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에게 돌려주라
2024년 11월 0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0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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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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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85%는 생태학살과 인종차별, 계급차별, 성차별에 앞장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가? 왜 한국의 대다수 목사는 차별금지법 반대에 앞장서는가? 과거 노예제도 철폐에 앞장섰던 복음주의자들이 오늘날 이렇듯 차별과 혐오를 고집하며, 보수언론마저 정권 비판을 본격화하자 대규모 기도회를 통해 동성애 반대로 초점을 돌리려는 극우 세력의 앞잡이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개신교의 원리인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총”이 종교개혁의 본래 지향대로 “오직 하느님의 의,” “오직 자기 비움,” “오직 사랑 실천” 대신에 “오직 배타(차별),” “오직 나(자기),” “오직 축복(번영)”으로 둔갑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런 둔갑을 통해 누가 이득을 보는가?
제국들은 여전히 학살과 약탈을 계속하고 그에 기생하는 권력자들은 사회적 불평등을 불의와 폭력으로 확대하며 사제들은 온갖 차별(인종, 계급, 성차별)과 혐오를 통해 억압과 수탈을 유지하는 구조 속에서 예수는 어떻게 문명 전환을 시작했는가? 온갖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던 이들에게 예수의 복음은 어떻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는가? 기독교는 제국과 자본주의 문명을 복음화했는가, 아니면 그 하수인이 되었는가? 극소수 권력자가 지배하는 문명을 정상이라고 믿거나 체념하는 신자는 그 폭력적 문명을 뒷받침할 뿐 아니라 예수의 큰 꿈과 정신마저 죽이지 않는가? 오늘날 전대미문의 기후 붕괴로 인해 세상은 더욱 잔인해지고 있으며 인류 자신이 멸종위기종이 된 묵시적 현실은 문명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어떤 구체적 꿈을 계시하는가?
역사적 예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존 도미닉 크로산 교수가 88세에 발표한 이 책은 교회의 문화적 순응에 대한 악마화(1부), 신성화(2부), 그리고 예수의 문명 전환 전략(3부)을 해명한다. 예수께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주라”고 가르친 이후, 기독교인들은 이런 폭력적 문명 속에서 씨름해왔는데, 그것은 신약성서 안에도 나타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약성서가 어떻게 서로 반대되는 것(요한묵시록의 악마화, 루가-행전의 신성화)을 가르치는지를 자세히 분석한다. 예수의 무차별적 은총의 신학과 비폭력 저항에 기초해서 제3의 길을 제시하는 저자는 “기독교의 문화 전쟁,” 즉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논쟁의 기초가 되는 신약성서의 유산을 놀랍게 해명한다. 세상의 권력자들뿐 아니라 아집에 사로잡힌 종교 지도자들에 맞서서, 예수뿐 아니라 성서 기자들이 문명 전환의 복음을 설파하는 데 얼마나 창조적이며 치밀했는지를 분석한다. 이 책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가득하며, 민주주의가 위협당하며 머지않아 문명의 붕괴까지 예상되는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쁜 소식이다.
