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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 전쟁, 위기의 세계사

차용구 지음
믹스커피

2024년 11월 19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1월 1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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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42.45MB)
ISBN 979117043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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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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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명문대 리즈대학에서 매년 개최하는 중세사 학술대회의 2024년 대주제는 ‘위기’였다. 국제적 학술대회의 관심사가 위기라는 키워드에 다다랐다는 건 큰 의미를 지닐 터다. 실제적으로 다가온 개념에 대해 학술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걸 뜻하니 말이다.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이 잇따라 일어나고 대량 학살, 난민, 기아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등 다양한 위기가 상호작용하는 복합 위기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방증이다.
이 책 『역병, 전쟁, 위기의 세계사』는 팬데믹과 전쟁이 잇따르는 현시대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삶의 길을 찾으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위기를 피하기 힘들다면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로 받아들이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위기를 예비하거나 위기에서 오는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위기와 위기 관리를 역사적 맥락에서 조망해야 한다.
들어가며_
위기의 시대, 역사에서 길을 찾다

1부 환경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은 역사

위기를 기회로 만든 역사 속 팬데믹 대처법
루터를 개혁으로 이끈 전방위적 위기 의식
위기의 장벽에서 협력과 공생의 교량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재난에 필요한 역사 인식
초국경적 환경오염 피해 방지를 위해서
핵 재앙 위기가 주는 역사적 교훈 앞에서
변곡선을 그린 기후 위기 역사에서 배울 것들

2부 정치 위기 속에서 길을 찾은 역사

1장 우크라이나 문제의 기원
격변기의 동유럽, 두 지도자의 다른 길
가변적 상황에서 다잡아야 할 다중적 정체성
동일한 아픔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신냉전 위기로 치닫는 접경 도시
전쟁의 기억으로 정립한 역사의 새로운 이면
눈을 뜨고도 현실을 보지 못하는 동맹의 딜레마

2장 평화 공존의 기억
‘팍스 아메리카나’의 검은 그림자 안에서
다양한 종교가 평화적으로 공존했던 역사로
중동의 비극을 초래한 서구 열강의 원죄
DMZ 국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
신뢰감이 담보되어야 할 정치가의 제스처

3부 위기를 기회로 만든 성찰과 이주의 역사

폴란드와 독일의 용서, 화해가 주는 교훈
‘대립하는 것은 상호보완적이다’라는 말의 의미
나쁜 역사의 재현을 막는 건 소소한 반복
죽음을 삶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
자발적인 지적 망명을 떠나야 하는 이유
호모미그란스가 타지에서 받아야 할 환대의 권리
위기와 변혁의 시대에 탄생한 ‘대학’의 의미
신민 대표 기구 ‘의회’의 탄생부터 발전까지
지금 우리에게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

나가며_
각자도생의 위기를 공동선의 기회로

고대의 역병과 중세의 흑사병이 불러온 서로 다른 위기 대응 양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위기 상황에서 사회의 흥망성쇠는 지도자의 올바른 상황 인식 능력에 달렸다. 둘째, 지도부는 문제의 근원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셋째, 위기를 이겨 내려면 신뢰를 얻어야 한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따를 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가짜뉴스를 만들거나 약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는 국제적 신뢰를 잃을 것이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신들을 핍박했던 원수에게조차 자비를 베풀었기에 감염병이 돌 때마다 개종자 수가 늘어났다는 걸 기억하자. 위기 상황에서 진정성이 신뢰라는 자본을 쌓은 덕분이다. 마지막으로, 이타주의는 감염병 위기를 헤쳐나가는 주요 대처 방안이다.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도 “타인의 불행은 내게 재앙이 된다”라고 말했다. 타인을 배려하는 게 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탈리는 이타주의를 앞세운 국가와 국민만이 팬데믹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역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해야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위기 시대일수록 감동과 공감이 필요한 이유다._24~25쪽

인류는 주어진 자원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능력을 지녔다. 오늘날과 같은 쓰레기 과잉 배출의 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그 기간이 매우 짧다. 반면 재순환 기술은 오랜 기간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법이었다. 원전 사고가 반복되는 오늘날 에너지를 절약하고 감량·재사용·재활용·수거를 뜻하는 4R(Reduce, Reuse, Recycle, Recover)을 실천해 원전 의존도를 낮추면 그만큼 원전 참사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참사로 우리는 원전 사고가 단순히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재앙임을 인식했다. 원전 사고에는 너와 내가 없으며 이웃의 불행이 곧 내 불행이라는 걸 기억하자. 역사적으로 원전 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소련·일본 등 원자력 기술 강국이라고 자부했던 나라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 자만은 금물이다. 원전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위험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원전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다양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_68~69쪽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는 서방의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대신 러시아나 중국 같은 국가를 모델로 삼아 나아가야 한다”라면서 서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구, 러시아, 중국이 유라시아 중부 지역에서 벌이는 ‘뉴 그레이트 게임’(New Great Game) 속에서 오르반 총리가 보여준 균형 정책에 헝가리 유권자들은 기꺼이 표를 던졌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만 극대화하려는 오르반 총리는 ‘이주민 환대’라는 건국 아버지의 유언을 망각한 나머지 주변 국가로부터 인종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모 올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특정 강대국에 치우치는 선택을 하지 말고 동서로 분단된 자국이 협력적으로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_92쪽

