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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지만 화려하게 해주세요

박창선 지음
낭독자 남도형
부키

2020년 12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0년 05월 21일 출간

총 시간
5시간 19
(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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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상품 정보
듣기 가능 오디오
제공 언어 한국어
파일 정보 mp3 (425.00MB)
ISBN 9788960518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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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지만 화려하게 해주세요 총 31회
1회. Prologue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해주세요

7분 10.00MB

2회. 1. 겁내지 말고 일합시다/ 빨리 하든지 잘 하든지: 속도와 깊이에 대하여

11분 15.00MB

3회. 멋지긴 한데 못 알아듣겠어: 디자인 용어 살짝 엿보기

11분 15.00MB

4회. 제가 디자인 감각이 좀 있는데요: 감각이 실무에 쓰이려면

9분 13.00MB

5회. 당신 디자인, 내 스타일이야: 취향을 좁혀보자

20분 27.00MB

6회. 그렇게 물어보면 도와줄 수가 없어: 디자인 의뢰의 기술

10분 13.00MB

7회. 시안은 언제쯤 나와요?: 디테일한 업무 프로세스

14분 19.00MB

8회. 열정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디자이너 채용의 비밀

7분 10.00MB

9회. 웹디자인도 하시는 줄 알았는데: 디자인의 종류와 영역

9분 12.00MB

10회. 오늘도 밤을 찢는다: 디자이너가 야근하는 이유

14분 20.00MB

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사업 제안서, 회사 소개서, 홈페이지, 로고, 명함, 각종 포스터, 브로슈어 등 업무에 필요한 디자인은 셀 수 없다. 사원부터 사장까지 바야흐로 디자인에 매달려야 하는 시대다. 하지만 하나의 디자인을 뽑아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야근과 두통과 마음의 상처를 감수하고 있는가. 그런데도 ‘내 맘 같은’ 디자인은 도무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비극은 클라이언트인 당신의 ‘디자인 감각’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 디자이너가 마냥 실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문제는 언어이고, 커뮤니케이션이다.

1인 기업인 애프터모멘트를 운영하며 디자인 업무를 직접 하는 동시에 일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인 저자 박창선은, 실무에 쓰이는 이미지를 잘 다루려면 결국 언어를 잘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디자인 업무에 관한 책이지만 조직 생활에서 부딪히는 보편적인 의사소통에 대한 꿀팁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플하지만 화려하게 해주세요’라는 기괴한 요청에 담긴 고충과 맥락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현장에서 갈고닦은 통찰과 기지로 그 해결책을 차곡차곡 제시한다.
Prologue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해주세요

1. 겁내지 말고 일합시다
빨리 하든지 잘 하든지: 속도와 깊이에 대하여
멋지긴 한데 못 알아듣겠어: 디자인 용어 살짝 엿보기
제가 디자인 감각이 좀 있는데요: 감각이 실무에 쓰이려면
당신 디자인, 내 스타일이야: 취향을 좁혀보자
그렇게 물어보면 도와줄 수가 없어: 디자인 의뢰의 기술
시안은 언제쯤 나와요?: 디테일한 업무 프로세스
열정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디자이너 채용의 비밀
웹디자인도 하시는 줄 알았는데: 디자인의 종류와 영역
오늘도 밤을 찢는다: 디자이너가 야근하는 이유
쟤랑 일할 땐 왜 힘들까: 디자이너를 둘러싼 사람들

2. 싸우지 말고 일합시다
대표님이 화려한 걸 좋아하세요: 누굴 위한 디자인인가
우주적이고 유쾌한 사각형이라니: 정확한 디렉션에 대하여
심플하지만 화려하게 해주세요: 내 욕망 나도 몰라
위에서 컨펌이 안 나는데 어떡해: 일정이 자꾸 늦어진다면
디자인은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목적과 용도를 정확히
집에서 일하면 안 되나요?: 재택근무 디자이너와 일할 때
말 한마디 없는데 믿음이 가: 스타일이 다른 디자이너
보챈다고 쌀이 밥이 되나요: ‘대충, 빨리, 잘’ 하는 법
대표님 옆에서 살살 웃는 쟤가 싫어: 귀에만 달콤한 디자인
기왕 한다면 하얗게 불태워보자: 디자인 회의의 정석

