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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그의 빛

심윤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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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9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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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1.88MB)
ISBN 9791141607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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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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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설이』 『영원한 유산』…
장편소설의 마이스터, 심윤경 신작
여성의 목소리로 다시 쓴 21세기식 『위대한 개츠비』

2002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고 20만 부 이상 판매된 『당신의 아름다운 정원』에 이어 『달의 제단』 『설이』 등 늘 새롭고 강렬한 이야기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심윤경. 서사를 장악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장편소설의 마이스터라 불리는 그가 『위대한 그의 빛』으로 돌아왔다. 희대의 친일파가 남긴 대저택 벽수산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소설 『영원한 유산』으로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뒤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이다.
매번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작품들을 선보여온 그. 이번에는 한때의 첫사랑을 다시 만나기 위해 막대한 부를 쌓고 매일 밤 강 건너 그녀의 집이 건너다보이는 대저택에서 파티를 벌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어딘가 낯익은 이야기라고? 그렇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위대한 그의 빛』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5년작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쓴 소설이다. 심윤경은 1920년대 뉴욕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를 2020년대 서울로 옮겨와 펼쳐 보인다. 전통의 부호인 데이지와 톰이 사는 이스트에그는 압구정동으로, 신흥 부자 개츠비가 사는 웨스트에그는 성수동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위대한 그의 빛』은 단지 고전 소설의 배경만 현대로 옮겨온 번안 소설은 아니다. 소설에서 사건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는 이의 시선, 그리고 화자의 목소리가 아닌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목격하고 서술하는 이가 남성인 닉이었다면, 『위대한 그의 빛』에서는 여성인 이규아로 반전된다. 이규아는 여성의 시선으로, 불가능한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제이 강을, 그리고 그의 빛이자 욕망이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유연지를 지켜본다. 이러한 이유로 『위대한 그의 빛』의 이야기는 『위대한 개츠비』의 시작점에서 점점 멀어져 끝내 전혀 다른 결말로 나아가게 된다. 달라진 것은 화자의 성별만은 아니다. 바이오 스타트업과 가상화폐로 가공할 만한 물질적 성공을 이뤄낸 제이 강과 그를 자본주의의 영웅적 인물로서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은 거울처럼 우리 시대를 비추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이 소설은 ‘여성의 목소리로 다시 쓴 21세기식 『위대한 개츠비』’라고 할 수 있겠다.

맙소사, 성수동과 압구정동이 이렇게 정확하게 마주보는 위치였구나, 나는 한강을 따라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높고 얕은 두 건물들의 대칭성에만 집중하여 그곳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올드 머니와 뉴 머니를 대표하는 두 건물들이 찰랑이는 넓은 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이 풍경은 분명 낯익은 데가 있었다. 개츠비가 바다 건너편 가물거리는 초록 불빛을 향해 손을 내밀던 바로 그 자리에 선 놀라움 속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
_‘작가의 말’에서
압구정동
대성리
뉴욕
밤섬
한강
녹두거리
성수동
올림픽대로
빛으로

작가의 말

강재웅은 유연지를 잊지 않았다. 그저 잊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연지와 다시 만나는 순간에 대한 조화롭고 완벽한 과정의 상이 그의 머릿속에서 수천만 번이나 재현되고 발전한 나머지 그 상상의 장면은 허공 속에서 쓰다듬은 수천만 번의 손길에 의해 매끄럽게 다듬어진 하나의 단단한 대리석 조각상이 되어 서 있었다. 그는 이제 실물이나 다름없이 확실해진 그 석상을 오른쪽과 왼쪽, 위쪽과 아래쪽에서 모든 각도로 지켜보고 만질 수 있었다. 집착조차 오래전에 잊었다는 듯 무덤덤한 그의 목소리는 그 재회의 장면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이 순간까지 신화적인 인생의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디뎌왔음을 분명히 암시했다.
_143쪽

