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사투리
2024년 10월 1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9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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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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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투리』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순천을 거쳐 광주에 정착해 살고 있는 만화가 다드래기의 첫 에세이집이다. 작가는 스무 살 무렵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전라도 순천으로 떠났다. 당시 만화과가 개설된 유일한 국립대학교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에 위치한 순천의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대학에는 영호남의 다양한 지역 출신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참신하고 비범한 사투리를 낯설어한 것도 잠시, 경상도 사투리를 근간으로 전라도 등지의 옛말이 곳곳에 침투한 ‘화개 장터 말투’가 싹텄다. 작가는 지금도 전라도에서 부산으로 진입하는 노포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정체불명의 사투리가 터져 나온다고 한다. 듣는 이의 무궁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한마디는 이렇게 시작한다. “옴마야, 내 윽스로 오랜만에 와가꼬 느무 변해가 부산 하나또 몬 알아보겠데이! 진짜 많이 변했다, 안 그냐?”
니 집이 어데고?
금기를 깨는 한마디
랩소디 인 콜센터 1
랩소디 인 콜센터 2
엄마의 마지막 말
일본댁 할머니와 오찻물
언니야밖에 없어서
억울한 사투리에 대한 변론
서울 사람들은 이거 어떻게 읽어요?
어마무시하게 정성껏
유창하게 구수하게
말하는 대로
에필로그
“오메! 뜨그브라!”
“자전거 타고 오다 넘어지 갈아뿟다고? 흐미 으찌까!”
이 자연스러운 경상도와 전라도의 컬래버레이션이 느껴지는가. 절대 일부러 내뱉을 수 없는 말들. 일부러 따라 하거나 핀잔 들으면서 배우는 말이 아니라 내 안에 흡수되어 자리 잡은 말들. 5년간 순천에서 만난 경남 친구들의 영향으로 더욱 강화된 경상도 사투리와 20년 가까이 전라도에 살면서 어느새 체화된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결과적으로 부산과 훨씬 더 멀어진 나만의 말투가 완성된 것이다. (16면)
“고객님, ‘요금청구서’라는 가장 큰 글씨 오른쪽 아래에 보시면 파란 네모 안에 검은 네모로 된 표가 있습니다. 보이실까요?”
“어? 그네. 있네.”
“그 표에서 제일 아래 칸에 ‘당월 요금’이라고 적혀 있고 옆에 금액이 보일 겁니다. 안 긍가요?”
‘안 긍가요?’라니! 일목요연하고 정갈한 설명 끝에 불쑥 치고 들어온 안 긍가요는 사투리를 완벽히 체화한 남도인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부가 의문문이다. 의도치 않게 내 입에서 “프앗!”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교육장의 직원 스물다섯 명과 교육 팀장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런데 웃었다고 나무라는 눈빛이 아니었다. 진짜로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옆자리 동기가 입 모양으로 ‘왜?’라고 묻는 순간 깨달았다. 아무도 지금 이 상황이 웃기거나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뭐시여, 진짜 나만 웃은 거여? (28-29면)
어른이 되면서 언니와 나는 다른 지역에서 살았고 말투도 각자의 자리에 맞게 따로 진화했다. 20년 넘게 경기도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언니는 정말 깔끔한 윗동네 말투를 쓴다. 화개 장터를 구르면서 진화한 나와는 차원이 다른 세련됨이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거나 같이 쇼핑을 하다 간간이 마주치는 언니의 경기도 말투에 아직도 닭살이 돋는다. 마치 2개 국어를 하듯 뻔뻔한 언니의 태도는 지금도 꼴 보기 싫지만 정작 언니는 이제 나의 눈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역시 월급의 힘인가. 그래도 나와 단둘이 있으면 언니의 봉인도 어쩔 수 없이 풀린다. 본능에 가까운 말들이 의식을 거치지 않고 툭툭 튀어나올 때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투리를 잊고 살았는지 새삼 깨닫는다. (47-48면)
