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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풀

엘리 스미스 지음 | 이상아 옮김
프시케의숲

2024년 11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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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6.95MB)
ISBN 9791189336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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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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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스미스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로, 기존의 틀과 형식을 깬 작품에 수여하는 골드스미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강연 원고를 표방하고 있지만, 텍스트는 소설, 에세이, 비평의 형식을 넘나든다. 상실과 회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문학을 비롯한 예술사의 빛나는 대목들을 절묘하게 통합해놓았다.

이야기는 화자가 연인의 망령과 마주하면서 시작된다. 화자는 상실감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죽은 연인이 남긴 강의록을 뒤적인다. 시간, 형식, 경계, 제안 및 반영. 이들 네 개 주제에 대한 강의록은 예술과 그 너머에 관한 밀도 높은 생각들을 담고 있으며, 화자는 이것들과 함께 보통의 일상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주요 모티프를 제공한 찰스 디킨스는 물론, 발터 벤야민, 실비아 플라스, 에밀리 디킨슨, 히치콕, 버지니아 울프, 토베 얀손, 마거릿 애트우드 등 수많은 교차점과 평행선으로 텍스트가 빼곡하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둘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한다.
도판

1장 시간에 관하여
2장 형식에 관하여
3장 경계에 관하여
4장 제안 및 반영에 관하여

자료 출처
옮긴이의 말

분명 당신이었다, 그 눈만 빼고. 당신의 눈은 어디에 있는 걸까, 다른 누구에게도 없던 파란색 대신, 지금 거기에는 검은 공간만 있다. 눈 전체가 동공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_37쪽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형식상의 차이는 길이가 아니라 시간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단편소설은 언제나 간결함이 생명일 것이다. “짧은 인생이여! 짧은 인생이여!” 단편소설은 융통성 있는 형식이고, 원하는 경우 이미지즘을 따르고 시간 순서에 맞지 않을 수 있으며 그 형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_56쪽

책은 우리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로 된 시간의 조각이다. 일단 책을 펼치면, 수많은 단어가 음악에서 들리는 수많은 음표가 하는 일을 대신하여 지금 순간에 관해 이전에 벌어졌던 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을 단어에서 단어로 줄곧 기록하며 이는 어구, 문장, 문단, 장, 부가 된다. 동시대 문화에서 우리는 책을 놀랍도록 가볍게 대한다. 우리는 어떤 음악을 한 번 듣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법이 없지만 책은 단 한 번 읽고 나서 다 읽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_58쪽

당신은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 사실상 진짜 단어인 것처럼 들리지도 않는 단어들을 말했다. 하지만 좋았다, 어떤 것에 어떤 의미가 없어도 된다는 점이. 위안이 되었다. _92쪽

우리에게는 다른 종류의 안식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적 형식 그 자체나 친숙함, 알고 있는 운율, 알려진 문구, 익숙한 형태의 이야기, 선율,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한참 뒤에도 매번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구나 구절이나 문장이 주는 불변의 확신이라는 형태일 것이다. 거친 바람은 5월의 사랑스러운 새싹을 분명히 흔들어놓는다. 바람은 항상 그럴 것이다. _102쪽

당신은 나에게 세잔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세잔이 분노해 캔버스를 난도질하고 태워버린 이야기, 세잔의 아이가 그림에 구멍을 냈을 때 세잔이 기쁨에 가득 차 이것 봐! 이 애가 그림에 창문을 냈어! 얘가 굴뚝을 낸 거라고! 라고 외쳤던 이야기. _117쪽

영리한 나무. 모든 걸 다 아는 체하는 나무. 나는 나무에 진저리가 났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게 거기 있었다, 항상 그랬듯이, 언제나 그럴 것처럼. 무심히 있었다. _127쪽

우리가 특히 만족스러운 사랑을 했을 때, 그건 마치 이 세상의 새로운 장소에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세상 밖에 있는 새로운 장소, 따로 떨어진 장소. 그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로 몰입해 자신은 잠시 잊어둘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용감해질 수 있을 때에만 도달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건 내가 놓친 장소였다.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몰랐다. _135쪽

히치콕은 관객과 스크린에 나오는 이야기 사이에 구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사이에 구분이 존재한다는 심리적 회색 지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는 것이 플롯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고, 행위와 도덕성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_149쪽

