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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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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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도 뒷계단이 있다. … 뒷계단을 통해 올라간다면 화려한 허식이나 고귀한 척하는 과장이 없는 그들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그들의 본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들의 인간됨, 또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려고 애쓰는 위대하고도 약간 감동적인 노력도 보게 된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뒷계단으로 올라온 무례함은 없어지고 오히려 철학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1. 탈레스 혹은 철학의 탄생
2.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혹은 대립하는 쌍둥이
3. 소크라테스 혹은 짜증 나는 질문
4. 플라톤 혹은 철학 사랑
5.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세계의 인간으로서의 철학자
6. 에피쿠로스와 제논 혹은 의무 없는 행복과 행복 없는 의무
7. 플로티노스 혹은 황홀경을 바라봄
8. 아우구스티누스 혹은 죄의 쓸모
9. 안셀무스 혹은 신 증명
10. 토마스 아퀴나스 혹은 세례받은 이성
11. 에크하르트 혹은 신이 아닌 신
12.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혹은 신의 이름들
13. 데카르트 혹은 가면 뒤의 철학자
14. 파스칼 혹은 십자가에 못 박힌 이성
15. 스피노자 혹은 참의 보이콧
16. 라이프니츠 혹은 모나드들의 직소 퍼즐
17. 볼테르 혹은 궁지에 몰린 이성
18. 루소 혹은 불운한 감정의 사상가
19. 흄 혹은 회의적 난파
20. 칸트 혹은 사유의 시간 엄수
21. 피히테 혹은 자유의 폭동
22. 셸링 혹은 절대성에 홀딱 반함
23. 헤겔 혹은 세계정신 자체
24. 쇼펜하우어 혹은 심술궂은 눈길
25. 키르케고르 혹은 신의 첩자
26. 포이어바흐 혹은 신의 창조자인 인간
27. 마르크스 혹은 현실의 반란
28. 니체 혹은 아무것도아니즘의 힘과 힘없음
29. 야스퍼스 혹은 결실 풍부한 실패
30. 하이데거 혹은 있음의 전설
31. 러셀 혹은 저항으로서의 철학
32. 비트겐슈타인 혹은 철학의 붕괴
에필로그 혹은 올라감과 내려감
옮긴이의 글
철학은 세계와 사물들과 인간을 관찰한다. 그러나 철학이 최종적으로 묻는 것은 세계의 깊이에 관한 것이다. _26쪽
어쩌면 세계의 깊이를 탐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발밑의 토대를 잃어버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트라키아 하녀들이야 그걸 비웃으라지. 하지만 더 깊고 더 확실한 기반을 얻겠다는 무모한 희망을 품고서 자기가 서 있는 기반을 잃어버리는 모험을 감행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철학이 시작된 이후로 철학하기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_27쪽
그러나 인간에게 좋은 것이란 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그에게 진짜로 좋은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자신의 본질을 가능한 한 펼치고 완성하는 일이다. 인간은 진실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 본래의 규정이다.
이런 생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본래의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원칙을 지닌 모든 휴머니즘의 아버지가 된다. 물론 이런 윤리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아무런 문제를 갖지 않고, 또 단절 없이 전체 세계 안으로 흡수된다는 의식을 가지던 시대에만 가능한 것이다. _96쪽
철학은 “삶을 살아가는 기술”이다. 그러나 스토아학파는 에피쿠로스처럼 쾌락과 향락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않고 자기 자신과의 일치에서 찾았다. 코스모스(질서, 혹은 우주)나 폴리스(도시국가)에서 확고한 기반을 갖지 못하게 된 인간은 이제 자기 자신 위에 서야 한다는 생각이 그 뒤에 숨어 있다. 그의 윤리적 과제는 보편적인 미덕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인간 안에 들어 있는 특별한 인간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다. _114쪽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것마저 넘어선다.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한 모습들을 인간의 본질에 속하는 계기(Moment)들이라고 여긴다. 그를 철학으로 이끌어가고, 또 거기 머물도록 만든 것은 인간에 대한 물음이다. 인간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향한 눈길을 통해서만 참에 도달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 신념이다. 즉, 자신을 들여다봄으로써 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 내적인 삶의 생동성으로 인간의 내면성을 발견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쓸 수가 있다. “너의 밖으로 나가지 말고 너 자신 속으로 들어가라. 내면의 인간 속에 참이 깃들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렇게 내면성을 향하면서 철학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_139쪽
이렇듯 데카르트의 삶은 은둔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똑같은 것이 그의 책에도 나타난다. 그의 책도 이상한 모호함으로 감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문제로 삼은 주제 자체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두려울 정도의 대담함으로 그는 과격하게 철학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다 자기 앞에 입을 벌린 심연을 보고는 놀라 물러서서 옛날의 생각과 옛날 믿음의 길로 돌아간다.
