면성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논의를 넘어서) 미국의 경제변동과 중산층 가정의 와해라는 맥락에서, 상처를 주는 역사를 읽어 내는 방식을 제시한다.
5장. 거의 유토피아, 거의 정상
왜 사람들은 현재의 나쁜 삶을 거부하지 않는가? 5장은 포스트포디즘 시대의 정동을 분석함으로써 이 질문을 탐구한다. 이 장은 1990년대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변동으로 인해 악화 중인 삶에 자녀 세대가 정동적으로 적응하는 양상(“아이들이 세계를 일구어 내는 측면적 양상”)을 논의한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로제타〉와 〈약속〉을 사례로 삼아 벌랜트는 아이들이 지구화, 이주, 노동 착취 등 포스트포디즘 단계의 신자유주의적 변동의 분석에서 핵심이라고 본다. 두 영화의 주인공이 보이는 정동적 반응은 위태로운 신자유주의적 삶의 조건하에서, 이제는 거의 불가능해진 “정상적” 삶의 규범이 열망의 대상으로 작동함을 드러낸다. 벌랜트는 규범적 세계에 대해 아이들이 품는 열정적 애착심이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의 생존 기제라고 논의한다.
6장. 좋은 삶 이후, 답보 상태
로랑 캉테의 영화 〈인력자원부〉와 〈타임 아웃〉을 사례로 삼아 중산층이 경험하는 신자유주의적 위태로움을 논의한다. 5장에서 노동계급과 빈곤층 청년이 좋은 삶이라는 환상의 마모에 대해 보이는 정동적 반응이 정상성의 규범에 근접해 있기를 열망하는 애착심이라고 논의한다면, 6장은 아감벤이 “지구의 프티부르주아”라고 부른 중산층이 뉴노멀에 대처하는 정동적 반응을 분석한다. 뉴노멀에서는 좋은 삶이 이제 환상일 뿐임을 부인할 수 없다. 벌랜트는 현재의 역사적 순간을 상황으로 접근하여 답보 상태로 개념화한다. 상황이란 마음이 동요하는 상태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상태이다. 현재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명령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이전과는 새로운 공론장을 만들어 낸다. 이 공론장을 벌랜트는 적응의 명령에 적응하려는 몸(새로운 몸짓, 태도, 표정)을 초점으로 살펴본다.
7장. 정치적인 것을 향한 욕망에 대해
최근의 다양한 모더니즘 무정부주의 아방가르드 예술 작품들을 논의하면서, 위기가 일상화된 우리 시대에 정서, 소음, 침묵이 저항의 움직임과 만날 때 형성되는 측면성의 정치를 탐구한다. 벌랜트는 이 정치를 “주변 분위기로 형성되는 시민성”으로 개념화하고, 주류 대중 정치가 내는 소음과 그 소음을 선별적으로 확장·축소하거나 걸러 내는 미디어의 “필터”와는 다른 방식으로 소리, 침묵을 동원하는 몇몇 사회운동과 예술운동을 개괄한다. 이 장에서 논의하는 사례들은 전통적인 공적 발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인 것을 수행하며 역사적 현재에 개입하는 작품들이다. 이처럼 잔인한 낙관과 정치적인 것에 대한 욕망의 관계를 논의하면서 벌랜트는 정치적으로 우울한 입장을 측면성의 정치로 변화시킬 것을 제안한다.
