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2024년 09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9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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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69850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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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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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린 시절 친부의 학대와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넘치는 사랑으로 자신을 지켜주었던 존재였다. 그런 엄마가 갑작스러운 폐암 발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셰릴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회한 서린 절망에 빠져든 그는 자신의 삶을 철저히 바닥으로 내몰게 된다. 그렇게 4년이 흐르고 가족과 친구, 남편마저 자신에게서 멀어지자 그는 폐허가 된 삶을 서서히 직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현듯 ‘보통의 좋은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인 채 무모하고도 충동적인 결정을 한다. 바로 모하비 사막에서 출발해 워싱턴 주에 이르는 이른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홀로 횡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무너진 삶을 등에 짊어지고 9개의 산맥과 폭염과 폭설, 차가운 빙벽과 황량한 사막을 넘나드는 95일간의 여정을 시작한다.
거대한 자연의 풍광의 끝에서 비로소 발견한 무자비하고도 찬란한 인생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이 책은 “생기 넘치고 감동적이다(월스트리트 저널)” “모든 작가가 꿈꾸는 놀라운 재능을 지녔다(워싱턴포스트)” “1/3을 읽는 동안 탈진했고 눈이 퉁퉁 부었다(뉴욕 타임스)”라는 평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뜨거운 화제를 낳고 있다. 상실의 폐허 속을 헤치고 나온 저자의 내밀한 고백은 독자들에게 묵직한 용기와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프롤로그
1부 돌연히 무너진 삶
상실의 시작
모든 것에서 떠나기
짊어져야 할 것들
2부 슬퍼할 새 없이 걷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고통에 가려진 고통
불안을 둘러싼 아름다움
숲속에 남은 단 한 명의 여자
3부 눈부시고 아픈 길
텅 빈 곳에서 태어난 행운
잃어버린 길 위의 여우
레이디, 레이디, 레이디
4부 뜨거운 야생에서
지금, 여기 이곳의 나
현실과 현실
길이 없는 길
비로소 숨을 쉬다
5부 돌아가다
오리건에서 만난 사람들
텅 빈 그릇을 채운 것
뛰고, 넘고, 돌면 끝
PCT의 여왕
신들의 다리
에필로그
나는 다리가 있는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 다리는 생각만으로도 내게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남쪽을 바라보았다. 나를 가르치고 깨우쳐준 거친 야생의 땅이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계속해서 길을 걷는 것. 언제나 그랬듯이.
19p, 프롤로그
“엄마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할까? 이만큼?” 엄마는 그렇게 물어보며 양손을 한 뼘 정도 벌렸다.
“아뇨!” 우리는 킬킬거리며 합창하듯 대답했다.
“그럼 이만큼?” 엄마는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그때마다 손도 점점 더 크게 벌렸다. 그렇지만 아무리 손과 팔을 뻗은들 원하는 대답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훨씬 더 컸으니까. 그 사랑은 크기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31p, 1부 돌연히 무너진 삶
내가 짊어지고 있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무게가 나를 앞으로 밀어 쓰러트리려는 것만 같았다. 두 다리 위에 올려놓은 몸뚱이가 무너져내리면서 저 황무지 속으로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40분이 지나고 목소리 하나가 내 머릿속에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97p, 2부 슬퍼할 새 없이 걷다
나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기운이 확연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내가 생생하게 느낀 건 어떠한 힘이 아니라 엄마의 존재였다. 엄마는 내가 이 여행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이 여정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확신, 잘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준 모든 이유 중에서 엄마의 죽음은 내가 안전할 것이라고 깊이 믿게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엄마가 죽고 난 후 나에겐 그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최악의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까.
114p, 2부 슬퍼할 새 없이 걷다
한낮이 되었을 때 마침내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서쪽 지평선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거대하고 하얀 장벽 하나가 땅에서 솟아난 것이다. 지금 이렇게 높은 산 중간쯤에 자리하고 앉아 있으려니 그때의 그 모습을 그려내는 일은 내게는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이제 그 산의 뒷면에 서서 바라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산의 중심부에 와 있었다. 나는 점점 희미해지는 황홀감 속에서 저 너머 땅을 바라보았다. 너무 피곤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로 걸어갈 수도 없을 지경인 채로 그렇게 어두운 하늘을 응시했다. 머리 위로는 밝은 달이 떠올랐고 발아래로는 저 멀리 마을들의 불빛들이 반짝거렸다. 침묵은 거대했고 고독감이 엄청난 무게로 내려앉았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지금 손에 넣은 것이겠지.