3. 다치지 말고 일합시다
솔직히 말해서 맘에 안 들어: 피드백은 죄송할 일이 아니다
이사님 또 출장 가셨어요?: 보고만 하다 끝나는 프로젝트
내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의견을 빙빙 돌리지 말라
우리 그냥 용건만 말하죠: 메일과 전화 사용법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아니 좀 더: 마이크로 매니징의 폐해
그래서 얼마면 될까요?: 디자인 비용을 산정해보자
월급이 3일 늦어도 괜찮아요?: 비용 정산의 매너
화내자니 치사하고 참자니 화나: 미묘하게 불쾌한 상황들
어제는 오타가 없었는데: 디자인 최종 점검 사항
돈 주면서 맘까지 다치지 않으려면: ‘나’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관련 업무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려면 사업 제안서, 회사 소개서, 로고, 브랜드 가이드, 명함, 브로슈어 등 다양한 디자인 자료가 필수적이니까요.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위와 같은 디자인 자료들을 온전히 갖춘 회사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일하고 돈 벌고 직원 뽑고 투자받으러 다니고 영업 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때그때 대강 만든 제안서만 수많은 버전으로 널브러져 있고 제대로 된 회사 소개서 하나 없는 채로 2~3년이 흘러가기 쉽죠. 물론 그런 자료들이 없다고 해서 회사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투자를 준비할 수도 있고 행사에 참여하거나 여러분의 클라이언트가 해당 자료들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콘텐츠, 서비스, 제품 등에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분의 철학을 가시화시켜야 합니다. 디자인은 비즈니스의 시작이고 메인이며 마지막이기도 합니다. -〈본문 18 쪽〉

여백을 인식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누군가는 장마당처럼 드넓은 몽골 민족의 여백을 선호하고 다른 누군가는 아기자기하고 빼곡한 느낌을 좋아합니다. 보통 일반인들은 여백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많다고 합니다. 흔히 ‘백색 공포’로 불리는 개념이죠. 백화점 명품관에서 벽 한 면에 가방 하나만 떡하니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와, 저 가방 엄청 비싸겠다’라고 생각해본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디자인에서 여백은 권력을 나타냅니다. 높은 천장과 넓은 면적 등 많은 여백을 보유한 요소에는 고급스러움, 위압감, 부담, 권위의식 등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흰 바탕일 경우에는 더욱 강렬한 긴장감을 유발하죠. 이처럼 한 요소가 높은 자리에 있다면 다른 요소와 위상차가 발생합니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가 생각하는 ‘중요한 요소’가 서로 다를 수도 있어서, 어디에 어떻게 여백을 만들고 어느 정도의 여백을 선호하는가는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 44~45쪽〉

디자이너를 뽑을 때 가장 크게 실수하는 부분은 ‘실력’을 보려고 하는 점입니다. 실력 그 자체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디자이너는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의 장점을 잘 살려내 체계적이고 시각적으로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화려한 포토샵 스킬과 멋들어진 목업 이미지에 혹하지 않도록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줍시다. 전체적인 흐름 위에서 당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도록 합시다. 또한 업종에 대한 이해, 업무 카테고리에 대한 이해, 타 부서와의 유관성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물어보도록 합시다. 물론 주니어의 경우엔 모를 수도 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디자인은 내가 하는 것이니 누구든 건드리면 컴퓨터를 꺼버릴 것이다’라는 고집만 있다면 좋지 않겠죠. 동료와의 업무 연관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 협업하며 겪었던 다양한 상황과 본인만의 결론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봐야 하겠습니다. -〈본문 71~72쪽〉

