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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율 연습

김유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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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01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0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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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3.86MB)
ISBN 9791141608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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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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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유려한 문장과 독보적인 묘사로 우리의 감각을 깊이 자극하는 소설가 김유진이 『숨은 밤』(문학동네, 2011) 이후 13년 만에 두번째 장편소설 『평균율 연습』을 선보인다. 장편소설로는 오랜만이지만 작가는 최근 몇 년간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프란츠, 2017), 피에르 베제르의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프란츠, 2021), 프랑수아즈 사강의 『엎드리는 개』(안온북스, 2023) 등 왕성한 번역 작업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아름답고 섬세한 언어로 소개해왔다.
『평균율 연습』은 지난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후(연재 당시 제목은 ‘미래와 전망’)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전면 개고를 거친 끝에 완성된 작품으로, 언어와 음악에 대한 작가의 유다른 관심이 본격적으로 서사화된 소설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김유진 소설 중 가장 현실에 밀착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작가의 변화가 감지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프리랜서 편집자인 수민이 이혼 후 피아노 학원에서 조율 수업을 받으며 펼쳐지는 이야기인 『평균율 연습』에는 식물을 돌보듯 자신의 미래를 천천히 가꾸어나가는 회복의 과정이 담겨 있다. 모든 음의 오차를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평균율’은 ‘순정률’만큼 완벽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결함을 나눠 가짐으로써 모든 음이 편안하게 들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의 음률 체계이다. 이혼 후 수민이 조율을 배우는 과정은 바로 이러한 오차를 포함하는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배워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불완전하거나 미숙한 부분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듬는 일인 조율은, 수민으로 하여금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삶 위에서 새로 시작할 가능성을 찾도록 이끈다.
여름휴가 7
거리 두기 29
충돌 61
조난 99
빛의 자리 129
평균율 연습 161

작가의 말 205

수찬은 함께 유학 생활을 했던 이들이 종종 들려주는 놀라운 소식들, 해외에서 상을 받았다거나 회사를 차렸다거나 대학에 전임교수로 임용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저마다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다르다는 자기 계발서식 자위 방법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을 것이다. 흔들리면 지는 거라고, 자신에게 주어진 작고 소박한 세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점차 쌓여가는 피로와 회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수찬을, 수민은 이해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수민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19~20쪽)

“조율 배우니까 좋은 점이 뭐야?”
곰곰이 생각한 수민이 대답했다.
“만져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손으로 만지작거리다보면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가 생겨요.”(55쪽)

수민은 반복되는 좌절을 통해 삶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기대를 저버리는 일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기대감은 탁월한 적응력을 지닌 자생식물처럼 가슴 한편에서 끈질기게 싹을 틔웠다.(55쪽)

수민은 오늘 아침 밥알처럼 부풀었던 마음의 정체가 다름 아닌 슬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수민이 오랫동안 공들여 구성한 세계가 무너지고 난 자리에 생겨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슬픔은 기대나 희망의 반대말도, 포기나 좌절의 표현도 아니었다. 단지 슬픔 그 자체로 수민 안에 태어나 마음속 어둠을 밝히는 무언가였다.(59~60쪽)

선배는 ‘할인’이나 ‘공짜’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잘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그건 유학생의 권리가 아닌 의무라고 가르쳐주었다. 이곳에서 지내다보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주치게 되는 것들, 이를테면 자기 나라에 눌러살까 싶어 가자미눈을 뜨고 바라보는 관공서 직원들이나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창녀’ ‘씨발년’ 따위의 욕설을 내뱉는 어린아이들, 쉴새없이 캣콜링을 하는 길거리의 남자들을 매일같이 감내해야 하는 극동아시아 여성 유학생에게 이 도시의 문화예술을 학생 할인가로 소비하는 행위는 향유라기보다는 투쟁에 가깝다고 말이다.(138쪽)

Tu me manques.
보고 싶어.
수민은 정우 선배가 편지 끝자락에 적어넣은 문장을 속삭이듯 발음해보았다. 직역하면 ‘나에게 네가 없어’라는 뜻으로, ‘manquer’라는 동사 안에는 ‘결핍’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그리움에는 반드시 결핍이 수반되는 것이다. 네가 내 곁에 없어서, 혹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없어서.(144쪽)