어쩌면 급변하는 시대의 사상가에게는 새것을 따르면서도 낡은 것에 달라붙어 있는 것만이 가능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가오는 것에 대한 의무감과 지나간 것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분열된 지식을 가졌다는 점이 데카르트라는 수수께끼 현상의 진짜 비밀이다. 그리고 바로 그럼으로써 그는 철학의 역사에서, 아니 그 이상으로 인간 정신의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_213-214쪽
“철학을 비웃는 것, 그것이 참된 철학하기다.” 파스칼처럼 무겁게 철학을 한 사람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_239쪽
스피노자가 단호히 자신의 참에 헌신했다는 것이야말로 그를 자기 시대의 주요 세력들과 적대관계에 빠지게 만든 일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유대교와 싸움에 말려 들었고 바로 그 때문에 시대 전체의 증오를 불러들였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철학에 속하는 일이다. 오직 참에만 귀를 기울이고, 거기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상관하지 않고, 사람들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피노자는 참된 철학자였다. _246-247쪽
이런 국가관은 중대한 결과들을 가져왔다. 루소 시대의 실제 국가는 순수한 일반의지에 기초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게, 힘없는 사람이 권력자에게 억압당하는 상황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소의 국가이론은 혁명의 기폭제가 된다. 그 자신이 혁명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위기의 상태에, 그리고 혁명의 세기에 다가가고 있다.” _310쪽
친구들이 좋은 마음으로 그의 규칙적인 생활을 망가뜨리는 것보다 그를 더 화나게 하는 일은 없었다. 언젠가 한번은 어떤 귀족이 시골로 가는 마차 드라이브에 그를 초대했다. 하지만 이 드라이브가 너무 오래 걸려서 칸트는 “10시 무렵에야 두려움과 불만에 가득 찬 모습으로 집 앞에 내려졌다.” 철학자답게 그는 이 작은 체험을 즉시 일반적인 생활 규칙으로 바꾸었다. 말하자면 “절대로 누군가의 드라이브에 따라나서지 않기로” 정한 것이다. _329쪽
철학하기란 언제나 새로이 본질적인 물음들을 내놓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의 문제에 대한 칸 트의 해결책이 모든 시대에 타당성을 가질 수는 없다. 그 이후로 인류를 기습한 사유의 위기 속에서 형이상학의 확실성은 다시 문제 많은 것이 되었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특히 그렇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칸트의 다음과 같은 명제는 여전히 타당하다.
