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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설 이상 슬픈 이야기

이상(李箱) 지음 | 라바(Rava) 사진
포토프레스

2024년 09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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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1.82MB)
ISBN 979119891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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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나는 세상의 모든 죄송스러운 일을 잊어버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손수건을 기처럼 흔들었습니다. 패배의 기념입니다.”

세상을 향해 패배의 백기를 드는 순간, 죄송스러운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럼에도 하는 수 없이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용기가 없습니다. 얼굴에 입맞춤할 빈터마저 없는 여인에게 함께하기를 청했습니다. 여인이 말합니다. “죽은 셈 치고 그 영혼을 제게 빌려주실 수는 없나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자꾸만 시간이 지체됩니다. 나는 죽음에도 백기를 드는 것일까요? 천재 작가 이상의 「슬픈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실제 세상을 포착한 라바(Rava)의 사진이 뒤를 따릅니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질수록 나타나는 것은 나의 모습입니다. 세상을 향해 나는 어떤 깃발을 들고 있을지, 『사진소설 이상 슬픈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가 소개
프롤로그
슬픈 이야기
물속으로도 황혼이 오나 안 오나
약 한 봉지와 물 한 보시기
태엽을 감아도 소리 안 나는 여인
여보 섧지는 않소?
내 마지막 허영심의 레터 페이퍼
주석
판권

젖 떨어져서 나갔다가 23년 만에 돌아와 보았더니 여전히 가난하게들 사십디다. 어머니는 내 대님과 허리띠를 접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모자와 양복저고리를 걸기 위한 못을 박으셨습니다. 동생도 다 자랐고 막내누이도 새악시 꼴이 단단히 박였습니다. 그렇건만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동무도 없어졌습니다. 내게는 어른도 없습니다. 버릇도 없습니다. 뚝심도 없습니다. 손이 내 뺨을 만집니다. 남의 손같이 차디차구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나요? 이렇게 야위었는데.’

계절에 대한 근심이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때 나는 사람이 불현듯 그리워지나 봅니다.

입 맞출 자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입 맞출 자리란 말하자면 얼굴 중에도 정히 아무것도 아닌 자그마한 빈 터전이어야만 합니다. 그렇건만 이 여인의 얼굴에는 그런 공지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나는 이 태엽을 감아도 소리 안 나는 여인을 가만히 가져다가 내 마음에다 놓아두는 중입니다.

여인, 내 그대 몸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으리다. 죽읍시다. “더블 플라토닉 슈사이드인가요?” 아니지요, 두 개의 싱글 슈사이드지요. 나는 수첩을 꺼내서 짚었습니다. 오늘이 11월 16일이고, 오는 오는 공일날이 12월 1일이고 그렇다고. “두 주일이군요.” 참 그렇군요. 여인의 창호지같이 창백한 얼굴에 금이 가면서 그리로 웃음이 가만히 내다보나 봅니다.

“틀림없이 같이 죽어드리기로.” 네, 감사하다 뿐이겠습니까.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생각하고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죄송스러운 일을 잊어버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손수건을 기처럼 흔들었습니다. 패배의 기념입니다.

별도 없이 바다는 그냥 문을 닫은 것처럼 어둡습니다. 소금내 나는 바람이 여인의 치맛자락을 날립니다. 한 개 남은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요거 한 대가 다 타는 동안에 마지막 결심을 하면 됩니다.

여보 섧지는 않소? 여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다 탔소. 문을 닫아라. 배를 벗어 버리는 미끄러운 소리…… 답답한 야음을 떠미는 힘든 소리…… 바다가 깨어지는 요란한 소리…… 굿바이. 악마는 이 그림 한구석에 차근차근히 사인을 하였습니다.

“논픽션인 사진과 픽션인 글의 조합”
“천재 작가 이상과 사진가 라바의 조우”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자라다”

포토프레스의 포토+픽션 시리즈는 논픽션인 사진과 픽션인 글을 조합하는 기획으로 근현대 문학을 포함합니다. 그 첫 번째는 이상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시와 소설, 수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상의 문학에서 수필로도 때로는 소설로도 분류되는 글을 사진과 조합했습니다. 사실인 듯 허구인 듯 흘러가는 이야기에 스냅사진이 함께합니다.
세상을 사실적으로 촬영한 사진이 허구에 기대 삶을 표현한 글과 조우합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진과 글이 때로는 조화를 이루고 때로는 충돌합니다. 그 사이에서 나타나는 의미들은 실재와 허구 사이에 머무는 모호한 삶의 또 다른 일면입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모호함은 그 자체로 완전함입니다. 삶의 모호함이 명확함보다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상(李箱)

한국의 대표 근대 문학가로서 일제강점기 다수의 시, 소설, 수필 등을 발표했습니다. 1930년대 자의식을 탐구하고 무의식을 탐색하는 문학을 선보여, 선구적인 모더니즘 작가로 평가를 받습니다. 본명은 김해경(金海卿,1910년~1937년)으로, 건축을 공부해 건축기사로도 일한 바 있습니다.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진과 삶, 사진과 세상 사이에서 글과 사진으로 세계를 표현하며 마음을 나눕니다. 본명은 정은정(鄭恩正)입니다. 서강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중앙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졸업했습니다. 사진과 글을 접목하는 것을 즐기며 사진 창작, 리뷰, 교육, 출판 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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