159p, 2부 슬퍼할 새 없이 걷다
고향이 그리웠지만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던 고향인지 아니면 PCT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달이 떠 있는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어두운 그림자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몇 년 전, 폴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이 산맥을 처음 봤었다. 그때는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만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저 산맥을 넘어 그 안으로 들어가 일부가 되는 상상을 했다. 나는 그 길을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38~239p, 3부 눈부시고 아픈 길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화를 내며 음식이 가득 담겨 있는 그릇들을 벽으로 집어 던진다. 아버지가 엄마를 깔고 앉아 엄마의 목을 조르고 머리채를 잡고 벽 쪽으로 내려친다. 어느 날 한밤중에 아버지가 언니와 나를 침대 밖으로 내던진다. 나는 고작 다섯 살이다. 아빠랑 살기 싫다고 말했다는 이유였다. (…중략…)
식료품점에 일자리를 얻은 아버지가 집에 과자를 들고 온다. 아버지가 간절히,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지만 아버지의 마음과 서글픔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찰리 리치의 노래를 부른다. ‘이봐, 이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여인을 본 적 있어?’ 그 노래의 주인공은 나와 언니와 우리 엄마다. 우리는 그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이 된다. 그러다 모든 것이 다 끝장이 난다.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는 순간은 엄마에게 돌아오라고 애원할 때뿐이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달라질 거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엄마에게 약속하고 애원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아버지는 거짓말쟁이, 사기꾼, 야만인, 그리고 짐승이다.
(…중략…)
아침이면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멀쩡한 모습으로 아침을 하며 다시 찰리 리치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250~251p, 3부 눈부시고 아픈 길
“너희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너희들 온몸에 입을 맞추는 것이었단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손가락 발가락이 제자리에 다 붙어 있는지 확인했지.” 엄마가 말을 이었다. “그다음에는 손을 만지고 더듬어보았단다.”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었지만 엄마의 그 말은 결코 잊지 못했다. 그 일은 아버지가 나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겠다고 위협했던 말만큼이나 내게 강하게 남아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두 눈을 감고 등을 기댄 뒤 물이 얼굴을 덮을 때까지 머리를 담갔다. 어릴 때의 기분이 되살아났다. 그저 머리를 물속에 담그는 간단한 행동 하나로 익히 알고 있던 욕실이라는 세계가 사라지고 신비스러운 미지의 장소가 새로 나타났다. 귀에 익숙한 소리와 감각이 순간 다 사라지고 먹먹한 상태가 되었다. 다른 소리와 감각은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나는 3주간을 걸어왔다. 그렇지만 내 안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숨을 쉬지 않고 참으며 물속에 누워 있었다. 그곳은 나 홀로 존재하는 기이한 신세계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진짜 세계는 그저 조용히 웅웅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256~257p, 3부 눈부시고 아픈 길
엄마가 레이디의 단단한 등에 올라타고 거대한 강을 건너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엄마가 떠난 뒤 거의 3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엄마는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난 것이었다. 나는 레이프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랐다. 내게 빌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내가 바라는 건 엄마가 다시 말을 타고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레이디와 함께 저 멀리 떠나는 것이었다.
306~307p, 3부 눈부시고 아픈 길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야생에서 어떤 것을 느끼느냐 하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나무들이 쌓여 있는 모습과 풀밭, 산과 사막, 바위와 개천들, 강과 잡초들, 일출과 일몰을 보기 위해 몇 킬로미터고 계속해서 걷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렇게 얻는 경험은 강력하면서도 근본적이다. 야생 속으로 들어간 인간이면 언제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또한 그 야생의 환경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몽고메리가 꿰뚫어보았던 것이 아닐까. 클라크와 로저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들의 뜻을 계승하고 따랐던 수천 명의 사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나도 이 길에 직접 들어서기 전에 어렴풋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PCT의 여정이 얼마나 어렵고 영광스러운 길인지, 그리고 그 길이 나를 산산이 부술지라도 다시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388p, 4부 뜨거운 야생에서
엄마의 죽음이 모든 것을 다 망쳐버렸다. 내 인생도 망쳐버렸다. 내 어린 시절의 교만이 절정에 달했을 때 엄마의 죽음이 나를 끝장냈다. 나는 어느새 강제로 훌쩍 어른이 되어버렸고 동시에 엄마의 잘못들을 모두 다 용서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영원히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헤어진, 너무 일렀던 그 시점에서 내 인생은 끝이 났고 다시 시작되었다. 분명 내게는 엄마가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나는 엄마에게 사로잡혀 있지만, 완전히 혼자다. 엄마는 언제나 텅 빈 그릇 같았고 아무도 그 속을 채워줄 수 없었다. 오직 나만이 그 텅 빈 속을 채우고, 채우고, 또 채워줘야 했다.