디자인은 업무의 어느 한 부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영역에서 디자인은 끊임없이 필요하죠. 디자인은 하나의 점이라기보다는 큰 프레임에 가깝습니다. 디자이너는 누군가가 기획한 ‘관념 단위’의 메시지를 가시화합니다. 그 결과물을 통해 이후의 실무자가 제조, 개발을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영업 팀에서는 결과물을 바탕으로 대외 영업을 하죠. 이 결과를 다시 가시화해 피드백을 유도하고, 개선점을 파악하여 계획을 순환시킵니다. 디자이너는 각 실무자 간의 다른 언어를 시각 정보로 번역해 모두가 인지할 수 있게 도와주며, 나아가서는 시장과 고객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중간자라고 할 수 있어요. 서로 다른 외계어와 전문용어가 남발하는 혼돈의 전장에서 통역사이자 전령이 됩니다. 디자인 시안이 나오지 않으면 생각은 그냥 생각에 그치고 말죠. 머릿속에 서로 다른 코끼리를 그리며 회의를 하게 될 것이고, 자기만 알고 있는 언어로 의견을 말할 겁니다. 조만간 멱살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본문 106~107쪽〉

모든 대화에 쓰이는 단어들은 가장 쉽고 유치한 것으로 선택합시다. 무슨 비비드하고… 플랫한 컬러라든지… 균형 잡힌 레이아웃이라느니… 이런 단어는 쓰지 마세요. 그런 건 디자이너들끼리 서로 업무 얘기하거나 농담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우리끼리 얘기할 땐 ‘가장 진한 색, 원색, 파스텔, 요즘 유행하는 색’ 등 너무도 알아듣기 쉬운 단어들로 얘기하는 겁니다. 소통 과정에서 전문용어를 쓰는 것은 효율성을 위해서입니다. 서로가 똑같은 의미를 공유하고 있을 때는 큰 도움이 되죠. 길게 풀어서 설명해야 할 걸 한 단어로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둘 중 한쪽이 의미를 잘 모르고 있거나 서로 다르게 해석할 위험이 있다면 전문용어는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일 잘하는 게 먼저입니다. -〈본문 123쪽〉

말을 잘하는 것과 말이 많은 것은 다릅니다. 말을 잘하는 건 소위 ‘깔끔함’에서 비롯됩니다. 재미와 위트도 그 깔끔함 위에 얹히는 맛있는 장식이죠. 좋은 말은 상대에게 명료한 메시지를 줍니다. 판단이 명확해지고 근거들 간의 관계가 한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많은 말’은 혼란을 야기하죠. 뭔지 모르겠어서 그냥 그런 듯한 느낌을 줍니다. 듣긴 했지만 그림을 그릴 수는 없고, 같은 말만 반복됩니다. 감정적으로 쫓기는 느낌이 들고, 내가 원하는 정보만 짚어서 주기 때문에 자극적입니다. 보통 사람은 대화를 전체 맥락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이전의 대화는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죠. 우리가 기억하는 건 바로 앞의 문장입니다. 이런 방식을 이용해 결국 ‘앞문장+뒷문장’으로만 구성된 두 마디의 설득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컨펌하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현혹과 설명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이는 디자인을 잘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원래의 제작 목적과 우리 회사의 색깔이 있다면 디자인은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됩니다. 디자이너의 말은 참고 사항일 뿐이죠. 그것을 따를지 말지는 결정권자의 몫입니다. 디자이너가 하는 말이 현혹인지 설득인지 구별해봅시다. -〈본문 160~161쪽〉

사정 얘기부터 늘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저희가 이번에 MDF로 제작하려고 했던 것이 시공업체 쪽에서 조금 이슈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자재 들어오면 일정이 조금 늦어진다고 그쪽에서 차라리 다른 것이 어떻겠냐고 추천해준 것이 있는데 제가 보니까 그것들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말이죠. 열 마디만 더 하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상대방에게 눈물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간결하게 용건부터 말합시다. “제작 물품의 소재 변경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메일이라면 이것이 제목에 쓰여야 합니다. ‘안녕하세요’와 같은 메일 제목은 좋지 않습니다. 나중에 메일을 다시 검색해야 하거나 메일 히스토리를 차곡차곡 모으는 일을 생각했을 때도 제목은 용건을 포함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문 197쪽〉

실제로 아직도 많은 디자인이 실제로 디자인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보다는 결재 서류에 도장 찍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종종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상 경력 텍스트로 떡칠한 포스터, 한눈에 봐도 디자이너의 한이 서려 있는 웹페이지, 급하게 수정한 흔적이 역력한 브로슈어, 원래는 그게 아니었을 듯한 로고를 목격할 때가 있습니다. 시안을 손으로 만지면 그 시안에 얽힌 사연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피드백의 목적은 지식 배틀이나 자기 자랑이 아니라 ‘결과물을 더 잘 만들기 위함’입니다. PPT를 만드는 직원 뒤에서 근거도 없는 훈수를 툭 던지며 ‘나도 한마디 했다!’라는 마음으로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본문 205~206쪽〉

