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탐구 생활
2024년 10월 28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3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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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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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깊은 불안이다. 자신이 세상과 타인과 묘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이자 나라는 존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수치심은 어느 부분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그 완벽을 충족하지 못한 자신에게 불안과 자책을 안겨준다. 그렇기에 수치심의 탐구는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한 고찰이 된다.
이 책은 《결혼 고발》, 《서른에 얻은 말과 버린 말》로 여성의 삶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드러내 온 에세이스트 사월날씨 작가가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고통스럽게 들여다보며 쓴 책이다. 자신의 수치심이라는 특정한 심리적 상태를 탐구해 나가는 이 과정은 심리학과 문학의 경계에 서서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탁월히 활용하고 있다. 상처를 드러내고 살점을 베어낸 이 글을 읽는 독자 또한 마침내 용기 내어 자신의 수치심을 들춰볼 수 있을 것이다.
서문 마트료시카의 가장 깊숙한 곳
1장 완벽에의 환상
감정과 욕구를 마비시키기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
(정답이) 되고 싶은 나는 실패한다
자기애와 수치심의 상관관계
나서지 마, 드러나지 마
2장 집에 두고 온 나
남김없이 설명되어야 한다는 불안
내 머릿속의 파파라치
가면의 비극
그를 숭배하는 이유
관계성의 전제는 나에게 소속되기
말하기 귀찮아
3장 가치 증명 전쟁
성취라는 덫
무엇이든 중 제일 좋은 것
소녀들의 자기부정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거라는 공포
주류 되기와 도망치기
좋은 영화를 만들 자신 같은 것
4장 여자라는 봄
티 없이 완벽하게
불경한 몸
헛똑똑이라는 갑절의 욕
대화를 수다로 만드는 시선
5장 완벽과 충분 사이
나만 그런 줄 알았어
너에게 기대기 위해서는
수줍은 사람이 아니에요
오후 세 시의 수치심에 관하여
이름이란 존재의 서걱거림
수치심에 비추는 햇빛
에필로그 쓰기의 주문
참고 자료
모임을 앞두고 심란한 마음을 들여다보자. ‘모임이 취소되었으면 좋겠어’라고 적힌 커다란 마트료시카를 앞에 둔 상황. 마트료시카를 열어본다는 건 마음을 열어본다는 뜻이다. 그 안에는 한 사이즈 작은 인형이 들어 있어 ‘그 모임은 어딘가 불편해’라는 마음이 적혀 있다. 뭐가 불편한지, 왜 그런지, 계속 파고들다 보면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마트료시카, 더는 열리지 않는 핵심 마트료시카가 어둡고 깊숙한 곳에서 ‘나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해.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쓰여 있는 채 발견되는 일이 바로 수치심을 가진 사람의 내면이다. 겉마음과는 영 딴판인 것이다.
-‘마트료시카의 가장 깊숙한 곳’ 중에서
집을 나설 때마다 진짜 나를 두고 나오는 기분이 든다. 현관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거울 속의 나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밖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지? 그래야 세상에 수용될 수 있어. 진짜 나는 혼자 있을 때 실컷 되면 되잖아. 지금부터는 내가 쓰기로 선택한, 나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는 거야. 자신으로부터 분리되는 느낌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나를 꾸밈으로써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응하는 방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고자 한다.
-‘가면의 비극’ 중에서
사람들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대체로 노력보다 큰 성과를 내왔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오래 앉아 있던 나무 책상의 감촉, 책상에 앉아 고개를 들면 보이는 작은 창문 속 밤하늘의 냄새, 늘상 학교 서랍에 넣어두는 수학 교재의 빛바랜 색깔 같은 것을 떠올렸다. 기울인 노력의 정도에 대해 스스로 아는 것은 절대적인 수준일 뿐, 상대적으로 남들은 얼마큼의 노력으로 얼마큼의 성과를 내는지 알지 못하니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정말 그런 걸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서도 하소연이나 불평을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노력이 뭉개지는 기분이 조금씩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성취는 인정받았지만 과정은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겼고 그럴수록 더욱 완벽한 인정을 향한 욕구에 시달렸다.
-‘성취라는 덫’ 중에서
밤마다 사라지는 회사 책상을 어떻게든 끌어안고 버티기보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책상을 버려버린 건 적성과 성향에 맞지 않은 업무와 환경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주류가 될 자신과 가능성이 없어 도망친 것인지도 모른다. 천하를 호령할 야망을 펼치려 할 때 마주할 시선과 평가로부터 도망친 것인지도 모른다.