수민은 자신이 오랫동안 좋아해온 음악들을 떠올렸다. 소나타든 협주곡이든 관현악곡이든 대체로 모든 곡들은 결국 주제부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반복의 핵심은 반복되는 멜로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놓인 기나긴 음악적 여정에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 동일한 두 멜로디가 전혀 다른 해석을 지니게 된다는 점에서 수민은 음악의 형식이 인생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156쪽)

“수민아, 우리 한 이불 덮고 자는 건 처음이다. 일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같이 살았으니까 같이 잘 일이 없지.”
수민은 자신의 대답이 지나치게 무뚝뚝하거나 논리적이기만 하다는 사실을 말을 뱉고 나서야 깨닫곤 했다.
“그래도 선배 숨소리는 매일매일 들었어. 우리집에 방문이 없었잖아.”
“맞다. 참 다행이었어. 그래서 한순간도 외롭지가 않았거든.”(156~157쪽)

본래 음에서 크게 이탈한 현은 단번에 조율이 되지 않는다. 변화가 크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저항도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어르고 달래듯이, 점진적으로 피치를 올려야 한다. 그러니까 시간이 필요하다.(173쪽)

문득, 수민은 자신이 이런 순간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의 과정에 존재하는 사소한 실책의 순간들을 말이다. 원고의 유려한 문장들 사이에서 ‘배게’라고 적힌 단어를 발견해 ‘베개’라고 고쳐 넣을 때, 혹은 지금처럼엄한 선생님 앞에서 이실직고하는 학생 같은 어리숙한 표정의 피아니스트를 만났을 때, 수민은 자신이 이들 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좋았다.(201~202쪽)

오후의 정원을 걷다 문득 발견한 오래되고 믿음직한 나무처럼
고요하고 단단하게 가꿔가는 지극히 인간적인 일 년의 시간

『평균율 연습』을 가득 채우는 것은 나직하고 차분한 음성이다. 문득 발밑을 내려다보았을 때 발견한 작고 푸른 나뭇잎에서 뜻밖의 편안함을 건네받듯이, 식물성에 가까운 인물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그 소리는 화려하고 커다란 소리 반대편에서 우리의 귀를 잡아당긴다. 가장 먼저 소설의 주인공인 수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출판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하는 수민은 남편 수찬의 느닷없는 문자를 받고 지금 제주도로 떠나온 상황이다. 수찬이 보낸 문자의 내용은 이러하다. “수민아, 나 스님이 될까 해.”(13쪽) 수민은 평소 실없는 소리를 잘하는 수찬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그 말이 진심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지난 오 년간의 결혼생활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기에 수찬의 문자에 충동적으로 비행기표를 끊고 제주도로 여행을 왔다. 하지만 수민은 기대와 달리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방파제에 가로막혀 바다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복선처럼 수민의 인생에 또다른 변수가 생겨난다. 수찬이 이혼을 요구한 것이다.

스님이 되겠다던 수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이 출가의 첫걸음이라나. 수민은 취미 입문서의 소제목으로나 쓰일 법한 그 표현에 코웃음을 쳤다. 뭐라고 했더라. 템플스테이나 며칠 다녀오라고 했던가. 지금도 절반은 속세를 떠난 것이나 다름없지 않으냐고 비아냥거렸던가. 수민은 자신이 뭐라 반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수찬의 단호한 태도만은 여전히 생생했다.
“수민아, 나 진지해.”
진지함. 평소 늘 그에게 바랐던 진지함을, 수민은 결별을 통보받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다.(32쪽)