“인간의 정신이 형이상학 탐구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가 항상 더럽지만은 않은 공기를 만들기 위해 차라리 호흡을 완전히 중지한다는 일만큼이나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_345쪽
헤겔이 실패했다 해도, 그가 자신에게 내놓은 과제는 여전히 철학의 본질적인 관심으로 남아 있다. 세계를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일 말이다. 이런 노력에서 헤겔은 모든 철학하기의 모범이다. _406쪽
철학은 세계에 대한 경탄과 놀라움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어디에나 나타나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가 작용한다. “(우리를) 철학하기로 몰아가는 놀라움은 분명 세계 속의 재앙과 악을 바라보는 데서 나온다.” “죽음에 대한 지식, 그와 더불어 삶의 고통과 곤궁을 관찰하는 일은 의심의 여지 없이 철학적 사색과 세계를 형이상학으로 해석하도록 가장 강한 자극을 준다.” _418쪽
행동을 방해하는 끊임없는 성찰 중독증은, 키르케고르가 보기에 인간을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린다. 그 누구도 결정을 내리지 않고 또 그런 선택에서 자기 자신으로 되지 않는다면, 더 깊은 의미에서는 아무도 다른 사람과 구분되지 않는다. 황폐한 평준화가 자리를 잡는다. 인간들의 모임은 “청중”이 되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익명의 “여론”이 되고 만다. 그 특성은 “수다”이고, 책임이 있는 연설은 “소문”에 밀려 추락한다. _435-436쪽
그는 약간 대담하고 아주 틀린 것만도 아닌 사실로 자신을 위로했다. “나는 철학 교수직에 잘 맞지 않는다. 내가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특별한 존재 등급”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자기를 “보통의 전문 분야 교수 등급으로 깎아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_441쪽
“사건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결정하는 역사 법칙은 없다. 미래는 사람들이 보이는 결정과 행위에 대한 책임에 달려 있다.” 이런 자유의 이념이 야스퍼스의 기본사상이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이것과 관계가 있다. _496쪽
하이데거는 젊은 시절에 정열적이고 노련한 스키어였다. 심지어는 스키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 그가 펠트베르크 농장에서 여는 플라톤 세미나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는다. 세미나에 이어 스키 활주로로 올라가서 스키 강습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러다가 작은 사고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번은 하이데거가 간단한 제동 회전(슈템보겐) 도중 눈밭에 쓰러지는 바람에, 스키 선생으로서의 위신이 거의 사라질 지경이 되었다. 이 미끄러짐은 철학에서의 어떤 실패보다도 그에게 더욱 아프게 여겨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제자들은 바싹 얼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기다렸다. 하이데거 자신도 당황했다. 그러나 눈부신 크리스티아니아[언덕을 가로지르는 도약]를 통해 그는 자신과 세계를 정상으로 되돌려놓았다. _508쪽
추천사
바이셰델은 위대한 철학자들을 이해하는 데 두꺼운 대형판형의 책이나 그들의 작품에 대한 영리한 해석보다 부엌과 침실로 이어지는 뒷계단을 통하는 것이 더 쉽고도 직접적이라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_〈슈피겔〉
탈레스로부터 비트겐슈타인에 이르는 유럽 사상을 재미있게 아우른 저자의 통찰은 모든 면에서 권할 가치가 있다.
_〈차이트〉
철학사 입문서로서 표준적인 저작들이 이미 다수 나와 있다. 빌헬름 바이셰델의 《철학의 뒷계단》은 높은 접근성을 추구하는 대중적이면서도 학문적인 철학사 입문서 중에서도 여전히 고전으로 여겨진다.
_〈디 벨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학문적으로 훈련된 사유와 독서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의 철학자들과, 세계를 변화시킨 그들의 인식에 접근할 수가 있는가? 아직 어린 자녀에게 복잡하게 뒤얽힌 하이데거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설명할 수 있는가? 또는 수학자 러셀의 ‘전제에 대한 의심’이나 공학도였던 비트겐슈타인의 《논고》와 《철학적 성찰》의 성과를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할까? 아이가 스스로 질문하고 성찰하는 이성을 키울 수 있도록 설명해줄 수 있을까?
여기 나오는 서른네 편 에세이를 통해 빌헬름 바이셰델은 이해하기 힘든 학술 문헌을 들먹이지 않으면서, 주요 철학자들이 지닌 사유의 핵심과 그들의 생애를 통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서술한다. 위험한 요약에 쉽사리 빠져들지 않고, 핵심 문제와 답변을 이해하기 쉽게 제시한다. 덕분에 이 책은 일종의 사회교육 과정이 된다. 독자들에게 그 어떤 예비지식도 요구하지 않은 채, 재미있는 일화들을 들려주는 가벼운 도입부를 통과하여 사유의 중심부로 곧장 들어가기 때문이다. 밀레토스의 상인 철학자 탈레스부터 철학의 붕괴를 예고한 현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2500년 서양철학사에서 뽑아낸 재료는 학술적 거만함이나 꼰대 같은 태도 없이 뛰어난 교육 효과를 낸다.