“저기 살아? 저기가 재웅이네 집이란 말이야?”
“저기 꼭대기 층이에요.”
에클바이오와 에클코인을 거쳐 T타워에 이르는 그 믿을 수 없이 비인간적인 역정을 손가락을 다 펼 필요도 없이 가벼운 손짓으로 요약하기 위해, 그처럼 대수롭지 않게 연지를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재웅은 이날까지 살아왔다. 하나도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위장하기 위해, 그리고 그 순간 필연적으로 연지의 얼굴에 스칠 망설임을 무마하기 위해, 재웅은 유러피안 앤티크 가구와 케이크와 티 세트와, 그리고 킹스포인트와 나까지, 아마도 공들여 준비했을 것이다.
_182쪽

재웅은 말하지 않고도 그가 원하는 대로 일을 몰아가는 힘이 있었다. 신입생으로 동아리의 막내였을 때에도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이 그에게 신경을 썼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했고 무엇을 원할지 짐작하려 애썼다. 그가 요구하거나 주장하지 않아도 일은 그의 생각대로, 아니 우리가 그의 생각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대로 흘러가곤 했다. 그가 입을 열어 자기 생각을 명확히 밝힌다면, 반론이 따를 때도 있긴 했지만 거의 반드시 그대로 되었다. 그가 가진 신기한 힘이었다. 떠밀려 강요당하는 느낌을 받지 않으며 그의 생각대로 움직였던 그때처럼 지금도 그 자장을 강력하게 느꼈다. 사람의 신경 물질 전달 과정에 ‘반드시’라는 이름을 가진 수용체가 있다면, 재웅은 정확하게 그 수용체를 자극하는 어떤 페로몬을 폭발적으로 분비했다. 재웅은 내가 연지와 그 사이를 도와주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무언가를 바란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왠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_193~194쪽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와 여러 대륙을 몰고 다닌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가 이룬 모든 일을 추동한 희망의 근원 앞에 다시 서서 그것을 마침내 얻으려는 황홀한 순간에 나는 잔인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말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를 죽일 수 있을 만큼 지독한 질문이었다.
_196쪽

“누나, 이제 이 바보들 속에서 빠져나와. 누나는 그저 의무를 다했을 뿐이지, 한 번도 그들을 사랑한 적이 없어. 이제 됐어. 이제는 누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
_236쪽

우선은 에클타워를 떠나야 했다. 에클타워뿐만 아니라 이 골치 아픈 모든 소동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그냥 어딘가에 존재했을 나의 조용한 인생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광채와 유연지, 강재웅, 뉴욕과 성수동과 압구정동과 추석의 코스모스까지 모두 떠난 어떤 고요한 장소를 간절히 소망했는데 세상에 과연 그런 곳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광채의 벤틀리를 주차대행 직원이 가져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마이어 여사의 분노가 진정되기를, 연지가 어렵게 선택한 두번째 사랑이 시작하자마자 거센 풍랑을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남몰래 두 손가락을 꼬았다.
_239~240쪽

신은 그런 식으로 못된 장난을 친다. 가장 진실한 표현력을 가진 얼굴 뒤에 결코 의지해서는 안 될 것을 숨겨놓는다. 아주 간단한 트릭인데 인간은 거의 틀림없이 혼란에 빠지고 만다. 실은 나 역시 아직도 헷갈린다. 많은 사람이 재웅의 말과 약속을 담은 여러 기록들을 재생하며 그 모든 일이 어쩔 수 없었음을, 그가 다시 일어나 K-영웅 스토리를 이어갈 것을 믿었다. 말과 표정, 몸과 자세, 학벌과 경력,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진실성을 담보했다. 이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그가 다시 나타나 그 표정, 그 목소리로 다가온다면 나는 또다시 혼란 속에 빠지고 말 것이다. 호리호리하면서도 강인한 그의 몸, 진중한 얼굴, 무엇보다도 그 나직하게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나는 또다시 나 자신을 의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다시는 만나지 않으려 한다. 신이여, 이번에도 마음껏 즐겼는가? 나는 더이상 그에게 공물을 바치지 않는다.
_258~259쪽

장편소설을 이렇게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은 게 얼마 만인가. 이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의 소설이다.
_정이현(소설가)

작가정보

저자(글) 심윤경

2002년 자전적 성장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달의 제단』으로 무영문학상을, 2021년 『영원한 유산』으로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 『사랑이 달리다』 『사랑이 채우다』 『설이』 『위대한 그의 빛』, 연작소설 『서라벌 사람들』, 산문집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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