프롤로그: 너무 이른 승리, 너무 빠른 비극 / 13
서막: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 23
제1부: 배척하고 악마화한 문화
1장. 하느님이 언젠가는 승리하실 것이다 / 43
2장. 지금 여기 이미 있는 것이 다가온다 / 61
3장. 언젠가 있었던 미래의 짐승 / 79
4장. 이 어두운 사탄의 언덕들 / 97
5장. 가장 오래된 거짓말 / 115
제2부: 수용하고 신성화한 문화
6장. 대항 내러티브를 창조하기 / 143
7장. “바울로가 함께 데려갔던 사람” / 167
8장. 로마 기독교의 비전 / 191
9장. 거룩한 영의 길 / 215
10장. 문화적 순응의 대가 / 245
제3부: 대결하고 비판받은 문화
11장. 비폭력 저항의 창안 / 277
12장. “보시다시피 우리는 비무장이다” / 293
13장. “그리스도라 부르는 예수” / 313
14장. 상벌과 안식 / 329
15장.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라” / 345
에필로그: 카이사르의 것에 맞서는 하느님의 것 / 359
부록 1. “하느님 나라/왕국”에 대한 다문화적 번역 / 367
부록 2. 이스라엘이 로마화된 것에 대한 폭력적 대응과 비폭력적 대응 / 371
부록 3. 성서의 서막인 창세기 1:1-2:4a / 375
우리는 존 애덤스가 1814년 12월 17일에 존 테일러에게 보낸 답신에서, “민주주의는 결코 오래 존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조만간 약화되고 피폐하게 되어 자신을 죽인다. 자살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결코 없었다”라고 쓴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우리는 또 그보다 더 먼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1796년 9월 19일에 발표한 “동료 시민들에게”라는 고별사에서 공화정의 죽음은 흔히 방조된 자살이라고 경고한 것을 기억할 수도 있다. … 호레이스는 로마 공화정이 애당초 로마/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살해한 형제 살인에 의해 저주를 받았는지를 물었다. 미국 공화정 역시 그 두 차례의 경고 편지 이후 수십 년이 지나 벌어진 형제 살인(남북전쟁)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뜨거웠던 내전이었고 여전히 상대적으로 차가운 내전으로 계속되고 있다. 공화국은 형제 살인의 저주에 의해 무너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러나 형제 살인의 정치에 의해서는 확실히 무너진다. (프롤로그 중에서)
문화적 순응이라는 말을 통해 나는 우리를 둘러싼 문화 속에 깊이 통합되어 우리가 그 안에서-마치 바닷속 물고기처럼-부드럽게,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헤엄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문화적 순응이란-어떤 지도자 아래, 또는 어떤 환경 아래에서,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는-우리 가운데 일부를 괴물로, 많은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그리고 대부분을 겁쟁이로 만들 수 있는 정상성의 끌어당김(drag of normalcy), 순응의 유혹(the lure of conformity), 출세제일주의라는 저주(the curse of careerism)다. (서막에서)
기본적 사실은 요한이 금식(fasting)을 잘하는 반면, 예수는 잔치(feasting)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금식은 곧 올 것(what is coming soon)을 위해 준비하는 것인 반면, 잔치는 이미 온 것(what has already arrived)을 축하하여 벌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에게는 하느님의 통치가 이미 땅 위에 와 있다. 그러나 여전히 폭력적인 불의, 군사력, 그리고 군법에 의해 통치되는 세계에서 그걸 어떻게 아득하게라도 믿을 수 있는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있는 “모루 위의 망치들 합창”을 누가 듣는가? 로마화가 시작된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예수의 메시지가 잔인한 농담이 아닐 수 있는가? (1장에서)
그러나 그 이후 대략 50년이 지나서, 요한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오심(coming)에 관한 장엄한 평화의 비전을 묵시록 21:1-5, 9-10에서, 오직 우선 “피가 흘러나와 한 길이나 되는 홍수를 이루어 거의 천 리(200마일) 가량이나 퍼져 나간”(14:20) 피의 바다를 건너서 오는 것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가? 제국의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그런 로마의 상황에서, 어떻게 살해당했지만 장차 살해를 자행할 어린 양으로 그럴듯하게 그려질 수 있는가? (2장에서)
