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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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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1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9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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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5.20MB)
ISBN 978895445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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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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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9권, 『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가 출간되었다. 『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는 『3월 2일, 시작의 날』 『한 여름 방학의 꿈』에 이은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시리즈 속 시리즈,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이다. 9월 모의고사라는 하나의 시간적 배경에서 19살 청소년들에게 일어나는 신비롭고 혼란스러우며 가끔은 희한한, 하지만 언제나 다정한 짧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는 청소년과 성인에게 있어 ‘특히 의미 있는 날’, 혹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날’에 벌어지는 일들을 환상, 로맨스, SF, 리얼리즘 등 다채로운 장르로 경험해볼 수 있는 신선하고 색다른 기획이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든 독자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도록 청소년문학 작가와 성인문학 작가가 한 주제에 함께 참여하는 구성 방식을 택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시리즈에서 나온 앤솔러지들은 물론,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앤솔러지와도 명확한 차별점을 두었다. 2024년 12월에 겨울에 어울리는 소설집이 출간되어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이다.
심너울_9월 모의고사 날 세계 멸망
조규미_시계 없는 아이들
강석희_프리즈!
박민정_좀 더 살아 보고 말할게요
송미경_우리의 필적 확인 문구

교육부에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사냥꾼’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그 시점이 9월 모의고사가 치러지는 날과 겹친다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아홉 시까지 삼십 분에 한 번씩 미사일을 발사할 예정이었다.
물론 미사일 소리가 영어 듣기를 방해한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 소행성이 수소 폭탄을 맞는 모습은 분명히 관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시험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_28쪽

“잘 먹어 둬.”
하지현은 어머니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9월 모의고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오늘을 수능처럼 생각해. 수능 날 밥도 이거랑 똑같이 해 줄 거야. 너 달걀 좋아하잖아.”
그러자 하지현이 고개를 숙이고는, 달걀말이 한 조각을 먹은 다음 말했다.
“수능 안 칠 수도 있잖아.”
“그게 무슨 소리니?”
“……아니, 오늘 잘 안 되면…… 수능이고 뭐고 없는 거잖아.”
“아이고, 또 이상한 소리 한다. 그럴 일 없어. 엄마가 살면서 세상이 망한단 소리 몇 번이나 들었는지 아니? 근데 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갔어. 원래 사람들 호들갑이란 게 그런 거야.”
그 호들갑이 이번에는 진짜라면, 난 여기서 끝나잖아. 수능만 준비하다가.
_36~37쪽

“시계가 사라지다니! 시간이 멈춘 거 아니야? 그치, 얘들아? 시간이 멈춘 거지?”
그러자 옆에 앉은 아이가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시간이 건너뛰었으면 좋겠어, 수능 다음 날로.”
아이들은 돌아가며 시시한 농담을 했다. 그렇게라도 긴장감을 쫓아내려는 것 같았다.
민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오늘이 9모라니. 고3이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한 학기가 지나가고 운명의 9모가 눈앞에 닥쳤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이렇게 준비가 안 된 채로 9모를 맞이할 줄은. 3월의 뇌에 든 것과 9월의 뇌에 든 것이 이렇게 차이가 없을 줄은.
_51~52쪽

“하늘이는 왜 종점에 가고 싶다고 했을까?”
정연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 하늘이 그 이야기를 했을 때는 정해진 시간표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자유 시간을 갖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고3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일탈에 대한 욕구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늘이 자퇴하고 나니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종점에 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나?”
_74쪽

이삭과 친해지지 않았던 건 내 무의식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스럽다고 믿었지만 절대 자연스럽지 않은 일. 원하지만 원해서는 안 되는 일.
하지만, 이상하게도,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이삭의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익었다. 이삭이 천체 관측 동아리 회장이라는 것도, 모의고사를 보면 225점을 받고 수학은 항상 100점이라는 것도, 도서관 장서 신청 기간마다 강령술이니 흑마법이니 하는 수상한 책들을 신청해서 사서 선생님에게 불려 가는 것도, 애쓰지 않았는데도 뇌리에 박혔다. 일부러 찾지 않았으나 하루에 적어도 한 번씩은 이삭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_87~88쪽

쉽지 않아. 방해가 만만치가 않아. 다 네 말대로야.
4교시 탐구 영역 시험을 보며 이삭의 편지를 곱씹었다. 오류가 있는 문항을 두 개 발견했다. 화학 18번과 생명 과학 19번이었다. 한 문제는 정답이 없었고 한 문제는 모두 정답이었다.
눈을 감고 교실의 분위기를 살폈다. 시험이 끝을 향해 갈수록 내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다른 아이들의 사소한 반응 하나하나가 눈과 귀에 감지되었다. 명백한 오류를 본 아이들이 여럿일 텐데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건 우리에게만 주어진 오류. 오류를 긍정하고 포용하는 자세로, 두 문항 모두 4번에 마킹했다.
_116쪽