페이퍼 컷(paper cut)을 아시나요? A4용지 같은 종이에 사악 베이는 경우를 말하죠. 사실 깊지도 않고 그리 큰 상처도 아닙니다만 굉장히 신경 쓰이고 아립니다. 우린 이걸 아프다고 하지 않고 시리다, 아리다 등으로 표현하죠. 찌르는 듯한 통증을 의미합니다. 평소엔 잊고 살기 쉬운데 종종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고통을 줍니다. 미세한 커뮤니케이션 문제들은 마음에 이런 페이퍼 컷을 만들죠. 사실 그 순간에는 얘기를 못 합니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건지 직관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나고 점점 기분이 나빠집니다. 나중엔 그때 왜 이 말을 못했을까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죠. 다양한 피드백이 오가는 디자인 프로젝트에선 이런 페이퍼 컷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서로 비즈니스 매너를 지키는 상태로 웃으며 싫은 소리를 주고받아야 하니까요. 말 속에 뼈가 담겨 있기도 하죠. -〈본문 221~222쪽〉

어차피 천년만년 회사에 몸담을 것도 아니고, 여러분의 상사를 비롯해 여러분까지 모두 다양한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독립해야 할 시기가 올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의 제품이나 앱, 서비스, 홈페이지, 하다못해 섬네일이라도, 여러분이 디자이너와 소통할 일은 앞으로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디자이너와 말이 잘 통한다는 것, 말 통하는 디자이너를 만나는 것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굉장한 자산을 얻은 것과 같답니다. 물론 그런 디자이너는 대부분 자기가 잘난 줄을 알기 때문에 비쌉니다. 하지만 돈을 빌려서라도 그와 일을 하고 싶을 겁니

‘이게 400만 원짜리 회사 소개서란 말인가….’
눈앞에 펼쳐진 PDF 파일을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회사 소개서, 사업 제안서, 홈페이지, 로고, 명함, 각종 포스터, 브로슈어 등 업무에 필요한 디자인은 셀 수도 없고 내일 당장 써야 하는 자료부터 처리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디자이너에게 수정을 요청해본다.
“그러니까… 이렇게 좀 맑은 느낌 있잖아요. 좀 ‘화하고 샤한’ 느낌이요.”
좀 불안하긴 하지만 이 정도쯤 말하면 디자이너니까 알아듣겠지. 마지막 기대를 걸어본다. 하지만 며칠 뒤 날아온 수정 시안은 화하지도 샤하지도 않고 그저 해괴할 뿐. 울며 겨자 먹기로 상사에게 컨펌을 요청하니 다음과 같은 말이 돌아온다. “아니, 의뢰를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나온 거야?” “앞으로 디자이너 서칭은 딴 사람에게 맡겨!”
참담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이런 식으로 그때그때 급히 만든 디자인 자료가 수많은 버전으로 널브러져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디자인 감각이 문제일까…?’
업무에 필요한 것은 감각이 아니라 언어다

돈은 돈대로 쓰고, 열은 열대로 받고, 피로는 피로대로 쌓이는 이런 비극은 클라이언트인 당신의 ‘디자인 감각’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디자이너가 마냥 실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문제는 언어이고, 커뮤니케이션이다.
1인 기업인 애프터모멘트를 운영하는 저자 박창선은 디자인 업무를 직접 하면서 한편으로 일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다. 왜 디자인 업무 책을 클라이언트 들으라고 썼는지 그는 세 가지로 요약한다. 모든 회사는 좋은 디자인을 원하고, 실무자는 감정싸움을 하고 싶지 않으며, 그 누구도 돈 낭비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오더’가 중요해진다. 좋은 질문에 좋은 대답이 나오듯 요청에도 엄연히 퀄리티가 있다. 요청에는 정확한 언어가 필요하다. 예술 작품이 아닌 실무에 쓰이는 이미지를 잘 다루려면 결국 언어를 잘 다뤄야 한다는 데 저자는 주목한다.
디자인 업무가 무엇보다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자인은 무의식과의 전쟁이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욕망들이 충돌하고, 어디선가 보았던 수많은 정보가 본질을 흐린다. 우리를 홀리는 온갖 마수는 결국 “심플하지만 화려하게 해주세요”라는 기괴한 요청으로 튀어나오며 디자이너를 고통에 빠뜨린다. 느낌만 있고 언어가 부재한 사이 벌어지는 ‘멘붕’의 현장을 이 책은 디테일한 에피소드들로 포착한다