_〈라이니셰 메르쿠어〉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철학 입문서의 고전
독일 초장기 스테디셀러 정식 한국어판!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대표적인 서양철학자 34인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는 책 《철학의 뒷계단》이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를 찾아왔다. 저명한 칸트 연구자 빌헬름 바이셰델이 쓴, 독일에서 이제는 고전으로 인정받는 철학입문서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곁들여 철학자들의 삶과 됨됨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관심을 불러일으킨 뒤 그들의 사유의 핵심으로 직행하는데, 피상적 소개에 그치지 않고 각자가 품었던 문제의식, 그들의 삶과 시대와의 연관성, 사상의 의의를 통찰력 있게 포착해 보여준다. 철학책으로는 보기 드물게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덕분에 금세 독일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고,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철학자들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
사유의 거장들과의 예기치 않은 즐거운 만남
“철학에도 뒷계단이 있다. … 뒷계단을 통해 올라간다면 화려한 허식이나 고귀한 척하는 과장이 없는 그들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그들의 본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들의 인간됨, 또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려고 애쓰는 위대하고도 약간 감동적인 노력도 보게 된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뒷계단으로 올라온 무례함은 없어지고 오히려 철학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프롤로그에서)
왜 뒷계단인가? 앞계단을 오를 때와는 달리 말쑥하게 차려입지 않아도 되고, 그리로 올라가면 역시 평상복 차림을 한 거주인을 만나게 된다. 화려한 장식에 시선을 빼앗길 일도 없이, 바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부담 없이 올라가 꾸밈 없는 철학자들을 만나 곧장 대화에 임할 수 있다는 것, 철학의 뒷계단을 오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게 철학의 계단을 오르면,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요구를 이리저리 피해다녔던 탈레스가, 사람들의 지켜보는 시선은 아랑곳않고 24시간을 꼬박 같은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던 소크라테스가, 눈에 띄는 거대한 몸피를 지녔음에도 “어떤 경우에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겠다는 소망”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아 ‘말 없는 황소’라는 별명을 얻었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책 《자본》에 대한 반응이 전무하자 부정적 서평과 긍정적 서평을 직접 쓴 마르크스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세상이라는 책’에서 배우기를 바라며 유럽 각지를 떠돌던 모습 이상으로 은둔을 꿈꾸었던 데카르트, 정해진 일과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던 칸트라면 이런 갑작스런 방문을 못마땅해할 수도 있겠다. 칸트라면 다방면에서 해박했음에도, 햇빛이 빈대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여겨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늘 덧창을 닫아두었다는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치열한 사유만큼이나 욕설과 비방, 경멸에 능한 이들도 있었다. 볼테르는 루소를 “세기의 똥”, “문학에서의 악성 궤양”이라 불렀고, 피히테는 당대의 지식인 프리드리히 니콜라이를 향해 “개한테 언어와 글쓰기 재능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리고 니콜라이의 뻔뻔함과 니콜라이만큼 긴 수명을 보장해줄 수 있다면, 개도 우리 주인공과 똑같은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와 같은 악담을 퍼부었다. 쇼펜하우어의 독설 역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 책에는 이처럼 철학자들의 남다른 면모, 숭고한 모습과 눈을 찡그리게 할 만한 행동 등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아주 위트 있게 그려낸다.