동로마제국에서는 네로 황제의 죽음을 부인하고, 그가 유프라테스를 건너 도망쳤고, 조만간 페르시아/파르티아 군대와 함께 로마를 파괴하러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전설이 사기꾼들에 의해 발전되어 역사적 전설로부터 종말론적 희망으로 바뀌면서, 네로의 귀환은 요한이 메시아적/그리스도의 묵시론에서 사용할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요한은 도대체 왜 네로의 귀환을 원했으며, 어떻게 그것을 사용했는가? (3장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인간 여인 레토(Leto)에게 임신을 시켜, 자기 아내인 여신 헤라의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헤라는 지구 중심에 사는 뱀-용(serpent-dragon)인 파이돈(Python)을 보내 레토가 출산할 아기를 바로 죽이게 한다. 그러나 레토는 쌍둥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무사히 출산했고, 아폴론은 파이돈을 죽여 레토를 공격하려 했던 것에 대해 복수한다. 물론 아폴론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신적인 아버지로서, 질서, 예언, 진리의 신이다. 네 가지 행위를 생각해보자. 출산하는 어머니, 공격하는 괴물, 구제된 신생아, 그리고 신의 승리가 그것이다. 이런 로마의 신화적 이야기를 요한이 어떻게 기독교의 이야기로 다시 말하는지 살펴보자. (4장에서)
묵시록은 간단히 로마와 문화적으로 순응하는 것을 악마화한 것이다. 제국의 수도 로마는 바빌론의 창녀이고, “곧” 그리스도의 신부인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대체될 것이다(21:2). 그건 하나의, 절대적으로 극단적인 견해일 뿐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견해는 어떤가? 만일 누군가가 옛 로마를 대체하는 새 예루살렘이 아니라, 옛 예루살렘을 대체하는 새 로마를 상상했다면 어쩔 것인가? 그것이 바로 다음 제2부에서 다룰 것이다. (5장에서)
따라서 예루살렘에서는, 루가복음의 끝부분에서 예수가 로마 당국의 세 계층 사람들에 의해 무죄로 선포된다. 즉 지역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 로마의 속국 통치자 헤로데 안티파스,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군대 장교인 백인대장에 의해서 무죄라고 선포된다. 따라서 예수의 재판에 관해, 루가가 빌라도의 말을 (세 차례 “무죄”라고) 확대했고, 헤로데 안티파스의 말(“죄가 없다”)을 첨가했으며, 백인대장의 선언을 (“무죄”라고) 변경한 이유는, 그가 앞을 내다보면서 바울로에 대해서도 비슷한 세 계층의 증거-군대 장교들(복수), 속국의 통치자, 그리고 지방 총독-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장에서)
그러나 루가가 그의 주요 자료로 마르코를 따르면서, 그는 마르코 7:1-8:26을 모두 빼버렸다. 그는 마르코 6:44을 루가 9:17에 복사한 다음에, 루가 9:18은 마르코 8:27로 껑충 뛰어버린다. 다른 말로 해서, 루가는 예수의 “이방인 사역”의 이론과 실천 모두를 생략했다. 왜? 사도행전에서 이방인 사역을 처음 시작하기 위해, 바울로가 아니라 베드로에 의해 “이방인 전도”가 처음 실천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베드로의 이방인 전도가 바울로의 다마스쿠스 전도(행전 9장)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베드로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만들었다. 사실 사도행전에는 급진적 포용주의(radical inclusivity) 이론과 실천이 두 차례-처음엔 요빠(욥바)에서 베드로에게 일어나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그 이론과 실천을 기술한 것으로-기록되어 있다. (7장에서)
도대체 왜 루가는 마르코복음이 말하는 나자렛에서의 냉소적인 불신을 치명적인 분노로 바꾸었는가? 도대체 왜 루가는 예수로 하여금 유대인들에 대해서뿐 아니라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하느님이 관심을 갖고 계심을 인용하기보다, 하느님이 과거에 유대인들보다 오히려 이방인들을 선택하신 것을 주장하게 만들었는가? 도대체 왜 예수가 유대인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뜬금없이) 이방인들을 언급하게 만드는가? (8장에서)
물론 이런 명백한 질문이 떠오른다. 심지어 사도행전 28:16-31이 기독교인들, 유대인들, 이방인들, 그리고 로마인들에 대한 루가-행전의 적절한 마감임을 인정해도, 도대체 바울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왜 말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루가는 그의 두 번째 책(사도행전)에서 바울로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그리고 제국에 의한 처형에 이르는 것이, 그의 처음 책(루가복음)에서 예수가 갈릴래아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제국에 의한 처형과 정확히 병행하는 내용으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가는 바울로가 로마에서 순교한 지 50년 후에 쓰면서, 그 사실을 분명히 알았지만, 사도행전을 순교로 끝냄으로써 사람들이 그의 목적을 오해하지 않도록 매우 치밀했다. (9장에서)