-‘주류 되기와 도망치기’ 중에서
우리는 뭐든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여자다운 여자가 되어야 하는 과제를 받아 든다. 여자다운 여자란 무엇이든 되려고 나서고, 돌진하고, 주관을 갖고 밀어붙이고, 탐험하고 깨지고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성나게 일어나는 사람은 아무래도 아니다.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란 카테고리를 만들어놓고 그것은 제한이 아니라 너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포장한다. 무엇이든 해보라고 말하면서, 실패했을 때는 더 가혹한 비난을, 성공했을 때는 덜 화려한 상찬을 내린다. 앞길을 닦아줄 생각은 없이 그저 뒷짐을 진 채 진정으로 원한다면 어떤 방해물도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거라고 내게로 책임을 넘길 뿐이다. 모름지기 여자란 잘남을 현명하게 숨겨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되기를 진실로 격려받을까? 너무 똑똑하고 잘나가는 여자는 악바리이거나 독한 것, 잘난 척하고 거만하고 재수 없다고, 남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고, 인생의 한쪽에만 치우쳐서 다른 것을 놓치고 있다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을까?
-‘좋은 영화를 만들 자신 같은 것’ 중에서
헛똑똑이라는 명칭부터가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내가 텅 빈 존재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헛’이라는 접두사가 주는 느낌 때문일까? ‘헛’ 나는 텅 비어 있다. ‘헛’ 나는 쓸데없다. ‘헛’ 나는 잘못되었다.
똑똑함을 전제하고 있으나 빈틈이 똑똑함까지 집어삼킨 단어. 똑똑함마저 아무 소용 없어진 단어. 나는 똑똑함을 정체성으로 삼았었고 그렇기 때문에 헛똑똑이라는 단어는 정체성을 뒤흔드는 말이었다.
-‘헛똑똑이라는 갑절의 욕’ 중에서
오후 세 시쯤 집을 나서서 병원에 가거나 은행 업무를 처리하거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허리 통증을 줄이기 위한 산책을 하거나 택시를 잡아타고 운동 스튜디오로 향하는 일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부끄럽다.
남들이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인 오전 아홉 시에서 오후 여섯 시 사이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경 쓰인다. 병원과 은행과 마트의 직원에게, 택시 기사에게, 그저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기대어 지내는 존재처럼, 잉여의 존재처럼 여겨지지는 않을까? 오후 세 시의 집 밖의 나는 어딘지 당당하지 못하다.
-‘오후 세 시의 수치심에 관하여’ 중에서
이름이란 존재가 세계와 만나는 지점이다. 세상으로 향하는 경계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어젖혀지는 순간이 바로 이름을 부르고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다. 자아와 세계가 만나는 경계에서 생겨나는 수치심과 본질이 맞닿아 있다. 그러니 나는 그것이 두렵다. 문밖의 세계에서 예상치 못하게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당황하고 긴장하고 얼어버린 내 모습은 얼마나 엉망일까, 도저히 마주할 수 없는 기분이다.
그리하여 “주연아”라고 불리면 나는 아주 잠깐,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짧게, 1초를 수만 번 나눈 시간 동안, 바짝 얼었다 풀린다. 순간적으로 긴장이 탁 되었다가 놓여난다. 나를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찰나에 내면에는 굉장한 회오리가 일었다 가라앉는다.
-‘이름이란 존재의 서걱거림’ 중에서
나를 믿지 않는 사람, 나
모임에서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나는 먼저 입을 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그제야 그 의견에 덧붙이거나 변형해 내 의견을 내놓는다. 혹시 내가 영 딴소리를 하는 거면 어떡해.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화장을 안 해도 브래지어를 안 해도 괜찮은데 잠깐, 눈썹은 다듬었어야 하나? 친구가 나를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여성으로 보지 않고 그냥 지저분한 사람으로 여기면 어쩌지?
수치심은 일상 속에 포진되어 있다가 문득 교묘하게 일어나 자아를 갉아먹는다. 수치심을 가진 사람은 못난 사람이 되는 걸 견디지 못하며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갖는다. 수치심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자괴와 고립과 평가의 땅이다. 타인의 눈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차가운 내면의 시선이다.
특별하고 대단한, 동시에 별것 아닌 나라는 존재
모르는 걸 아는 척할 때, 모르는 걸 필사적으로 숨길 때, 수치심은 바로 그럴 때 생겨난다고 작가는 말한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과 함께 부족함을 드러내면 내쳐지고 말 거라는 불안이 수치심을 키운다. 《수치심 탐구 생활》 1장에서는 자신을 구성하는 수치심의 기원을 탐구하였고, 2장에서는 수치심이 어떻게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지 그 영향과 증상을 분석하였다. 3장과 4장에서는 수치심을 증폭시킨 사회적 요인들을 고찰하고 5장에서는 마침내 수치심이 해소되거나 수치심과 공존하는 삶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은 내면의 강렬한 수치심을 기록한 연구서이자 수치심 탐구의 내비게이션이다. 작가의 수치심 탐구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수치심도 양지로 나와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보송보송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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