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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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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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네가 웃으니 내 세상이 위로가 돼
정중하게 외롭게/ 형 물이잖아/ 습작/ 우리의 허무는 능금/ 가로수/ 수석/ 종 다양성 슬픔 무성히/ 슬픔이 익을 동안 나눠 잊을까요/ 걱정/ 스스로/ 우리는 시간을 사랑으로 바꾸며 살았고 누가 먼저였을까 사랑과 바꾸긴 아깝다 생각한 사람은/ 밸런스/ 사랑은 잊히고 근육은 남는다/ 선선한 슬픔/ 소양강 소로우/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남에게 빌지 않기로 했지/ 시간이 없다고 말한 너와 겨우 만났지만 날 싫어하는 것 같고 헤어진 후에 가슴 가득 노을이 차는 것 같을 때
2부 느슨히 묶어두었지 잃어도 울지 않으려
행복을 위하여/ 행복의 한계/ 희망/ 행복의 태도/ 착오 없는 불행/ 행복의 함정/ 행복을 왜 버려야 해요/ 사르르/ 행복한 나물/ 제철 행복/ 조용한 열정/ 행복 1/ 행복의 유행/ 행복 2/ 행복 3/ 여력/ 마지막 행복/ 진짜 마지막 행복
3부 아직 선량할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네
서른/ 원죄/ 두릅을 두고 왔다/ 경우/ 당기시오/ 기계가 기도하는 세계에서/ 동기/ 스티커/ 방심/ 감염/ 수거/ 죔죔/ 어서 오세요/ 버추얼 워터/ 모 심으면 먹을 날만 남았다/ 사람은 상상하는 걸 다 만든다 만들 수 있는 정도만 상상해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왜/ 온라인 열반/ 완벽함은 하느님이 하시는 거니 나는 완벽함/ 근처도 가지 않기로 했다/ 팽주(烹主)가 손을 포기하면 차가 훨씬 맛있습니다/ 종려
해설 | 슬픔을 기적으로 만드는 사람
소유정(문학평론가)
버리긴 아까워 예쁘다 보는 게 있다
동산에 능금이 가득하다
능금은 옛 한국 사과다
이것을 알게 된 이유가 내겐 여름처럼 소중하다
상한 걸 도려내 건네던 때가
사람마다 한철씩 있다
내가 도려낼 상처인 걸 모를 뿐
그때 뭐라 뭐라 말하고
너는 하기 힘들다 했다
살아가는 게?
사랑하는 게?
답은 같아도 재차 물을 수밖에 없었다
_「우리의 허무는 능금」 부분
슬픔이 바나나보다 빨리 익는다
두면 먹겠다 싶었는데 한 개는 끝내 검게 변했다
생긴 건 저래도 맛은 있단 걸 잘 알지만
보기 좋은 슬픔이 울기도 좋은 걸 누가 모르나
(…)
갈고 으깨고 때론 무언가 한 바퀴 돌려 뿌리면
못 살고 못 먹을 슬픔도 없지 않을까
상하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고
사람은 그런 거라고 말하는 너의 얼굴에
톡, 톡 검버섯 많아지는 걸 보며
당신이 두고 잊은 세월을 내가 반만 나눠 익고 싶었다
_「슬픔이 익을 동안 나눠 잊을까요」 부분
헤어지는 게 어려워 친구에게 상담을 받으러 갔다 오래 사귀었는데 마음이 떠난 것 같은데 어떻게 헤어져야 잘 헤어지는 건지 모르겠어 (…) 친구는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당연하다는 듯 괜찮은 헤어짐은 없다고 했다 어떤 시간도, 머물지 않은 관계도 끊어내는 건 힘든 일이라고 혹시 너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서운 건 아니냐고
_「우리는 시간을 사랑으로 바꾸며 살았고 누가 먼저였을까 사랑과 바꾸긴 아깝다 생각한 사람은」 부분
바벨을 다시 하나둘 하나둘 들어본다 보기보다 무겁지 않은 사랑도 많고 사랑보다 무거운 것도 많지만 들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랑도 인지의 영역이니까 곰도 사람의 뒤로 덩치 큰 무언가가 있을까 두려워 두 발로 선다고 아마 나의 사랑도 혼자 서 있는 넓은 종이의 공포가 아닐까 그런 백지장을 맞들어줄 이가 없어 하나둘 하나둘 힘을 기르고 있나
_「사랑은 잊히고 근육은 남는다」 부분