‘서구 대 이슬람’이라고 경계를 구분하는 건 역사적 허구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1990년대에 쓴 『문명의 충돌』에서 동서 냉전 대립이 문명 간의 갈등으로 다극화하면서 전쟁의 역사가 지속될 거라는 문명충돌론을 설파했다. 그는 서구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만나는 단층선(fault line)에 주목하면서, 역사적으로 이곳은 피로 물든 경계선이었으며 21세기에도 서구 주도의 세계 질서를 뒤흔드는 갈등의 무대가 될 거라고 예견했다. 헌팅턴의 예견 이후 지난 30년을 돌아보니 코소보 전쟁, 9·11 테러,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서구와 이슬람 세계는 여전히 적대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두 종교가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했던 기간이 그렇지 않았던 때보다 훨씬 길다. 또한 문명 간 경계는 이질적인 다양한 문화가 만나 뒤섞여 새로운 게 창조된 접경 공간이었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_164쪽

갈등 관계에 있는 집단은 역설적이게도 가까이 지내는 이웃으로 오랜 기간 서로 잘 알던 사람들이다. 너무 가까워서 불편한 이웃이었던 양국은 젊은 세대에게 역사 전쟁이 아닌 화해를 목적으로 역사 교육을 시행 중이다. 용서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아페시스’(aphesis)인데 ‘빚을 면제해 줌’을 뜻한다. 상대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얽매여 과거에만 머문다면 자신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빚에서 해방되게 해주는, 그래서 서로 주고받는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용서는 잘못으로 뒤엉킨 삶의 자리에 낡은 감정을 지워 버리고 더 나은 것으로 채우는 선물이다. 강제할 수 없지만 주어지면 좋은 게 선물이다.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해 무거운 짐을 놓아 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제 나를 위해 용서하자. 용서할 수 없으면 잊기라도 하자._204쪽

위기 관리에 완벽한 해결책은 없을 테지만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심각한 위험을 어떻게 피했는지, 미래를 위해 어떻게 위기 관리를 시행했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현재를 미래 세대에게 잘 물려주기 위해선 공동선을 우선해야 한다. 하여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절실하다. 나아가 현 위기를 초래한 관습적 인식과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 위기 극복은 염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다.

루터를 종교개혁으로 이끈 전방위적 위기 의식?
폴란드와 독일의 용서, 화해가 주는 교훈이란?

‘위기(危機)’는 한자어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합쳐진 말로 부정적 혹은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고비를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병세가 악화하거나 회복하는 상태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위기’라고 불렀다. 즉 위기는 더 나빠지거나 더 좋아지는 분기점이나 변곡점 같은 결정적 순간을 말한다.
일찍이 마르틴 루터는 그릇된 관습이나 잘못된 종교적 교리를 바로잡고 믿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자고 주창하며 ‘종교개혁’을 이룩했다. 하지만 16세기 초반 당시 유럽은 질병과 전쟁, 기근과 기후 변화로 암울하기 이를 데 없었고, 재난의 시대를 살아간 민중은 불건전하고 극단적이며 과도한 신앙적 행위로 점철되었다. 하여 루터의 위기 의식 투철한 개혁이 힘을 받기 힘들었다.
한편 18세기 말부터 다툼을 이어온 폴란드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최악의 사이가 된 후 1960년대 극적인 사죄, 용서, 화해를 이으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 상징이 1970년 12월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를 찾아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사죄한 사건이다. 이후 폴란드는 용서했고 두 나라는 화해를 목적으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키프리아누스 역병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뉴 그레이트 게임 시대, 위기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환경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은 역사를 들여다본다. 2~3세기 감염병 위기 시대에 그리스도교의 위기 대응 자세와 능력, 소빙기 시대에 일어난 자연재해와 사회적 복원력,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 참사에 대한 국가 간의 상이한 대응책 등 환경 위기 극복을 위한 역사적 사례들을 고찰했다. 2부에선 정치 위기 속에서 길을 찾으려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발(發) 전쟁들이 글로벌 위기를 가중시키는 와중에 현명한 정책적 판단이 더욱 중요해졌다. 국내에서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행정 갈등이 남북한 접경 지역에서 정세의 불안정을 초래했고, 접경 지역은 주체가 아닌 객체로 머문다. 3부는 성찰과 교류의 역사가 만든 기회를 엿본다. 이웃 국가 간의 적의와 증오 감정은 초경계적 상호 교섭과 연대의 역사적 경험 공유, 미래 지향적인 화해와 치유에 무게를 두는 회복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나아가 개인·사회·국가 간 각자도생의 생존 논리가 앞서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성찰과 교류의 역사를 엿보며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차용구

서양사 전공자로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서양의 접경을 연구하는 중앙대·한국외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의 단장을 역임했고,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독일 게오르그 에케르트 국제교과서 연구소·한스자이델 재단·그라이프스발트대학 발트해 연구소·네덜란드 라이덴대학 아시아 연구소·일본 홋카이도대학 슬라브 유라시아 연구센터·튀르키예 히타이트대학 이슬람 신학대학·유엔 사회개발 연구소 등 여러 국제 기관과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주요 저서로는 『중세 접경을 걷다』 『국경의 역사』 『남자의 품격』 『중세유럽 여성의 발견』 『로마 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 『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넘어』(공저) 등이 있다. 그 외에 4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와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고, 해외 저명 출판사 학술서의 북챕터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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