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좌기행, 망국 선비의 만주·시베리아 견문록
2024년 11월 08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1월 0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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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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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중화원대통서
재차 중화에 편지 보내고 느낀 바를 읊다
서요좌기행후
원문
참고자료 : 장석영의 기행 여정 총람
해설
참고문헌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평양의 북쪽, 압록강의 동쪽에 서간도(西間島)라 이르는 곳이 있는데 땅이 수천 리에 달한다. 바로 우리 단군의 옛 강토였는데 오래 전 군(郡)이 폐해져 만주 사람들이 점거하고 있다. 수십 년 사이 한국 사람들이 가혹한 정치에 고통받자 이곳으로 유랑한 자가 매우 많았고, 나라가 망한 이후에는 뜻이 있는 선비들이 멀리서 왔다가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세상에 전하기로, ‘산천이 깊고 토지가 비옥해 머물 만하다’고 한다. 임자년(1912) 봄, 우리는 세상을 피해 제법 일 없이 지내고 있었다. 이에 참봉 서덕일(徐德一)·삼척(三陟) 하은거(河殷巨)·홍와(弘窩) 이대형(李大衡)·김해(金海) 감영팔(甘英八)·이의중(李義仲) 군과 그 땅을 돌아보고 머물 만한 곳을 복지(卜地)하기로 약조했다. 이렇게 함께 요양(遼陽)을 역람(歷覽)하게 되었다.
- 《요좌기행》의 첫머리
1시경 다시 표를 사서 차에 오르니 사람이 매우 많았다. 드디어 기차가 출발했는데, 안동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가다가 서쪽 방향으로 곧장 향하며 왔던 길을 다시 찾아 마치 돌개바람처럼 내달렸다. 갈수록 의심이 들고 걱정됐지만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윽고 대석교에 도착해 열차가 또 정차하자 차 속의 사람들이 편편(翩翩)히 하차하는데 빈 차에 나만 홀로 앉아 있을 수 없어 사람들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려 보니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갔지만, 나는 따라 나갈 곳이 없어 방황하며 머뭇머뭇하니 마치 돌아갈 곳 없는 궁인(窮人) 같았다.
- 《요좌기행》 4월 25일자 일기
망국 선비 장석영의 약 백 일간, 1만 5천 리의 여정
19세기 이후 조선과 대한제국의 혼란은 가속화되었다. 서세동점으로 상징되는 서구 열강의 동아시아 진출과 청나라의 몰락, 그리고 일본의 조선 침략이 노골화되었다. 동시에 무능한 왕실과 무도한 세도 정치 속에서 탐관의 가혹한 조세 수탈과 자연재해가 이어졌다. 수많은 민중들은 스스로 유민(流民)의 길을 택해 강을 넘기 시작했다. 과거 오랑캐의 땅으로 인식됐던 만주와 러시아 일대가, 기근과 착취로부터 벗어나 삶을 연명할 새로운 터전으로 새로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영남을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회당 장석영은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 2년 뒤인 1912년, 해외 망명을 고려하며 만주와 러시아 일대를 역람했다. 전통 한복과 유관(儒冠)을 착용한 62세의 나이 든 선비가 열차와 두 발만을 이용해 중국의 단둥과 선양, 하얼빈을 지나 러시아 시베리아 일대까지 도합 1만 5천여 리의 길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왔다.
경계를 살아갔던 이민자들의 역사
장석영이 갖은 고생 끝에 도착한 국경 너머의 현실은 참혹했다. 그곳은 기근과 학정 그리고 식민 지배를 피해 순식간에 몰린 다수의 이민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길에 가득한 것은 부녀자들의 울음과 추위와 굶주림에 고통받는 이산민들의 신음이었다. 더욱이 일제·중화민국·러시아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과 한인 단체들의 내분에 의해, 자칫 생명까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요좌기행》은 재외 한인 동포들의 처절하고 치열했던 삶을 생생히 그리는 동시에 식민지라는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전통 지식인의 복잡한 내면을 담고 있다. 한국과 중국, 중국과 러시아의 경계에서 소수자로 살아가야 했던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전통 지식인의 다양한 내적 갈등과 자기 정체성의 모색을 수반한 《요좌기행》은 단순한 기행문이 아닌 서세동점이라는 현실 속의 한국 유학사(儒學史), 강제병합에 따른 한국의 독립운동사, 망국으로 인한 한민족의 이민사가 접맥되고 또 교차되는 작품이다.