495~496p, 5부 돌아가다
나는 호수를 바라보며 남은 오후 시간을 보냈다. 신들의 다리에 도착하려면 535킬로미터를 더 가야 했다. 하지만 마치 이미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파란 호수의 물이 그동안 내가 걸어오면서 알고 싶어 했던 그 해답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곳의 옛 이름은 마자마였다지.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한때는 3,657미터나 솟아 있던 산이었지만 그 심장이 움직이면서 용암과 화산재와 부석으로 인해 황무지로 변했고, 다시 텅 빈 그릇처럼 변해 그 안에 물이 채워지길 수백 년을 기다렸다지. 그렇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없었다. 산도 황무지도, 그리고 텅 빈 그릇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모습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호수뿐이었다. 치유가 시작된 후 산과 황무지와 텅 빈 그릇이 변한 저 모습을 보라.
507p, 5부 돌아가다
나는 야영할 장소를 찾으며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걸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몸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날은 어느새 위험할 정도로 어두워졌지만 텐트를 칠 만한 평평하거나 확 트인 장소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나는 작은 연못 근처의 한 지점을 찾아냈다. 그곳으로 가니 마치 구름 속으로 들어간 듯 공기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게 움직임이 없었다. 간신히 텐트를 치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내 정수기로 물을 채우고 있으려니 엄청난 위력의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하며 머리 위 나뭇가지들을 후려쳤다.
나는 산에서 부는 폭풍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두렵지는 않았지만 저녁도 먹지 않고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텐트가 작은 안식처가 되기는 하지만 자연에서 나란 존재가 참으로 무력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두려움과 긴장, 경이로움 속에서 결코 오지 않을 거대한 폭풍을 기다렸다.
522p, 5부 돌아가다
마침내 긴 여정을 끝내고 하얀색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 외에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없었다. 내가 정말로 해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충분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 나의 밤과 낮을 채워준 시집 『공통 언어를 향한 꿈』 속의 시 하나하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나는 믿게 되었다. 더는 무언가를 잡으려 텅 빈 손을 물속에서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단지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다른 모든 이의 인생처럼 나의 인생 역시 신비로우면서도 돌이킬 수 없이 고귀하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바로 이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한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574~575p, 5부 돌아가다
아마존ㆍ《뉴욕 타임스》 논픽션 부문 압도적 1위
《뉴욕 타임스》, 《중앙일보》, 《보그》, 《보스턴 글로브》 선정 ‘올해의 책’
김혜리, 주성철, 장도연 추천 영화 〈와일드〉 원작 에세이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내 두 발로 온전히 설 수 있을 때까지.”
캄캄한 벼랑 끝을 출발선 삼아 떠난 95일간의 여정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모든 인생은 고통”이라고. 하지만 그 고통이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들이닥칠 땐 비이성적으로 세상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셰릴 스트레이드는 엄마의 폐암 소식을 듣고 외친다. “뭣 같은 소리 집어치우라고 해!” 엄마의 삶은 늘 예기치 못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열아홉에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하여, 폭력을 일삼는 남편 아래 삼 남매를 낳았다. 가까스로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다음엔 쉼 없는 노동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엄마는 항상 넘치는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리고 마흔다섯, 늘 제 삶이 뒷전이던 엄마가 뒤늦게나마 대학을 다니며 못다 이룬 학업의 꿈을 펼치던 때였다. 이제 꽃필 일만 남은 엄마의 삶에 폭탄처럼 떨어진 ‘폐암’은 셰릴에겐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셰릴은 제 일상을 모두 포기하고 엄마의 곁을 지키지만, 암을 진단받은 지 겨우 49일 만에 엄마는 세상을 떠난다. 그때부터 그의 삶에서 사랑과 희망, 꿈 같은 낭만적인 가치는 모두 힘을 잃었다. 그는 스스로를 망가뜨리기로 작정한 듯 무분별한 성생활과 마약에 찌들어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상점 진열대에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여행에 관한 안내서를 발견한다.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 캐나다 국경 너머까지 9개의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도보 여행길로 사막과 열대우림은 물론 빙벽과 강, 고속도로까지 거쳐야 했다. 웬만한 베테랑 여행자도 엄두 내지 못할 길이었다. 그러나 불현듯 이곳으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곰, 방울뱀, 퓨마 같은 야생동물이 있을 것이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며, 모든 것이 부족하고 추위와 더위,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갈증과 허기가 괴롭힐 테지만 그는 직감한다. “이 황야의 순수함이 나를 구원해주리라는 것을.”
“깨달음의 눈물과 기쁨은 무슨,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은 비명뿐이었다.”
셀 수 없는 물집과 상처, 얻어맞은 듯한 근육통, 멍들다 못해 빠진 발톱들…
아름다운 여행기가 아닌 거친 야생의 생존기 속으로
580페이지, 그 방대한 분량만큼 이 책은 노골적이고 거칠며 가감이 없다. 그의 이야기는 보기 좋게 편집된 여행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자연의 공포를 포착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가깝다. 여행을 시작한 지 40분 만에 내뱉은 그의 첫 감상은 이 책의 매력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는 유려한 말로 정제하기보다 자신이 겪는 모든 육체적 고통과 두려움을 여과 없이 묘사한다. 이 책이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이지 않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위대한 경험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이유이다.