서론: 현 시점의 정동
1장 잔인한 낙관
1. 낙관과 그 대상 / 2. 대상의 약속 / 3. 교환가치의 약속 / 4. 배움의 약속
2장 직관주의자들: 역사 그리고 정동적 사건
1. 우리가 지금 사는 방식: 정동, 매개, 이데올로기 / 2. 현재의 역사들 / 3. 정동 영역과 사건
4. 추락하는 자와 비명 지르는 자: 익명성과 트라우마
3장 더딘 죽음: 비만, 주권, 측면적 행위 주체성
1. 더딘 죽음과 주권 / 2. 사례라는 장르의 착상 / 3. 비만의 보험계리적 수사법
4. 분산된 인과관계에서 중단적 행위 주체성으로 / 5. 맺음말: 잔인하고 일상적인 자양분
4장 두 소녀, 뚱뚱이와 마른이
1. 별에 소원을 빌 때 / 2. 누군가가 소망을 말했다고? / 3. 맺음말: 트라우마 이후의 멜로드라마
5장 거의 유토피아, 거의 정상: 〈약속〉과 〈로제타〉에 나타난 포스트포드주의 시대의 정동
1. 거의 …… / 2. 정신분석학, 윤리, 그리고 유아기 / 3. 아픔의 세계
6장 좋은 삶 이후, 답보 상태: 〈타임아웃〉, 〈인력자원부〉, 위태로운 현재
1. 언제나 지금: 상황, 제스처, 답보 상태 / 2. “약간 초조한 게 정상이야”: 〈인력자원부〉
3. 당신은 왜 면제받아야 하죠?: 〈타임아웃〉
7장 정치적인 것을 향한 욕망에 대해
1. 정동, 소음, 침묵, 저항: 주변 분위기로 형성되는 시민성 / 2. 소리로 전쟁을 느끼기
3. 녹음으로 기록된 침묵 / 4. 명백하게 불안정한 집단적 이행 시대의 예술 작품
5. 잔인한 낙관 그리고 정치적인 것에 대한 욕망
표지 이미지에 대해서: 〈만약에 몸이: 중년의 리바와 조라〉
옮긴이 해제: 로런 벌랜트의 정동 이론
미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욕망하는 어떤 대상이 오히려 더 나은 삶에 걸림돌이 될 때 바로 거기에 잔인한 낙관의 관계가 있다. 그 대상은 먹을 것일 수도 있고 사랑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삶에 대한 환상일 수도 있으며 정치적 기획일 수도 있다. 그것은 좀 더 단순한 어떤 바탕 위에 있을 수도 있다. 한층 나은 존재 방식을 이끌어 내주겠다고 약속하는 새로운 습관처럼 말이다. 이런 부류의 낙관적 관계가 본래부터 잔인한 것은 아니다. 낙관적 관계가 잔인해지는 건 애착의 대상이 애당초 그 애착을 형성하게 만든 목표 달성에 적극적으로 방해가 되는 경우이다. - 9쪽
낙관의 경험이 구체적으로 어떻든 간에, 낙관적 애착의 정동 구조는 특정한 환상의 장면으로 되돌아가려는 지속적 경향을 포함한다. 그 환상이란 이번에야말로 이 대상에 다가가면 나 자신이나 세상이 딱 알맞게 달라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게 하는 환상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나 민족이 폭넓은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분투를 감행하는데,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에 불을 붙였던 대상/장면이 그런 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그때 낙관은 잔인한 것이 된다. 그리고 어떤 관계 속에 머무르는 즐거움 자체가 관계의 내용과 상관없이 지속적인 것이 될 때, 그래서 심히 위협적인 동시에 매우 확신을 주는 상황에 사람이나 세계가 스스로 매여 있음을 발견할 때, 낙관은 이중으로 잔인해진다. - 10, 11쪽.
