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라기 로맨스
2024년 11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0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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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55643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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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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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꽃과 최후의 공룡이 조우한 쥐라기,
찰나와도 같은 3000만 년 동안의 로맨스
중생대 백악기 말에는 ‘5차 대멸종’이라 불리는,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하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하지만 최후의 공룡인 디노의 모델이 된 바로사우루스는 그보다 더 전에, 쥐라기 시대부터 이미 천천히 멸종하고 있었다. 반면 자신을 ‘최초의 꽃’이라고 소개하는 플로라는 공룡시대에 나타나 백악기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종으로 번성한 속씨식물이다. 천천히 운명을 달리해가는 디노와는 반대로 플로라는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어갔던 것이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운명을 가진 두 종이 스쳐 지나갔던 쥐라기 말을 배경으로, 그들에게는 찰나와도 같았던 3000만 년 동안의 로맨스를 그렸다.
디노에게 플로라는 자신을 공룡이라고 소개했는데도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유일한 이였고,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플로라에게 디노는 인사를 선뜻 받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였다. 두 인물은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은, 변화하는 환경은 디노와 플로라가 오랫동안 서로만을 바라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공룡의 시대는 저물어갔고, 플로라는 유시류 즉 날개가 있는 곤충류인 버기를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생을 살아가야 했다. 마음은 서로에게 있지만 본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와 종족의 운명으로 인해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는 두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변화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두 인물의 서사에 깊은 여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사우루스인 디노, 속씨식물 플로라, 유시류 버기,
그리고 포유류인 모로의 1억 3000만 년 전의 생존기
디노와 플로라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각자의 삶에, 주어진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디노는 종족의 마지막 후예였고, 플로라는 종족의 시작을 알리는 속씨식물이었다. 디노는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플로라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디노는 플로라가 디노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저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플로라를 원망할 수도, 자신의 처지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 모로에게 얄팍한 기회주의자라고 정의되는 버기는 스스로를 ‘영리한 사업가’라 칭한다. 플로라와 자신이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면 각자가 원하는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때문에 디노와 플로라가 맺어질 수 없는 현실이 더욱 부각되지만 버기가 나쁜 인물인 것은 아니다. 곤충류인 버기 또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여 대자연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선택을 한 것뿐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모로는 공룡시대에는 그리 주목받는 종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생대 백악기 말, ‘5차 대멸종’ 속에서 살아남으로써 진화에 속도가 붙었고,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구의 주인공이 되었다. 디노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플로라처럼 수많은 동족을 만들 수도 없고 버기처럼 날지도 못하지만 오래도록 살아남아 1억 3000천 번이나 봄을 맞이하며 플로라가 피고 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이 함께 있었던 쥐라기 시대는 생존과 멸종이 몇 번이나 거듭된, 결코 로맨틱하다고 표현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러나 디노, 플로라, 버기, 모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내었고 각자의 방법으로 사라지거나 생존하기를 택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은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 오랜 시간 전,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들의 생을 가만히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서는 제8회 경기 히든작가 선정작입니다.
덧붙이는 글 …149
플로라는 태양이 좀 더 높이 솟을 때쯤 도착할 것이다. 머지않아 동족들을 이끌며 대지를 뚫고 나타나 환하게 미소 지을 플로라를 생각하니 참으려 해도 자꾸만 코가 움찔거린다. 그리고 마치 정해진 순서처럼 한 친구의 모습이 뒤이어 떠오른다. 지나간 1억 3000만 번의 봄을 맞을 때마다 나는 그 친구를 대신하여 플로라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디노. 그는 위대한 종족의 초라한 후예였다. _11~12쪽
디노는 작은 소리를 따라 땅을 내려다보았다. 주변에 있는 것들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이상한 풀이 보였는데 아마도 그것이 자신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디노는 우선 발을 고쳐 디뎠다. 그러고는 그 풀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고개가 바닥에 닿을 만큼 천천히 내렸다. 마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약간의 현기증이 났다. _31쪽
디노는 안타까웠다. 그녀를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마주치는 모든 자들이 공포에 떨며 자신을 바라볼 때의 서글픔을 어
떻게 말할 수 있으며, 아무리 숨고 싶어도 숨을 수 없는 거대한 자의 절망감은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맞아. 난 너하고는 달라….
디노의 말에 플로라는 더욱 발끈했다. (…)
―이젠 날 좀 혼자 있게 해줘.
디노는 거북했다. 뭔가 얘기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식으로 대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_84~85쪽
―난 ‘영리한 사업가’라고 했잖아. 세상을 좀 알지.
여전히 당황한 상태였지만 플로라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
―안심해. 이건 공평한 거래야. 어렵지도 않아. 그냥 날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그럼 넌 ‘번성하는 능력’을 가지게 될 거야. 우리 같이 저 들판을 가득 채워보자고.
―내가 너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난 최초의 꽃이야.
―최후의 꽃이 될 수도 있겠지. _91~92쪽
디노의 편안한 태도가 주는 불길함 때문에 내 마음은 날카로운 가시덤불 비탈을 굴러 내리듯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한없이 깊어진 그의 눈동자 앞에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 다시 한번 디노는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온전히 일어서는 데는 시간이 한참이나 걸렸다.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서 있는 무기력하고 보잘것없는 내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나는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머지않아 아주 춥고 긴 겨울이 올 거야. 플로라를 걱정하지는 마. 그녀는 이제 강해졌어. 작은 씨앗이 되어 땅속에서 추위를 나는 법을 깨닫게 되었거든. _132~133쪽
―플로라, 난 네 이름이 정말 좋아.
앙상해진 나무와 바위들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돌다 스며들었다. 말을 마친 디노는 방금까지 있었던 그 높은 곳으로부터 느릿느릿 무너져 내렸다. 누구보다도 거대했던 그의 몸은 엄청난 울림만을 남긴 채 돌과 흙을 가르며 깊이 박혀버리고 말았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키다리나무 숲은 오래도록 슬프게 흔들렸다. 이제는 결코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디노의 모습을 바라보며 플로라는 나직이 속삭였다.
―너무 짧아. 너무 짧아, 안녕과 안녕 사이가…. _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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