“나는 해 질 무렵 노을 아래에서나 혹은 청결한 산의 호수들을 바라보며 깊은 자아 성찰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내가 매일매일 자신을 씻어내는 눈물을 흘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을 만끽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내 입에서 나오는 건 비명뿐이었다. 그것도 내면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단지 발이 아파서, 등이 아파서, 엉덩이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아서였다.” (162p)
“이 여행길을 통해 내 인생을 다시 반추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나를 무너뜨린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스스로 다시 새로 태어나는 기회가 될 줄 알았어. 그렇지만 현실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고작해야 바로 눈앞에 놓인 육신의 고통에 급급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내 인생의 고통들은 해결되기는커녕 마음속을 왔다 갔다 하고만 있을 뿐이었다.”(161p)
상실의 회복을 위해 떠난 여정이었으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당장 눈앞의 ‘한 걸음’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걸으며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도, 험준한 바위산도, 다리를 감싸는 보드라운 풀꽃조차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그는 무자비한 자연과 무자비한 인생 그리고 엄마의 죽음까지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때로는 차갑고 서슬 퍼런 빙벽을 지나고, 때로는 황량하고 뜨거운 사막을 걷는다. 발 디딜 곳 없이 빽빽한 숲속을 걷다가,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를 마주하기도 한다. 그렇게 걸으며 마주한 야생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거칠고, 변덕스러웠으며, 그럼에도 순간순간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이 모든 고통과 아름다움은 스스로 바란 것은 아니지만, 걷다 보니 저절로 손에 쥐게 된 것이었다. 그는 무엇도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는 이 길 위에서 서서히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한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575p)
밥 말리 티셔츠, 행운의 까마귀 깃털, 꼬마 아이가 들려준 엄마의 노래
험난한 여정 속 선물처럼 다가온 다정한 연대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홀로 떠난 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여행자와 현지인의 이야기다. 고통스러운 여정 속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는 감초처럼 유쾌한 재미와 색다른 위로를 선사한다. 셰릴은 가능한 한 모든 여정을 혼자 헤쳐나가는 것이 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고집스레 되뇌지만,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여행의 특성상 히치하이킹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여덟 살 아이와 사별한 루와 스파이더, 아내 몰래 감초를 먹는 마초 프랭크, 노숙자 잡지 인터뷰를 요청하던 기자 지미 등 다양한 운전자와 대화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또한 짐 정리를 도와준 앨버트, 큰 위안이자 기쁨이었던 PCT의 여자 여행자들, 밥 말리 티셔츠를 선물해준 파코, 행운의 까마귀 깃털을 선물해준 톰, 바닷가 앞에서 깊은 사랑을 나누었던 조나단 등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과 정을 나누고 연대하며 여행의 가장 큰 위기에 닥칠 때마다 사람으로부터 구원받는다. 모두와 멀어져 세상에 홀로 남았던 순간, 그러므로 혼자 떠나야만 한다고 다짐했던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누군가의 위로와 연대가, 진정으로 자신을 우뚝 서게 만든다는 것을 느낀다.
셰릴은 혼신의 힘을 다해 3개월간의 여정을 마친다. 넘어질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역시나 기대만큼 엄청난 감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정 내내 강해진 두 다리로 다가오는 내일을 온전히 살아가기로 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길을 잃는다. 그리고 지팡이 하나 없이 어두운 숲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가야 할 때가 온다. 끝을 알 수 없고, 어떤 짐승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숲속으로. 이 책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그 순간, 그 길의 끝에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분명한 믿음을 제시해줄 것이다.
작가정보
놀라울 만큼 솔직한 자기 고백과 섬세한 묘사로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37세에 발표한 데뷔작 『토치Torch』는 《오리거니언》 신문이 뽑은 ‘2006년 올해의 책 베스트 10’에 선정되었고, 4,285km의 도보 여행을 흥미롭고도 시적인 묘사와 솔직한 고백으로 기록한 에세이 『와일드』는 출간 즉시 각종 베스트셀러 차트를 석권했으며, 아마존과 《보스턴 글로브》, 《보그》 등 다양한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덴마크 등 전세계 21개국에서 출간되어 세계 유수 언론들과 독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찬사와 끝없는 화제를 낳고 있는 수작으로 2014년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현재 그는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보그》 《얼루어》 《선》 《베스트 아메리칸 에세이》 등에 글을 기고하면서 ‘슈거’라는 이름으로 인생 상담을 해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출간한 소설과 에세이는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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