아, 당신 손과 같은 손이라면 난 그게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내버려둘 것이다. 심지어 뼈가 바닥에 이리저리 흩뿌려져 있는 길, 마치 프랑스의 쇼베 동굴에 관한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에서 보았던 동굴 바닥 같은 그런 길이라 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 쇼베 동굴 벽에서 사람들은 수만 년 된 동물 그림을 발견했다지. 머리가 넷 달린 아름다운 말, 기다란 뿔이 있는 생명체. 뼈 위에 있던 가장 처음의 예술. 그곳처럼 뼈가 흩뿌려진 길 위라 해도, 당신의 멋진 손을 잡고서라면 난 괜찮을 것이다. _174쪽

나는 교수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무엇을 드리고 싶은지 모르겠어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어요.” 그리고 나는 말했다, “어쨌든, 저는 교수님께 뭔가 다른 걸 드리고 싶었어요.” 내 말에 부주의한 뉘앙스, 건방진 뉘앙스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 뉘앙스 중 하나였거나 아니면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교수가 내 말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지 못한다. _190쪽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창밖을 내다보면서 채플린이 “멀리 떨어진 보행자에게로 망원경을 향하게 하더니”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남자가 보이니? 저 남자는 분명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중일 거야. 걸음걸이를 봐, 정말 느리지, 아주 피곤한 거야. 고개는 꺾여 있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게 뭘까!”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공감, 어떤 면에서는 도둑질이다. _205쪽

나르키소스가 죽자 들판의 꽃들이 시들시들해져 나르키소스를 애도할 물 몇 방울만 달라고 강에게 요청했다. “그가 아름다웠소?” 강이 말했다. “그 누가 당신보다 더 잘 알겠어요? 매일 당신의 강둑에서 몸을 앞으로 숙이고 나르키소스는 당신의 물결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았잖아요.” “내가 그를 사랑했다면,” 강이 답했다, “그건 나르키소스가 내 물결 위로 몸을 굽힐 때 그의 두 눈 안에 내 물결이 비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오.” _217쪽

나는 커피를 내렸다. 직장에 전화해 늦잠을 잤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바로 샌드라에게 연결해주었다. 나는 전화로 꽤 날카로운 질책을 받았고, 그런 다음에는 감기나 독감에 걸렸다는 말을 지어내지 않고 솔직히 말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오후 2시까지 출근하세요.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해줄게요, 샌드라가 말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다 읽고 가도 될까요? 내가 말했다. 정적이 흘렀다. _225쪽

“앨리 스미스는 진정으로 모던한
천재이다.”_알랭 드 보통

소설, 에세이, 비평이 마법처럼 결합된 이야기

앨리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로, 국내에 제법 여러 권의 책이 번역되어 있다. 계절 4부작부터, 《호텔 월드》, 《우연한 방문객》 등 꾸준히 소개되어왔다(2024년 7월 기준 장편소설 12편 가운데 9편이 한국어로 번역됨). 자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기도 할 만큼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수상 경력도 화려한 편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네 번 올랐으며, 코스타상, 오웰상, 베일리스여성문학상 등을 받았다. 대영제국훈장도 수훈했으니 국민적인 지명도가 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책 《아트풀》은 앨리 스미스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원서는 2012년에 발간되었다. 작가의 모더니즘 스타일과 예술론이 잘 드러나는 이 작품은 죽은 연인의 망령과 조우하고 그가 남긴 강의록을 뒤적이며 서서히 일상을 회복해나간다는 간단한 줄거리를 취한다. 모두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의 키워드는 순서대로 시간, 형식, 경계, 제안 및 반영이다. 이것들을 작가의 예술론으로 읽을 수도 있고, 소설 이야기 그 자체로 흥미롭게 읽을 수도 있다. 이러한 균형감은 앨리 스미스를 새로운 모더니즘의 기수로 위치시킨다.

작품의 제목이자 이야기의 모티프가 되는 ‘아트풀’은 기본적으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별명이다. 잭 도킨스 혹은 존 도킨스라는 인물은 소설에서 ‘아트풀 다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국내 주요 번역본에서는 이를 ‘교묘한 미꾸라지’, ‘교활한 미꾸라지’, ‘꾀돌이 얌생이’ 등으로 옮기지만, 이 책에서는 해당 단어의 발음을 단순 한글 표기했다. 작가가 이 인물의 유연함, 의미의 미끄러짐이라는 특성에 주목해 《아트풀》의 주제의식을 투영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아트풀의 의미가 모호하게 사용됨으로써, 보다 폭넓은 해석의 공간이 열린다.


