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종말 탈출기
2024년 10월 14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0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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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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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주제로 그린 미술 숙제 발표 시간,
친구의 할아버지가 손수 지어준 별명이야말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콩가루’입니다.”
어느 날 최씨네 일가에 어둠처럼 스며든 지구 종말의 예언! 집안 서열 1위인 괴짜 외할아버지 ‘최씨’,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남동생으로 무엇이나 잘 뚫는 ‘뚜러정’, 한때 큰삼촌이었다 이모가 된 ‘히메’, 은둔형 외톨이 막내 삼촌 ‘척척’ 그리고 싱글맘인 엄마와 여덟 살 된 딸아이 ‘최한라’. 파탄 직전의 삼대 가족이 펼치는 포복절도 지구 종말 탈출 소동극.
D-100/ D-69/ D-26/ D-1/ D-day
에필로그
지구 종말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모종의 지령을 수행해야만 하는 최씨네 가족. 각자 아픈 사연과 설움을 가지고 해체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 구성원의 모습을 통해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참다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소설에서 ‘종말’은 지구 종말과 가족 해체의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일명 콩가루 집안이라 일컬어지는 최씨네 일가 사람들,
해체에서 화합으로 탈바꿈한 삼대 가족의 요절복통 울컥 이야기
소설의 화자이자, 일 년 전 엄마와 함께 외할아버지인 최씨네로 들어와 살고 있는 여덟 살 최한라는 사람들의 아픔을 치료해줄 투명반창고 발명가가 꿈일 만큼 사랑이 많은 아이다. 반목하는 가족들의 유일한 말상대가 어린 한라이기에 와전되기 일쑤인 대화 내용들이 소설의 웃음 포인트이기도 하다. 가족 구성원은 집안 서열 1등인 외할아버지 최씨와,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가 싱글맘으로 되돌아온 최씨의 큰딸, 그리고 어린 한라 이외에 한라가 별명으로 지어 부르는 척척과 히메, 뚜러정이 있다. 척척은 척척박사의 준말로 엄마의 막냇동생인데 방에서 도무지 나오는 법이 없으며, 엄마의 바로 아래 동생인 히메는 사실 하마를 닮았지만 차마 그렇게 부르지는 못하겠고 서로 합의하여 발음상 비슷하면서 ‘공주’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 단어를 갖다 붙이게 됐는데 못생기고 목소리가 좀 이상해도 상냥하고 착하다. 그리고 세상천지 못 뚫을 것이 없다고 해서 이름 붙인 뚜러정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하나뿐인 동생인데 히메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방을 내주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몇 달만 얹혀살겠다며 최씨네로 들어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엄마는 애초 다짐이 무색하게 한라가 어느덧 초등학교 입학하기에 이를 때까지 별다른 대책이 없고, 그런 최씨네 일가엔 찰떡같은 별명이 붙은 지 오래다. 그건 바로 ‘콩가루’.
아무튼 영민이 할아버지와 우리 최씨는 아는 사이였는데 이따금 길거리서 마주치면 우리처럼 손을 흔들거나 메롱을 하는 대신 헛기침을 하거나 혀를 끌끌 차곤 했다. 언젠가 『세계의 인사법』이란 책에서 보았는데 에스키모들은 서로 코를 비비는 것으로, 물이 귀중한 아프리카의 일부 부족은 얼굴이나 발등에 침을 뱉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니 최씨가 유별난 건 아니다. 내가 최씨에게 영민이 할아버지가 우리 집 별명을 콩가루라고 지어줬다고 하자 최씨 역시 혀를 내두르더니 영민이네 집에도 공평하게 별명을 지어 화답했다. ‘속 빈 강정’이라고.
우리들처럼 돼지나 코끼리 따위의 동물이 아닌 음식을 활용하는 그들의 별명 짓기는 인사법만큼이나 상당히 독특했지만 최씨가 지은 별명이 훨씬 그럴싸했다. 그렇다고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 건 아니다. 콩가루보다는 강정이 더 달고 맛있기 때문이다. (p. 25)
전대미문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역대급 가족,
각 인물의 뒷이야기로 뭉클한 울림을 주는 숨겨진 삽화揷話
한라의 외할아버지인 최씨는 77세의 괴팍한 인물로 과거에는 사진사였고, 현재는 본인 소유의 공터에 사설 주차장을 꾸려 소일로 삼고 있다. 큰 전망 없던 공터가 얼마 뒤 기도원 설립 명목하 웃돈에 매매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사이비 기도원의 수상쩍은 행적과 무당 이옥련 할머니의 등장이 그간 코웃음 치던 지구 종말을 가시화하는 것 같아 초조해진다. 40대 중반의 최고은은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부친에 대한 원망이 깊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순종했지만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하며 최씨와 사이가 틀어졌고 그러다 이혼 후 다시 본가로 들어왔다. 40대 후반의 정두섭, 일명 뚜러정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늦둥이 남동생으로 중장비기사 일을 하고 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터울이 많은 누이와 함께 상경해 최씨와 한 가족이 됐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한때 집을 나간 적이 있다. 40대 초반의 최고윤, 일명 히메는 착하고 똑똑한 아이였지만 보통의 또래들과 다른 성 지향성에 혼란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성향을 숨기고 살다가 어머니 임종 이후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자로 거듭났다. 사회적 차별로 인한 극심한 생활고와 폭행 시비에 연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결국 본가로 들어왔다. 그리고 30대 초반의 최고준, 일명 척척은 최씨의 외도로 태어난 배다른 자식으로 중학교 때 자신의 과거를 알고 일탈하여 최씨 내외의 속을 썩인 인물이다. 이렇듯 각양각색의 숨겨진 사연들이 소설 속에서 또 한 편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삽화揷話가 액자 구도로 펼쳐진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의 특별한 매력이다.