일할 때마다 엄마는 하기 싫어, 하기 싫어, 중얼거리면서 결국 다 해낸다. 정말 너무 귀찮다! 하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하지만 엄마의 작업 공간인 식탁에서는 무수한 결과물이 나온다. 그래서 엄마가 번역을 벼락치기 했다고 말할 때마다 박탈감이 느껴진다.
나는 시험을 준비해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시험을 출석만 하고 대충 때운다. 숙제를 제대로 수행해 낸 적도 없다. 엄마는 그런 나를 야단친 적이 없다. 다만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정말로 측은하다는 듯 가만히 바라본다. 아예 다른 종류의 인간을 보는 것처럼.
_130쪽

덜컹, 하며 기구가 출발하자 그 애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뭐라고요?”
“〈인디아나 존스〉 같다고요.”
비이클이 야외로 달려 나갔다. 천장에 달린 풍선 비행과 실내 어드벤처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참, 이 집안은 유별나게 문학 좋아한다.”
그 애가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애 쪽을 쳐다봤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 우리 엄마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문득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바닥이 너무 까마득하게 멀어 보여서 그랬는지, 그 애가 엄마같이 말해서 그랬는지 헛갈렸다.
_147쪽

처음부터 마법사로 태어나서 유치원생 때부터 마법사 과정을 밟아 온 아이들 틈에서 열 살이 넘은 뒤에야 마법 학교에 들어온 나는 모든 게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입학을 할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어린 시절 단짝이 마법 학교의 교장직을 맡고 있어서였다.
기대를 가득 안고 마법 학교 생활을 시작했지만, 거기서도 나는 크기가 맞지 않는 톱니 같았다. 어디에 끼워 놔도 어긋나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톱니. 세상에서는 예기치 않게 튀어나오는 마법 때문에, 학교에서는 제때 적절한 마법을 쓰지 못해서.
_170쪽

‘지금 마법을 쓴다면?’
순간 이 모든 일이 간단해질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두 소리 중 음악 소리만 소거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마법을 쓰지 않는 지금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은 서툴지만 천천히 해 나가면 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저 검붉은 물줄기가 가만히 내 마음을 통과하도록, 지나가도록, 음악이 이 시간을 지나쳐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_181쪽

“9월 모의고사 1교시, 가을 영역입니다.
다음 빈칸에 들어갈 ‘우리의 이야기’를 쓰세요.”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손을 꼭 잡고 나아가는 다섯 빛깔 발걸음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수능 다음으로 중요한 날로 꼽히는 때는 바로 9월 모의고사다. ‘대입을 진지하게 준비하는 수험생에게는 피할 수 없는 승부처’고, 동시에 ‘정시 성적의 바로미터’이자 ‘수시를 지원할 대학교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의고사를 보기는 정말 싫지만, 차라리 모의고사를 보고 싶어지는 사건들이 모의고사 당일 눈앞에 펼쳐진다면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앤솔러지 『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는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이자 스쳐 지나가는 ‘가을’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줄 책이다. 먼저 SF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시나리오 등 여러 형식의 글쓰기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작가 심너울이 9월 모의고사가 가까워질수록 고3들이 가장 많이 할 생각을 독특한 설정의 단편으로 풀어낸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작가 조규미가 그 뒤를 이어 긴 레이스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는다.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가 강석희는 앤솔러지의 한가운데에서 사춘기 소년 소녀에게 있어 모의고사 성적만큼이나 중요한 ‘사랑’이라는 감정의 새로운 형태를 노랫말처럼 속삭인다. 마지막으로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석권한 작가 박민정과 그림책부터 청소년 소설, 성인 소설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작가 송미경이 판타지와 현실을 뒤섞은 듯한 세계에서 혼란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미래로 나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세심하게 그린다.