『잔인한 낙관』이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기간 전체를 다 다루지는 않는다. 전후에는 누구나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민주주의적 가능성을 믿었지만, 전후의 그 대단한 낙관에 동력이 되었던 경제적 기회, 사회적 규범, 사법적 권리는 이제 불균등하게 확장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상황에 국가가 개입을 회피했다는 사실을 철저히 폭로하는 책은 아니다. 대신에 이 책은 1990년 이후 최근까지 나온 대중매체, 문학, 텔레비전, 영화, 비디오를 다룰 것이고, 구조 변화를 바라는 낙관의 판타즘적 요소가 세계를 견인해 가는 힘이 줄어듦에 따라 뒤늦게 생겨난 역사의 감각중추를 밝혀내고자 한다. - 12쪽
이 책의 각 장은, 한때 좋은 삶이라는 환상이 자리 잡을 공간을 열어 두었던 낙관의 대상/시나리오의 소멸에 관한 이야기이며, 토대를 이루는 것 같았던 관계들이 이른바 “잔인한” 낙관의 관계로 변해 버린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 그 드라마를 따라가 본다. - 13쪽
통상 “답보 상태”란, 어떤 사람이나 상황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보내는 시간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 답보 상태의 의미는 세계가 강렬하게 눈앞에 나타나는데도 불가사의하다고 느끼면서 우리가 활동하는 시간이 일정 기간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답보 상태에서 살아가는 행위는 방황하며 정보를 흡수하는 의식과 과잉 경계심을 함께 요구하게 된다. - 15쪽
미국처럼 상대적으로 부유한 곳에서조차 주체를 소진시키거나 마모시킨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서 삶을 재생산하는 노동이 곧 삶을 소진시키는 활동이 되고 만다는 아이러니는, 고통의 일상성, 규범성의 폭력성, 나중에라는 개념으로 지금 당장의 잔인함에 대한 질문을 유예하게 만드는 “인내의 기술”에 대한 사유에서 구체적 함의를 지닌다. 잔인한 낙관은 이런 의미에서 일종의 체험된 내재성을 지향하는 개념이며, 그것은 사람들이 바틀비가 되지 않는 이유, 다방면에서 나타나는 궁핍화에 개입하기를 원하지 않고 오히려 익숙한 애착심의 체계를 그저 물결 타듯 타고 가는 이유, 그 애착심에 엇박자를 맞추는 이유, 혹은 호혜성이나 화해의 관계, 굴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체념의 관계에 머물려고 하는 이유를 감지하는 데서 나온다. -55쪽.
1. 잔인한 낙관주의: 그대 아직도 꿈꾸는가
로런 벌랜트는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전후의 사회민주주의적 약속이 후퇴하면서 만연했던 잔인한 낙관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사회는 개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더는 제공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계층 상승, 안정적인 직업, 정치적, 사회적 평등, 지속적인 친밀감 등 달성할 수 없는 좋은 삶에 대한 환상에 집착하고 있다. 서구 사회보다 한발 늦기는 했지만, 산업화를 통해 개인의 삶과 사회적 풍경을 급속히 변화시켜 왔던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는 점점 삶이 피폐해져 가고 있다고 느낀다. 물가는 자고 나면 올라가 있고, 상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으며, 날씨는 계절을 잊게 하려는 듯 하루하루 급변한다.
하지만 얄궂게도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어려워질수록 그것은 그만큼 ‘더 좋은’ 것이 되며, ‘좋은 삶’은 다가가기 어려운 정도에 비례해 환상이 된다.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을 강요받는 가운데서도 수많은 이들이 ‘언젠가는 …’이라는 불특정한 미래에 그 환상을 투자하고 유지한다. 각자도생의 사회를 한탄하지만, 부가 더욱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기를 여전히 꿈꾼다.
『잔인한 낙관』은 계층 상승과 낭만적 사랑의 대상이나 장면에서부터 정치적인 것 자체에 대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잔인한 낙관의 여러 관계들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좋은 삶에 대한 환상과 애착심이 ‘좋은 삶’을 향해 분투하는 개인을 어떻게 마모시키고 그것을 쟁취하려는 집단의 정치적 힘을 어떻게 부식시키는지 살펴본다.
이 책 내내 나는, 낙관적 애착심은 욕망의 대상/장면 자체가 낙관적 애착심을 품게 하는 바로 그 결핍[필요]의 충족에 장애물이 될 때 잔인해진다고 논의했다. 그러나 삶을 조직하는 것으로서의 낙관적 애착심이 지니는 위상 때문에, 그것이 유발하는 피해를 중재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규범적 공적 영역이 엘리트들의 행위 공간이며 이 공간이 이미 줄어들고 부서지고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머나먼 공간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하더라도, 정치체의 구성원이 다시 정치체에 헌신하는 의식과 장면에 주기적으로 되돌아올 때, 이것은 잔인한 낙관의 관계가 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2. 답보 상태: 아직도 왜 꿈에 매달리는가
나는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가? 우리의 자녀는 왜 의사가 되지 못하는가? 누군가는 왜 법률가가 되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는가? 모두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부자는 부자들 사이에서 나는 것이고, 의사는 의사 집안의 가업이 된 지 오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부자 되기를 욕망하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현재의 장소에 붙들어 매는 것일까?