수민은 끝에 다다른 듯한 수찬과의 관계 앞에서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지금으로부터 십오 년 전, 스물세 살의 수민은 대학 졸업 학년을 앞두고 프랑스로 일 년짜리 어학연수를 떠났다. 여행이 삶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떠나왔지만 막상 그곳에서 수민은 아날로그식 행정 처리를 견뎌야 했고, 쉴새없이 캣콜링을 하는 길거리 남자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견뎌야 했다. 그런 수민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는 룸메이트인 정우 선배였다. 수민보다 고작 한 살이 많을 뿐이지만, “사람 사이의 주고받음이 일종의 세상의 리듬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우친”(15쪽) 그녀는 수민을 살뜰히 챙기며 어떤 자리에든 수민을 데려간다. 그리고 그녀가 데려간 한국인 유학생들의 모임에서 수민은 처음 수찬을 만나게 된 것이다. 마이크를 양손에 쥐고서 수줍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보아의 〈어메이징 키스〉를 부르던, 스트라스부르에서 원예학을 공부중이던 동갑내기 남자아이, 그애가 바로 수찬이었다.
삶에서 가장 불안정한 시기에 만나 오랜 기간을 함께해왔음에도 수민과 수찬 사이에는 번번이 “유대와 이해를 가로막는 장벽”(20쪽)이 생겨났고 그 결과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평균율 연습』에서 중요한 점은 이혼이 관계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일상이 이어지는 것처럼, 수민과 수찬은 이혼한 후에도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는다. 마치 둘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혼이라는 관계를 통해서라도 이전의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듯이.


“조율 배우니까 좋은 점이 뭐야?”
“만져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손으로 만지작거리다보면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가 생겨요.”

그러니 『평균율 연습』은 끝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시작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들” “주로 실수나 실패에 관한 것들, 슬픔이나 두려움,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들”(107쪽)에 대해 겨우 입을 열어 내뱉을 수 있게 되는 이야기라고. 소설을 이끌고 가는 핵심 인물은 수민이지만, 『평균율 연습』은 별도의 챕터를 통해 수민의 엄마인 정희와 수찬 스스로가 말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 구성은 우리에게 오래전 남편과 이혼하고 하나뿐인 딸 수민을 데리고 상경한 후 독립적으로 삶을 가꿔온 정희 뒤에 깊은 두려움이 자리해 있음을, 철없고 엉뚱한 수찬의 마음에 오래된 구멍이 있음을 알려준다. 이제 그 두려움과 구멍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수민의 삶은 어떤 식으로 달라질까?
김유진 작가는 『평균율 연습』에서 확실하고 선명한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피아노 조율 기능 경기대회에 나갔다가 사소한 실수로 감점을 받아 떨어진 수민의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가 말하는 회복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수민은 주어진 시간 동안 피아노의 조율과 조정을 완료해야 하지만, 건반에서 나는 잡음을 바로잡지 못해 결국 대회에서 떨어지고 만다. 수민이 한 실수는 바로 피아노의 너트를 조이지 않은 것. 수민은 학원에서 실습용으로 쓰는 피아노가 연습생들의 편의를 위해 너트가 풀려 있기에 시험장의 피아노 역시 너트를 조이지 않은 게 올바른 상태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눈앞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그것은 피아노를 조율하는 일뿐 아니라 수민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편집자가 되고 난 후 “무언갈 바로잡기 위해서는 언제나 근거가 필요하다”(20쪽)고 생각했던 수민은 조율을 배워나가면서 잘못된 것을 엄정하게 고치는 일 그 자체보다 “예술의 과정에 존재하는 사소한 실책의 순간들”(201쪽)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의 무수한 실수와 오차를 끌어안음으로써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삶이 울려퍼지도록 하는 방식이라는 것 또한. 수민의 삶은, 그리고 우리의 삶은 그 방식을 연습하는 일에서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유진

2004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늑대의 문장』 『여름』 『보이지 않는 정원』, 장편소설 『숨은 밤』, 산문집 『받아쓰기』, 옮긴 책 『음악 혐오』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엎드리는 개』 등이 있다. 제2회 젊은작가상, 황순원신진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아주 평범한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실패를 겪고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고통을 견딘다. 하지만 모두 견뎌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고, 무너지지는 않을 정도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삶을 지속하는 힘은 거창한 미래에 대한 기대 따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힘은 스스로가 아주 평범한 존재라는 것에서, 그리고 그 평범한 모두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몫의 눈더미를 덤덤히 치우는 중이라는 엄연한 진실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소설을 쓰며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이 이야기를 평범한 모든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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