언니야와 비슷하게 오빠야 또한 친남매나 반말을 틀 정도로 막역한 사이에 편히 쓰는 말로 체득되어 있다. 오빠야는커녕 그냥 오빠라는 말도 닭살이 돋아 남에게 꺼내지 못하는 경상도 여학생으로서 “나는 오빠야라고 불러주는 게 참 귀엽더라”라는, 호기심인지 플러팅인지 알 수 없는 느끼한 말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야가 내를 언제부터 알았다고 앵기노? (67면)
‘야’를 사용해 상대를 위협할 수도 있다. 욕 하나를 하더라도 내용과 묘사에 정성을 들이는 전라도 말에 비해 경상도 말은 짧고 간단해서, 그저 호칭 하나를 크고 강하게 말하면 된다. 상대에게서 “오~빠~야~”가 아니라 “오빠야!!!!!!”가 나오는 순간 전투가 시작될 수도 있다. 그러니 초면에 오빠야를 요구하는 분들은 온갖 기출 변형에 각오하시기를. (68면)
지금은 잊혔거나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을 나의 작품에 남기는 것은 세대를 잇는 인물을 가족 단위로 묶어주기도 하고 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만화에 최대한 생활 속 말을 많이 남기려 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어울리면서 재미있는 말들이 또 태어나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구글을 검색하고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물어가며 나의 말을 찾아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또 재미있지 아니한가. (123-124면)
“그 말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인생을 지배할지 모를 일이다”
전업 만화가로 전향하기 전 다드래기 작가는 7년간 지역 콜센터의 상담사로 일했다. 업종과 지역을 막론하고 표준어 사용이 고객 응대의 기본 지침인 콜센터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지,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말이 필요한지” 실감케 하는 곳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투리를 숨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또 진한 사투리를 쓰는 중장년층 고객이 주를 이루는 지역 콜센터에서는 표준어와 전문 용어로는 가닿을 수 없는 대화의 사각지대가 생기게 마련이다. “어려운 말 쓰지 말고 제대로 말해주쑈이.” 고객의 답답함과 상담사의 곤란함이 극에 이르는 순간, 교양 있는 서울 사람이 두루 쓴다는 표준어를 잠시 내려두고 사투리의 봉인을 해제할 때다.
“지독한 업무평가를 거치며 억지로 입에 붙인 표준어가 모든 고객의 귀에 잘 들릴 것이라는 생각은 상담사도 하지 않는다. 그 말은 규칙과 원칙일 뿐, 실력은 언제나 응용문제에서 빛을 발한다. 일단 상대의 말이 짜증의 신호인지 사투리를 소환하는 마법의 주문인지 제대로 캐치했다면, 무르익은 실력을 발휘할 차례다. “고객님, 청구서 오른쪽 끄터리에 네모 칸 보이시죠이. 거기 쩨일 밑에 요금 만이천삼백 원 있습니다. 안 긍가요?””(34쪽)
“사람들이 가진 자기만의 모든 말을 좋아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무심코 뱉는 한마디에서 시작해 이 책의 모든 글을 썼다. 찰나의 표정과 새어나오는 웃음이 진심을 투명하게 드러내듯,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숨겨진 면모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새로운 터전에 발 붙이려고 사투리를 열심히 고치던 자매가, 유독 된소리를 잘 내지 못해 살살한 목소리로 말하던 생전의 엄마가, 난생처음 성을 뺀 온전한 이름으로 불릴 때 가슴 설레던 어린아이가 있다. 사투리 말씨를 숨기지 못해 신음하던 콜센터 막내 직원 K는 굳은 의지로 업무에 적응해 근속했고, 경기도에서 교편을 잡은 작가의 언니는 어느새 깔끔한 윗동네 말투를 쓴다. 이제는 사라진 말들과 더는 그때 같지 않은 사람들. 『아무튼, 사투리』가 읽는 이를 자꾸만 애틋하게 만드는 것은 다시 경험하지 못할 유년의 기억을 건드려서일 터다.
내 말이 그렇게 촌스럽냐고 울먹이던 아이는 팔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어른이 되었다. 서울로 떠나지 않고 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가 가진 재미있는 것들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다던 작가는, 오늘도 사람들이 어울리며 재미있는 말이 새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화제가 어디 있겠느냐고.
작가정보
스케일 작은 만화가. 만화 외판원으로 가능한 일은 다 한다. 다드래기 창작소를 운영하고 있다. 『불씨』, 『지역의 사생활 99: 화순』, 『혼자 입원했습니다』, 『안녕 커뮤니티』, 『거울아 거울아』, 『달댕이는 10년 차』를 지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 살며 영호남을 관통하는 화개 장터 언어를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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