앤솔러지의 문을 여는 심너울 작가의 「9월 모의고사 날 세계 멸망」은 지구 문명을 순식간에 소멸시킬 수 있는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에 접근하고 있고, 이 소행성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이른바 ‘카이로스 프로젝트’가 거의 완성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전교 1등이지만 외톨이인 주인공 ‘하지현’은 프로젝트가 당연히 성공할 거라 믿는 자신의 부모가 바라는 것을 자신이 바라는 바로 여기며 의사라는 미래로 걸어나간다. 반대로 하지현의 소꿉친구이자 또 다른 주인공 ‘김도윤’은 소행성이 관측된 후 생겨난 종말론 컬트에 빠진 가족들 때문에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렸다.
두 주인공이 고3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4월, 하지현의 어머니는 종말론 컬트에서 구출된 학생을 도우면 좋은 생기부를 꾸밀 수 있다는 말에 지현에게 도윤의 공부를 돕는 것을 제안한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오랜만에 재회하게 된다. 그런데, 카이로스 프로젝트가 개시되어 세계의 운명이 정해지는 날이 하필 9월 모의고사 당일로 정해지고 만다.
세상의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대학 입시라는 미래를 위해 공부를 이어가는 아이들. 두 사람에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멸망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엇일까? 멸망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문득 하지현은 자기가 살고 있는, 자신의 부모가 사랑하는 이 세상이 놀라울 정도로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는데도, 당장 오늘 관악산에 있는 서울대 캠퍼스가 완전히 녹아내릴 수 있는데도, 모두가 그곳에 하지현이 있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_본문 중

조규미 작가의 「시계 없는 아이들」은 『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의 다섯 단편 중 유일하게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있는 포근한 리얼리즘 소설이다. 9월 모의고사 날, 3학년 7반 교실에서 갑자기 사라진 시계의 행방을 따라 ‘민수’ ‘예빈’ ‘정연’ 그리고 ‘하늘’의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3월 모의고사 직후, 생기부용 활동을 위해 모인 네 아이는 모의고사를 망쳤다며 앞으로의 1년을 걱정한다. 그러다 수능이 끝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상상하는 것으로 대화의 주제가 바뀐다. 그림을 잘 그리는 하늘은 아이들이 이야기한 각자의 모습과 자신의 미래를 연습장에 그린다. 빠르게 가까워진 넷은 교실에 걸려 있던 시계를 타임캡슐 삼아 하늘이 그린 그림을 시계 뒤편에 붙이고, 수능을 친 후 함께 꺼내보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얼마 뒤, ‘하늘’이 자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늘과 연락이 닿지 않던 세 아이는 하늘에 대한 걱정 어린 마음을 가진 채로 9월 모의고사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모의고사가 끝난 후, 마침내 교실의 시계가 사라진 이유가 밝혀진다. 독자들은 길고도 짧은 고등학교 3학년의 가을이 가슴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이 소설을 읽으며 문학의 재미와 우리의 현실과 연결되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한숨으로 합창한 거냐?”
넷은 일부러 “휴우우우, 휴우우우” 하고 소리를 내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악, 그만! 침 튀어.”
“내 얼굴에 튀었어! 가만 안 둬!”
한바탕 웃고 나니 절망 바이러스가 조금 옅어진 느낌이었다. 정연이 ‘D-230’이라고 쓰여 있는 칠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희는 230일 후에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어?”

_본문 중


필적 확인 문구: 까닭 없이 웃고 떠들며 매일을 밝히리라!
가을과 단풍이 흥얼거리는 바람 같은 멜로디들

세 번째 단편인 강석희 작가의 「프리즈!」에는 주인공 ‘나’가 어느 날 심장에 혜성이 충돌한 듯 깊고 갑작스러운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공부에만 매달리고 인간관계를 신경 쓰지 않던 ‘나’는 고2가 되어 같은 반 여학생 ‘이삭’에게 마음이 이끌린다. 연애를 하게 된 둘은 학원 수업을 땡땡이치고 한강에서 남들 몰래 입을 맞추는 등 입시 준비 틈틈이 둘만의 다정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입 맞추는 모습을 누군가가 영상으로 찍어 학교에 퍼트려 이삭은 순식간에 학교에서도, ‘나’의 삶에서도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 후로도 계속 이삭을 그리워하던 ‘나’는 고3 9월, 사라진 이삭에게 편지를 받고 이삭과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우주 멸망 가설을 실행하는 의식을 모의고사를 보면서 조용히, 차근차근 치러낸다.
‘나’와 이삭의 의식은 정말로 성공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이삭을 떠나보내지 못한 ‘나’의 상상에 불과할까? 저자는 3장에서 일부러 의식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걷잡을 수 없어진 나는, 이삭은, 우리들의 마음은, 질주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알았다 한들 달랐을까. 이삭이라는 이름의 사건, 사건이라는 이름의 사고, 사고라는 이름의 사랑, 사랑이라는 이름의 용기. 그랬다. 내게 이삭은 용기라는 말의 뜻을 고민하게 하는 존재였다.