‘심플하지만 화려한’ ‘현대적이지만 전통적인’ ‘밝은 느낌의 다크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일이 안 끝납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는 이런 표현들은 실제로 저자가 들어봤던 것들이다. 디자이너들 사이에선 ‘말이 통하지 않는 클라이언트’를 의미하는 관용어처럼 쓰인다. 서른 살에 독학으로 디자인을 시작한 저자도 처음에는 소통의 요령을 몰라 ‘이불킥’만 반복하는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디자인의 세계에 뛰어들기 전에 판매직, 영업직, 콜센터, 현장직에서 20대를 보내며 사람 사이에서 대화하는 법을 몸으로 깨친 경험은 업무 커뮤니케이션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디자인을 모르는’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과 일하며 농담과 넋두리를 듣고 풀던 노하우로 그는 클라이언트의 ‘평범한’ 언어에 숨은 속뜻을 이해하게 됐다. 이제는 새벽까지 연락하지 않아도, 메일이나 카톡에 갖가지 이모티콘을 동원하지 않아도, ‘심플하지만 화려한’ 디자인에 담긴 맥락을 간파한다.
이 책은 겁내지 않고, 싸우지 않고, 다치지 않고 좋은 결과물을 얻어내기까지 좌충우돌한 6년의 기록이다. 의뢰를 할 때는 무엇부터 물어봐야 하는지, ‘화하고 샤한’ 느낌이 뭔지 알아듣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피드백을 해야 ‘무한 수정의 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저자는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의 A부터 Z까지를 조목조목 안내한다. 모두가 디자인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알아두면 요긴한 지식도 아울러 짚어준다. 레이아웃과 그리드는 어떻게 다른지, 편집 디자인과 UX 디자인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천차만별 디자인 비용은 어떻게 협의해야 좋은지, 집에서 일하고 밤에 일하는 디자이너와는 어떻게 소통하는 게 원활한지, 오늘의 칼퇴를 지키고 내일 당장 써먹을 ‘꿀팁’이 가득하다.

듣기 좋은 대화? 효율적인 대화!
‘일’로 만난 사이에 달콤한 말은 필요 없다

현장에서 갈고닦은 저자의 기지와 통찰은 ‘이렇게까지 공개해도 괜찮을까’ 싶을 만큼 세세한 업무 비책으로 이 한 권에 녹아 있다. 디자인 업무에 관한 책이지만 조직 생활에서 부딪히는 보편적인 의사소통 문제를 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번의 미팅으로 서로가 원하는 계약에 이르는 법, ‘어제 뭐 했냐’만 묻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회의를 방지하는 법, 이메일과 문자 등 비대면 소통에서의 오해를 피하는 법처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봤을 만한 내용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때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상대방 귀에 듣기 좋게 말한다는 뜻이 아니다. 업무 중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다루는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효율성’이다. 직장에서 만나는 인연은 친목을 위한 게 아니다. 서로 수백, 수천만 원을 주고받는 계약관계다. 만남부터 헤어짐까지가 하나의 프로젝트인 것이다. 나의 밥벌이가 걸린 프로젝트에서는 스트레스도 비용이다. 실속도 없이 스트레스 받을 시간에 하나라도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고 일을 진전시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위기’를 고려한답시고 말을 빙빙 돌리는 것, 원하는 것을 말할 때 지나치게 미안해하는 것, 구구절절 양해를 구하느라 본론을 뒤늦게 말하는 것 등은 금물이다.