작가정보
회당 장석영은 경북 칠곡 출신으로 자는 순화(舜華), 호는 추관(秋觀)·회당(晦堂)이며 지영(之榮)·석교(碩敎)라고도 불렸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조선 중기의 거유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9대손으로 부친은 동부승지·병조참의 등을 지낸 장시표(張時杓, 1819∼1894)다. 퇴계의 성리학풍을 계승한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의 문하에 들어가 곽종석(郭鍾錫)·이승희(李承熙)등과 더불어 한주학(寒洲學)을 계승하고 전적들을 정리하는 데 노력했다. 특히 한주학이 이단으로 배척받자 이를 공박하며 한주학이 퇴계학을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했다.
소위 근대전환기라는 미증유의 시대적 혼란 속에서 장석영의 행적은 대단히 일관적이었다.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그는 이승희·곽종석 등과 함께 이 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강청(强請)하는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올렸다. 또 1907년 칠곡 지역의 국채보상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이 운동을 조력했다. 1910년 강제병합 후 그는 일제의 소위 ‘은사금’이라는 회유 공작을 단호히 배척했고, 이후 고인이 되어 버린 스승 이진상의 문집 《한주집》과 지기(知己) 이승희의 문집 《대계집(大溪集)》의 교정과 출판에 힘쓰면서도 저술 및 강학 활동을 지속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그는 지역 유림인 곽종석·김창숙(金昌淑, 1879∼1962) 등과 협력해 파리만국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 초안을 작성했고 4월 2일 성주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해 구금되었다. 동년 5월 독립청원서 작성과 항일 운동을 이유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고, 10월에 석방되었는데 이때 옥중 항일투쟁 실록인 〈흑산록(黑山錄)〉을 남겼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전적들을 집성하고 집필 및 강학을 이어갔다. 1926년 76세의 나이로 예학 주석서인 《사례태기(四禮汰記)》를 완성했고 이듬해 6월 종명했다. 1977년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 1980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사상과 방법론이 유교적 보수성에 기초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고 그 한계도 인정된다. 다만, 그의 ‘보수성’은 그 배경 및 의의와 더불어 언급될 때 보다 선명해진다. 그는 소위 ‘개명(開明)’이라는 이유로, 수 세기에 걸쳐진 지적 유산과 문화적 전통을 일시에 부정하고 단절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른바 ‘근대’의 숨겨진 이면에 주목했고 ‘전근대’라는 논리를 통한 자기부정을 용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이것을 중요한 한국 전통으로 여기고 이를 계승해 후세에 전수해야 하는 것 역시 당대 유림에게 부여된 시대적·역사적 사명으로 인지했다. 또한 그의 보수성은, 소위 진보와 문명을 내세워 일제에 대한 훼절을 합리화하고 나아가 민족의 독립을 요원하게 만드는 일체의 타협을 배격하는 것이었다.
결국 일본 제국주의를 향한 그의 비타협적 태도는 이 시기 전통지식인의 일관된 유교적 저항의 전형이자 선비 정신의 표본을 보여 준다 하겠다. 다시 말하면, 그는 상황의 변화와 무관하게 자신의 평소 신념을 묵묵히 실천하며 유자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동시에, 노구의 몸에도 개의치 않고 조국의 독립에 일조하려 했던 당대 유교 지성의 본질을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한길로는 전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 시절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 진학 후, 한문학을 전공해 〈1910~20년대 재중(在中) 지식인의 한문학 연구〉(2020)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 한일청년학생포럼 한국위원회 실무책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해외구술자료사업 〈두 개의 ‘이름’을 통해 보는 ‘재일조선인’의 역사〉 연구책임자, 중국인민대학교 방문학자, 동국대학 강사 등을 지냈다. 현재 길림대학 한국(조선)어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한인문학회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청구야담》을 번역(공역)했고 〈한계 이승희의 한시에 나타난 도해 전후 시정의 전개〉, 〈장석영의 러시아 체험을 통해 본 근대기 중화사상의 일면〉, 〈1910년대 지방 유림의 중국 이주 과정과 귀향의 동인 고찰〉, 〈1910년대 중국 심양 이주 한인의 삶과 문학〉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길림성 성도(省都) 장춘에 위치한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강의하며 근대 한문학, 근대 중국 기행문, 이산문학 등에 관심을 경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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