우리는 우리를 방류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거기에 홀로 있고 당신은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나도 다음 열차로 올라갔습니다 좌석은 매진되어 전철을 타고 갔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껴서 답답하게 올라가니 슬픔보다 더위가 나를 지배했습니다 사람은 가까이 있는 것에 먼저 반응합니다 땀흘려 이룬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사랑이 먼저 흘러가버렸네요 흐름의 시작을 찾을 수 없는 유수와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_「소양강 소로우」 부분
어른들이 그때의 일을 추억이라 부르다가
추악했다고 흐느끼다가
행복인지 아닌지 의견을 모아본다
누구는 계속 울고
누구는 울다가 웃기도 했다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 치면 다 추억이라 할 만했다
_「행복의 태도」 부분
평화의 오후일수록 그늘이 필요하다
쉬는 이에게 어둠은 포근한 색이고
우는 이에게 빛은 창피한 그림자니까
어떤 산책이 누군가에겐 질주이므로
잃은 방향은 방황으로 찾기로 하자
잠시 멈추거나 서성거려도
잠시 이 색깔이어도 괜찮다, 괜찮다
하늘은 하늘색으로 칠하면 되는 것
_「조용한 열정」 부분
했던 말을 나는 주워 담을 수 있는데
하느님은 그러지 못해 세상이 생겨버린 것
하신 말을 거둘 수 없어
아까운 사람만 일찍 거두어 가신다
미안해, 미안해 기도하면 그렇게 들리는 이유
_「완벽함은 하느님이 하시는 거니 나는 완벽함 근처도가지 않기로 했다」 부분
바닥까지 내려가보면
자신의 바닥을 알게 되면
발돋움해 나올 수 있을 줄 알았다
바닥을 알고, 내 한계를 알고
그곳을 박차고 나왔더니 다른 바닥이 있다
산다는 게 슬픔을 갱신하는 일 같을 때
하필 꽃잎도 다 떨어진 봄날
떨어진 건 다시 되돌아가 붙지 않았다
(…)
계속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놓지 않으려다
내 사랑은 죄다 아가미가 찢겨 있구나
_「정중하게 외롭게」 부분
시집의 문을 여는 첫 시이자 시집 전체의 분위기를 관통하는 「정중하게 외롭게」에는 “꽃잎이 다 떨어진 봄날”, 사랑을 “계속 놓치지 않으려”다 자신의 사랑이 “죄다 아가미가 찢겨” 있다는 걸 깨달은 화자가 등장한다. 그런 화자의 모습은 일면 비극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그는 “외로움”이란 혼자 남은 사람을 고립시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둘”이 “각자”의 이유로 “슬퍼”하게도 만드는 감정임을 알고 있기에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이 시는 사랑의 실패로 인한 비극성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얻는 것이 “제일 어렵”(「사랑은 잊히고 근육은 남는다」)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 화자의 순도 높은 마음 그 자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다.
1부 ‘네가 웃으니 내 세상이 위로가 돼’는 그러한 마음을 지닌 시적 화자 ‘나’가 시적 대상인 ‘너’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친숙한 어법을 통해 사랑의 여러 국면을 펼쳐 보이는 시들로 채워져 있다. “사랑하지 않을 때까지 사랑해보면/ 사랑 못할 게 없”(「수석」)다고 되뇌는 화자는 사랑으로 말미암은 감정들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사랑의 기쁨(“내가 태어난 게 처음으로 좋았다”, 「형 물이잖아」), 사랑의 슬픔(“반짝이면 다 사랑인 줄 알았다”, 「종 다양성 슬픔 무성히」), 사랑의 미련(“왜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사랑은 잊히고 근육은 남는다」), 사랑의 허무(“사랑도 삶도 맛만 보며 살 순 없을까”, 「우리의 허무는 능금」) 등 사랑을 둘러싸고 천변만화하는 감정을 펼쳐 보인다. 유수연의 시는 가히 “먼저 흘러가버”려 “흐름의 시작을 찾을 수 없는” 사랑의 원류를 좇는, 아름다운 사랑학개론이라 할 만하다.