사회 전반을 뒤흔든 지구 종말의 예언,
그리고 한 가족에게 은밀히 전달된 종말 탈출의 기회,
소외된 자들의 좌충우돌 위기 극복기
이런저런 속사정으로 최씨네가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어느 가을, 백일 후 닥쳐올 지구 종말 예언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그러던 중 최씨가 소유하던 작은 부지가 팔리고 그 자리에 노아의 방주 형상을 띤 기도원이 들어선다. 이른바 ‘영생구원기도원’. 신도들이 행방불명되는 등 정체가 묘연한 이 기도원의 전도사는 반목하던 최씨네 사람들에게 십계명을 전달하며 교화하려고도 했지만 엉뚱한 일로 엮이면서 차츰 서로 적대감이 쌓여간다. 공교롭게도 이와 때를 같이하여 집안의 먼 친척이자 영험한 무당 할머니가 최씨네를 찾아와 이들 가족에게 믿기 힘든 예언을 한다. 모월 모일, 가족 모두가 과거 최씨의 사무실, 즉 현재 기도원의 개집으로 사용되고 있는 장소 아래 벙커를 만들어 숨지 않으면 최씨네가 전멸한다는 것. 그날은 하필 지구 종말이 예견된 날이기도 해서 최씨네를 더 불안에 떨게 만든다.
“긍께요. 최씨네 씨가 마른다고. 씨가 마른다고. 집을 나가라고 하대요.”
“집을요?” 말꼬리를 낚아챈 사람은 뚜러정이었다.
“응. 나도 당최 무슨 말잉가 싶어서 물었쩨. 그란디 이유는 말을 안 하고 땅속으로, 땅속으로 들어가라 하대요.”
“땅속이요? 지하요? 삼촌 방이요?” 이번엔 히메였다.
“그랴서 나도 통 무신 소린가 싶어설랑 물었쩨. 성님네 지하냐? 허고. 그란디 고개를 저어 쌌기에 그람 어디 지하냐, 어디를 가야 최씨네 씨가 안 마르느냐 했더마…….”
(중략)
“거기라고 하대요. 왜 그짝 사무실…….”
할머니가 최씨를 향해 턱짓을 했다.
“사무실이요? 거기 지하가 있어요?”
뚜러정이 되묻자 최씨는 넋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러. 무조건 거기야 헌댜. 거서 다들 숨어 있어야 헌댜. 그려야 씨가 안 마른댜. 그란디 내가 옴서 봤더니 그 땅에 시방 뭔 일이여. 까무룩 혀서 자세히는 못 봤다만 건물이 들어섰더구먼. 꼭 요상한 배 한 척 같더구먼.” (p. 128~129)
이제 최씨네 일가는 종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난생처음 힘을 합치고 최씨가 그 선봉에 선다. 홀로 어린 딸을 양육하며 때때로 과민한 모습을 보이거나 고지식한 부친의 성격을 그대로 답습하던 엄마도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과정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면모를 찾아간다. 한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다시 최씨네로 들어와 눈칫밥을 먹으며 생활하던 뚜러정, 골방에 틀어박혀 은둔형 외톨이처럼 생활하던 척척, 서로 앙숙이었던 이들 역시 탈출 작전이 시작되고부터는 힘을 합쳐 벙커를 만들어간다. 집안의 수치로 치부됐던 히메도 본연의 기질을 발휘하여 가족들의 식사 준비를 하는 등 안살림을 도맡는다. 가족들의 이런 모든 변화가 한라의 시선에 무지개처럼 환한 모습으로 비친다.
그렇게 말하는 최씨의 볼에 또 무지개가 떴다. 그 무렵엔 이상하리만치 숱하게 무지개가 출몰했다. 공부를 하는 엄마의 얼굴에, 요리를 하고 사진을 찍어두는 히메의 얼굴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척척의 얼굴에, 헤어지고 돌아서는 아줌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뚜러정의 얼굴에, 심지어 내가 쓰다듬으면 꼬리를 흔들며 반달눈이 되어 바라보는 미키의 얼굴에까지 말이다. (p.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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