감각에는 기준을, 욕망에는 근거를
마음 안 다치고 시간 안 버리는 디자인 업무 매뉴얼

이러한 ‘효율성’의 측면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진다. 디자인 업무는 상사나 대표의 욕망을 대신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평소 내 취향을 반영해서 남몰래 자기만족을 얻는 과정도 아니다. 결재를 위한 디자인, 고집을 위한 디자인은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은 디자인 본연의 역할을 분명히 짚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실무자’가 부딪히는 한계를 놓치지 않는다. ‘지금 여기의’ 디자인 업무가 부딪히는 단순하고 슬픈 현실을 직시한다. 그저 내려오는 오더를 툴로 만들어낸 뒤 험난한 수정을 반복하는 디자이너의 입장, 시간은 없는데 결과는 안 나오고 뭐가 잘못된 건지도 당최 모르겠는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저자는 두루 살핀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어떻게 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디자인’에 도달할 수 있을까.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결정권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디자인이 사업체의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디자인에 그것을 의뢰한 사람의 욕망이 반영되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나 혼자 보고 행복한 얼굴로 액자에 걸어놓는 용도가 아니지 않은가. 소비자를 설득하고 움직이기 위해 회사는 큰돈을 들여 디자인 업무를 진행한다. 저자의 질문은 마침내 여기를 향한다. ‘당신의 회사를 먹여 살리는 소비자는 당신의 디자인에 끄덕이고 있나?’
커뮤니케이션이 깔끔하면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시간이 넉넉하면 그제야 제대로 된 ‘엣지’가 눈에 들어온다. 엣지가 들어오면 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디자인물을 바라보게 된다. 내 욕망이 가득 묻어 있는 디자인이 아닌, 우리 회사의 아이덴티티가 제대로 드러나는 디자인은 바로 그때 나온다.

2020년 당신의 사무실에 맞춰 업데이트한
《디자이너 사용설명서》 개정판
“더 가볍게, 더 날카롭게, 더 생생하게”

2018년 출간된 《디자이너 사용설명서》는 “잘난 척 없이 재미있고 유익한 책” “예상을 뒤엎고 사람을 사로잡는 입담” “이미 이해받은 듯한 느낌” “비즈니스와 예술을 이어주는 번역기 같은 책” “서로가 윈윈 하는 방법” 등의 찬사를 받으며, 디자인 하랬더니 싸움만 하다 지친 수많은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에게 탄탄하고 촘촘한 노하우를 선사했다. 그 개정판인 《심플하지만 화려하게 해주세요》는 더 가볍고 날카롭게 2020년에 필요한 알맹이만 추리고 추렸다. 구판에 클라이언트 입장과 디자이너 입장이 혼재되어 있었다면, 개정판은 디자이너와 소통을 잘하고 싶은 클라이언트 쪽에 무게를 실어 구성됐다.
구판에서 번뜩였던 ‘현실 밀착형’ 위트는 실제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으로 보는 듯한 에피소드들로 다시 태어났다. 외양도 더 심플하고 친근하게 바뀌어 ‘완전 내 얘기’에 소름 돋았던 현장감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체계적인 시스템보다 일대일 소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작은 조직에서 흔히 일어나는 상황을 눈앞에 그리듯 다뤘다. 크고 작은 디자인 업무를 진행할 때마다 머리를 싸맸던 직장인, 초기 브랜딩에 디자인 요소가 많이 필요한 스타트업 실무자와 창업가, 취준생들을 유쾌하고 다정하게 구해줄 책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박창선

회사 소개서 만드는 디자인 회사, 애프터모멘트의 대표. ‘대충 말해도 제대로 알아주는 디자인 회사’라는 모토로 잘 읽히는 텍스트와 직관적인 디자인을 만들고 있다. 판매직, 영업직, 콜센터, 현장직에서 20대를 보내며 사람 사이에서 대화하는 법을 몸으로 깨친 뒤 비전공으로 느지막이 시작한 디자인에 이러한 경험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2020년 5월 기준 구독자 1만8000명, 누적 420만 뷰의 브런치 작가다. ‘직장인들의 넵병’ ‘클라이언트 용어 정리’ ‘판교 사투리’ 등 유쾌한 공감을 일으키는 글로 사랑받으며 제5회 브런치북 금상, 제7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기분 벗고 주무시죠》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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