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적인 평범
2024년 10월 08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9월 0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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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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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은 꼭 나처럼 생긴 단어구나 싶다
『가장 사적인 평범』은 소설과 번역, 에세이를 넘나들며 문장의 바다를 항해하는 부희령 작가의 신작 산문집이다. 작가는 세 권의 창작집, 한 권의 산문집을 출간하고, 중앙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예리하면서도 힘을 잃지 않는 글로 독자들에게 각인되었다.
이번 새 산문집은 타의 모범이 되거나 위대해지기를 바라지 않기에 나답게 살 수 있는 삶, 그래서 어떤 말치레의 위로도 필요 없는 평범한 삶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둥글게 감겨 있는 투명 테이프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더듬듯, 개인의 내밀한 삶이 세상과 맞닿아 반응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삶이 결국은 상호 보완하는 공동체의 좋은 일원으로 이끄는 힘임을 말한다. 그리하여 ‘기꺼이 나누며 아름답게 살아보자’고 독자에게 제안한다.
둥글게 감겨 있는 투명 테이프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찾듯
계절의 시작과 끝을 머뭇머뭇 감지하는 중이다.
책은 여섯 부분으로 갈무리되어 있다. 1부 ‘쓰기’는 문장에 대한 욕망과 평범한 개인의 윤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작가의 고백이다. 2부 ‘마음’은 자기 자신이라는 느낌이 헐거워지는 순간처럼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내적 풍경을 드러낸다. 3부 ‘여행’에서는 슬로베니아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낯선 시공간 속에서 정체성을 돌아보던 시간을 돌아본다. 4부 ‘가족’에서는 선택 없이 던져진 출생의 자리를 성찰한다. 5부 ‘세상’은 어설픈 개인주의자가 공동체의 성숙한 일원이 되고자 시야를 넓히려는 시도이다. 6부 ‘읽기’는 가장 여리고 아픈 존재이지만 체계적으로 외면당하고 있는 자연, 동물, 여성에 대한 독서의 경험이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내키는 대로 펼쳐서 읽어도 좋은 산문집이다. 한 장 한 장 읽어가다 보면, 마음속 어둠을 어루만지는 환한 힘을 느끼게 된다. 언제인지 모르게 부서지고 조각 난 삶을 제모습으로 돌려줄 가장 사적인 말들을 가슴에 품게 된다.
1부 쓰기
비행 공포 | 이하의 파랑 | 천사 | 폭소
2부 마음
두번째 화살 | 진원지 | 그해 겨울, 종로 | 사랑에 관한 궁금증 | 편의점과 여름 | 인간관계 | 정신승리 | 잠과 꿈 | 구더기 | 회복기의 아침 | 상자
3부 여행
아쉬람 | 향수병 | 1989년, 인도 | 파파야 | 지진 | 2017년 5월, 슬로베니아 일기 | 2017년 7월, 베네치아 여행
4부 가족
실향민들 | 병실에서 | 아버지와 나 | 옛날 사진을 보다 | 첫사랑 | 관인 이모 | 아들 | 토마토
5부 세상
어설픈 개인주의자의 고백 | 기품 있는 죽음 | 나의 상추 공급자 | 나는 괜찮은 사람 | 폭설 | 마지막 가을 | 속도의 톱니바퀴 | 종말의 상상 | 중고차 운전자의 미래 | 낳을 권리 | 드론의 시각 | 차이
6부 읽기
거대한 침묵 |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 늑대 토템 | H₂O와 망각의 강 |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 밀크맨 | 오래된 미래
평범하게 살아온 덕분에 더 많은 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많으니까.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좋았다.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서도, 좋았다. _「가장 사적인 평범: 작가의 말을 대신하여 쓴다」에서
평범은 모범이 되거나 위대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평범은 위로받을 필요가 없다. 무릎이 아파도 경로석에 앉아 마음껏 연애소설 읽는 할머니로 살아갈 텐데, 왜. __「가장 사적인 평범: 작가의 말을 대신하여 쓴다」에서
비행기가 뜨는 이유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이제껏 아무것도 모른다는 불안과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나는 허공을 날아간 셈이다. 당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내가 당신에 대해 중언부언 쓰고 있는 것처럼. _「비행 공포」에서
키 큰 침엽수 숲으로 둘러싸인 잿빛 벽돌집에서 이하는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창밖을 내다본다. 깜깜한 파랑의 밤이 오기 직전, 잠시 자기 눈동자와 꼭 같은 색으로 변한 저녁 하늘을 바라본다. 아이가 꿈꾸는 것은 뜨거운 태양을 품을 수 있는 순수한 파랑이다. 눈을 뜨고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두려운 찬란함이다. 겁에 질린 이하의 눈동자만이 오직 한 점의 구름으로 허용될 뿐. _「이하의 파랑」에서
나도 이제는 천사라기보다는 천사의 후유증에 가까워. 천사가 중얼거렸다. 천사는 끝없이 선량해져야 하고, 끝없이 아름다워져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나처럼 희박해지고 사소해져서 후유증만 남게 되거든. _「천사」에서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에는 빈틈이 있다. 마음이란 오직 나만의 것이 아니다. 마음은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 속 사람들이 내면화한 가치나 시선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가난이나 질병에 대한 편견. 계층 혹은 계급이라는 구별. 중심이 되는 미학적 기준. 이런 것과 상관없는 마음이라는 게 있을까. _「두번째 화살」에서