이야기를 적는 동안 당신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되고 문득 오늘의 슬픔이 어느 날의 기적이 될 수 있기를 그러나 베개가 많이 젖었네, 많이 울었어? 아니, 아 그러면 젖은 머리로 잤구나 오늘은 말리고 자, 말해주던 너는 꿈에도 오지 않는다 (…) 아무도 없지만 너는 종종 내 옆에 눕고 나는 계속 어떤 문장을 너처럼 안고 잠든다 _「습작」 부분
1부가 주로 ‘나’와 ‘너’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면, ‘행복’ 연작시라 할 수 있는 2부 ‘느슨히 묶어두었지 잃어도 울지 않으려’는 우리 삶을 지속하게 하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한층 더 깊고 너른 시선으로 탐구한다. 시인은 결코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삶에서 역설적으로 행복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시인이 바라는 행복이 대단히 크지 않기 때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버추월 어터」), “나는 나를 살아가야만 한다”(「행복의 한계」)고 숨죽인 의지를 다짐하는 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울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살기 위해 소란을 택한”(「행복을 위하여」) 것이라는 화자의 목소리는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소유정의 말처럼 “생의 의지를 간신히 다잡아보는 다짐인 동시에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필사적인 주문”으로 들린다.
무뎌지는 게
물렁해지는 게
다 상처는 아닌 거지
사는 게 그런 거라서
사는 중엔 잊기로 한다
크기는 달라도
개수는 달라도
무게로 재는 것이니까
_「제철 행복」 부분
그렇다면 시인이 정의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편집자와 주고받은 미니 인터뷰에서 시인은 행복이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 그 자체”이며 그것은 “무엇이 아니라” “무엇인지 질문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한다.
시인의 이러한 태도는 “삶”이라는 “답지”를 “밀려 쓴”(「서른」), 더이상은 어리다고만은 할 수 없는 나이에 이른 3부 ‘아직 선량할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네’의 시적 화자들과 연결되는 듯하다. 3부에 수록된 시들은 하루치의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길어올린 시적인 깨달음으로 넘실거린다. “지갑을 떨군 사람”을 착각해 잘못 주워준 경험을 통해 어긋난 믿음이 불러일으키는 인간 심연의 죄의식을 발견하는 「원죄」, 일터에 두릅을 두고 온 사소한 실수를 떠올리며 삶이라는 한정적인 시간을 어떻게 소중하게 쓸지 고민하는 「두릅을 두고 왔다」 등이 인상적이다.
시인은 “답이 없”(「서른」)는 “망망대해”와도 같은 삶의 속절없음과 그로 인한 슬픔을 “부처님 말씀”(「온라인 열반」)으로 상징되는 종교에 의탁해 극복해보려고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절대적 신을 통한 구원을 의심한다. 시인에게 삶이란 시쓰기라는 끝없는 기도에 다름 아니다.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는 그러한 시인이 “꿈에서 쫓겨난” “모든 삶”(「습작」)을 시를 통해 위로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삶과 사랑을 함부로 놓지 않도록 충일한 의지를 갖게 하는 시집이다.
기도한다 생각하면
사랑하듯 기도할 수 있다
(…)
어둠에게 필요한 건 빛이 아니라
같은 어둠일 수 있다
_「행복 1」 부분
그는 자기 자신만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다른 이의 손이 사라진 뒤에도 그가 여전히 사랑을, 슬픔을, 사람을, 그리고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 두 손을 맞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아주 고요하게 기도하는 손이다.
_소유정, 해설에서
■ 유수연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Q1.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는 시인님의 두번째 시집입니다. 첫 시집을 펴낼 때와는 또다른 마음일 것 같아요. 독자님들께 드리는 인사와 함께 소회를 말씀해주세요.
사랑을 간신히 내려놓느라 마음이 죄 악필이 되었어요. 이 글은 펜을 잡고 쓰지 않아 다행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잘 지냈어요. 어느 날 이 시집이 당신이 내려놓은 사랑과 닮았으면 좋겠어요. 모습도, 용도도, 향기도 다른 우리 사랑의 무게를 같이 저울질해보도록 할까요? 기우는 쪽으로 살며시 영점을 옮겨 나란히 매달려 있어보아요.