“어떻게 그렇게 진지한 철학자가 그토록 잔인한 인신공격을 할 수가 있는가? 하지만 철학하기의 본질이 조용히 침잠하여 평온하게 사색에 빠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 줄여 잡은 것이다. 옛날부터 철학자들은 두 얼굴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내면을 향한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향한 얼굴, 즉 사상으로 현실을 고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 얼굴이다. 현대 철학자 중 누구보다도 피히테에게서 이런 충동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349-350쪽)
물론 이런 이야기가 그저 흥밋거리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어지는 설명을 읽노라면 그들의 사유가 그들의 경험에서 연유한 것임을, 철학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의 삶의 정황과 그들의 시대에서 솟아오른 것임을 알게 된다. 신의 존재며 속성에 관한 물음이라든가 영혼의 불멸성처럼 우리 눈에는 고루하기 이를데 없는 것 같아 보이는 문제도, 실은 철학자 개인의 실존적 물음이자 당대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과제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철학이 신선하고 젊은 힘으로 존재하던 시작의 때부터
전통 철학의 역할이 끝나고 철학의 붕괴가 나타나기까지,
철학자들이 씨름한 문제의 핵심을 통찰력 있게 서술한 책
대중을 철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책들이 많지만 이 책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1966년 처음 출간된 이후, 한 차례 개정판이 출간되고, 이후 쇄를 거듭하며 발행되면서 “일종의 사회 교육과정”을 담당하고 있으며, 《우주의 뒷계단》 《심리학의 뒷계단》 《고고학의 뒷계단》 《영성의 뒷계단》 《양자 도약의 뒷계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출간된 ‘뒷계단’ 책들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꾸준히 독자들의 리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책의 힘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자신 칸트 연구의 대가로서 철학 연구에서 일가를 이룬 이의 책답게, 철학사 안에서 각 철학자들의 사상의 본뜻과 의의를 설명하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탈레스의 ‘만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정말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불변하는 ‘존재’에 주목했던 파르메니데스와 ‘변화’에 주목한 헤라클레이토스를 정신의 ‘쌍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철학을 비웃는 것, 그것이 참된 철학하기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에 대해 “가장 철학을 무겁게 한 사람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라는 저자의 평가는, 저자가 들려주는 파스칼에 대한 이야기를 꼼꼼하게 읽은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인물들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34명의 철학자들을 때로는 가까이에서,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는 이 책은 철학의 시초부터 붕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전 보여주는 한 권의 철학사로도 손색이 없다.
역자는 책을 번역하는 동안 대단한 지적인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아마 책을 읽는 독자 중에도 그런 이가 적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중국어, 일본어, 덴마크어, 네덜란드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체코어, 터키어 등 다수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한국에서도 이 책은 《철학의 뒷계단》, 《철학의 뒤안길》, 《철학의 에스프레소》와 같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대학의 철학 개론 수업에서, 그리고 학원가에서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 책은 독문학자 안인희 선생의 번역으로 《철학의 에스프레소》로 출간되었던 것을 역자가 번역문을 수차례 읽으며 손질해 원제를 붙여 다시 출간한 것이다. 흔히 쓰이는 ‘존재’, ‘현존재’, ‘진리’, ‘니힐리즘(허무주의)’ 등을 대신하는 말로 각각 ‘있음’, ‘여기있음’, ‘참’, ‘아무것도아니즘’처럼 일상의 쉬운 우리말을 활용한 새로운 용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어떤 번역어에서는 그렇게 한 이유를 각주로 설명하기도 했는데, 순우리말과 한자어, 영어/독일어 사이의 어휘의 차이, 거기서 비롯된 사고방식의 장단점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가정보
Wilhelm Weischede
19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나, 폴 틸리히, 루돌프 불트만, 마르틴 하이데거, 니콜라이 하르트만 등이 있던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개신교 신학, 철학, 역사학을 전공했다. 1932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지도하에 〈책임의 본질〉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치 치하의 독일 학계에서 자리를 얻지 못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비로소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튀빙겐 대학 교수를 거쳐 1953년부터 1970년까지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마누엘 칸트 역사 비평판 전집의 편집인을 맡았을 뿐 아니라, 철학자들의 사상이 연유한 근본 경험을 연구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형이상학의 종말과 그로 인한 철학적 허무주의의 만연을 당대의 철학적 문제로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는 작업에 천착하여 《회의적 윤리학(Skeptische Ethik)》 《철학자들의 신(Der Gott der Philosophen)》 등의 주요 저작을 남겼다. 1975년 베를린에서 서거했다. 철학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턱을 낮춰 쓴 철학 입문서인 이 책 《철학의 뒷계단》은 1966년 처음 출간된 이래 판과 쇄를 거듭하며 독일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고, 지금도 수많은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말로도 《철학의 뒤안길》 《철학의 에스프레소》 《철학의 뒷계단》 등의 제목으로 몇 차례 번역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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