긴 장마였다. 비가 그치고 나니 여름은 아주 잠깐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지나간 여름에 대한 소회를 말하겠지. 역대급 장마, 역대급 더위, 역대급 태풍. 그런 말들이 등장할 것이다. 반소매 아래 드러난 팔목이 선득해서 카디건을 찾아 걸쳤다. 낮에는 햇살이 따갑겠지. 둥글게 감겨 있는 투명 테이프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찾듯 계절의 시작과 끝을 머뭇머뭇 감지하는 중이다. _「편의점과 여름」에서
새벽 두시쯤 항상 눈이 떠진다. 열려 있는 창문으로 바퀴 달린 소리가 굴러와 내 몸을 레일삼아 달려가기라도 하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사람은 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일지도 모르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_「잠과 꿈」에서
선풍기가 돌아가는 방안은 후덥지근하다. 코끝에서 파파야의 농익은 단내가 유령처럼 어른거린다. 열대의 아침마다 우리는 파파야를 사등분으로 길게 잘라 모서리가 예리한 숟가락으로 파먹곤 했다. 너는 선홍빛 과육 위에 흩어져 있는 약콩 크기만한 씨앗도 먹으라고 권했지. 인도 사람들은 파파야 씨앗을 위장약으로 쓴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_「파파야」에서
칠 년 전에 연락이 끊겼던 사람으로부터 이메일이 왔고 누군가는 나에게 사랑이 없다고 했다. 나는 나를 떼어버리고 싶었으나, 비 오는 거리를 걷다가 별수없이 다시 뒤집어썼다. _「지진」에서
동쪽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보였다. 아스팔트에 박힌 금속 조각처럼 희미한 빛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외로워서가 아니었다. 저 별처럼 나도 이 세상 한 귀퉁이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벅찬 느낌 때문이었다. _「2017년 5월, 슬로베니아 일기」에서
누군가가 손을 뻗어 좁은 구석에서 끌어내주기를 바라던 어린 마음을 이제 경멸하지 않는다. 달리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두려움으로 굳게 잠긴 문을 스스로 여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알려주고 싶기는 하다. _「아버지와 나」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누는 태도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마냥 움켜쥐려고 애쓸 것이고 누군가는 기꺼이 나눌 것이다. 윤리는 의무나 당위가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을 아름답게 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름답게 살아보자. _「어설픈 개인주의자의 고백」에서
가난 속에서 어머니를 저버리지 않고 아버지를 욕하지 않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드문지 아는가. 세세히 모르는 그의 삶을 함부로 동정하거나 훼손하고 싶지 않다. _「기품 있는 죽음」에서
그리하여 사라지는 것은 마주보며 웃을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손을 뻗어 포옹할 수 있던 우리의 다정한 몸들뿐. _「종말의 상상」
하지만 슬프지 않은가, 훈련된 안목이나 교양 없이도, 값비싼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고개를 들면 언제나 누구나 누릴 수 있던 파란 하늘이 홀연 사라진다는 것이. 그런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 대할 수 있을까. _「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에서
앎이라는 것은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름 역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과 자신이 안다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까지의 앎을 되돌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우리는 이따금 알아도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_「H₂O와 망각의 강」에서
작가정보
소설가, 번역가, 칼럼니스트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글 쓰는 일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는 장편 청소년 소설 『고양이소녀』, 소설집 『꽃』 『구름해석전문가』, 앤솔로지 『그 순간 너는』,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산문집 『무정에세이』, 공동 르뽀집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 가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모래 폭풍이 지날 때』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등 80여 권이 있다. 〈국민일보〉(2015-2017), 〈한국일보〉(2016-2019), 〈서울신문〉(2019-2021), 〈경향신문〉(2019-2024)에 칼럼을 정기적으로 연재했다. 대안연구공동체, 경향시민대학, 우리가치 인문동행 등에서 글쓰기 강의를 했다.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두 차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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