로마제국은 그 군단들을 통해 변경지방을 보호함으로써, 그 군사적 완충지대(cordon sanitaire) 안에서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자랑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평화가 이미 30년 정도 확립되어왔는데, 어떻게 천사는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선포할 수 있었으며, 또한 이를 뒷받침하여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 2:10-14)라고 찬양할 수 있었는가? (10장에서)
“보시다시피, 우리는 무장하지 않았고 … 우리를 죽이려는 자들의 손쉬운 목표로 우리 몸을 내어놓습니다. 우리는 아내, 어린 자식, 우리 가족을 함께 데려왔습니다. … 우리는 가이우스 앞에 모두 엎드렸으니 … 당신과 황제가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해 주시든지, 아니면 우리 모두를 철저한 파멸 속에 사라지게 하시든지 처분대로 하십시오. … 만일 이번에 우리가 이 문제를 당신에게 설득할 수 없으면, 우리는 파멸에 맡길 것입니다. … 우리는 당신의 처분에 우리의 목을 기꺼이 내놓습니다.” (12장에서)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땅보다 미래의 하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 두 가지 방식과 의미, 두 가지 비전과 프로그램, 두 가지 수사학적 이미지와 실천적인 계획 사이의 선택이다. 그것은 여기 하늘 아래 피조된 것(as creation)으로서의 땅 위에서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문명(as civilization)으로서의 땅 위에서 살아가는 것인가 사이의 선택에 대한 것이다. (13장에서)
예를 들어, 신명기가 경고하기를 하느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비”를 내려주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 “먼지”를 내려 주신다고 했는데(28:12, 24), 어떻게 예수는 주장하기를 “하느님은 의로운 자에게나 불의한 자에게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태오 5:45)고 했는가? 그리고 비록 예수가 신명기 28장을 거부했어도, 왜 그의 거부가 믿을 만했는가? (14장에서)
마지막으로, 다음 질문은 기독교 역사 2천 년 뒤에 분명해진 것이다. 즉 “너희의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유명한(famous) 만큼 얼빠진(fatuous) 것이며, 이론적으로 도덕적인(virtuous) 것만큼 실천적으로 공허한(vacuous) 것이 아닌가? 더욱 나쁘게 말해서, “너희의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폭력을 가능하게 하고, 폭력과 협력하고, 최소한 폭력에 무관심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15장에서)
그것은 예언자적 비전(prophetic vision)에서 묵시적 망상(apocalyptic delusion)으로, 그리고 유대적 기독교(Jewish Christianity)에서 환상의 기독교(fantasy Christianity)로 움직여 나간다. 그러나 환상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더 잔인해진다. 예이츠(Yeates)가 1922-23년에 쓴 시처럼, “우리는 심장에 환상들을 먹였다/심장은 그걸 먹고 잔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만일 살인자 하느님(a killer God)과 살인자 그리스도(a killer Christ)가 있다면, 그들과 협력하는 살인자 기독교인들(killer Christians)은 왜 안 되겠나? (에필로그에서)
문명이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1만 년 전에 시작된 전 지구적 문화(global culture)의 형태라서, 우리는 메소포타미아를 장소로는 문명의 요람, 시대로는 문명의 탄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런 탄생에서 축하한 어린 아기는 불평등(inequality)이었고, 그 요람을 흔든 쌍둥이 힘은 폭력(violence)과 불의(injustice)였으니, 폭력이 불평등의 불의를 유지시켜주었다. 그 세 부분이 점차 확대되는 경로 위에서 서로를 보장하고, 보호하고, 지원한(창세기 4장) 불결한 삼위일체였다. (에필로그에서)
작가정보
한성수 목사는 서울 문리대 물리학과, 감신대, 예일대 신학대학원,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여러 교회에서 목회하고 지금은 은퇴했다.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참사람≫, ≪내 몸과 영혼의 지혜≫,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 ≪동성애와 기독교 신앙≫, ≪기후 교회≫ 등 10여 권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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