Q2. 시집의 문을 여는 「정중하게 외롭게」는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시예요. 외로움, 사랑, 이별, 상실의 정서가 매우 섬세하고도 조심스러운 언어로 표현돼 있어요. 이 시를 쓸 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산다는 게 슬픔을 갱신하는 일”처럼 느끼며 살았어요. 운전면허를 딴 지 십 년이 지났네요. 면허를 갱신하란 연락을 받은 게 오래전인데 아직 갱신하지 못했어요. 매우 귀찮고 복잡한 과정처럼 느껴졌달까요. 사실 그게 어렵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하지 않게 돼요. 그런 마음이 담긴 시가 아닐까 싶어요. 십 년의 슬픔을 잊고 이제는 새로운 슬픔을 해야 할 때예요. 그런데 어떻게 새로운 슬픔을 할 수 있을까요. 옛 신분증에 있는 얼굴은 더는 제 얼굴은 아닌데, 가끔 그것을 저의 지금처럼 보여주고는 하죠. 그래도 괜찮아요. 과거의 저와 지금의 저를 다른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그때의 슬픔을 알아차리는 건 오로지 저 혼자더라고요.
Q3. 2부는 ‘행복’ 연작시라 할 수 있어요. 「행복을 위하여」 「행복의 한계」 「착오 없는 불행」 「제철 행복」 등 제목들이 이채롭고, 시를 읽어나가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돼요. 이 시들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어요. ‘행복이란 뭘까?’ 그 질문으로 이어지는 시들이지요. 그런데 한 권 분량으로 점차 시가 많이 모였는데도 답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 알게 됐어요. 아, 이건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 그 자체구나. 행복이란 무엇이 아니라, 무엇인지 질문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제 마음에서 피고 지는 모든 게 다 행복 같았어요. 그 누구도 여름을 잡고 있다거나, 가을을 잡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무엇이 첫눈인지, 무엇이 계절의 시작인지 저마다의 기준이 다르잖아요. 현상은 현상으로 부지런히 일어나고 우리는 그 안에서 그저 피고 져요. 이 시집도 그래요. 그냥 피고 진 것들이에요.
Q4. 이번 시집에서 특히 아끼는 시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 이유도 같이 들려주세요.
「슬픔이 익을 동안 나눠 잊을까요」를 조금 아껴볼까 해요. 이 시를 소외시켰던 기억이 있어서요. 이 시의 제목을 마지막 교정 때 고치고 다시 읽다 이런 문장이 있었나?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말해줄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게 가득한 시이기도 해요. 제가 쓰고도 이런 마음이 담겼구나 돌아봤어요. “상하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고/ 사람은 그런 거라고 말하는 너의 얼굴에”라는 구절은 쓸 때의 마음과 훗날 읽었을 때의 마음이 전혀 달라요. 이 시를 쓰고 난 뒤에 저의 어떤 한철이 누군가와 나눠 잊은 건 아닐까 싶어요. 나눠 잊고 있는 동안 슬픔과 사랑, 그리고 외로움은 무르익었지만 말이에요. 제가 쓴 시가 낯설어질 때가 좋아요. 그만큼 슬펐음을 겨우 잊은 것만 같으니까요. 이 시를 내가 쓰고도 그래 그렇지, 사람은 그런 거였지, 하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Q5. ‘마음’과 ‘근육’이라는 시어가 눈에 띄었어요. “기억하는 일도 근육이 필요해서/ 슬픈 기억은 오래 붙잡고 있기 힘들었다”(「행복의 태도」)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고, “마음은 꽤 융통성이 있어요”(「행복을 왜 버려야 해요」)라는 문장도 기억에 남아요. 독자들이 이번 시집을 어떻게 읽어주기를 바라시는지 마지막 인사와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놓쳐주세요. 떨어진 걸 함께 주울 때가 오고, 그것이 돌아갈 곳을 알려주기도 할 테니까요. 곧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오겠죠? 나무도 꽃을 잊으려 꽃을 떨구니까요. 우리의 꽃길은 어쩌면 흉터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키울 거름은 우리가 떨군 사랑일 거예요. 그러니 부디 사랑의 실패를 사랑의 끝으로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말
시는 어렵고 이해할 수 없다는 너에게 꽃을 이해하려고 하니 되물었지 그런데도 나는 시집을 펼쳐놓고 오래 설명해주었어 네 얼굴의 홍조를 사랑으로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마침내 피고 지는 게 행복이란 걸 알지만 무엇이 우리에게서 피고 졌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을게 그때 떨군 것들을 함께 주우러 갈 수는 없으니까
아직도 나는 사랑을 모르고 착하지도 않아
2024년 가을
유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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