모더니즘 소설의 현재;
예술과 그 너머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앨리 스미스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모더니즘 소설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으면, 《아트풀》을 포함한 그녀의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모더니즘이 처음 나타난 것은 20세기 초이다. 그전까지 사실주의적 작품(리얼리즘)이 지배적이었는데, 이 경향의 작품들은 시간 순서에 의해 차곡차곡 서술되며, 앞뒤 맥락이 질서 있게 정리되어 있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들이 전개된다. 우리가 흔히 세계 명작 소설로 소비하는 19세기 작가들이 여기에 속하며, 조지 오웰이나 코난 도일, 요새로 치면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대중작가, 전독시 같은 웹소설 등도 이런 특징을 공유한다. 친숙하며 이해하기 쉽고 몇 가지 유형으로 스토리텔링 방식이 정형화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그때까지의 모든 방식에 일대 의문이 제기된다. 사람들은 문명의 가공할 파괴성에 큰 충격을 받았고, 다른 방향을 모색했다. 소설 영역도 마찬가지여서, 사실주의 작품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등장한 모더니즘 소설은 시간 순서에 따른 서술보다는 공간적인 구성을 주로 사용하고, 객관적인 서술이 아닌 인물의 내면 서술에 초점을 맞추며, 흥미진진한 사건이나 줄거리보다 내적 경험이나 개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앨리 스미스, 그리고 이 작품 《아트풀》은 바로 이러한 전통 아래 서 있다.

《아트풀》은 모더니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것의 주요한 부분들은 대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요약되는 특징들을 담고 있다. 먼저 형식의 경계가 중첩되거나 해체되어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의 첫머리에 아주 분명하게 이 책의 내용이 강연 기록임을 명시한다. 그런데 막상 본문으로 진입하자마자 소설이 되었다가, 다시 강연 기록인 듯 에세이인 듯 모호한 글이 제시되고, 작품 내내 이러한 서술이 번갈아가며 반복된다. 이렇게 경계의 중첩과 해체는 형식에 대한 해석, 혹은 음미를 불러일으키며 독특한 미감을 자아낸다.

또한 《아트풀》은 죽은 연인의 망령과 조우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태에서 널찍한 사유의 공간이 마련되고, 작가는 이 넉넉한 영토를 화려한 상호텍스트성으로 수놓는다. 찰스 디킨스, 발터 벤야민, 실비아 플라스, 에밀리 디킨슨, 셰익스피어, 히치콕, 토베 얀손, 마거릿 애트우드 같은 친숙한 텍스트부터, 필립 라킨, 톰 건, 크리스티나 로세티, 엘리자베스 하드윅, 조지 매카이 브라운 등의 다소 생소한 텍스트까지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킨다. 기존의 의미가 비틀리고 재해석되면서 사고가 속박과 구속에서 풀려나 다채로운 상징과 뉘앙스를 띠게 된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하다

기성의 눈으로 보면,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은 어렵다. 그러나 앨리 스미스의 글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단적으로 20세기 초의 모더니스트인 에즈라 파운드나 제임스 조이스처럼 난해하지 않다. 그녀는 독자들과 멀어지게 만든 과거 모더니즘의 언어적 과잉에서 벗어나, 보다 현대적인 산뜻한 길을 가려 한다. ‘나’는 죽은 연인의 강의록을 뒤적이고, 알 수 없는 웅얼거림으로부터 의미를 읽어내려 하고, 그러나 결국에는, 아니 처음부터 리얼리즘의 걸작 《올리버 트위스트》를 맴돈다. 이는 마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새로운 균형점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렇다, 앨리 스미스는 오늘날의 모더니스트다.

작가정보

(Ali Smith)
1962년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의 노동계급 집안에서 태어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애버딘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위를 받은 뒤, 케임브리지대학교 뉴넘칼리지에서 미국 및 아일랜드 모더니즘 박사과정을 밟았다. 여러 편의 희곡을 써서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무대에 선보이다가, 1995년 첫 단편소설집 《프리 러브》(Free Love and Other Stories)를 발표했다. 그 후 활발한 소설 집필을 하여 《호텔 월드》(Hotel World, 2001)로 앙코르상, 《우연한 방문객》(The Accidental, 2005)으로 코스타상, 《둘 다 되는 법》(How to Be Both, 2014)으로 베일리스여성문학상과 코스타상, 《여름》(Summer, 2020)으로 오웰상 등을 수상했다. 《아트풀》(2012)은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로, 기존의 틀과 형식을 깬 소설 작품에 수여하는 골드스미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작가는 2007년 영국 왕립문학협회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15년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2024년에는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옥스퍼드대 보들리언도서관의 최고 영예인 보들리메달을 수상했다. 현재 영화감독 세라 우드와 함께 케임브리지에서 살고 있다.

7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다가 번역의 길로 접어들었다.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영 번역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번역뿐 아니라 ‘각종 언어 서비스’라는 범주에 더 어울릴 만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했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읽고 쓰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불볕더위에 대처하는 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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