이 같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잔인한 낙관』에서 채택하고 있는 접근법은 합리적 계산과 이성적 판단에 토대를 둔 합리적 개인을 근대적인 주체의 모습으로 상정해 왔던 기존의 접근법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출발한다. 말하자면, 기존의 문학/문화 비평 등은 이야기, 의미, 주장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비평가들은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 속 단어나 구절들을 찾아내고 탐구하며 이를 통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주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주목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면, 텍스트의 의미가 더 큰 사회적 정치적 배경 속에서 어떻게 위치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정동 이론은 우리의 세계가 이처럼 이야기들과 주장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 분위기, 정서 등과 같은 비언어적 효과에 의해서도 형성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이성, 의지, 합리적 선택 등과 같은 기존의 주체관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잔인한 낙관의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을 통해 또는 몸과 함께 인지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정동’에 주목해 오늘날 우리가 왜 여전히 ‘더 좋은 삶’이라는 낡은 환상에 매여 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잔인한 낙관』에서 벌랜트가 주목하는 바는 바로 더 나은 삶에 대한 ‘애착’으로서의 ‘정동’이다. 즉 도래하지 않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주체로 하여금 현재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것이 바로 더 나은 삶에 대한 ‘애착’이라는 ‘정동’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답보 상태는 한편으로 이처럼 목표에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우리의 현재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주체가 현재 속에서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정동의 기제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상실감과 불안정성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답보 상태 속에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답보 상태 속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타개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부지런히 모으려 노력한다. 이는 사랑하는 대상을 얻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썸’을 타거나, ‘어장을 관리’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언제든 자리가 생기면 들어갈 수 있도록 각종 자격증을 따게 하고, 언젠간 ‘따상’을 꿈꾸며 주식을 공부하고 계좌를 관리하도록 이끄는 시공간이기도 하다. 자기 성취는 불가능하지만, 그래서 더욱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습, 그것이 바로 답보 상태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 점에서 잔인한 낙관은 신자유주의 감정 통치술의 일부이자, 우리가 우리 시대에 스스로 적응하도록 애쓰게 하는 정동적 기제이다.
정말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저자는 오늘날 바로 이런 ‘답보 상태’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이미 많은 이들에게는 일종의 희망 사항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점에서, 『잔인한 낙관』은 사람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억압을 원하는지에 대한 경험적 근거에 기반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좋은 삶이라는 관습적 환상 - 가령 커플이나 가족, 정치체제, 제도, 시장, 그리고 직장에서의 지속적인 호혜 관계 - 에 매달리는 것일까? 그런 것들이 불안정하고 취약하고 커다란 대가를 요하는 것이라는 증거가 넘쳐 나는데 말이다.
- 본문 중에서
3. 측면적 행위성과 측면성의 정치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이 같은 잔인한 낙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한 가지 명확한 답은 없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정치’ 역시 잔인한 낙관의 관계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또는 정치적인 것)가 약속했던 대상(말하자면, 정권 교체)과 그 미래가 오히려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벌랜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측면적 행위성과 측면성의 정치이다.