_본문 중

박민정 작가의 「좀 더 살아 보고 말할게요」는 보편적인 고민으로 인한 갈등을 거의 경험해보지 않은 주인공 ‘나’의 엄마와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큰 사건에 휘말려 인생의 기로에 선 ‘나’의 이야기다. 동시에 ‘나’가 갑자기 만나게 된 누군가와 놀이기구를 타며 가슴속에 품고 있던 고민을 일부분 해소하고, 더 나아가 자신 나름의 미래 또한 꿋꿋이 그려나가려 하는, 환상과 현실을 부드럽게 넘나드는 소설이기도 하다.
번역가인 ‘나’의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너무나 다르다. SNS를 하지도 않고, 외모를 꾸미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처럼 공부 못하는 학생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대학원까지 나와서 그런지, 공부란 모름지기 잘하는 것이 당연한 줄로만 안다.
9월 모의고사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공부가 아니라 다른 고민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심란한 마음으로 산책을 하다 충동적으로 롯데월드에 들어간 ‘나’는 화장실에서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만나, 얼떨결에 롯데월드를 함께 산책하게 된다. 그런데 ‘주산 학원’ ‘경필 대회’ ‘두 번째 수능’ 같은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는 여학생은 묘하게 엄마와 공통점이 많다. 대체 이 애는 누구길래 방금 만났는데도 이렇게 익숙한 걸까?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결말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 소설은 시의적인 주제들이 흔히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여 더욱 매력적으로 읽힌다. 또, 엄마의 모습을 단순히 ‘부모’가 아니라 아이보다 먼저 삶을 겪어 본 ‘어른’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다 다양하게, 열린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 애에게 물었다.
“혹시 엄마가 잘해 줘요?”
“잘해 주는 엄마가 세상에 있어요?”
아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왠지 마음이 놓였다. 엄마는 내 서운한 마음 따위엔 관심도 없다. 세상 모든 엄마가 그런 걸까.

_본문 중

『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의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만날 소설은 송미경 작가의 「우리의 필적 확인 문구」다. 마법 학교에 다니다 자퇴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간 주인공 ‘유리’는 새로운 학교에서의 첫 시험인 9월 모의고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온갖 기이한 일들을 겪는다. 시험 도중 뒤를 돌아본 아이들이 닭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유리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이 모두 사라지거나 갑자기 교실에 빗물이 가득 차오르기도 한다.
이상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유리는 문득문득 마법 학교에서 마주한 여러 사건과 자신이 마법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종종 그 기억들에 매몰되어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의 정체성이 마법사와 일반인 중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깨달아간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삶을 살아오며 지나쳐왔던 부분들,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외면했던 기억들을 돌이켜보면서 성장해나가는 유리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리처럼, 더 나은 나로 발돋움하기 위해 마주 봐야만 하는 과거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4교시의 필적 확인 문구는 ‘어둠 속 진실을 밝혀 잠든 아이들을 깨우라’였다. 한국사 문제를 푸는 동안, 교실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아이들이 하나씩 잠들었다. 그리고 내가 마침내 완전한 암흑을 견디어 냈을 때 시험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_본문 중

한여름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끊임없이 달리면서도, 우리는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선선한 바람으로 달래줄 계절이 분명히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뜨겁고 습한 날씨를 견뎌내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을이 흥얼거리는 바람 같은 멜로디들을 담은 이 앤솔러지를 통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우리의 미래, 찬란하게 빛날 것이 분명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기 바란다.

작가정보

저자(글) 강석희

소설가.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는 소설집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장편 소설 『꼬리와 파도』 『내일의 피크닉』 등이 있다.

저자(글) 송미경

『어떤 아이가』로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돌 씹어 먹는 아이』로 제5회 창원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광인 수술 보고서』 『햄릿과 나』 『가정 통신문 소동』 『오늘의 개, 새』 『나는 새를 봅니까?』 『토끼가 되었어』 『메리 소이 이야기』 『안개 숲을 지날 때』 등을 썼다.

저자(글) 조규미

재미와 의미가 담긴 글을 쓰려고 애쓰고 있다. 청소년 소설 『가면생활자』 『첫사랑 라이브』 『페어링』 『너의 유니버스』 『올랑즈 클럽』과 동화 『고백 타이머』 『기억을 지워 주는 문방구』 『9.0의 비밀』 등을 썼다.

작가의 말

한여름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끊임없이 달리면서도, 우리는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선선한 바람으로 달래줄 계절이 분명히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뜨겁고 습한 날씨를 견뎌내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을이 흥얼거리는 바람 같은 멜로디들을 담은 이 앤솔러지를 통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우리의 미래, 찬란하게 빛날 것이 분명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기 바란다.

천변을 느리게 걷는 딸과 마감을 하고 지쳐 누운 엄마의 마음을 모두 통과하면서, 삶은 질문과 대답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매 순간 진실하다면, 바로 그게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 하고 겨우 조금 짐작해 봅니다.

_박민정,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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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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