예를 들어, 주권적 행위성이 개인의 자율적 의지와 분명한 목적을 통해 자아와 삶을 건설하고 확장하고 뻗어 나가는 행위능력을 뜻한다면, ‘측면적 행위성’은 주권적 행위가 거의 무용지물인, 다시 말해 잔인한 낙관 상태에 빠져 있는 영역에서 작동하는 정동적 생존 전략을 말한다. 이것은 흡사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주어진 업무 일정에 충실히 따라가는 기계적 삶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삶과 흡사하다. 즉, “측면적 주체성”은 일반적으로 규범화되는 실천적 주권성의 목적 지향적·직선적·단선적 움직임과 구분되는 옆걸음질, 엇나가기, 샛길로 빠지기 등 자기 방해 행위와도 같은 일종의 측면적 움직임으로 기술되는 행위 주체성을 가리킨다. 벌랜트가 주목하는 측면적 행위 주체성, 곧 “대항적 탕진 행위”(counter-dissipation) 개념과 연관해, 우리는 최근 젊은 층에서 생겨난 신조어 “탕진잼”(거시적 목표나 장기적 계획과 상관없이 순간적 만족을 주는 행위에 탐닉하며 돈이나 시간을 실컷 쓰는 일)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측면적 행위성이, 더는 도달이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주체의 직선적 합목적적 행위에서 이탈해 나가는 것이라면, 측면성의 정치는 제도권 정치를 매개로 한 목소리 내기나 소통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정치가 공적 영역에서 사회적 적대를 다루고, 자율성과 비판적 합리적 능력을 지닌 주권적 주체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측면성의 정치는 사람들이 (하소연, 불만, 좌절 등을 비롯한) 주변의 소리를 우연히 들음으로써 일시적으로나마 정동적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렇게 구성된 공동체가 옆으로 움직여 가며 규범에서 벗어남으로써 규범을 비판적으로 지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4. 정치적 우울과 친밀한 공중
『잔인한 낙관』의 각 장은 한때 좋은 삶이라는 환상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공간을 탄생시킨 낙관의 대상과 그 시나리오가 소멸한 것 관한 이야기이며, 삶의 토대를 이루는 것 같았던 관계들이 이른바 “잔인한” 낙관의 관계로 변해 버린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를 따라가 본다. 특히, 다양한 대중문화의 텍스트(문학, 텔레비전, 영화, 비디오 등)들을 기반으로 위기로 가득한 소비문화 속에서 현대 정치 생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매력적인 정서적, 감정적, 심리적 공간을 발견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기존의 현실과 공론장이 위태로워짐과 동시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친밀한 공중’이 출현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친밀한 공중은 공론장의 훼손 속에서 특히 등장한다. 기존의 틀로 이해할 수 없는, 또는 기존의 제도나 공론장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는 개인들은 다양한 매체를 가로질러 가며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교환한다. 이 같은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비공식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런대로 가장 잘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패러다임을 서로 주고받는데, 이런 주체들이 바로 ‘친밀한 공중들’이다. 이런 ‘친밀한 공중’은 기대거나 믿거나 되돌아갈 적합한 규범적 제도가 별로 없을 때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정동적 소속감이라는 감응 장치를 공적 영역 안에 확립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이 점에서 벌랜트의 정치적 사유는 위기의 해결 가능성 또는 훼손된 삶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탐구라기보다는 일상이 되어 버린 위기에 적응해야 하는 딜레마,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지속과 생존을 모색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탐구는 좌파에 만연한 우울에 대한 오랜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울은 사회적 변화를 갈망하지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는 데 대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벌랜트는 근원적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음을 직시하면서도, 그런 우울 역시 정치화하여 무언가를 시도하는 자원으로 삼아 보고자 한 것이다. 변화를 낙관하지 않는 우울의 입장 역시 정치적인 것을 향한 욕망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벌랜트가 ‘친밀한 공중들’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5. 주변 분위기로 형성되는 시민성
벌랜트는 한편으로는 “노동자 계급이 비혁명적 성격”을 지니게 된 과정/이유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거나, 적어도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것에 어떻게 그리고 왜 애착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는 또한 사람들이 이미 새로운 형태의 권력에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지 역시 더 잘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잔인한 낙관』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주변 분위기로 형성되는 시민성”이다. 이 개념은 소리에 반응하면서 만들어지는 일시적인 정치적 소속감(즉 정동적 공동체)을 지칭하는데, 이는 ‘정치에 지치지 않는 행동으로서의 정치적 행동’, 특히 끈임 없는 위기에 처한 것으로 묘사되는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정치를 지칭한다.
“주변 분위기로 형성되는 시민성”은 주변 공간에 소리나 정동을 퍼뜨리는 사건, 장면, 드라마가 어떤 상황이나 문제(예컨대 전쟁과 일상화된 감시 체제, 에이즈와 빈곤, 공적 애도, 9·11, 기후 재난 등)를 거론하는 사회운동의 시나리오와 만날 때 생기는 분위기와 공간에서 형성되지만, 공적 영역의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는 형태의 정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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